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장기풍)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교종, 부활절 ‘우르비 엣 오르비’ 고통의 세상에 희망을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4월9일 부활 대축일 정오 성 베드로 광장 발코니에서 10만여 순례객이 광장과 인근 거리에 운집한 가운데 전통적인 ‘우르비 엣 오르비’(Urbi et Orbi, 도시와 세계에) 축복을 통해 예수님 안에서 인류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죄에서 은총으로, 두려움에서 확신으로, 황폐에서 친교로 전환이 이루어졌다고 선언하고, 모두에게 행복한 부활절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날 광장에는 예년처럼 네덜란드 플로리스트들이 기증한 약 3만 송이 꽃이 광장과 로지아의 발코니를 장식하여 포근한 봄 햇살 아래 화사하게 빛나 부활절의 새로운 삶, 희망, 기쁨이라는 주제를 상기시켰다. 메시지 내용.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부활하셨고 모두를 위한 희망이 다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가져올 기쁜 희망을 믿고 수많은 고통으로 얼룩진 세상에서 하느님을 섬기고 평화를 위해 일하고 형제들을 돕는 기쁨을 재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인류는 예수님 안에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죄에서 은총으로, 두려움에서 확신으로, 황폐에서 친교로 전환되었습니다. 모두 행복한 부활절을 기원합니다. 특히 병자, 가난한 사람, 노인, 고통받는 모든 사람이 고통에서 위로로 넘어가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바랍니다. 죽음을 물리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다리를 놓으셨고’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날을 우리에게 주신 것을 기억하고 기뻐할 것을 당부합니다. 예수님이 참으로 부활하셨다는 ‘참으로’라는 단어는 부활이 단지 희망사항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인류의 여정이 희망에 확고한 발판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와 미래의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자신감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부활의 첫 번째 증인인 제자들은 서둘러 이 기쁜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인류는 오늘날에도 우리 여정의 목표이며 세상의 희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서둘러’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호혜적 신뢰의 여정, 즉 개인, 민족, 국가 간 신뢰를 서둘러 진행하기 바랍니다. 부활절의 기쁜 선포로 우리 세상이 너무나 자주 둘러싸인 어둠과 침울함을 밝히는 빛의 경탄을 경험하도록 우리도 호혜적 신뢰의 여정을 서둘러 진행하기 바랍니다. 개인, 민족, 국가 간 신뢰로 갈등과 분열을 해결하고, 평화와 형제애의 길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긴급한 노력을 살펴보면서, 전쟁과 빈곤에서 탈출한 사람을 환영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칭찬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마음을 열어 같은 일을 하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사랑하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평화와 부활절의 빛이 러시아 국민에게도 빛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전쟁으로 인한 부상자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든 이를 위로해 주시기를 빕니다. 수감자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국제 사회가 세계적으로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노력하기 바랍니다. 여전히 ​​평화를 기다리는 시리아와 우리의 지속적 연대가 필요한 터키의 지진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또한 성스러운 도시 예루살렘에 평화가 만연할 수 있도록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대화 재개를 촉구합니다. 또한 레바논이 안정과 통합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상황에 도움을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튀니지도 젊은이들과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평화와 형제애의 미래를 열어 갈 길을 찾도록 기도합니다. 여전히 많은 사회,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아이티를 위한 도움을 요청합니다. 주님께서 에티오피아와 남수단, 콩고 민주 공화국의 평화와 화해 노력을 도우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부르키나파소, 말리, 모잠비크, 나이지리아에서의 국제 테러 희생자들을 위로하며 기도드립니다. 

또한 니카라과와 에리트레아에서 부활절을 축하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기억하면서 그들과 모든 시민이 자유롭게 신앙을 고백할 수 있도록 기도드립니다. 미얀마에 평화가 깃들고 지도자들의 마음을 밝혀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는 로힝야족이 정의를 마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난민, 추방자, 정치범, 이민자들, 가장 취약한 이들이 인간 존엄성을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굶주림, 마약 남용, 인신매매 및 기타 모든 형태의 노예 제도 피해자들을 도울 수 있기 바랍니다. 또한 국가 지도자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도록 영감을 주어 이러한 사회적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주님께 간구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행의 즐거움을 재발견하고 희망의 심장 박동을 빠르게 하며 천국의 아름다움을 미리 맛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 선함 그 자체를 향해 선함으로 나아가는 에너지를 불러일으킵시다. 생명의 주님이신 당신께서 우리 여정에서 우리를 격려하시고 부활절 저녁에 제자들에게 하신 “평화가 너희와 함께” 이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되풀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프란치스코 교종, 파스카 성삼일 전례 마무리

