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장기풍)

“부활하신 주님을 지역 공동체에서 만나십시오”

교종, 4월16일 부활 제2주일 삼종기도 가르침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부활 제2주일이자 하느님 자비의 주일인 4월16일 정오 성 베드로광장 발코니에서 행한 삼종기도 가르침을 통해 우리가 지금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려면 지역 공동체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르침 내용.

성 토마스 사도에게는 오늘 복음(요한 20,19-31)에 나타난 예수님 부활에 대한 그의 유명한 의심보다 더 많은 것이 있었습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람은 토마스 사도뿐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락방 안에 숨어 있던 다른 동료 사도들과 달리 토마스는 자신의 용기를 보여 주어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보고 신고하거나 체포할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다른 사도들이 토마스에게 예수님이 그들에게 나타났다고 말했을 때, 토마스는 예수님의 상처를 보고 만질 수 있어야 믿겠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의 말을 믿으려고 애썼습니다. 토마스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상처를 만지겠다는 특별한 증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들을 토마스에게 기꺼이 보여 주셨지만, 평범한 방식으로, 지역 사회의 모든 사람 앞에 다가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부활을 알리시며, 공동체 앞에서 사도들에게 ‘당신 사랑의 증거, 당신의 자비의 열린 통로’인 상처를 보여 주십니다. 오늘날의 우리도 토마스처럼 부활하신 분을 찾는 것은 어떤 화려하거나 놀라운 종교적 표현이 아니라 감정적이거나 감각적인 수준에서 신자들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모든 한계와 실패에도 ‘어머니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그분 사랑의 가장 큰 표징인 부활이 지금과 영원토록 발견되고 감동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이러한 사랑의 이름으로, 또한 예수님 상처의 이름으로, 삶으로, 상처 입은 이들에게 기꺼이 팔을 벌리고, 하느님의 자비에서 아무도 배제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환영할 수 있는지, 한 사람 한 사람을 형제처럼, 자매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스스로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성 요한바오로 2세에 대한 악의적 비난을 멈추시오”

프란치스코 교종은 주일 삼종기도 후 최근 40년 전 일어난 오르란디 사건과 관련한 성 요한바오로 2세 전임 교종에 대한 ‘공격적이고 근거 없는 주장’을 반박했다. 말씀 내용.

저는 성 요한바오로 2세 전임 교종에 대한 모든 신자의 확실한 기억과 정서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40년 전 일어난 당시 바티칸 직원의 15살 된 딸 오르란디 실종 사건과 관련된 단서도 없는 익명의 소문에 근거해 만들어진 악의적인 비난의 중심에, 당시 성 요한바오로 2세께서 교종으로 재임 당시의 바티칸과 마피아에 관련된 사건이라는 등의 악의적인 비난은 전혀 근거 없는 주장입니다. 저는 전 세계 신자의 정서를 확실하게 확인하면서 오늘날 공격적이고 근거 없는 주장의 대상인 성 요한바오로 2세에 대한 기억에 감사하는 생각을 전하고자 합니다.

 

“죽음의 전쟁은 부활절 메시지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교종, 오늘 부활절을 축하는 전 세계 동방 교회 신자들에게 축하와 기도

프란치스코 교종은 삼종기도 가르침 후 또한 수많은 전쟁이 계속해 죽음의 씨를 뿌리고 있는 시기에 부활절을 축하하는 동방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친밀감을 표명했다. 교종은 특히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재확인하면서 주님께서 그들이 평화를 이루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했다. 말씀 내용.

