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찬 신부, 피해 입고서야 현실 알게 되어 옹호 활동

예수회가 운영하는 이주노동자지원센터 ‘김포 이웃살이’(이하 이웃살이)에서 이주노동자 노무, 노동법 교육을 위해 온라인 모국어 교육 영상과 전자 노동수첩을 제작했다.

이웃살이는 지난해 이주노동자 송출국인 캄보디아, 베트남, 타이어로 한국 노동법 교육 영상과 6개국 언어로 전자 노동수첩을 만들었고, 다른 송출국 언어로도 계속 만들 예정이다. 해당 영상과 수첩은 각각 김포 이웃살이 유튜브 채널과 QR코드를 통해서 언제든 볼 수 있다.

이 노무 교육 영상 제작 프로젝트는 이웃살이에서 노동 상담을 담당하는 김주찬 신부가 이주노동자들을 동반하면서 노무 관련 문제를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해결하고자 시작됐다.

이웃살이에서는 이주민 가운데 가장 소외된 계층인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적극 지원을 해 나가고 있다. 그 가운데 임금체불은 아주 고질적인 문제인데, 국내 유입 이주노동자 수가 늘어나면서 체불 금액의 규모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김주찬 신부는 임금 체불이 단순히 사업주와 노동자 간에 일어나는 개인 차원의 위법 행위라기보다 사회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하는 사업주들은 이주노동자들의 국가와 한국 간 사회, 문화, 언어적 차이를 이용해 자기주장을 하기 어려운 점을 악용한다.

체불 문제가 발생하고 노동자가 이를 진정하면, 노동청에서 경찰 역할을 수행하는 근로감독관들은 피해자 입장에서 적극 수사를 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 이전에 이주노동자가 적극적으로 법적 자기주장을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김 신부는 사업주가 이주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노동청의 근로감독관이 직간접으로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사이, 임금 체불은 관행화되고, 그에 따른 모든 고통은 오롯이 이주노동자와 그들 가족의 몫으로 남게 된다고 말했다.

김포 이웃살이 김주찬 신부(왼쪽)와 센터장 안정호 신부. (사진 제공 = 김포 이웃살이)
김포 이웃살이 김주찬 신부(왼쪽)와 센터장 안정호 신부. (사진 제공 = 김포 이웃살이)

“체불 금액 60-70퍼센트만 받아주면 된다”는 말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로 판을 뒤집어야 한다

“3년 전에 김포 이웃살이로 파견받고 노동 상담을 시작했을 때, 임금 체불로 노동부에 진정하면 대개 체불액의 60-70퍼센트 정도만 받게 된다고 들었어요. 처음에는 일을 배우는 단계라서, 체불임금을 제대로 받아내는 것이 그만큼 힘든 일이구나 그저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 근로기준법도 공부하고, 저를 찾아온 이주노동자가 어떻게 한국에 들어왔는지, 가족들은 본국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공장에서는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 등의 사연을 듣다 보니 어떻게 해서든지 이들이 한 푼이라도 더 받도록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김주찬 신부가 첫해에 회수한 체불액은 1억 5000만 원, 그다음 해에는 3억 원 이상이었다. 그는 그나마 이웃살이를 찾아온 이들보다 더 많을, 김포를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 도움조차 청하지 못하고 그런 방법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이주노동자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을 모두 찾아다닐 수 없다면, 그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도움의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가 주목했던 것은 이주노동자들의 국내 유입 과정이었다. 이주노동자는 우선 본국에서 언어 시험과 기술 시험을 통과하고, 한국에 들어오기 전 본국 노동부에서 일주일간 취업 교육을 받는다. 한국에 들어온 뒤에는 건강검진과 함께 3일간 취업 교육을 받는다. 문제는 이 열흘간의 교육이 한국 사회와 문화에 대한 소개, 사업장의 안전 표지, 분리수거 등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내용만 다룰 뿐, 노동자로서 사업장에서 겪을 수 있는 불이익이나 불법 상황, 이에 대한 실질적 대처방안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주노동자는 사건을 겪고서야 상황을 알게 되는데, 노동력과 임금 착취는 물론 심지어 산재 사망, 부상을 겪고 나서다.

