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장기풍)

“인생은 서로 도울 때 아름답습니다”

교종, 로마 소년원에서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

프란치스코 교종은 4월6일 로마 시내 카살 델 마르모 소년원에서 주님 만찬 미사를 집전하고 이곳에 수용 중인 12명 젊은이의 발을 씻는 전통 세족례를 거행했다. 12명 젊은이들은 14살에서 25살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남성 10명과 여성 2명 그리고 다양한 신앙 전통을 대표하는 크로아티아, 세네갈, 루마니아, 러시아 출신들이다. 교종은 이날 미사에서 주님께서 당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고귀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겸손과 봉사의 중요성을 어떻게 우리에게 가르치셨는지를 상기시켜 주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즉위 직후인 2013년 카살 델 마르모 기관을 방문해 ‘주님 만찬’ 성목요일 전례를 거행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날 교종은 준비된 연설문 없이 예수님께서 수난 전날 겸손과 봉사의 몸짓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을 이야기한 이날 전례 복음(요한 13,1-15) 내용에 자신의 생각을 집중했다. 강론 내용.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써 우리가 서로를 속이거나 이용하는 세속적인 방식을 따르기보다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몸짓과 정신을 본받아 서로 돕는다면 삶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설명해 줍니다. 단순한 인간의 몸짓을 통해서도 서로 돕는 것은 고귀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며, 오늘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고귀한 마음’을 갖도록 가르치고 격려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각자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에 대해 낙심하거나 부끄러워할 수 있지만 예수님은 우리에 관한 모든 것을 아시고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 모두의 발을 씻어 주십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나약함으로 인해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주님께서 우리의 여정에 동행하기를 원하신다고 확신해야 합니다. 

오늘 젊은이 12명의 발을 씻기는 예식은 단순한 민속 행위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 돕고 서로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서로 어떻게 함께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표시인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으로서 우리의 연약함에도 모든 사람의 엄청난 존엄성을 인정하고 우리가 이러한 태도와 봉사 정신을 채택한다면 세상의 많은 불의를 완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업, 결손가정,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일, 약점에 굴복하는 일은 우리 각자에게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써 우리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십니다. 우리의 상황과 약점이 무엇이든 주님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시며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한편 이날 미사 후 교종은 복자 주세페 피노 풀리시 신부에게 헌정한 소년원 경당의 명판을 축성했다. 피노 풀리시 신부는 1993년 마피아 조직범죄에 맞섰다는 이유로 자신의 생일날 살해된 유명한 시칠리아 교구 사제다. 교종은 소년원에 수감된 젊은이들이 목공 직업훈련 과정에서 만든 십자가와 이들이 생산한 비스킷과 파스타를 선물로 받았다. 또한 교종은 카살 델 마르모 관장과 직원들에게 이탈리아 전통인 초콜릿 부활절 달걀과 묵주를 선물했다.

 

“사제들은 매일의 숨결이신 성령을 청하십시오”

교종, 성목요일 성유 축성 미사에서 사제들에게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4월6일 오전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성주간 목요일 성유 축성 미사에서 사제들의 선행에 감사를 표하고, 사제들은 위기 순간에도 기쁨을 주고, 그리스도를 향한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는 '매일의 숨결'이신 성령을 청하라고 격려했다. 강론 내용.

제사장의 성숙은 성령에게서 오며 그분이 우리 삶의 주인이 될 때 성취됩니다. 성령은 ‘때때로 경건한 행위’의 대상이 아니라 ‘매일의 숨결’로 이를 불러내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성령에 대해 묵상하면서 종종 드러나지 않는 선행과 봉사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제들의 봉사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독서에서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루카 4,18)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성령 없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있을 수 없으며, 그분의 기름부음 없이는 거룩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 교회의 중심에 계시기 때문에 사제의 탄생일인 오늘 우리는 우리 직무의 근원에 계시고 모든 사제의 생명과 활력으로서 성령의 현존을 인정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성모님의 교회는 성령이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고 고백하도록 가르칩니다. 만일 성령이 없다면 교회는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없고 기껏해야 한 종교 단체에 불과할 것입니다. 교회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성전’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집 밖에 가두거나 어떤 경건한 장소에 둘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오소서 성령이여, 당신의 힘이 없으면 우리는 길을 잃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이 우리 위에 계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 자신의 공로와는 별개로 순전한 은총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 가운데 아버지와 목자가 되는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어떻게 선택하셨는지, 그리고 그분의 부름에 따라 사도들이 즉각 배와 그물과 집을 떠났던 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의 기름부음’은 사도들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들은 스승을 따르고 더 큰 일을 성취하기 위해 계속 나아갈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유월절이 왔을 때 제자들은 그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된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주님이신 예수님을 부인하고 버렸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을 변화시키고 더 이상 그들 자신이 아니라 주님의 양 떼를 돌보도록 이끈 것은 바로 오순절의 '두 번째 기름부음'이었습니다. 그들 자신과 그들 자신의 능력에 집중된 '경건'을 소멸시킨 것은 바로 그 불의 기름부음이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후 베드로의 두려움과 흔들림은 사라졌고 야고보와 요한은 목숨을 바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이상 높은 곳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다락방에 모였던 다른 제자들도 사도가 되어 용맹하게 세상 밖으로 나아갔습니다. 사제생활과 사도직 생활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첫 번째 기름부음을 경험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우리를 여행으로 이끄는 사랑스러운 부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성령의 권능이 우리의 진정한 열정에 내려와 우리를 성별했습니다. 그 뒤 하느님의 좋은 때에 각 사람은 우리의 진리의 순간을 대표하는 유월절을 경험했습니다. 이는 사제 생활의 위기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에게 이 단계는 분수령입니다. 