저는 율리우스력에 따라 오늘 부활절을 경축하는 모든 동방 교회 형제자매들에게, 특별히 저의 친밀감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고 성령으로 충만하시기를 빕니다! 여러분 모두 행복한 부활절 보내십시오! 그러나 슬프게도 부활절 메시지와는 대조적으로 전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끔찍한 방식으로 죽음의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잔학 행위에 슬퍼하면서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세상이 더 이상 인간의 손에 의한 폭력적인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지 않고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새롭게 하시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경험하도록 하느님께 간구합시다! 또한 이 시간에도 군부와 다른 군사 조직이 전투를 벌이는 가운데 수십 명이 사망하고 많은 사람이 부상당한 수단의 폭력 사태를 우려하면서 교전 당사자들이 무기를 내려놓고 대화를 재개할 것을 호소합니다. 이와 함께 저는 오늘 부활절을 축하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형제자매들에게도 특별한 지향으로 기도드립니다.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고 그들이 평화를 이루도록 도와주시기를 빕니다! 또한 저는 하르툼과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에 우려하고 있습니다. 모든 당사자가 무기를 내려놓고 대화가 승리하여 함께 평화와 화합의 길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인생의 여정은 십자가의 길과 같습니다”

교종, 스페인 장애인 봉사 어머니 대표단에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4월15일 창립 50주년을 맞아 바티칸을 방문한 스페인 가톨릭재단 ‘탈라베라 데 라 레이나의 희망의 어머니’ 대표단을 접견하고 연설했다. 동 재단은 지적 장애인과 그들 가족들 삶의 모든 단계를 지원하고, 직업 훈련을 통해 독립적 삶을 위한 기술을 습득하도록 사회적 노동 포용성을 촉진하기 위해 1973년 설립했다. 연설 내용.

모든 인생 여정은 십자가의 길과 같습니다. 여러분의 재단도 매년 부활절을 앞두고 톨레도에서 조직하는 전통적인 십자가의 길에서 힌트를 얻어 삶의 여정은 십자가의 길과 같다고 느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바라보시며 우리의 노력과 우리가 전할 수 있는 사랑에 기뻐하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손이 묶이지 않고는 좋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재단이 주최한 마지막 십자가의 길의 사진에 나타난 예수님은 ‘손이 묶이고 작은 어깨에 십자가가 놓인 모습’입니다. 우리 주변의 많은 형제자매가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런 옷을 입으시고 그들에 의해 손이 묶여 있다고 믿으십시오. 여러분은 예수님의 손과 발 그리고 그분의 음성과 마음 그리고 그분을 만난 기쁨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나갈 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모, 형제, 교사, 사제, 당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 함께 하느님께 감사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옆의 많은 형제자매가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런 옷을 입고 손이 묶여 있다고 믿으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손이 묶이지 않고도 좋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어깨에 수놓인 십자가 상처는 우리에게 부활을 꿈꾸도록 초대합니다. 우리의 십자가, 즉 노력, 인내, 피로는 희망의 색채로 가득 찬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낳습니다. 이는 우리 마음에 불을 붙이고 우리에게 힘을 주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격려합니다. 재단의 도움을 받는 장애인들은 이 위대한 사명을 위해 주님께서 선택해 주셨기 때문에 앞으로도 일치하며 예수님께 기쁨에 가득 찬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천국으로 향한 길을 보여 주시고 문을 열어 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으며, 이것이 우리가 부활절을 축하하는 기쁨입니다. 우리 모두 선을 행하고 이 목표를 향해 함께 걸을 자유가 있습니다.

 

“선교사의 특성은 겸손, 기쁨, 놀라움입니다”

교종, 미얀마에서 순교한 복자 체모네시 신부 회상

프란치스코 교종은 4월15일 이탈리아 크레마 교구 신자들을 만나 교구 출신으로 70년 전 버마(미얀마)에서 순교한 복자 알프레도 체모네시(Alfredo Cemonesi) 신부의 선교 활동을 회상하면서 겸손, 기쁨, 놀라움을 선교사의 특성으로 강조했다. 또한 교종은 현재도 순교가 계속되는 미얀마를 위한 기도를 당부했다. 이 만남은 원래 2019년 복자 알프레도 시복식 후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연기된 것이다. 연설 내용.

