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최초의 여성 지휘자 리디아 타르. 그녀는 카리스마 넘치는 마에스트로(‘마에스트라’라고 불러야 하지만 리디아는 스스로 마에스트로로 부르고, 딸에게는 스스로를 아빠로 칭한다)로서 최고의 실력과 명예를 가진 인물이다. 그러나 남자들의 세계에서 성공했기에 존경이 마땅한 그녀는 기실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영화 오프닝은 줄리어드 음대에서 특별 수업을 하는 에피소드를 길게 다룬다. 리디아가 바흐를 사례로 들자, 사라 장을 존경하여 줄리어드에 왔다는 한 유색인 남학생이 자신은 “비백인 팬젠더(모든 성별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젠더)로서 시스젠더(이성애자) 백인 남성 바흐에 별 관심이 없다”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수업 내내 신경전을 벌이고, 급기야 학생은 거의 울듯이 강의실에서 뛰쳐나간다. 이때 학생은 피해자고 교수는 가해자일까? 한 전설적인 예술가의 위대한 성취가 이성애자 백인이라는 한마디로 폄하되는 상황도 마뜩잖고, 반항하는 학생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교수의 행동도 동조하기 힘들다.

'타르', 토드 필드, 2023. (포스터 제공 =&nbsp;<strong></strong>유니버설 픽쳐스)<strong></strong>
'타르', 토드 필드, 2023. (포스터 제공 = 유니버설 픽쳐스)

이 인물과 이야기는 영화를 위해 창조된 완벽한 허구다. TAR라는 이름은 ART를 조합한 단어인 것 같고, 베를린 필하모닉에 여성 지휘자는 지금까지 없다. 감독인 토드 필드는 배우 케이트 블란쳇을 그리며 각본을 썼다고 한다. 감독은 그녀가 배역을 맡지 않으면 영화를 포기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창작된 캐릭터를 둘러싼 사건들은 꽤나 현실반영적으로 경종을 울린다.

이 영화는 올해 아카데미상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 등 주요부문에 골고루 이름을 올렸지만, 그중 여우주연상의 강력한 후보로 언급되고 있다. ‘타르’를 보고 나면 주연을 맡은 케이트 블란쳇의 압도적 연기가 영화 이후에도 뇌리에 깊이 남을 정도다.

지휘자가 주인공이니까 배우가 대역을 쓰고 않고 진짜 지휘자처럼 음악을 연주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아예 버려야 한다. 댄서나 악기 연주자, 스포츠인이나 가수 등 비전문 분야를 연기하기 위해 꽤 오랫동안 훈련하고 투혼을 발휘하는 많은 배우가 있고, 이들은 거의 전문가처럼 보이는 실감나는 연기로 박수를 받곤 한다. 아름다운 여배우가 지휘하는 장면을 차력쇼처럼 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타르’는 그런 관객의 희망을 저버린다.

'타르'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nbsp;유니버설 픽쳐스)
'타르'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는 불친절하여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최정점에서 몰락하게 된 구체적인 사건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영화란 서사가 핵심인 대중예술인데, ‘타르’는 다수 관객이 이해할 수 있는 서사를 무시한다. 대신 고집스럽게도 모호함을 앞세우며 숨겨진 의미를 관객 스스로가 찾아가게 한다.

따라서 어떤 사람은 ‘타르’를 수작으로 볼 것이며, 어떤 사람은 난해한 의미 찾기에 지칠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와 대비되어 리디아의 일상은 정적인 것처럼 보인다. 차가운 일상에 숨겨진 뜨거운 불을 감각적으로 조화시킨 연출력과 주연 배우의 위대한 연기의 앙상블에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2시간 반에 달하는 러닝타임 내내 숨은그림찾기를 하면서 영화를 감상하다가 인내심이 바닥날 수도 있다.

차가울 정도로 절제된 일상에 담긴 활활 타오르는 내면의 뜨거운 감각은 시퀀스들 사이에 자주 배치되는 침묵 위에 놓인다. 영화가 주는 표면의 정보 이면에 클래식 음악과 관련된 고급 정보, 그리고 추상적인 영화 언어를 해석하는 감식안이 있어야 이해가 가능하다. 이것은 영화의 무책임함인지 혹은 고급미학의 구현인지 논쟁거리가 남는다.

'타르'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nbsp;유니버설 픽쳐스)<br>
'타르'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유니버설 픽쳐스)

필자는 후자, 즉 엄청나게 위대하고, 고급스럽고, 반성적이고, 섬뜩하게 동시대적인 영화라고 본다. 최초로 지휘봉을 휘둘렀고 어이없게 사망한 뢸리, 미투로 마에스트로 명성에 먹칠한 샤를 뒤투아와 제임스 레바인, 여성 지휘자이자 성소수자인 마린 올솝, 사랑 고백의 음악이지만 작곡가가 분열증에 시달릴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말러 교향곡 5번, 첼리스트 재클린 뒤프레와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의 비극적 관계가 입혀진 엘가의 첼로 협주곡 등 클래식 음악계의 이면을 알아야지 이 영화는 풍부하게 보인다. 말러 붐의 주역인 레너드 번스타인과 말러 해석의 최강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말러 음악으로 영화를 오묘하고 풍성하게 만들었던 영화감독 루키노 비스콘티 등 고급 문화 정보들이 농담으로 활용된다.

리디아는 오만하고 강압적이며 이기적이다. 그녀는 여자가 아니라 능력대로 대우받는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죽을 듯이 노력한다. 성공한 성소수자 여성이며 보수 우파 성향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화는 폰 카라얀의 음악적 위대함과 그의 나치 경력, 우디 앨런(케이트 블란쳇은 우디 앨런의 '블루 재스민'으로 2014년에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의 영화적 성취와 그의 성착취 혐의 등에서 파생된 ‘캔슬 컬처’ 이슈를 공격적으로 가지고 온다. 사회적 소수자성이 모든 잘못을 용서할 수 없는 것처럼, 권력 아래에 위치한 사람의 폭로가 맥락을 모두 지워 버린 채 정당화될 수 없다.

영화는 얄팍한 정의감으로 대충 침묵했던 문제들을 정점에서 추락한 한 못된 예술가를 통해 드러낸다. 여성이 권력형 범죄의 가해자일 때 우리는 어떤 입장일 취해야 할지, 불쾌하고도 매혹적인 인물이 주변을 어떻게 지배하고 어지럽히는지, 수많은 질문과 생각을 일깨우는 복잡한 영화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음악과 연기 속에 내 마음속 모순이 건드려져 가슴이 무거웠다.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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