교회가 전례력의 가장 기쁜 날을 경축하는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성 베드로 광장에서 4만 5000명이 넘는 순례자가 부활절 아침 화창한 성 베드로 광장을 가득 채운 가운데 부활 대축일 미사를 집전했다. 교종은 이날 미사에서 강론은 하지 않았다. 전날 밤 이미 성찰을 했기 때문이다. 부활 성야 미사에서 교종은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여인들의 놀라움과 기쁨을 되새겼다. 부활 대축일 아침 미사로 프란치스코 교종은 파스카 성삼일 전례를 마무리했다. 교종은 기관지염 치료를 위해 병원에서 3박4일을 보내고 4월1일 퇴원했음에도 미리 예정된 자신의 모든 공개 행사를 주재했다. 다만 성금요일 로마 콜로세움에서 열린 십자가의 길에는 당일 혹독한 추위로 의사들의 권고에 따라 참석하지 않고 자신의 숙소인 바티칸의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함께했다.

 

“부활하신 주님을 따라 우리 자신의 갈릴래아로 떠납시다”

교종, 4월8일 파스카 성야 미사 강론, 신앙의 근본을 찾도록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4월8일 저녁 7시30분 베드로 대성당에서 봉헌된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미사를 주재하고 강론을 통해 그리스도의 부활은 빈 무덤을 목격한 여성들의 엄청난 놀라움과 기쁨을 우리들도 경험해 우리의 믿음과 소망이 자라도록 우리를 주님과의 첫 만남으로 초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전야 미사는 성당 입구에서 불의 축복과 파스카 초 점화 의식과 함께 촛불 행렬이 이어졌으며, ‘그리스도 우리의 빛’(Lumen Christi)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대성당 불빛이 찬란하게 켜졌다. 이날 미사에서는 알바니아, 미국, 나이지리아, 이탈리아, 베네수엘라에서 온 예비 신자 8명의 세례와 견진성사를 베풀었다. 강론 내용.

오늘 복음(마태 28,1-10)에서는 안식일 다음 날 아침 예수님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이 무덤이 비어 있음을 알게 된 충격적 경험을 통해 예수님 죽음에 대한 엄청난 슬픔에서 주님의 부활에 대한 놀라움과 기쁨을 경험한 과정을 설명합니다. 엄청난 슬픔에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가는 이 여정은 우리도 부름받은 여정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 무덤을 찾아가던 여인들이 갈릴래아로 제자들을 부르시는 부활하신 주님과 빈 무덤을 목격한 후 그들의 슬픔은 경이와 환희로 바뀌었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 부활을 통해 거듭남과 함께 그들이 갈릴래아에서 경험했던 첫 신앙으로 돌아가도록 요구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만일 어떤 것도 변할 수 없다고 믿으면서 현재를 실망, 쓰라림, 당혹감으로만 볼 때 우리도 슬픔에 압도될 수 있습니다. 또 때때로 주님과 첫 믿음의 만남을 과거의 일로 여기고 어둠과 전쟁과 무관심과 불확실한 미래로 점철된 오늘날 어려운 세상에서 주님과 별 관련이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환멸은 우리 안에 있는 희망의 샘물을 마르게 합니다. 그러나 부활절 아침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은 빈무덤과 주님의 부활을 경험한 즉시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에게 달려가 ‘삶과 역사를 영원히 바꿀 소식’ 즉,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음을 외쳤습니다. 그들은 또한 제자들에게 주님이 갈릴래아로 부르심을 전합니다.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삶을 변화시킨 경험은 주님이 처음 제자들을 부르신 그곳 갈릴래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부활하신 분이 우리에게 주신 '미래의 기억'인 희망을 재생시키는 기억을 되찾기 위해 시작의 은총으로 돌아가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가 희망과 기쁨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동기를 부여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셨고 우리로 하여금 주님께로 방향을 바꾸어 미래에 대한 역사에 확신을 가지고 종종 희망을 가두는 우리 내면의 무덤의 돌을 치울 것을 명령하십니다. 제자들의 갈릴래아 귀환은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경험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자신과 주변의 세계와 생명 자체의 신비를 바라보는 눈부신 새로운 방식을 받았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 첫사랑을 기억하고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하느님과 만남의 놀라움과 기쁨을 회복한다면 계속 전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억하고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우리 곁에 항상 계시며 우리를 알고 사랑하시는 하느님으로서의 주님을 우리가 개인적으로 알게 된 때를 기억하는 것이 오늘 복음의 핵심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각자 자신의 갈릴래아와 자신의 부르심을 기억하십시오. 정확한 순간 당신에게 직접 말씀하신 하느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강력한 영의 체험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믿음의 기초인 주님과의 첫 만남을 기억할 때, 우리는 갈릴래아로 돌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경축하고 그 경험과 감정과 감각을 되살리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합니다. 이것은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움직임을 새롭게 강화하며, 우리의 퇴색된 신앙이나 잃어버린 희망의 무덤에서 돌을 굴려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기억하고 계속 전진하십시오! 여러분 안에 있는 하느님 부활의 은총을 재발견하십시오!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을 따라 갈릴래아로 가서 그분을 만나고 경배하십시오. 그곳에서 주님은 우리 각자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이 살아 계심을 깨닫고 그분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삼았던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되살려 새 생명으로 일어납시다!

