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정호경 신부 추모미사 봉헌해

▲ 정호경 신부 선종 1주기를 맞아 27일 안동교구 농은수련원에서 추모미사가 봉헌됐다. 김영필 신부는 강론에서 “우리가 그분의 삶을 조금이라도 본받아 산다면 정 신부님을 이 땅에 다시 부활시키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수진 기자

가톨릭 농민들의 사제 정호경 신부 선종 1주기를 맞아 27일 안동교구 농은수련원에서 추모미사가 봉헌됐다. 이날 미사에는 사제와 신자 150여 명이 참석해 정호경 신부를 기억하고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빌었다.

미사를 집전한 김영필 신부(안동교구 총대리)는 강론에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각자의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깨닫게 하고, 세상의 죄악을 없애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려 부단히 노력했던 사제”라고 정 신부를 소개했다.

김영필 신부에 따르면 정 신부는 1984년에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의안> 중 농민사목 의안을 맡아 준비했으나 교회는 “색깔이 진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후에 이 의안이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농민사목>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두봉 주교(당시 안동교구장)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정 신부님이 이 책에서 자신의 주장과 예수님의 삶을 길게 소개했지만, 이것은 전혀 새로운 주장도 아니고 새로운 삶의 방향도 아니다. 나자렛 예수님의 삶을 소개한 것뿐”이라고 적었다.

김영필 신부는 정 신부가 “나자렛 예수님의 삶을 본받으려 무진장 애를 쓰셨던 분”으로 후배 사제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었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우리가 그분의 삶을 조금이라도 본받아 산다면 정 신부님을 이 땅에 다시 부활시키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수진 기자

미사가 끝난 후에 유가족과 가톨릭농민회 회원들은 농은수련원 내 성직자 묘원에 있는 정 신부의 묘를 찾았다. 이들은 정 신부가 생전에 즐겼던 막걸리를 묘에 올리며 그와 함께했던 시간을 추억했다.

임봉재 전 가톨릭농민회 회장은 정 신부가 직접 농부가 되겠다고 1년간 농민들에게 농사일을 배우면서 풀독이 올랐던 모습을 기억했다. 임 전 회장은 “정 신부님은 당신의 뜻을 펴기보다 경청하는 자세로 농민들의 동무가 되어주셨고, 농민들이 정치적으로 탄압을 받을 때에는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주셨던 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워지는 농민들의 상황을 볼 때에 정 신부님이 많이 그리워진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정호경 신부는 1968년 사제품을 받고 안동교구에서 사목했다. 1974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결성에 참여했고, ‘노동자 · 농민 양심수를 위한 기도회’ 개최와 이른바 ‘오원춘 사건’으로 인해 1977년과 1979년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1982년 가톨릭농민회 전국 지도신부를 맡으며 수년간 농민사목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4년부터 세상을 떠나기까지 경북 봉화군 명화면 비나리에서 홀로 농사를 짓고 글을 쓰며 여생을 지냈다. 2011년 담낭증 진단을 받은 후 1년간의 투병 끝에 2012년 4월 27일 선종했다.

▲ 미사 후 유가족과 가톨릭농민회 회원들은 정 신부가 생전에 즐겼던 막걸리를 묘에 올리며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했다. ⓒ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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