‘공동합의성 강좌’와 하느님 백성

교회 비평가들은 이번 ‘공동합의성’을 주제로 한 세 번의 시노드(2021.10-2023.10)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장 크고 의미심장한 제도교회의 움직임으로 보기도 한다. 잘 알려진 대로 기존 시노드와는 두 가지 점에서 대별된다. 하나는 교구, 나라별 또는 대륙별 시노드를 세계 주교 시노드 전에 따로 하도록 사전 두 단계를 두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노드 주체에 있어서도 주교뿐 아니라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전체 하느님 백성의 참여를 북돋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국내에서는 몇몇 교구와 수도회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지만 미약한 상황에서 필자가 속한 우리신학연구소(우신연)에서는 한국  교회, 특히 ‘평신도의 한 응답’이라는 차원에서 강좌를 마련했다. 공동합의성과 관련해 그 개념 이해에서부터 본당과 교구의 현실과 해외 사례를 살피는 등 좀 더 넓고 깊게 공부해 보자는 취지다.

흥미로운 것은 사제, 수도자, 평신도를 포함해 참가자 30여 명이 회를 거듭할수록 눈치 보거나 ‘자기검열’ 하는 데서 점점 자유로워져 자신들이 겪은 체험과 느낌을 솔직하게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여러 얘기들이 오갔고, 특히 전에는 속시원하게 끄집어 내기 어려웠던 얘기들도 풀려나왔다. 이를테면, ‘진보적’인 사제를 포함해 거의 모든 성직자가 자신을 ‘하느님의 백성’인 평신도나 사람이 아니라 교계와 일치시켜, 평신도가 교계의 문제를 지적하면 그것이 정당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비난이나 도전으로 받아들여 상처를 받거나 아니면 거꾸로 괘씸하게 여기는 문화에 너무도 익숙해 있다는 지적이 하나의 예다. 그러나 그런 ‘성직자 중심주의’는 사제나 주교 면전에서 부지불식간에 발언의 수위를 조절하는 평신도나 수도자에게도 마찬가지여서, 마치 숨을 쉬면서도 의식하지 못하는 공기처럼 몸에 배어버린 것이기도 했다. 또한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사회의 정의와 평화 문제에는 매우 헌신적으로 투신하고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고자 애쓰면서도, 교회 안의 정의나 여성 문제 등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교회의 현실에 대해서도 문제제기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는 이제 6번째 만남으로 접어드는 시간의 누적도 한 요인이겠고 또 단체로 참가한 수도회들을 제외하면 참가 인원이 제한되어 있어서 신뢰 서클이 어렵지 않게 형성된 까닭도 있다고 보인다. ‘공동합의성은 단순한 의사결정 구조도, 의회(parliament)도 아니’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반복되는 경고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우신연이 조직한 이번 강좌는 공동합의성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서로 잘 듣는 ‘경청의 과정’을 만들어 나간 사제, 수도자, 평신도 사이의 실질적인 공동협력의 장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교회와 신도의 삶 구석구석에 스며든 성직자 중심주의를 찾고 그것의 폐해를 확인하며 그 대안을 찾아가는 이런 경청의 훈련과정을 한 번 더 마련한다면 교회 엔지오인 우신연이 본당이나 교구, 수도회와 공동협력을 더욱 넓혀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015년 바티칸에서 열린 주교 시노드. (사진 출처 = 바티칸뉴스)
2015년 바티칸에서 열린 주교 시노드. (사진 출처 = 바티칸뉴스)

교회개혁과 세 번의 시노드

프란치스코 교황은 9월 19일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한 모임에서 신자들에게 공동합의성에 관해 길게 연설했다. 우리 칼럼과 관련해 말하면, 교황은 공동합의적 교회에서 모든 이가 주인공이며 아무도 엑스트라인 사람은 없다면서, ‘교회가 정체되면 썪는다’고 경고했다. 성직자 중심주의와 관련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의 악 가운데 하나는 사제와 주교를 평신도에게서 떼어놓는 성직자중심주의이며....지도자와 복종하는자, 가르치는 자와 배워야 하는 자를 엄격히 구분함으로써 하느님은 (꼴찌가 첫째 되는) 그런 반대되는 상황을 더 사랑한다는 것을 잊는다”1)고 지적했다. 교황은 ‘우리 모두가 교회’라며 앞서 우신연 강좌에서 나눈 공의회의 혁혁한 교회론인 ‘인간이 교회’라는 사실을 고맙게도 다시 한번 환기시켜 주었다. 교황은 교황직을 시작하고 나서 여러 차례 시노드를 열어 왔고 이번에는 전과는 색다른 세 번의 시노드를 이끌고 있다. 교회사상 처음으로 ‘분권화를 지향하는 시노드,’ ‘한 번의 행사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시노드’를 목표로 진행되는 이 실험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회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추진해 온 크고 작은 변화를 결산해 보는 장이 될 전망이다.