 

교종의 부활 성야 제의는 고향 아스티의 특별한 선물

프란치스코 교종이 4월8일 성토요일 저녁 7시30분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봉헌된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미사에서 입은 제의는 ‘그리스도 우리의 부활’이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11월19일과 20일 교종이 베르골리오 가문의 뿌리를 찾기 위해 방문한 고향인 이탈리아 북부 지방 아스티에서 온 선물이다. 제의는 아스티의 미래 ‘나르도스’ 실험실의 일부가 될 재봉사가 만들었으며, ‘게이트의 축복받은 성모’ 성소(Beata Vergine del Portone) 돈 시몬 우네레 원장의 의뢰로 재봉사 마리나 베르간틴이 만든 7개 꽃이 만발한 십자가와 농부 7명 및 다양한 작은 돌로 장식한 흰색 제의다. ‘나르도스’ 실험실은 내년에 본격적으로 가동할 전례의상 연구소 이름으로 라자로의 여동생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나르도의 향수를 뿌린 요한 복음에 나오는 에피소드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작업장은 카리타스와 협력하여 만들었으며 전례용 재봉 장비와 재료를 보관할 방은 성소 내부에 있게 된다. 우레네 원장신부 의도는 독거노인, 장애인, 죄수로 거부당한 사람들을 교회로 데려와 간단한 옷을 만드는 일자리를 주는 것이다. 특히 모든 재료는 환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무공해 물질을 선택해 프란치스코 교종 회칙 ‘찬미받으소서’ 정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콜로세움 십자가의 길, 전쟁으로 상처 입은 인류의 목소리로

교종청 공보실은 4월7일 프란치스코 교종이 극심한 추위로 인해 로마 콜로세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전통적인 십자가의 길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 대신 바티칸 내 그의 거주지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따를 것이며, 콜로세움에서 로마 대교구와 함께 모인 신자들의 기도에 동참한다고 밝혔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종은 기관지염 치료를 위해 로마 제멜리 병원에서 3박4일 입원 치료를 마치고 퇴원한 바 있다. 

한편 이날 콜로세움에서의 전통적 성금요일 십자가의 길에는 2만여 신자가 참석한 가운데 교종이 선택한 ‘단편적인 3차 세계대전’으로 상처 입은 인류의 고통을 반영한 텍스트로 진행했다. 이날 십자가의 길 14처 묵상들은 프란치스코 교종이 그동안 사도적 순방에서 청취한 전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만연한 불의와 전쟁, 가난, 난민들의 간증과 이 시대 사람들 기도를 특징으로 한다. 로마 콜로세움 원형 경기장 십자가의 길은 18세기에 시작되어 세계대전 등으로 중단되었다가, 1960년대에 다시 부활한 후 짧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고, 매년 성금요일 전 세계에 생중계하는 가운데 실시하고 있다. 

