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 기획 ‘보호 대신 자유를’ - 2]

일상 하나. 오늘은 떡볶이가 먹고 싶다. 집에 가면 밥이 있긴 하지만 들어가는 길에 떡볶이를 사 가야겠다.
일상 둘. 조금 뒤 TV에서 좋아하는 심야 드라마가 시작한다. 주인공의 출생의 비밀이 언제 드러날지 노심초사하며 리모컨을 손에 꼭 쥔다.
일상 셋. 오늘은 기분이 울적하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외롭게 있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인 이런 광경이 누군가에게는 애초부터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일이다. 먹기 싫어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먹어야만 하고, 혼자 있을 공간이 없으니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없다. 보고 싶은 TV 드라마도 심야에는 다른 이들에게 지장을 주고, 채널 선택도 내 마음대로만은 할 수 없다. 이미 서른이 넘은 나이임에도 여전히 “우리 애들”로 불리고, 내가 먹는 약이 무슨 약인지도 모른 채 주는 대로 먹는다. 혼자서는 결정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고, 늘 누군가의 동의나 허락이 필요하다. ‘집’이 아니라 ‘시설’에 살기 때문이다.

장애인 거주시설의 역사

장애인 거주시설은 19세기 산업혁명 시기 노동력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시작됐다. 노동능력이 없는 장애인을 가정에서 분리시켜 격리보호하고, 이들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을 최소화해 생산에 노동력을 집중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나라의 거주시설은 1950년대 전쟁고아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에서 출발했다. 이 시설들은 1970년대에 대대적으로 장애인시설로 전환됐고 1980년대에는 정부 지원이 본격화됐다. 1990년대 들어 소규모의 공동생활가정, 단기보호 시설 등으로 다양화됐고, 최근 장애인복지법 개정으로 신규 시설은 30인 이내, 공동주거 단위도 5인 이하로 규모를 제한했지만, 여전히 거주시설 서비스는 ‘대형 시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장애와 사회복지>, 김용득, EM커뮤니티, 2012 참고).

현행 장애인복지법은 생활시설 운영기준으로 ‘성인 1인당 거실 면적 3.3제곱미터(1평) 이상, 1실당 공동거주인원 성인 8명 이하’로 규정한다. 8평에 8명의 어른이 옷장 놓고 사는 것이 기준인 셈이다. 우리나라에는 국민에게 보장하는 ‘최저주거기준’ 이란 것이 있다. 국토해양부에서 국민의 쾌적한 주거환경을 위해 공고하는 기준이다. 이 기준에서는 사람 사는 공간은 1인 침실 5.76제곱미터(1.74평)고 2인이 생활하는 침실은 옷장 등을 구비하고 10.80제곱미터(3.26평) 이상이라야 한다. 규정된 기준만 놓고 보면 장애인 시설의 공간은 ‘사람 사는 환경’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장애인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시설에 들어가게 될까.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의 여준민 활동가는 “집안이 경제적으로 어렵고 온 가족이 일을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부모가 제일 먼저 연락하는 곳은 주민센터다. 그럼 주민센터는 시설 정보를 먼저 소개한다”고 설명했다. 장애인이 자기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신청할 ‘서비스 신청권’이 있지만, 법제도나 서비스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어떤 서비스가 있는지 친절히 소개되지 않으니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은 ‘거주시설’에 관한 정보를 일차적으로 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비율로만 따지면 10명 중 1명은 장애인인데 거리에서도, 교회에서도 장애인을 만나는 일은 흔하지 않다. 다들 집 안에, 그리고 저 멀리 시설에 있기 때문이다. 앞집 이웃으로, 옆자리에서 함께 기도하는 본당 신자로 만나려면 교회는 어떤 시선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사진은 지난 3월 31일 인천교구 장애인연합회 예수부활대축일 미사에 휠체어를 타고 참석한 신자가 영성체하는 모습 ⓒ강한 기자

시설 입소 “원하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의 권유로”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시설 거주 장애인 55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시설 입소를 ‘내 스스로가 결정했다’는 응답은 13.9%에 지나지 않는다. ‘원하지 않았으나 가족 등의 강력한 권유로 들어왔다’(35.29%)거나 ‘동의 없이 강제적으로 들어왔다’(21.03%)는 응답이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에 비해 시설 퇴소나 자립생활에 관한 정보를 얻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응답자 67%가 ‘전혀 없음’이라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 중 57.49%는 ‘시설을 떠나길 희망한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은 평일 낮 시간 시설에서 하는 일을 묻는 질문에 ‘특별히 하는 일 없음’(33.56%), ‘보호작업장 등에서 직업활동’(23.75%), ‘거주시설 내 프로그램 참여’(20.48%) 순으로 답했다. 또 ‘하루 종일 돌봐 주는 사람이 있어서 안심이 된다’와 ‘이야기할 수 있는 동료가 있어서 외롭지 않다’에 각각 69.03%, 66.66%의 비율로 긍정적인 답변을 함과 동시에, ‘무기력감에 빠진다’(40.92%),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43.69%) 등에도 긍정하는 응답이 적지 않았다.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김용득 교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가정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아무리 좋은 시설도 집만큼 좋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하고 말한다. 김 교수는 “거주시설이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와 환경이 조성되는 게 먼저”라면서 “그러나 인간에게는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그런 경우조차도 가능한 한 ‘집과 같은 환경’에서, 거주인의 자유와 자기 결정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장애인 거주시설’과 ‘탈시설 논의’가 별도의 차원이거나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기존 시설들의 ‘집과 다른 환경’을 최대한 변화시키고, 대규모 시설을 소규모 시설로 분산시키는 방안과 함께, 공동생활가정, 체험홈 등 보다 가정과 유사한 형태의 새로운 시설을 늘리는 방향을 제안한다.

