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날 정도 여름 휴가를 다녀왔더니 집 안에는 거미줄이, 텃밭에는 온갖 넝쿨과 바랭이 무리들이 무섭게 장악을 하고 있었다. 집은 몰라도 밭의 경우는 승부를 겨룰 만한 상황이 아닌지라 ‘에라 모르겠다, 이참에 농사일에서 손 떼고 편하게 좀 살아 보자’ 싶은 마음이 우세했다. 여행을 떠나서 보니 대다수 사람은 농사 안 짓고도 아무렇지 않게 잘 살지 않던가. 농사는 여행 한번 마음껏 떠나지 못하게 하는 지독한 구속이다. 나도 한번쯤, 적어도 다음 해 봄까지만이라도 고단하지 않게 살아 보자! 풀과 맞서기 싫은 마음을 여러 가지 이유로 정당화하면서 밭 앞에서 눈을 질끈 감아버렸던 것 같다.

거기에 덧붙여 원고 마감일을 두 달이나 넘긴 상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맛의 정점이 지나 시들어버린 지난 글감들을 다시 뒤적이고 싶지도 않고, 오랜만에 만나 어쩐지 서먹서먹한 더부살이 동물 식구들에 대해서도 심란한 마음만 한가득이었으니까. 그동안 동물 이야기를 써 왔지만 그러는 동안 내가 좀 달라졌을까? 나는 여전히 고양이를 발로 차는 사람이지 않나. 또한 닭이 푸드덕거리기만 해도 꽁지 빠지게 달아나는 겁쟁이이기도 하다. 연재를 거듭하면서도 동물들에 대해 (또는 그들과 관계하는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배우고 느끼기보다 동물들과 간신히 같이 사는 정도로만 버티고 있는 나의 현실! 이러한 현실을 솔직하게 직면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모습도 나름 좋은 기록일 수 있겠지만, 한번 흐름이 끊어지니 동력이 잘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두 손 두 발 다 놓고 여러 날을 보냈다. 겨우겨우 밥하고 청소하고 내가 책임져야 할 최소한의 할 일 정도만 해내었으리라. 그러던 차에 문득 냉장고에 방치되어 있던 빵 발효종이 떠올라서 버리려고 꺼냈다. 거의 한 달 동안 밥도 안 주고 내버려 두었으니 분명 죽었겠지? 그래도 혹시나 싶어 숟가락으로 저어 보니 발효종이 작게 풀룩거리는 움직임으로 신호를 보냈다. 반가워서 좀 더 조심스럽게 숟가락으로 안부를 물었더니 또다시 풀룩풀룩풀룩. 기력이 쇠약해지긴 했어도 어쨌든 간신히 목숨은 붙어 있었던 것이다. 어머나, 너희들 살아 있었니? 아직 괜찮은 거야?

아직 늦지 않았다고 가르쳐 준 발효종. ©정청라
아직 늦지 않았다고 가르쳐 준 발효종. ©정청라

빵 효모들의 끈질긴 생명력에 감동 감화를 받은 덕분인지, 그날부터 나는 밭으로 복귀했다. ‘어쩌면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이 들자 더위나 모기쯤 대수롭지 않고, ‘오늘은 고구마밭 한 고랑만 매자’ 하는 식으로 목표치를 작게 잡았더니 땀 흘리며 일하는 맛이 꽤나 상큼했다. 아, 바로 이 맛이었지, 내가 좋아하는 일 맛! 더불어 이랑과 이랑 사이 길이 나고, 숨어 있던 작물들이 형체를 드러내니 기대하지 않았던 수확물로 밥상이 풍성해졌다. 지주대 하나 안 세워 줬는데 누워서도 풍성하게 열매 맺는 토마토, 빼빼 마르고 벌레 먹은 데 몇 군데 있어도 반질반질 길게 자란 가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로 위로 부지런히 새 열매를 쭉쭉 내미는 오크라, 노린재에게 만날 시달리면서도 주렁주렁 매달린 고추, 풀에 지지 않으려고 애쓴 탓인지 꺽다리가 되어버린 부추.... 밭이 우거져 있을 땐 먹을 게 눈에 보이지도 않았는데 그 답답한 풀숲에서도 살아남은 생명이 그렇게나 많을 줄이야. 그냥 포기하고 방치했으면 어쩔 뻔했나.

농사는 아름다운 구속이라며 다시금 밭일의 즐거움을 만끽하다가, 그렇게 풀을 매며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을 느끼다가, 문득 다음 연재의 제목이 떠올랐다. '마음 다해 오늘을!' 내용과 방향에 대해 미리 언급하자면 어쩌면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이루어 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핵오염수가 바다로 방류되고, 문명이 야만으로 치닫고, 날씨가 점점 무서워지는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묻는 글쓰기라고나 할까? 솔직히 나도 내용을 다 알고 시도하는 연재는 아니다. 걷다 보면 길이 되겠지 하는 믿음을 가지고 지구 문제와 내 일상을 새롭게 조명해 보고자 한다. 사람이 마음 하나 바꿔 먹는 게 얼마나 크고 위대한 일인지를 깨달을 수 있게.

오늘로 '복닥복닥 동물 정원' 연재를 마칩니다. 2년간(21회) 동물과 함께 살아가고자 노력한 일상과 생명의 신비를 전해 주신 정청라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정청라
흙먼지만 풀풀 날리는 무관심, 무 호기심의 삭막한 땅을 
관심과 호기심의 정원으로 바꿔 보려 합니다.
아이들과 동물들의 은덕에 기대어서 말이죠.
무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명랑한 어른으로 자라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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