올해 십자가의 길 제1처는 계몽을 위한 기도로 시작했다. 여전히 세계의 평화 부족으로 고통받는 성지의 목소리며 단편적으로 진행되는 ‘세 번째 세계대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외침이 메아리 친다. 강제 이주, 인신매매, 폭력과 감금의 모욕을 견디며 목숨을 걸고 위험한 바다를 건너는 사람들, 그들의 가족, 친구, 동포들이 총기, 미사일, 지뢰로 죽임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사람들, 성급한 판단과 손쉬운 정죄에서 그들을 구해 주시기를 주님께 기도하는 겸손한 사람들의 외침이다. 중남미 젊은이들은 부패한 사회와 타협을 거부하고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힘을 예수님께 간구했고, 남미 한 어머니는 게릴라 공격으로 아이가 다쳤던 폭력을 회상하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에 대해 반성했다. 그녀는 “마치 마리아가 예수의 얼굴이 멍들고 피범벅이 된 것을 본 것과 같았습니다. 고통받는 이들의 일그러진 얼굴에서 주 예수여, 우리가 당신을 알아볼 수 있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했다. 아프리카, 남아시아, 중동에서 온 이민자들은 스스로를 ‘증오로 상처를 입었다’고 말하며 용서를 구했다. 

십자가의 길 제6처에서 발칸반도 한 사제는 전쟁포로로 잡혀 있는 공포와 무슬림 여성들이 ‘베로니카가 예수님 얼굴을 닦아 드리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제 내 인생이 끝날 때까지 전쟁의 공포를 목격하고 외칩니다.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라!"고 외쳤다. 또한 실향민 청소년들은 형제애의 다리를 놓고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힘을 청했고, 동남아시아의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무기를 팔고, 음식 대신 군비에 돈을 쓰는 사람들의 회개를 기도했다. 중앙아프리카에서 온 선교사 수녀는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가족과 친구, 동료들이 죽었던 날을 기억했다. 그녀의 한 동료 수녀가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것은 그녀에게 ‘눈물의 계곡’과 많은 질문을 남겼다. “맙소사, 주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 그녀는 예수님의 사랑이 ‘어둠 속의 빛’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전에 물었다.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고, 오해받고, 잊혀질까 두려워 “주 예수님, 저희를 치유해 주십시오”라고 간청했다. 

제10처는 두 어린 소년이 맡았다. 한 명은 우크라이나에서, 다른 한 명은 러시아에서 왔다. 한 명은 집을 떠나야 하는 슬픔과 싸우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어야 하는 아버지와 헤어진 슬픔을 말했다. 다른 한 명은 전선에서 죽은 형을 잃은 슬픔과 전쟁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말했다. 그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죄책감’을 “세상의 평화! 우리 모두 형제자매가 됩시다!!”라고 표현했다. 근동에서 온 한 젊은이는 부모와 함께 폭력을 피하고 위험한 여정에 직면했을 때 현지인들이 자신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두 팔 벌려 환영할 때까지를 회상했다. 그리고 서아시아의 한 어머니는 그녀의 어린 아들과 사촌, 그리고 이웃이 살해된 그들 공동체에 대한 테러리스트의 공격에 대해 이야기했다. 생존자로서 그녀는 "예수님이 사형 집행자들을 용서했기 때문에 가해자를 용서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녀의 “주님, 우리를 가르쳐 주십시오”라는 기도는 화해를 향한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었다. 

십자가의 길 제13처는 선교사 수녀 중 한 명이 반란군이 살해한 동아프리카 수녀의 목소리를 냈고, 제14처는 남아프리카에서 온 어린 소녀들이 무장한 남자들에게 납치됐을 때의 공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우리 지방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눈물과 고통의 장소입니다.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의 은총을 주님께 구합니다”라고 기도했다. 