전국 장애인복지시설 중 거주시설 비율 17.5%… 천주교는 42.1%

▲ 2012 전국 장애인복지시설 분포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2 장애인복지시설 일람표>에 따르면 전국 2,797개 장애인복지시설 중 생활시설(현재는 ‘거주시설’로 용어가 바뀌었다)은 490개(17.5%)다. 지역사회재활시설은 1,851개, 직업재활시설은 456개다. ‘장애인들의 일상적 삶’을 주장하는 자립생활운동이 전개되고, ‘탈시설’을 요구하는 장애인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정부 정책 방향이 시설에서 자립으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조문순 인권국장은 “정부의 지원 방향이 바뀌면서 자립지원센터가 지역마다 생겨나고 시설의 규모도 억제되긴 했지만, 아직 생활시설 자체에 대한 근본적 방향전환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2001년 불과 세 곳 뿐이었던 자립생활센터는 현재 150여 개소에 이른다.

▲ 2012 한국 천주교 장애인복지시설 분포
천주교의 경우는 어떨까. <2011년 한국천주교사회복지편람>(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2012)에 따르면 천주교 사회복지시설 1,048개 중 장애인복지시설은 238개(22.8%)로, 아동·청소년복지시설(276개, 26.5%)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장애인복지시설 중 가장 많은 것은 99개인 거주시설로 전체 시설의 42.1%를 차지한다. 이에 반해 2008년 34개였던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은 2011년 33개로 줄어들었다. 시설 수로 따지면 1개 차이지만 전체 천주교 장애인복지시설의 수가 206개에서 235개로 늘었기 때문에, 전체 장애인 복지시설 중 직업재활시설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16.5%에서 2011년 14%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정중규 씨는 박사학위 논문 <예수 그리스도의 장애인관과 교회의 장애인사업에 관한 인식 연구>(2012, 대구대학교 재활과학과)에서 그리스도교 장애인시설 종사자와 자립센터 활동가 505명을 대상으로 교회의 장애인 사업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다. ‘전혀 그렇지 않다’부터 ‘매우 그렇다’까지 5점 만점으로 묻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장애인사업에는 종교성보다 전문성이 더 중요하다’(3.852)에, ‘전문가주의에서 당사자주의로 나가야 한다’(3.834)는 데 크게 공감했다. 이 밖에도 응답자들은 ‘교회 장애인사업은 탈시설화로 가야한다’(3.755), ‘시혜적이고 자선적인 형태는 극복되어야 한다’(3.701) 등에 비교적 많이 공감했다.

▲ 2011 한국 가톨릭 장애인복지 세부 분야별 분포 (자료 출처 / 한국 카리타스)

같은 본당 신자로, 옆집 이웃으로 만나려면

원주교구 천사장애인보호작업장 박성길 시설장은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은 장애인 당사자에게도, 시설 쪽에도 낯설고 두려운 일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15년째 장애인 복지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고민이 많다. 박 시설장은 “예전에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지금 돌이켜 보니 사랑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다”며 “하지만 ‘그를 관리해 주는 것’이 사랑의 전부는 아닌 듯 하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잘 먹이고 잘 입혀야 하는, 사랑을 받기만 하는 존재로 대상화해버리면 인권을 촉진하기 어렵다. ‘이게 당신의 권리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다’라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거주인도 자기 욕구, 자기 권리를 점점 이야기하지 않게 된다.”

박 시설장은 “사람이 사는 방법도, 원하는 것도 다 다르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교회도 서서히 장애인들의 다양한 삶의 가능성에 귀 기울이고 걸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국 장애인 수는 2012년 보건복지부 통계로 250만명이 넘는다. 등록되지 않은 장애인을 감안하면 실제 수는 그 두 배인 500만명으로 추산된다. 비율로만 따지면 10명 중 1명은 장애인인데 거리에서도, 교회에서도 장애인을 만나는 일은 흔하지 않다. 다들 집 안에, 그리고 저 멀리 시설에 있기 때문이다. 앞집 이웃으로, 옆자리에서 함께 기도하는 본당 신자로 만나려면 교회는 어떤 시선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다음은 1970년 5월 스웨덴 말로에서 열린 ‘지적 장애인 청년 전국회의’의 의사록 일부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시내에서 대규모 그룹을 지어서 걷기를 원하지 않는다. 정부와 지역사회는 여가 활동들을 위하여 더 많은 자금을 주어야 하고 장소를 얻는 것을 지원해야 한다. 우리는 여행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일한 연령의 비장애인 청년들과 함께 여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거주 시설은 규모가 작아야 한다. 우리는 외출과 귀가와 관련하여 지켜야 하는 정해진 시간들을 단호하게 거부할 것이다. 우리는…….” (김용득, 위의 책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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