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종교를 선택하는 이들은 특정 종교에 몰리지 않고 여러 종교로 분산되는 경향을 보인다. 사회적 신뢰도가 가장 높은 종교가 새 입교자를 독점할 것 같은데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최근 상황이 달라지긴 했지만 천주교는 10년 전만 해도 사회적 신뢰도(한국 사회에 가장 믿을 만한 종교)에서 한국 종교들 가운데 늘 1위를 기록하였다. 그것도 늘 2등과 큰 격차를 보였다. 이때는 천주교가 독점은 아니어도 다른 경쟁 종교들에 비해 많은 신자를 얻었다. 최근 이뤄진 조사를 보면 천주교는 사회적 신뢰도에서 몇 년째 불교에 밀려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근소한 차이긴 하지만 10년 전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그러나 입교자 수에서는 천주교가 여전히 불교를 앞서고 있다. 개신교는 3대 종교 가운데 신뢰도가 늘 바닥이었는데 신자는 가장 많이 얻어 왔다. 그러면 이런 일은 왜 일어날까?

취향 차이?

한국에는 250여 개 넘는 종교가 있다. 이 가운데 단연코 개신교, 불교, 천주교가 전체 종교인구의 98퍼센트를 차지한다. 교세로 보면 개신교〉 불교〉 천주교 순이다. 개신교 신자 숫자가 천주교 신자 숫자를 능가한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이 개신교 우위는 1907년 이래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그러나 불교 신자가 천주교 신자보다 많다는 점은 적어도 ‘2015년 인구총조사’ 이후 불확실해졌다. 그 이전에는 불교 신자가 개신교와 천주교 신자를 합한 숫자보다 많다는 조사 결과가 많아 이를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2015년 이후 불교 신자 비율이 종교인구 가운데 절반 밑으로 떨어졌다. 2위 자리에서 마저 천주교에 밀린 게 아닐까 의심받는 지경이 되었다.

어떻든 한국인은 ‘인기투표(사회적 신뢰도 조사)’ 결과와 관계없이 각기 다른 종교를 선택해 입교한다. 이 경향은 적어도 종교 조사가 이뤄진 이후 한 번도 달라진 적이 없다. 그러니 우리 같은 연구자들은 이를 입교자들의 선호(選好)에 따른 결과라 보게 된다. 물론 종교를 선택할 때 입교 희망자는 인기투표 결과의 영향을 받긴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평소 선호를 따른다.

불교 1700여 년, 천주교 240년, 개신교 140년 역사에서 각 종교는 한국인과 상호 작용하며 나름의 고유 이미지를 형성해 왔다. 물론 여기에는 교리의 영향이 컸다. 특히 겉으로 드러나는 건물 양식, 예배 양식, 복식(服飾), 그리고 신자들의 행동 양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 국가 권력과 맺는 관계, 대사회적 행동 양식도 비신자가 해당 종교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이 모든 요소가 합쳐져 해당 종교의 사회적 신뢰(와 이미지)를 형성하였다. 이런 차이는 입교자들이 해당 종교를 선택한 이유에서 잘 드러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러한 이유에 해당하는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인은 종교에 대한 취향이 확실하다. 불교를 선호하는 사람은 개신교를 싫어하고 개신교를 선호하는 사람은 불교와 천주교를 둘 다 싫어한다. 상대적으로 천주교보다 불교를 더 싫어한다. 불교를 선택하는 사람은 천주교와 친화성이 있다. 반대로 천주교를 선택하는 사람은 불교를 개신교보다 선호한다. 이러한 한국인의 확실한 취향이 특정 종교의 독점을 막아 왔다.

불교를 좋아하는 사람은 불교를 선택하는 이유로 개방성을 든다. 소속 없이 ‘마음으로만 믿어도 상관없고, 다른 종교가 틀렸다고 말하지 않아서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속감이 약해서인지 신자 숫자는 조사 때마다 널뛰기가 심하다. 개신교를 선택하는 사람은 ‘밝고 경쾌한 분위기가 좋다’고 한다. 촘촘한 신자 관리 방식도 선호한다. 적어도 외양으로는 새 신자를 환영하는 분위기가 초심자에게는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 같다. 천주교를 선호하는 이들은 엄숙하고 거룩한 분위기, 적극적인 대사회 봉사를 높이 평가한다, 특히 천주교를 선호하는 이들은 개신교의 경쾌함을 경박함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이들은 천주교를 이탈할 때도 개신교로 옮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 이런 취향 차이가 종교 선택의 주요 기준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 보게 된다. 

인기투표에서 일등해도 입교에선 꼴찌인 이유

지난 글에서 나는 천주교도 가족 종교가 되어 가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나는 새 신자 절반 이상이 가족에서 나오는 것을 이 주장의 근거로 들었다. 물론 신앙의 가계 전승 비율로 보면 개신교가 한국 종교 가운데 단연 일등이다.

개신교가 인기투표에서 꼴찌를 해도 입교자 숫자에서 늘 일등을 하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개신교 인기가 바닥을 칠 때도 이 현상은 이어졌다. 개신교는 일찍이 가족의 종교였다. 그래서 사회적 평판이 최악임에도 신자는 계속 늘었다. 물론 여기엔 개신교 신자의 여전한 선교열, 종교인구 쇠퇴기에도 목회자가 양산되는 현실도 영향을 주었다.

불교가 인기투표에서 일등을 하면서도 입교자 숫자에서 꼴찌를 하는 비밀도 여기에 숨어 있다. 불교는 신앙의 가계 전승 비율이 3대 종교 가운데 가장 낮다. 신도들이 자녀에게도 입교를 권하지 않는데 다른 이에게 입교를 권할 리 없다. 그래서 지금과 같이 신앙의 가계 전승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가 계속되면 불교는 가장 먼저 쇠퇴할 것이다. 이렇게 가정하면 개신교가 가장 오래 남는 종교가 될 것이다.

과점(寡占) 상황이 종교 평화를 가져온다?

어느 한 종교가 그 사회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면 소수 종교를 차별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런 사회에서 종교는 대부분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실제로 종교 갈등을 경험하는 사회를 보면 대부분 종교 간 교세 불균형이 심각한 곳이었다. 고만고만한 군소 종단끼리 경쟁하는 경우에도 평화가 깨질 수 있다. 가장 심한 경우는 한 사회 안에 여러 유일신 종교가 함께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이면서 종파 간 교세 차이가 크다면 이는 거의 예외 없이 갈등이 일어난다.

이런 일반적 사례에 비춰 보면 한국은 여러 종교가 공존하면서도 겉으로는 평화가 유지되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사례다. 나는 이것이 일차적으로 한국인의 다원주의적 속성에서 오는 것이라 본다. 그다음이 종교인구 비율이다. 종교인구 비율이 인구의 절반 이하이고, 종교인구 가운데서도 특정 종교가 지배적 다수를 이루지 못하는 현재의 구도도 종교 갈등을 억제하는 요소라 보게 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종교 간 이동이 자유롭고 종교 취향이 어느 한쪽에 쏠리지 않는 한국적 특성이 종교 평화를 유지하는 배경이 되는 셈이다.    

 

박문수

가톨릭 신학자이자 평화학 연구자
<가톨릭평론>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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