우리는 세 가지 위험한 유혹이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함을 향해 표류하고 지루한 일상에 안주하면서 나쁘게 나올 수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데 만족하는 타협의 유혹, 만족을 찾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기름부음이 아닌 다른 곳, 그리고 불만족이 무기력으로 이끄는 낙담의 유혹을 찾게 됩니다. ‘환멸과 환멸’ 이것이 사제생활에서 가장 큰 위험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가 오히려 우리 사제직의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세상 사이, 영웅적 사랑과 평범함 사이, 십자가와 위로 사이, 거룩함과 충실함 사이에서 궁극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영성생활의 결정적 단계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단계를 극복하고 우리는 종교 의무에 대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부활절의 제자들처럼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로 우리가 승리했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여정, 더욱 강력하고 허상이 없는 믿음과 사랑의 성령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성령의 도움으로 일어나며 우리 자신의 나약함의 현실을 인정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진리의 영이 우리에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고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나의 성취가 나의 능력, 나의 지위, 내가 받는 칭찬, 나의 승진, 나의 상사나 동료의 존경에 달려 있습니까?” 또는 “나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안락함입니까 아니면 내 삶의 모든 곳에 그 향기를 퍼뜨리는 기름부음에 있습니까?"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사제의 성숙은 성령에게서 오며 그분이 우리 삶의 주인공이 될 때 성취됩니다. 일단 그런 일이 일어나면 모든 것이 역전됩니다. 실망과 쓰라린 경험까지도 우리는 더 이상 세부사항을 조정함으로써 행복을 찾으려 하지 않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주님께 우리 자신을 완전히 바침으로써 우리 존재의 깊은 곳까지 침투하기 위한 새로운 기름부음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외모를 구하거나 신속하게 수정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고, 주도권을 성령에게 맡기고 그분의 계획에 열린 마음으로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봉사하려는 의지를 보일 때, 영적생활이 해방되고 즐거워진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제직은 성급한 수정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넘치는 은혜로 성장합니다! 사제들이 진리의 영이 그들 안에서 활동하도록 허용한다면 ‘우리가 살아가도록 유혹받는 다양한 거짓진리들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사제들은 그분의 기름부음을 보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시는 성령께서는 사제들에게 '우리의 기름부음을 더럽히지 말라'고 끊임없이 권고하실 것입니다. 성령만이 우리의 불신앙을 치유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모든 부분에 기름 붓기를 바라시며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우리들의 내적 스승입니다.

따라서 모든 사제는 간헐적 경건 행위로써뿐만 아니라 ‘매일의 숨결처럼’ 성령을 불러냄으로써 기름부음을 보존해야 할 것입니다. 그분에 의해 봉헌된 저는 그분 안에 잠기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분의 생명이 저의 어둠을 꿰뚫어 제가 누구이며 무엇인지에 대한 진리를 재발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경배할 때 그분이 우리 마음에 그분의 성령을 부어 주시므로 경배를 통해 그분에게서 다시 태어나도록 허락합시다. 또한 사제들은 공동체의 분열과 양극화를 경계해야 합니다. 부디 불일치, 양극화, 애덕과 친교의 부족으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어머니 교회의 옷을 더럽히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화합은 다른 여러 덕목 중 하나가 아니라 개인 차원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내 말과 해석과 내가 말하고 쓰는 것에 성령의 인(印)이 있는가? 아니면 세상의 인인가? 나는 제사장의 친절을 생각하는가? 우리에게 불만족하고 불평하는 사람들, 비판하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어떻게 판단하고 조화를 찾을 수 있겠는가?' 항상 하느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용서하십시오. 성내며 원망하는 것이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도리어 전도하는 것을 망하게 하는 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성령을 불쾌하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제 마음속 소중한 생각을 여러분에게 남기고 간단하고 중요한 두 마디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증거와 봉사‘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행하는 숨은 선과 하느님의 이름으로 베푸는 용서와 위로에 감사드립니다. 큰 노력을 기울이고 거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당신의 사역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을 신뢰하는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성령께서 당신을 평화로 가득 채우시고 당신 안에서 시작하신 선한 일을 이루게 하시어, 조화의 사도들이 되게 하소서!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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