알프레도 체모네시 신부는 70년 전 버마의 도노쿠(Donokù)라는 산골 마을에서 버마 독립을 위해 싸우는 반군을 돕고 있다고 믿었던 정부군에 살해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미얀마는 고통받는 땅입니다. 저는 그것을 늘 가슴에 품고 신자들에게 그 나라를 위해 하느님께 평화의 선물을 간청하는 기도를 호소해 왔습니다. 복자 알프레도 신부님은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의 선익을 위해 계산을 아끼지 않고 끈기 있게 자신을 바치는 사도직을 수행하셨습니다. 특히 알프레도 신부님은 자신의 고향 크레마의 자질을 물려받아 굳건한 신심, 관대한 노동, 단순한 생활, 선교 열정의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러한 그분의 덕목은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안드레아 만도니코 신부와 니제르와 말리에서 2년 동안 포로로 잡혀 있던 피에르루이지 마칼리 신부와 같은 선교사들에게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크레마 교구 신자들에게도 알프레도 신부의 선교 목소리가 여러분 모두에게 전해지고, 무엇보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로서의 여러분의 말과 행동에 맡겨졌습니다.

선교사의 특성과 정신은 알프레도 신부님 말씀처럼 "선교사들을 통해 일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며, 선교사들 자신도 겸손, 기쁨, 놀라움의 특징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초기 교회 로마의 박해자들이 교회의 보물을 넘기라고 강요했을 때 성 라우렌시오는 로마의 가난한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우리는 이분들이 교회의 보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과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앞에서 모두 가난하고 그분의 무한한 사랑 안에서 풍성한 모든 사람이 각자의 눈에 독특하게 반영되는 가운데 우리는 증인이자 선교사들입니다. 크레마 교구 신자들은 이분들의 모범에 따라 헌신과 열정으로 공동체에서 친교, 협력, 환영 및 포용을 배양하면서 젊은이들을 위한 교육, 노인, 가난한 자, 병든 자를 돌보고 피조물에 대한 충실한 청지기 직분을 ‘헌신과 열정’으로 공동체의 여정을 계속해 나가실 것을 당부합니다.

 

“수도 형제들은 말없는 자기 봉헌으로 형제애 증언하시오”

교종, 밀라노 대교구 봉헌형제 회원들에게 겸손한 충성심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4월14일 바티칸을 방문한 이탈리아 밀라노 대교구 봉헌형제 대표들과 만나 봉헌된 수도자들은 겸손한 충성심으로 다른 이들을 섬기는 사명에 자신을 완전히 봉헌할 것을 촉구했다. 연설 내용.

봉헌된 형제들은 ‘복음에 따른 형제애’를 증언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는 사도적 활동보다는 형제로서의 정체성으로 그렇습니다. 형제애는 각 사람의 성격, 은사, 한계에 따라 무수히 다양한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구체적 삶의 형태로 세워집니다. 형제애는 예수님을 닮고자 하는 그들의 독특한 방식을 나타내기 때문에 수도 형제들에게 ‘내면의 기쁨’을 제공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형제가 되는 것은 강생의 신비에 고유한 측면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을 의미하는 라틴어 ‘oblatio’ 또는 ‘oblation’에서 유래한 ‘Oblates’는 형제회 정체성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한 ‘종’으로 오셨지만 사람들의 칭찬을 피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들의 봉사는 은밀하고 겸손하며 때로는 굴욕적인 봉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교인이 따라야 할 길이기도 합니다.

봉헌된 형제들은 이러한 형태의 봉사를 은사로 누리면서 성령으로부터 특별한 ‘내적 기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임신한 사촌 엘리사벳을 도우러 간 마리아께서 이러한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때 마리아를 기다리는 사진작가나 언론인은 없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 기쁨이 있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아십니다! 이것이 봉사의 진가입니다. 특정 교구나 지역에서 봉사하는 형제들은 이러한 충실성과 겸손함을 간직해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세상을 구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에게 ‘현재의 봉사와 이 백성과 이 선한 일에 충성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고 따라서 아버지에 대한 그의 신실하심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추상적으로 인류를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나 저 사람 모두를 사랑해야 합니다. 신실함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보기 드문 귀한 선물입니다! 이것이 모든 봉헌형제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랑의 법칙’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먼저 증언한 것은 여성들입니다”

