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 기획 ‘보호 대신 자유를’ - 1]
지적 장애인의 일터 위캔쿠키
이수경 대표 수녀 “시혜적 시각에서 벗어나 함께 걸어야”

동네 생협 매장에서 가끔 이 쿠키를 사먹곤 한다. 믿고 먹을 만한 과자가 별로 없는 요즘 100% 우리밀과 국산원유버터, 유기농 설탕 등 좋은 재료에 안심이 된 까닭도 있지만, 가볍지 않고 부드러워 커피나 홍차에 안성맞춤이다. 그런데 이 쿠키가 하물며 착하기까지 하단다. ‘위캔쿠키’(줄여서 ‘위캔’)는 40여 명의 지적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장애인 생활시설인 애덕의 집을 운영하던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몇몇 수녀는 함께 장애인들이 자기 역량을 표현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 ‘회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일본의 장애인 일터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던 수녀들은 그곳에서 가능성을 봤다. 2001년 설립한 위캔쿠키는 재료값이 폭등할 때도, 7년여의 오랜 적자에도 꿋꿋하게 정직함을 지켜 2008년부터 흑자 전환을 했고, 현재 생협, 한살림, 백화점 등에 제품을 공급하는 안정적인 회사가 됐다.

▲ 작업실에서 쿠키를 만드는 위캔쿠키 직원들 ⓒ문양효숙 기자

월급과 휴가, 셔틀버스 출퇴근
장애인이 ‘일반적 회사 생활’하는 기업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위캔쿠키를 찾았을 때, 직원들은 마침 마스크와 모자, 가운을 입고 에어샤워로 먼지를 털어내는 중이었다. 작업장으로 들어가는 복장을 갖춰 입고 성정호 직업재활팀장을 따라 작업장 안으로 들어가니 달콤한 버터 향이 코를 자극한다. 직원들은 반죽, 쿠키 성형, 수작업 등 각자 자리에서 묵묵히 맡은 일을 하고 있었다.

동그란 쿠키 반죽을 오븐틀에 가지런히 배치하던 정지훈 씨는 위캔에서 4년 일했다. 포장 작업이 제일 재미있고 반죽은 힘들다고 했다. 집이 가까워서 출퇴근은 비교적 쉬운 편이다. 회사는 직원들의 출퇴근을 위해 셔틀버스를 운영한다. 지훈 씨는 월급의 대부분을 통장에 넣는다. “나중에 집을 사고 싶어서”라고 했다.

반죽을 5그램씩 저울에 올려 어린이 쿠키를 만드는 수작업을 하는 조희라 씨는 위캔에서 일한지 2년째다. “새벽에 일어날 땐 조금 피곤하지만 일하는 건 재밌고 좋다”고 했다. 희라 씨는 하루를 시작하며 전 직원이 모여 위캔의 철학을 암송하고 서로를 칭찬하기도 하는 ‘모닝 미팅’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월급은 할머니에게 드린다 했다. “할머니 여행도 보내드렸어요. 할머니가 좋아하시면 저도 좋고요.” 휴가는 어떻게 하냐고 묻자 “저에게 주어진 연차를 제가 원할 때 쓴다”고 답한다.

직원들이 자신의 월급과 휴가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집과 직장 사이를 출퇴근하는 이런 ‘일반적인 회사 생활’이 처음부터 당연했던 것은 아니다. 위캔쿠키 대표 이수경 수녀(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는 “매출을 올려 돈을 벌고 월급을 주는 것이 끝이 아니다. 돈을 쓰는 법까지 가르쳐 주는 게 우리 역할”이라고 말한다.

“돈을 쓰는 법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사람들과 지낼 때의 예의, 위생 등 ‘사회생활하는 법’을 모두 가르쳐줘야 해요. 반복, 또 반복해야죠. 가끔 직업재활팀원들이 ‘백 번, 천 번을 해도 안 된다’고 한숨 쉴 때가 있어요. 그러면 ‘직원들 뼈에 하나하나 조각품을 새기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해요. 돌이 하루아침에 조각이 되지는 않으니까요. 그런데 쉽지는 않아요.”

