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사목 활동을 하는 네 사람이 모였다.

지난해 초 문을 연 이주민, 난민 쉼터 착한 사마리아인의 집의 김보현 수녀(인보 성체 수도회), 이주사목 소임을 맡은 지 1년 남짓 된 김상기 신부(의정부교구 이주사목위원장), 구리 엑소더스의 유일한 한국인 실무 활동가 김진향 씨와 올해 활동 16년 차를 맞는 파주 엑소더스의 사무국장 석경숙 씨다. 이들은 지난 3월 30일 의정부교구청에서 진행한 경청 모임에 참여했다.

이날 각자 소임지에서 부랴부랴 달려온 탓에 이들은 마음의 문이 열릴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성경을 펼치고 촛불을 밝히는 성령 초대 의식으로 모임이 시작되자 자연스럽게 서로의 체험을 나누고 말씀에 비춰 각자의 소임을 성찰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평소에도 회의나 연수, 연계 활동 등으로 자주 만나지만 일 이야기만 주로 나눴기 때문에 이들에게 이날 자리는 더 의미 있었다.

이들은 이주사목이라는 같은 소임을 맡고 있기에 비슷한 감정과 체험을 공유하면서도 살아온 시간과 경험에 따라 고유한 깨달음을 갖고 있었다.

김상기 신부는 지난 1년 동안 미등록 이주민, 난민 신청자 등 “평탄하지 않은 삶의 자리”들을 만나며 “그동안 있지만 보이지 않았거나 몰랐던 문제”를 접했다. 이들에 대해 사회가 채워 주지 못하는 부분, 그 빈틈을 조금이라도 메꿔 주고 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끼지만 “한정된 재원으로 이들의 다양한 어려움을 어떻게, 언제까지 도울 수 있을까”란 생각에 무력감도 느낀다.

이주민, 난민을 초대하는 소명을 살면서 “함께 걸어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순간순간 깨닫는다.

김보현 수녀는 “비를 같이 맞고 아픔을 함께 감당한다는 것이 정말 힘들구나. 매번 식별하고 분별해야 하는, 한눈팔면 다른 길로 가 버리게 되는 순간이 많아 시행착오도 많고, 그러면서 내가 이만큼 열면 또 더 열어야 하는 순간들에 직면하니까 무력감과 괴로움이 계속 다가온다”고 말했다.

선택과 집중, 이주사목 활동이 누구에게 더 집중돼야 하는지를 식별하는 것 역시 활동가들에게 가장 큰 어려움이다. 또 법과 제도의 한계 등으로 미등록 이주민의 병원 진료 등과 같은 일에서 한계에 부딪힐 때 많이 아쉽고 힘들다. 하지만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이들과 함께 걸어가야 한다고 믿는다.

활동가 김진향 씨는 최근 출산을 앞둔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에게 머물 집과 살림살이, 출산 준비물 등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출산 뒤에도 그 삶을 살뜰하게 챙긴 어느 신부의 모습을 보면서 “함께 걷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자신은 “집과 살림을 얻어 주는 것까지만 도우면 되나라는 물음처럼, 활동할 때 항상 어느 선까지라는 한계를 짓고 있었”지만 “어떤 사람에 대해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도와주려 노력하는” 그 신부의 모습에서 매우 큰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김 수녀 역시 쉼터에서 이주민, 난민들과 함께 만든 소박한 초가 팔리는 것이 신비스럽고, 잊지 않고 도와주는 지역 본당과 봉사단체, 연대해 주는 시민단체 등이 있어, 교회 안에서 함께 걸어가고 있음을 생생히 느낀다.

이주사목이 무엇인지를 알기까지 10년이 걸렸다는 석경숙 씨는 여전히 “어떻게 활동해야 하느님 소명에 따라 사는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는 성경 말씀처럼 그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우리가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믿는다. 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무엇이 필요한지 식별하고 아프면 아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같이 걷는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환대”다.

그는 이런 마음으로 단속이나 이혼 등으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 여성들과 그 아이들을 현지로 만나러 가곤 한다. 또 체류권이 없어 의료나 교육 등 모든 면에서 기본권을 누리지 못했던 미등록 이주 아동을 위한 법 제정 모임에도 10년 동안 꾸준히 참여해 왔다.