교종, 이탈리아 수녀 장상 회원들에게 희망의 씨앗이 되라고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4월13일 바티칸 클레멘티나 홀에서 이탈리아 여자 수도회 장상 연합회(USMI) 제70차 총회에 참석한 약 300명을 접견하고, 시노드 여정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먼저 여성 증인들에게 받아들여졌다’라는 주제로 연설했다. 교종은 이들에게 ‘틀을 깨고 희망의 씨를 뿌리는’ 복음의 무궁무진한 부요에 의지하여 함께 걸으면서 기쁨과 담대함과 헌신을 잃지 않고 다른 교회 현실과 친교를 이루어 하느님나라를 건설하는 데 힘쓸 것을 권고했다. 연설 내용.

오늘날 수녀들은 세상을 위한 새로운 방법과 말씀을 찾기 위해 항상 복음으로 돌아가 교회 안에서 함께 걸으라는 초대를 받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수녀들은 인류 가운데 하느님의 누룩인 희망의 생산자가 되어야 합니다. 봉헌된 여성이 부활하신 분을 증언하지 않는다면 그녀의 삶은 거기에서 끝납니다. 틀을 깨고 희망의 씨를 뿌리는 복음의 무궁무진한 부요에 의지하여 함께 걸으십시오. 여러분은 기쁨과 담대함과 헌신을 잃지 않고 다른 교회들과 친교를 이루어 하느님나라를 건설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봉헌된 여성들은 오늘날 세상을 위한 새로운 방법과 말씀을 찾기 위해 항상 복음으로 돌아가 교회 안에서 함께 걸어가는 가운데 인류 안에서 하느님의 누룩인 희망의 생산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성들은 예수님 부활의 첫 목격자들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복음의 원래 신선함을 회복할 용기가 있다면, 새로운 길, 창의적 방법, 다른 형태의 표현, 더 설득력 있는 표징이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의 끊임없는 신성한 창조력으로 우리의 지루한 계획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항상 용기를 가지고 주님께서 어제 우리에게 말씀한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찾으십시오. 여러분 각자가 고유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기본 정신으로 지금 질문하십시오. “주님, 오늘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가 뭘해야 하죠?" 여성들은 이것에 능숙합니다. 여성들은 새로운 길을 만드는 방법과 베푸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용감합니다. 부활절 아침, 제자들에게 부활을 알리기 위해 서두르는 여인들의 모습은 진정한 시노드 회심에 영감을 줍니다. 그들은 자신을 위한 기쁨을 간직하지 않고, 혼자 걷지 않습니다. 여성들이 관대하고, 목숨을 바치고, 길을 열고, 다른 사람을 부르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현존은 우리를 우리 자신 안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걸을 결심을 하도록 밀어 줍니다. 이 같은 공동합의성은 교회가 지향하는 높은 길입니다. 시노드 여정은 성령이라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시노드 여정의 머리이시며 주인공입니다. 이 역동성 속에서 여성들은 앞서갑니다. 목회자들과 함께라면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때때로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에도 여성 봉헌자들은 함께 만나고, 대화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시노드의 길은 답이 없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시노드의 길은 걷고, 듣고, 느끼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시노드는 의회나 의견의 집합소가 아닙니다. 시노드의 길은 주인공이신 성령님의 인도로 삶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분의 여성 증인 여러분은 새로운 열정으로 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현실을 듣고, 보고, 만지고, 현실에서 벗어나지 말고 ‘궤도 안에’ 있으십시오. 봉헌 생활의 도전은 극복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또한 희망은 가장 작지만 가장 강력한 미덕입니다. 현실적이되 명랑함과 대담함, 희망찬 헌신을 잃지 맙시다! 여러분의 많은 프로젝트가 희망적인 헌신을 말해 줍니다. 이 길을 계속 가십시오! 따라서 봉헌생활의 질병, 특히 어려움만을 바라보거나 항상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찾아보면서 ‘하지만 그러나’에 대한 기념비를 세우는 ‘내면의 산성 정신’인 괴로움을 경계해야 합니다. 사실 ‘쓴맛’은 ‘악마의 독주’이며 희망의 정반대입니다. 설탕 대신 식초를 재배하면 뭔가 잘못됩니다. 쓴맛과 마음의 신맛은 너무 아픕니다. 지역 사회에서 일부 수녀들이 이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면 그녀들이 이 상황에서 하루 속히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봉헌된 여성들이 ‘항상 생각하는 우울한 사람’들의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십시오. 이것은 악마의 비약으로 쓴맛의 독주입니다. 제발, 성령께서 우리에게 영적 감미로움을 주시도록 청하십시오.