▲ 위캔쿠키 대표 이수경 수녀 ⓒ문양효숙 기자

위캔은 2007년 정부의 사회적 기업 인증이 시작될 당시 첫 인증을 받은 50개 사업장 중 하나면서 동시에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이다.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은 ‘보호작업장’과 ‘근로사업장’ 두 가지가 있는데 위캔은 근로사업장이다.

근로사업장은 최저임금, 주 5일 40시간 노동, 휴가 등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조건을 모두 지켜야 한다. 그래서 직업재활시설의 대부분은 보호작업장이다. 보호작업장은 장애인 훈련에 비중을 두며, 노동부에 등록된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4대 보험이나 최저임금 등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전국 456개 직업재활시설 중 근로사업장은 53개뿐이고, 이곳에서 정식 직원으로 일하는 장애인은 고작해야 2,190명이다. 위캔도 고양시 8개 직업재활시설 중 유일한 근로사업장이다.

‘이윤 창출’과 ‘공동체’의 공존이 과제

주 40시간 노동에는 각종 프로그램과 훈련 시간이 포함된다. 따라서 위캔은 작업장 뿐 아니라 모래 놀이 치료실, 헬스장, 성교육실 등 교육공간까지 갖추고 있다. 이윤 창출이 목적인 회사와 장애인들의 교육과 더 나은 삶이 목적인 사회복지 공동체, 상반되는 듯 보이는 두 가지 가치를 녹여내는 데 어려움은 없을까.

이수경 수녀는 “사회복지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경영 마인드까지 갖고 있어야 하는 게 늘 갈등”이라고 말했다.

“이윤 창출을 못하는데 공동체 마인드만 크면 의미가 없고요. 반대로 돈만 많이 벌고 직원들에게 적절한 교육 프로그램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의미가 없어요. 2008년 마케팅 팀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팀원은 모두 사회복지사, 직업재활사죠. 처음에는 낯설어 했지만 필요성에 공감했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하물며 수도자잖아요. 위캔에 오기 전에는 돈 버는 것에 관심도 없던 사람이 매출을 늘리고 월급을 줘야 하는 경영자 입장이 되는 게 낯설었죠. 두 개의 저울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는 게 저의 가장 큰 일이에요.”

회사이기 때문에 ‘능력에 따라’ 월급이 다르다. 능력에 따라 8시간 일하는 이도 있고 6시간 일하는 이도 있다. 해마다 열심히 일한 직원 5명을 뽑아 상도 준다. 작년에는 상을 돈으로 줬는데 의미가 없었다. 올해는 뽑힌 직원 5명과 일본 여행을 갔다. 이것이 동기 부여가 돼 작업장 안에 에너지가 생겼다. 이 수녀는 “중증 장애인들에게 동기 부여가 된다는 것의 의미가 크다”고 했다.

“자신의 능력이 향상됐다는 성취감을 느끼고, 그에 대한 대가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직원이 늘고 있어요. 일이 주는 기쁨이란 그런 것이잖아요.”

▲ “우리는 쿠키를 만들기 위해 장애인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을 고용하기 위해 쿠키를 만듭니다.” 이수경 수녀가 위캔쿠키의 설립 취지가 담긴 글귀를 소개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당당한 자기표현이 월급만큼 중요해요”

관계와 사랑이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전부가 아니다. 그들은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받기만 하는 대상이 아니다. 한 인간으로서 욕구를 갖고 일하며 대등하게 존재한다. 이수경 수녀는 “장애인들이 집에 가만히 있거나 복지관에 다니는 것뿐 아니라 능력을 표현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며 자신이 외국에서 경험한 장애인 서비스 이야기를 전했다.