“이주노동자를 위한 한국노동법 교육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놀라운 것은 한국어와 영어로 번역된 자료는 있지만,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다른 송출국 언어로 된 교육 자료는 찾아볼 수 없었어요. 페이스북에 ‘재한 미얀마인들의 모임’에 미얀마 이주노동자가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영상이 있었는데, 2만 명이 넘게 시청하는 걸 보면서, 각 송출국의 언어와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한국의 노동법을 설명한다면 이주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김 신부는 지난해 경기도 노동정책 공모사업에 응모해, 김포시와 동영상 제작 사업을 진행했다. 노무사에게서 필수 근로기준법 원고를 받아, 캄보디아, 베트남, 타이 3개국 언어로 번역하고, 이주민 방송 관련 전문 PD와 각국 출연자가 15개 주제로 영상을 만들었다.

동영상 제작에 동참한 이들은 현재 서강대학교에서 국제관계 분야로 박사과정을 받는 캄보디아 유학생, 베트남인 도형준 수사, 타이인 결혼 이주여성으로 이들은 본국 또는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지원한 경력을 갖고 있다.

전자 노동수첩은 캄보디아, 베트남, 타이, 필리핀, 미얀마, 네팔 언어로 제작했고, QR코드를 스캔해서 노동법 필수 내용을 볼 수 있다. 수첩에는 도움받을 수 있는 전국 가톨릭이주사목위원회 산하 이주민지원센터의 연락처도 있다.

캄보디아어로 제작한 교육 동영상 화면. (자료 제공 = 김포 이웃살이)<br>
캄보디아어로 제작한 교육 동영상 화면. (자료 제공 = 김포 이웃살이)

김주찬 신부는 이런 교육 자료 제작과 함께 최근 임금체불 사업주에 대한 형사고소 운동 전개를 제안했다. 지난해 말 국가인권위원회와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가 공동 주최한 노동권 토론회에서다.

그는 “일각에서는 형사고소 운동이 급진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강도들의 소굴’이 된 이 판을 뒤집어엎어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예수님이 성전을 뒤집어엎었던 것처럼 이주노동자를 둘러싼 문제에서도 부패한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상식과 공정에 바탕을 둔 새로운 질서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대와 옹호 활동(Solidarity and Advocacy)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국내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존중받고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들 스스로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만 한다”는 그는 ‘온라인 필수 노동법 교육’과 ‘임금체불 형사고소 운동’이 국내 이주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면서, 가톨릭교회의 이주사목위원회 산하 이주민지원센터뿐만 아니라 국내 모든 이주민단체의 적극 연대와 참여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필수 한국노동법 교육자료 홍보 포스터. (자료 제공 = 김포 이웃살이)
필수 한국노동법 교육자료 홍보 포스터. (자료 제공 = 김포 이웃살이)

이주노동자, 하느님의 선물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 250만여 명, 이주노동자는 약 120만 명 이상으로 집계된다.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으로 이주노동자 수는 날로 급증하고 있다. 농업이나 이른바 3D 업종은 이제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결코 유지될 수 없다. 이주노동자들은 국내 경제 산업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주노동자 관련 기사와 소식은 불법이나 착취, 폭력, 차별과 같은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김 신부는 이주민의 문제를 신앙 관점에서 볼 때도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진정으로 이웃이 되어 준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계화의 흐름에서 이제 이민과 이주는 되돌릴 수 없는 흐름입니다. 그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인데....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이 이주민이셨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삼위일체 성자께서 살을 취하셔서 사람이 되셨다는 그분 강생 자체가 그렇고, 이집트로 피난하셔서 난민으로 사셨던 그분의 생애가 그렇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강생과 삶처럼 약한 이에게, 약함에 응답하라는 것이 하느님의 주문인데, 이주민에 대한 우리 태도를 보면 그것을 ‘두려움’으로 답하고 있다”면서, “신앙인으로서 걷는 구원 과정은 예수님의 여정을 걷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비롯한 인간의 약함, 부서짐에 함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주민은 베풂과 받아들임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존재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주노동자들을 동반하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고 도전도 많이 받지만, 복음을 깊이 만날 수 있는 은총의 자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제로서 먹고사는 걱정 없고 생계를 책임져야 할 처자식도 없는데 그저 밥값이라도 하기 위해서” 맡겨진 몫을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 여정은, 예수님의 마음에 기대어, 그분의 선택을 따라 그분과 함께 걸어가는 여정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구원의 여정이라고 합니다.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그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나의 것’으로 삼을 때, 신앙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진실을 말해 줍니다. 이주민은 단지 우리가 도움을 줘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를 예수님의 마음으로, 참된 구원으로 이끌어 주는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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