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자주 다니는 산책길에서 산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듣고 아이들이 소리치며 달려가 수로 한 편에서 개구리 부부 한 쌍을 발견했는데 글쎄 어느새 알까지 낳아 두었지 뭔가. 그걸 본 다나가 개구리들을 향해 말을 건넨다.

“얘들아, 아직 2월도 안 됐는데 벌써 알을 낳았다고? 갑자기 추워지면 어떡하려구. 하긴, 너희들한테는 달력이 없으니까 너희 탓은 아니지.”

다나의 한숨 섞인 탄식을 들으며 산개구리들 산란 시기가 지난 몇 년 사이 최대 2개월이 빨라졌다는 어느 기사를 떠올렸다. 산란 시기가 빨라지면서 개체 수도 눈에 띄게 줄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봄을 불러 제끼는 산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건 불행 중 다행스런 일이다. 호르륵 호르르륵.... 산개구리 울음 소리에 한참을 빠져 있던 차에 갑자기 복수초 꽃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얘들아, 복수초 꽃도 피었을 것 같지 않니? 얼른 가 보자!”

우리는 복수초 쪽 군락지가 있는 숲으로 발길을 돌렸다. 1월 초에 이미 꽃망울 서너 개가 올라와 있는 것을 본 터라 나는 꽃이 분명히 피었을 거라 짐작했고, 예상은 적중했다. 아직 녹지 않은 눈 속에 꽃 몇 송이가 피어 있었고 꽃대를 올려 꽃피워 낼 준비를 하는 꽃도 매우 많았던 것이다. 복수초 꽃은 눈과 얼음 사이를 뚫고 피어나 봄을 부른다고 해서 얼음새 꽃이라 불리기도 한다는데, 그 이름에 딱 걸맞는 풍경!

복수초 꽃 ©정청라
복수초 꽃 ©정청라

다울이는 눈이 덜 녹은 줄 알았다면 썰매를 가져올 걸 그랬다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곧 동생들과 움집 만들기 놀이에 돌입했고, 나는 한겨울에 꽃마중을 하는 기쁨을 만끽하며 쪼그려 앉아 꽃을 들여다보았다. 마음 다해 오늘을 살아간다는 게 무언지를 꽃을 보면서 느끼는 일종의 꽃멍이랄까? 그러는 차에 갑자기 금똥이가 미친듯이 짖어댄다. 멧돼지라도 나타났나 싶어서 주위를 둘러보니 목에 카메라를 둘러멘 사람들이 길도 아닌 곳을 헤치며 걸어오고 있었다. 복수초 꽃 개화 사진을 찍으러 온 모양이었다. 한데 이쪽 지역엔 처음 와 보는 분들인지 우리에게 이렇게 물었다.

“복수초 꽃 피는 데가 여기 맞습니까? 꽃이 어디쯤에 있을까요?”

나는 가만히 꽃이 활짝 피어 있는 장소를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 사진가 일행은 탄성을 지르며 말했다.

“오, 피었네 피었어. 설뷰 나오겠는데?”

전문가들 용어로 눈과 복수초 꽃이 함께 있는 풍경이 설뷰이고, 그분들은 설뷰를 찍으려고 눈 녹기 전에 서둘러 달려온 모양이었다.

“얘들아, 우린 이만 집에 가자.”

금똥이가 낯선 사람들을 경계하며 하도 시끄럽게 짖어대길래 우린 서둘러 산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내려오는 길에 몇 번이나 비슷한 분위기의 사람들을 마주쳤다. 등산복 차림에 목에 카메라를 메고 있는 사람들. 아마 앞으로 얼마간은 복수초 꽃 사진 찍으러 오는 사람들의 행진이 이어질 텐데, 꽃은 얼마나 몸살을 앓으려나. 나는 그분들이 꽃에 대한 예의를 다하며 이곳을 만나시길 간절히 바라며 먼저 따뜻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니까 내 입으로 나온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에는 이런 속뜻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제발 쓰레기 함부로 버리지 말아 주세요. 꽃이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걸어 주시고 꽃을 살아 있는 존재로 소중히 대해 주세요.’

내가 그런 바람을 가지는 데는 까닭이 있다. 복수초 꽃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모두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사람들이 몰려왔다 떠난 자리엔 항상 각종 쓰레기가 남아 있었다. 생수병, 사탕이나 과자 봉지, 물휴지 쓰다 버린 것 등등 말이다.(가끔은 똥무더기와 그 위에 덮어 놓은 휴지 뭉텅이까지!) 그런가 하면  꽃밭 여기저기를 꾹꾹 밟고 뭉개어 놓아서 꽃이 곤죽이 된 채 스러져 있는 처참한 모습도 여러 번 목격하였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기 위해 먼 길 마다 않고 오신 분들이 어찌 그럴 수가 있는지.... 너무 화가 나서 한동안은 방문객들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가 없었고 지난해 이맘때엔 어떤 분과 말씨름이 붙은 적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답이 없다 싶어서 꽃처럼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어떻게? 깨진 유리창 이론을 적용해 볼 때 쓰레기 있는 곳엔 더 많은 쓰레기가 버려질 위험이 다분하지 않은가. 복수초 꽃 시즌에 저수지 위쪽 산길만이라도 적극적으로 쓰레기를 줍기로 했다. 산에 갈 때마다 미리 챙겨 간 비닐봉투에 쓰레기를 주워 담는 것이다. 보이는 족족! 그리고 방문객을 만나면 최대한 밝게 웃으며 인사해서 우리 마을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넛지효과를 노린다고나 할까? 웃는 얼굴에 침을 뱉지 못하는 것처럼, 웃어 주는 마음이 감도는 공간에선 꺼리낌 없이 함부로 행동할 수는 없지 않겠나 싶어서.

‘꽃길만 걸으세요!’라는 덕담이 유행하고 지방 정부마다 꽃밭 조성에 열의를 다하고 있기만 꽃이 피어나는 과정과 꽃이 사는 삶터를 떠나 꽃 하나만 취하려는 건 우악스런 탐욕이 아닐까? 꽃에 이르는 길, 그러니까 꽃을 만나러 가는 그 태도와 마음까지 경건해질 때 진정으로 꽃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사실을 우리가 깊이 알았으면 좋겠다.

정청라
흙먼지만 풀풀 날리는 무관심, 무 호기심의 삭막한 땅을 
관심과 호기심의 정원으로 바꿔 보려 합니다.
아이들과 동물들의 은덕에 기대어서 말이죠.
무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명랑한 어른으로 자라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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