“장애인 한명이 병원에 가요. 살이 많이 찐 사람이었어요. 구급차만큼 큰 장애인 이동차량이 와서 여러 명의 보조인이 그 사람을 휠체어와 함께 태우고 집에 돌아올 때까지 모든 서비스를 제공했어요. 그 한 사람을 위해서. 충격이었어요. 저는 수녀인데도 ‘시간과 물질의 낭비 아니야?’ ‘저 사람은 왜 자기관리도 못하고 뚱뚱해져서 저렇게 살지?’ 막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당사자들은 서비스를 받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너무 자연스러웠죠. 우리 주변에서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계속 미안해 하잖아요. 하지만 그들에겐 ‘내가 너한테 이걸 해 준다’ 혹은 ‘이런 걸 해줘서 너무 고맙다’는 분위기가 없었어요. 그저 모든 게 자연스럽고 당연하죠.”

위캔에서 일하는 지적 장애인들도 그런 당연함을 배우고 있다. 출퇴근시 이용하는 버스에서 기사가 함부로 대하자 “내가 버스비를 냈는데 왜 승객한테 욕해요?” 하고 당당하게 말했던 것. 두려움 없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이 당당함 덕분에 위캔쿠키는 매번 버스 기사의 항의전화를 받아야 했지만, 이 수녀는 그런 당당함과 자기표현이 월급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에서 지적 장애인은 아직도 누가 욕하고 뭐라고 해도 가만히 있어야 하는 존재로 여겨져요. 어떤 이들에게 자립이란 ‘주거와 일을 갖고 자기 힘으로 영위해 나가는 삶’일지도 몰라요. 그런데 지적 장애인들에게 자립이란 자기 결정으로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고, 버스를 탈 수 있는 것, 그런 것까지 포함돼요.”

▲ 위캔쿠키 직원들이 수작업으로 꼬마 쿠키를 만들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그래서 위캔의 의사 결정 방식은 다른 장애인 시설과 조금 다르다. 나들이를 간다 해도 “어딜 갈까?” “뭘 할까?” 묻는 것에서 시작한다. 의견 수렴 과정은 시간도, 에너지도 많이 들어간다. 도무지 ‘빨리빨리’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나 ‘장애인 당사자가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위캔의 철학이다.

물론 지적 장애인들의 자기 결정을 어디까지 인정하고 지원할 것인가는 함께 일하는 이들이 끝없이 노력해야 할 요소다. 분명한 것은 지적 장애인들이 일상에서 자기 의사를 당당하게 표현할수록 주변 사람들과 사회의 존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여 사는 사회
“좋은 게 아니라 당연하다”

모든 장애인이 장애 정도와 상관없이 사회 안에서 섞여 사는 게 가장 좋은 것이냐는 물음에 이수경 수녀는 “좋은 게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동안 우리가 부족한 사람과 함께 걸어갈 생각을 안 한 거예요. 자기는 뛰어가는데 누군가 좀 느리거나 못 따라오면 제쳐두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모아두고, 집 안에만 있으라고 하고.”

그는 신자들에게 “우리가 모두 같은 하느님의 창조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그들과 함께 가준다’ 혹은 ‘그들을 돕는다. 보살핀다’는 마음도 사실 자신이 너무 ‘위’에 있는 것이죠. 나도 하느님의 창조물, 그도 하느님의 창조물. 그런 동일한 선에서 모든 걸 시작해야 돼요. 그럼 시혜적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죠. 우리는 그저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하며 살아갈 뿐이에요.”

위캔 전 직원이 아침마다 모여 외우는 위캔 철학의 마지막 문장은 “나는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이다. 작업장에서 만난 정지훈 씨는 앞으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위캔에서 쭉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들에게 위캔은 자기를 실현하는 일터이면서 세상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 든든한 공동체다.

▲ 위캔쿠키가 생산하는 ‘김수환 추기경 사랑 쿠키’. 김수환 추기경이 “사랑”을 발음할 때의 음성파형을 미술가 이관영 씨가 형상화했다. ⓒ문양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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