이렇게 보면 분명 교회는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교회가 변하기는 하는데, 과연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변하고 있고 또 평신도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가 중요해 보인다. 한국 현대사가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정치적 민주화 과정, 특히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로 상징되는 시민 주체의 ‘광장민주주의’처럼 수준 높은 민주화 ‘훈련과정’에 직간접으로 참여한 평신도들이, 교회의 변화 방향과 정도를 납득하고 흔쾌히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한국 교회가 깊이 숙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회 변화 속도가 빠르고, 통계상 ‘탈종교’ 인구가 급속도로 늘고 있는 한국 종교문화 지형의 변화를 교회가 어떻게 볼 것인지도 중대한 문제로 여겨진다. 이러한 도전에 어떻게 대처하고자 하는지에 따라 이번 시노드에 대한 관심과 참여 정도, 또 이후의 사목적 실천에도 큰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러 시노드를 개최해 오고 있지만 한국 교회의 경우, 적극적인 참가보다는 본당 신자는 물론이고 본당 사제도 어떤 주제로 시노드가 열리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냥 지나버린 일이 잦았다. 교황청이 요구한 의견수렴 절차는 생략하고 이를 각 교구에서 한 부서나 직원이 담당하게 하여 처리해 버린 일도 있었다.2) 이는 보편교회, 또는 세계 전체 교회의 흐름에 반할 뿐만 아니라 공의회의 ‘친교의 교회상’을 거스르는 태도다. 이번 시노드는 이런 독단이나 ‘주교들만의 리그’를 지양하고 진정한 의미의 친교와 평등의 교회를 만들 좋은 계기이자 실천의 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시노드 실천과 한국 천주교회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교황령 '주교들의 친교'(Episcopalis Communio)를 발표하고 시노드가 여전히 주교들의 회의이기는 하지만 ‘전체 백성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강조했다.3) 이 교황령의 핵심은 시노드의 결정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주교시노드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인데, 교황은 이를 통해 주교뿐만 아니라 전체 하느님의 백성의 의견이 반영되기를 바랐다. 교황령은 2014-15년도에 있었던 가정을 주제로 한 시노드의 절차대로 본 시노드가 열리기 전에 하느님 백성과 협의하는 절차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시노드가 각 교구와 수도회 차원에서 진행될 뿐만 아니라 평신도 조직들을 통해서도 이뤄져야 함을 제안했다. 좀 더 눈에 띄는 대목은 시노드가 끝난 뒤에 ‘실천 단계’라는 새로운 절차를 두어 시노드 사무처의 역할과 권한을 강화한 점이다. 사무처 독자 권한으로 ‘실천 문서’를 공표할 수 있게 했는데, 이는 교회가 시노드를 통해 봉사하는 데 더 순발력 있게 대응하는 도구로 쓰이도록 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직 시초부터 현재까지 교회개혁 의지와 실천을 시노드라는 ‘우회로’를 통해 지속해 오고 있음은, 공의회 정신과 의제의 실천이라는 점에서 적극 평가할 만하다. 문제는 거의 10년에 걸친 교회개혁이 지역교회, 특히 한국 교회에서는 거의 체감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성직자중심주의가 여전히 강고하여 교구와 본당에서 주교와 사제의 권력은 무소불위로 행사된다. 최근 한 본당에서 있었던 사목회 임원들과 본당사제들의 갈등은 이러한 면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의정부의 한 본당에서 사목평의회 회장을 비롯한 임원이 “모든 결정이 주임 사제에게 집중돼, 공동합의성 구현이 불가하고, 사목평의회 존재 이유와 가치를 상실했다”며 거의 전원이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4) 이들은 특히 재정운영 및 집행과 관련해 정해진 협의구조를 무시하고 사제 독단으로 결정이 이뤄진 점, 또 수개월간의 준비를 통해 제출한 ‘사목회장 선출과 임명 건의안’을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한 점, 사제의 상습적 반말과 신자들을 함부로 대하는 태도 등을 적시했다. 이 본당 사태는 친교의 공동체를 강조한 공의회 정신과 이번 시노드 주제인 공동합의성을 정면으로 거스르지만, 공론화 되지 않았을 뿐 자주 듣는 얘기로서 한국 교회의 변화가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가를 시사하고 있다고 보인다.

1) Celine Hoyeau, “Pope sees no alternative to synodality as the way forward for the Church”, LaCroix International, September 21, 2021.
2) 한수진, '교황청 가정생활 실태조사, 한국에선 어떻게 진행됐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4.1.13.
3) 편집국, '프란치스코 교황, 주교시노드 역할 강화: 시노드는 ‘전체 백성의 소리 듣는 도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8.09.21.
4) 정현진, '공동합의적 사목평의회, ‘함께 간다는 것은 서로 견디는 것’',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21.0805.
5) 정현진, '하느님 백성으로서 평신도, 부수적일 수 없는 존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21.0820 참고. 사실 이런 문제는 본당의 단체활동 등을 하지 않는 신자들도 알 만큼 우리 교회 삶에 만연한 것이지만, 전체 신자들이 납득할 만하게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처리되기보다는 교회 리더십에 의해 덮어져 없었던 일로 된 사례가 많다고 보인다.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 아시아평화연대센터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