 

“여러분은 교종에게 날개를 달아 줍니다!”

교종, 이탈리아 국영항공사 ITA 대표들에게 칭찬

프란치스코 교종은 4월14일 아침 바티칸을 예방한 이탈리아 국영항공사 ITA 항공 대표단을 만나 바티칸과 이탈리아의 협정에 따라 모든 교종의 사도적 방문에 이용하는 ITA 항공을 칭찬하고 격려했다. 말씀 내용.

오늘 아침 이곳에 착륙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떤 면에서 여러분은 ‘교종의 날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후계자가 희망과 평화의 복음을 들고 땅끝까지 날아갈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저는 궁금합니다. 성 바오로 사도가 비행기로 여행할 수 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실제로 사도적 방문을 위해 1964년1월4일 역사상 최초로 비행기에 탑승한 교종은 성 바오로 사도의 이름을 지닌 바오로 6세였습니다. 성 바오로 6세는 성지로 여행하고 싶은 열망을 품고 있었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 말미에 공의회 교부들에게 ‘짧지만 강렬한 여정’을 시작하겠다는 자신의 결심을 열정적으로 발표했습니다. 당시 로마-피우미치노 공항에서 출발하여 암만에 도착한 그 비행기는 교종의 전 세계 여행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첫 번째 여행 후 바오로 6세는 계속해서 8번 해외 순방을 마쳤고 이는 모든 대륙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후 요한바오로 2세 교종은 재위 27년간 104번 해외순방을 했습니다. 이후 이러한 형태의 사명은 교종직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습니다. 그분의 후계자인 베네딕토 16세도 그렇게 여행했고, 저도 계속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2주 후에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헝가리를 방문하기 위해 41번째 사도적 순례를 떠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마르세유, 몽골 등 예정된 리스트에 있는 다른 장소들도 방문하게 될 것입니다. 최근 알리타리아를 대체한 ITA는 ‘쉽지 않은 물류!’를 포함해 많은 세부사항에 대한 능력으로 관심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이동에 약간 문제가 있는 저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여러분의 도움으로 계속 여행할 수 있습니다! 사람과 공동체, 신자와 다른 종교의 신자들, 선의의 여성과 남성을 만나는 것은 저 자신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직접 만나 이야기하는 것은 영상과 같은 메시지를 가지고 대화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저는 신앙 안에서 형제자매들을 확인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이들을 돕기 위해 계속 여행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도 여러분 덕분에 가능합니다. 이에 대해 감사드리며, 하느님의 뜻이 있는 한 저도 계속해서 여러분과 함께 비행할 것입니다.

 

“노인들에 대한 의약품 박탈은 은밀한 안락사”

교종, 이탈리아 사회보건종교협회 회원들에게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4월13일 이탈리아 ARIS(사회보건종교협회) 회원들을 접견하고 보건 분야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낭비 문화를 우려하면서 교회는 소외된 사람들 필요에 응답하고 기술과 자원을 통합하고 경쟁을 피하도록 부름받았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교종은 특히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불행에 대한 추측’의 위험을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이날 이들은 회장인 버지니아 베버 신부와 이탈리아 주교회의 보건사목국장과 동행했다. 연설 내용.