“10년은 두드려야 문이 열리는구나, 정말 해 봐야 알고 꾸준히 해야겠다는 체험들 있었어요. 그러면서 가장 큰 기쁨은 사람이었어요. 그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같이 행복하고 즐겁고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디서 왔든 우리는 같은 사람이자 하느님의 자녀들이니 모두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자기 자신을, 우리를 넘어서면 보이는 것들

김보현 수녀는 “(캄보디아 이주 여성을 도운) 신부님 이야기 들으며 함께 간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를 깨달았다”면서, “이 정도 하면 되나 싶을 때 우리를 넘어서서 행해지는 것들이 보이면 그렇게도 갈 수 있겠구나, (우리도) 그런 선택을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주민, 난민 활동가로서 낯선 땅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단순히 돕는다는 생각을 넘어, 그들의 처지에 서서 어려움을 같이 아파하며 삶의 빈틈을 어루만져 주는 친구가 되자는 것이 이날 경청 모임에서 성령과 함께 이들이 찾게 된 이정표다.

김상기 신부는 “만나는 이들을 사목이나 일의 대상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로 바라보고, 모든 사례를 섬세하게 진행하기 어렵더라도 지향만큼은 사람 대 사람으로 바라보면서 내가 만약 그의 입장이라면 어떨까, 내가 그 상황이라면 최소한 이 정도는 해결돼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서 그들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진향 씨 역시 자신의 기준이나 이른바 보편적, 합리적이라고 하는 기준들이 아닌 이주민, 난민의 입장에서 좀 더 생각하고 배려하길 바랐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친절하게 뜻을 풀이해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도 그런 모습이 아닐까?”

오랜 시간 이주활동가로 살아왔지만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기까지 10년이 걸렸다”면서 지금도 “가슴 뛰는 활동”을 이야기하는 석경숙 씨. 그는 “(예수님은) 앞으로는 가슴만 뛰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옮기는 신앙인이자 활동가로서 살라고 하실 것 같고 그렇게 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김 수녀는 교회가 이주민, 난민들에게 친한 친구 같은 존재가 되길 바란다. 그는 여러 어려움과 한계, 고비 속에서도 결국에는 서로의 존재에 고마움을 느끼며 가족이나 친구 같은 관계가 되는 순간을 쉼터에서 체험했다며, “자신 또한 교회”이기에 자신을 만나는 누구에게든 친구를 만나는 느낌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교구를 향해 몇 가지 요청사항도 이어졌다.

이주민, 난민 문제는 특히 법제도 개선이 중요하기 때문에 제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차별금지법과 같은 법제도적 이슈에 교구가 목소리를 좀 더 적극 내 달라는 것. 또 생계가 어려워 학업을 이어 가지 못하는 이주, 난민 청소년과 청년들에 대한 교육 지원, 지역의 한 본당씩에라도 이주민, 난민 분과가 마련돼 엑소더스와 연계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의정부교구 이주사목위원회는 2006년 교구 사회사목국 산하에 설립됐다. 위원회에는 이주사목센터로 구리 엑소더스, 의정부 엑소더스, 파주 엑소더스 3곳이 있으며, 각 엑소더스는 의정부교구의 8개 지구를 나눠 각각 (구리 1-3지구, 의정부 4지구, 파주 5-8지구를) 맡고 있다.

각 엑소더스는 이주민, 난민 공동체 미사, 출입국 및 체류, 사업장 변경 등 노동과 생활 등 전반에 대한 상담, 의료 및 생활, 자녀 양육 지원, 코로나19 지원, 쉼터 연계 등의 활동을 한다.

이주민, 난민 관련 교구 산하단체로는 쉼터나 복지, 아동센터 등의 역할을 하는 동두천 베타니아, 동두천 이주민 사랑방, 동두천가톨릭센터, 성가누리 등이 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집은 인보 성체 수도회가 사회사도직으로서 2021년 의정부에 꾸린 이주민, 난민 쉼터다.

한편 의정부교구는 2018년 교구장 사목교서에 따라 1본당 1난민 가정 돌봄 사업을 해 오고 있다. 당시 이기헌 주교(의정부교구장)는 “각 본당이 사회사목분과를 활용해 난민 가정 하나씩을 돌본다면 그것은 ‘가장 소외된 이주민’에 대한 돌봄으로써 한국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당부한 바 있다. 이에 따라 2018년부터 시작된 1본당 1난민 돌봄은 현재 의정부교구 39개 본당에서 활동가 107명이 47개 난민 가정과 결연 중(2022년 3월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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