올해 2023년 콜로세움에서의 십자가의 길은 단편적으로 치룬 제3차 세계대전을 슬퍼하며, 프란치스코 교종이 우리에게 자주 상기시켜 주듯이, 죽음을 이기시고 모든 분열을 화해시켜 우리 모두를 같은 아버지의 자녀인 형제자매로 만드신 주 예수님께 열네 번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함으로써 마무리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진정한 생명을 가져다줍니다”

성 베드로 대성당 성 금요일 전례, 교종 설교가 칸탈라메사 추기경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4월7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 전례에 참석했다. 이날 강론은 교종청 설교가 라니에로 칸탈라메사 추기경이 ‘예수님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의 죽음은 우리에게 진정한 생명을 가져다줍니다’를 주제로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공생활 마지막 순간을 회상하면서 세속화된 사회에서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묵상했다. 강론 내용.

현대 세속화된 서구 세계는 한 세기 이상 ‘신의 죽음’에 대해 이데올로기적 성찰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 선언 배후에 있는 아이디어는 독일 철학자의 유명한 글 ‘그를 보라’(Ecce Homo)에서 표현한 것처럼 신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슈퍼맨’으로 대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실로 ‘선과 악을 넘어선’ 현대 허무주의로 이어졌으며, 니체의 또 다른 함성인 다름 아닌 ‘권력에의 의지’가 오늘날 우리가 극적으로 목격하고 있는 현상입니다. 정확히 니체의 생각에 따라 일부 사람들이 인간 존재를 '죽음을 위한 존재'로 정의하고 인간의 모든 가능성을 '처음부터 무효'로 간주하게 된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인생에서 자신의 몫을 겪었고’ 하느님만 아시는 독일 철학자의 마음을 판단하는 것은 우리 몫이 아니지만 우리는 그들의 사상이 초래한 결과를 판단할 수 있고 또 해야 합니다. 우리 세계에 존재한 그것들의 공통분모는 ‘윤리, 언어, 철학, 예술, 종교 등 모든 분야의 총체적 '상대주의'입니다. 더 이상 고체는 없습니다. 모든 것이 액체이거나 증기입니다. 낭만주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우울에 젖었지만 오늘날에는 허무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니체의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배후에는 무엇이 있는지 보여 줄 의무가 있습니다.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8) 오늘 우리는 당신의 죽음을 선포합니다. 오 주님!! '영적 우주'의 진정한 '블랙홀'인 허무주의에 반대되는 것은 하느님의 부활에 대한 그리스도교인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그 어느 때보다 확신을 가지고 매 미사 때마다 선포하는 말을 계속 반복합시다.

 

"재무장과 폭력에 반대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교종, <레스프레소>가 보도한 ‘전쟁과 평화’에 관한 메시지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주간지 <레스프레소>(L'Espresso)가 보도한 메시지에서 우크라이나와 세계 여러 지역 전쟁을 살펴보고 부활절의 의미를 되새기며 요한23세 회칙 ‘지상의 평화’를 인용해 진정한 평화는 두려움에서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재무장과 폭력에 반대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메시지 내용.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랄 수 있습니까? 우리는 우크라이나에서 전달되는 끔찍한 이미지를 계속 우리 눈에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너무 자주 다른 잊혀진 갈등, 다른 폭력들과 우리가 불행하게도 경험하고 있는 제3차 세계대전의 많은 ‘조각’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나자렛 예수는 사도들이 모인 다락방에 들어가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보고 여전히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는 오늘 우리가 나누는 소원입니다. 전쟁과 폭력에 진정으로 "아니오"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총을 침묵시키고 침략자를 막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원망, 시기, 탐욕이라는 전쟁과 폭력의 뿌리를 근절해야 합니다. 

저는 요즘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공간과 목소리를 주기로 결정한 당신의 주간지와 같은 일부 미디어가 있다는 것을 기뻐합니다. 평화를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무장 해제’해 ‘비무장화’하고, 독과 원한을 제거할 용기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재무장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평화는 두려움에서 태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것은 60년 전 성 요한 23세가 회칙 ‘지상의 평화’에서 상호신뢰를 구축하고 ‘완전한 군축’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저는 어떤 귀에는 이 말이 유토피아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특히 지금 이 순간에는 특히 그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건전한 현실주의입니다. 배고픔과 갈증과 싸우고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보장하기 위해 자원을 훔치는 군비 경쟁을 중단해야만 우리 인류의 파괴를 막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행복한 부활절을 맞아 부활하신 나자렛 예수님의 말씀과 함께 반복하는 이유입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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