사회보건종교협회는 성경의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에 나오는 여관처럼 그리스도교에서 영감을 받은 의료시설의 관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정신대로 이탈리아 국민들의 종교건강 상태에 대한 비전을 제공하고, 가장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 ‘건강 경제 시스템’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도움 요청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이탈리아의 종교의료는 참으로 훌륭한 수 세기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동안 의료 봉사를 통해 사회의 가난하고 약하고 버림받은 이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기울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의료 봉사에는 몇 가지 유의해야 할 위험이 있습니다. 의료 분야에서 낭비문화는 다른 곳보다 고통스러운 결과를 명확하게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사실 병자를 중심에 두지 않고 존엄성을 중시할 때 남의 불행을 함부로 추측하는 태도까지 생기므로 경계해야 합니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의 필요에 응답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오늘날 여러 가지 이유로 의료 분야의 기존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가톨릭 의료가 시작된 창립 카리스마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톨릭 의료기관은 올바른 식별의 길을 택하고 용감한 선택을 하며, 우리의 소명은 필요의 최전선에 서 있는 것임을 스스로에게 상기시켜야 합니다. 교회로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가장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 경제적 또는 문화적 이유로 그들의 필요가 충족되지 않는 사람들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요구에 응답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것들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상위에 있는 사명입니다.

지금 이탈리아는 특히 더 어려운 사회경제적 상황을 맞아 ‘건강 빈곤의 귀환’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더 어려운 사회경제적 상황에 처한 지역에서 중요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진찰을 받는 것조차 문제입니다. 심지어 응급환자들도 매우 긴 대기자 명단에 올려야 하는 실정입니다. 특히 노인들의 경우는 더욱 심각합니다. 노인들에게 경제적 이유로 반드시 필요한 약을 제공하지 않는 경우는 은밀하고 점진적인 안락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말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의약품에 대한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종종 다른 나라들의 경우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것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4-5개를 먹어야 하는 약을 노인들에게 겨우 2개만 먹도록 하는 것은 은밀한 안락사에 해당합니다. 치료가 가져올 수 있는 것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가장 빈곤한 사람들과 비교할 때 재정 자원이 있는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기회가 다르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가톨릭병원은 무엇보다도 건강 경제와 특정 현대 문화에서 거부당한 사람들을 돌보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 영감을 받은 의료서비스는 기존 서비스를 새로운 현실로 전환해야 하는 경우에도 사람들이 가장 고통받고 가장 덜 보살핌받는 장소를 선호하면서 특히 사회의 가장 약한 부분을 돌볼 권리를 옹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연구와 혁신’ 그리고 헌신 및 전반적인 비전을 결합할 수 있는 유능하고 명확한 경영진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복잡한 현실에서 종교적으로 영감을 받은 의료기관들이 함께 모여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경쟁 정신을 피하고, 기술과 자원을 결합하고, 아마도 새로운 법인을 설립하여 도움을 줄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만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작은 현실, 새로운 길을 택하는 것에서 오는 위험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회보건종교협회의 소명은 ‘병자와 그 가족, 의료 전문가들의 영적, 종교적 도움을 소홀히 하지 않는 온전한 보살핌’으로 자신의 기관에 오는 사람들과 동행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성사적, 사목적 돌봄을 제공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에게 온전한 관심을 기울이는 문제입니다. 아무도 자신의 질병에 대해 외로움을 느껴서는 안 됩니다! 그와는 반대로, 모든 아픈 사람은 종교 병원의 지원을 받아야 하며, 때로는 길고 피곤한 연약함의 길을 그리스도교적 희망과 함께 걸을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가톨릭 의료기관 창시자들의 카리스마를 살아 있게 하되, 그들의 몸짓을 모방하기보다는 그들의 정신을 환영하고, 과거를 옹호하기보다는 현재와 미래를 건설해야 합니다. 당신의 현존과 함께 하느님께서 병자들, 특히 이익의 논리로 가장 불리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선포하십시오. 성모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해 주시기를 기도하면서 성모님의 전구를 청합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