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매달 첫 번째 목요일에 '마음 다해 오늘을(내 삶을 구해야 지구도 구할 수 있다)'을 한 해 동안 연재합니다. ‘기후위기’ 앞에서 농부로 살고 있는 엄마가 아들에게, 아들 또래 십 대 친구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마음을 어떻게 먹게 할지 질문하며, 논밭 숲에 뿌리를 둔 이야기를 나눕니다. 집필을 맡아 주신 정청라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새 연재를 시작하며]

사방천지에 불안과 불편이 미세먼지처럼 뿌옇게 깔린 것만 같은 나날이다. 하늘은 저렇게 높은데, 나무는 이렇게 듬직한데, 막 태어난 강아지들은 한없이 귀엽기만 한데, 도처에서 전해지는 소식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끝날 줄 모르는 전쟁, 코로나 이후로도 여전히 파괴의 행진을 멈추지 않는 무한 팽창시스템, 바다가 받아안을 수 없는 것까지 거리낌 없이 흘려보내는 이웃 국가의 작태…. 지구를 구할 시간이 많게는 10년 정도밖에 안 남았다고 예상되는 이 시점에도 어쩜 이렇게 거리낌 없이 막 살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간덩이가 부어도 한참 부은 건가?

하지만 나는 시류에 휩쓸려 막 살 수 없다. 엄마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게 될 내 아이들의 친구들- 뭇 생명들과 그들의 터전도 살려야 한다. 나는 보살의 마음은 잘 모르지만 자식을 살리려는 엄마의 마음과 많이 가까울 것으로 생각한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더라도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뭐라도 하려 드는 게 엄마다. 국자나 주걱 하나만 들고서도 절망인지 뭔지를 깨어 부수겠다는 각오로 맞서 싸우는 용감한 존재가 엄마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아이들이 팔레스타인 전쟁 소식에 두려워할 때, 아이들이 바다에서 놀 수 없는 날이 올까 봐 걱정할 때, 그때마다 나는 더 단단해지기로 했다. 닥쳐온 현실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아이의 가슴이 얼어붙지 않게 다독여 주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어느 때보다 씩씩하게 오늘을 살고, 그 어느 때보다 명랑하게 오늘을 노래하기, 그것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내 눈앞에 초록 길이 짜잔 하듯이 나타났다. 11월 초에 뿌린 각종 밀과 보리, 호밀, 귀리 등에서 싹이 터져 나왔는데, 새싹들의 빼곡한 행렬이 내 눈에는 하나의 길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 순간 부처님이 팔정도를 설명하실 때 그것을 ‘아주 오래된 옛길’이라고 비유로 말씀하셨던 게 생각이 나면서 초록이 뿜어내는 그 활기와 생명력으로 그려낸 길이 우리 앞에 놓인 아주 오래된 옛길이 아닐까 스스로 확신하고 말았다. 그래, 이 길이야말로 가고 싶고 가야만 하고 갈 수밖에 없는 길이지. 최첨단의! 과학스러운! 다른 길이 있다고들 하더라도 나는 믿지 않고 가지 않겠다. 내겐 이미 아름답고 명명백백한 초록 길이 있으니까.

앞으로 이 연재에서는 아이들에게 초록 징검다리를 놓아주는 마음으로 글 한 편 한 편을 써나가고 싶다. 아이들이 호화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 어딘가에서 럭셔리한 생활을 하기를 꿈꾸기보다 자기 발밑의 흙을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끔 해주는 글을 쓰고 싶다. 가능할까?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특별히 우리 집에 사는 만화가 한 분께 도움을 구했다. 시시때때로 황당 박사로 돌변하는 그분은 걸음마 하던 순간부터 초록 길에서 마구 뒹굴고 날뛰고 잠자기를 좋아했다. 그런가 하면 초록 길이 한결같이 보내는 메시지인 ‘마음 다해 오늘을’에서 벗어나 유체 이탈 난장판의 세계에도 곧잘 빠져드는 면이 있다. 그러한 들쭉날쭉함이 아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듯하다. 아이들은 자기와 닮은 존재에게 애정을 보내는 법이니까.

자, 그럼 가보자. 노란 벽돌길이 아니라 초록 길을 따라서!

11월 초에 뿌린 각종 밀과 보리, 호밀, 귀리 등에서 싹이 터져 나왔는데, 새싹들의 빼곡한 행렬이 내 눈에는 하나의 길처럼 보였다. ⓒ정청라
11월 초에 뿌린 각종 밀과 보리, 호밀, 귀리 등에서 싹이 터져 나왔는데, 새싹들의 빼곡한 행렬이 내 눈에는 하나의 길처럼 보였다. ⓒ정청라

 

정청라
흙먼지만 풀풀 날리는 무관심, 무 호기심의 삭막한 땅을 
관심과 호기심의 정원으로 바꿔 보려 합니다.
아이들과 동물들의 은덕에 기대어서 말이죠.
무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명랑한 어른으로 자라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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