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극장가는 ‘아바타2’가 장악했다. 지난 몇 주간 관객수, 스크린 점유율, 특별관 예매, 흥행 기록 갱신 등 화제성과 실질적 흥행 수치를 이 영화가 다 가져가고 있다. 팬데믹 여파로 거의 3년간 고사 직전이었던 극장가가 오랜만에 되찾은 활기이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모처럼 맞이한 기회이기에 ‘아바타2’가 스크린과 관객을 싹쓸이하는 현상에 대해 그리 큰 소리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빨리 천만 관객을 돌파하길 다들 기대하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대표적인 한국 가톨릭인이 주인공인 두 편의 영화가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연말 연초에 무겁고 심각한 내용보다는 스펙터클한 재미를 만끽하면서 훈훈하고 편안하게 영화를 감상하고 싶은 계절 탓도 있지만, 보다 다양한 영화들이 스크린에 걸려서 골라 보는 재미를 누리고 싶은 것이 관객의 마음이다. 그리하여 좀 더 오래 극장가에 걸려서 모처럼 더 많은 관객의 선택을 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두 편의 영화를 소개하려고 한다.

'영웅',(윤제균 감독)과 '탄생'(박흥식 감독) 포스터. (이미지 출처 = CJ ENM / CJ CGV,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영웅',(윤제균 감독)과 '탄생'(박흥식 감독) 포스터. (이미지 출처 = CJ ENM / CJ CGV,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두 영화는 안중근 토마가 주인공인 영화 ‘영웅’과 김대건 안드레아가 주인공인 영화 ‘탄생’이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두 극영화가 모처럼 가톨릭을 대표하는 위인의 삶을 영화화 해서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였으니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더군다가 작게 만들어서 작게 개봉하는 것이 아니라 고예산이 투입된 주류 상업영화라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영웅’은 제작비가 133억이고, ‘탄생’은 150억이다. 제작비가 크다고 작품의 퀄리티를 보장하는 잘 만든 영화라고 당연하게 생각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간 종교인을 다룬 영화들이 특정 관객을 타깃으로 한 주변부적인 영화였다면, 두 대작 영화의 등장은 안중근 의사와 김대건 신부, 이 두 인물이 대중성을 노릴 수 있는 히스토리와 콘텐츠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영웅'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CJ ENM)
'영웅'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CJ ENM)

노래로 마음을 표현하는 안중근 토마

‘영웅’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쏜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26일 여순 감옥에서 순국하기 전 1년의 행적을 다룬 뮤지컬 영화다. 안중근 의사는 한국인이라면 모를 리 없는 독립운동가이지만 그의 결심과 활동, 그의 가족과 신앙, 그가 주창했던 ‘동양평화론’에 대해서는 익숙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영웅’은 안중근이라는 한 조선인을 자세히 알 뿐만 아니라 한 명의 사상가로서, 한 명의 신앙인으로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기회다.

무대 뮤지컬의 성공이 영화로 이어지면서 안중근 의사를 연기했던 정성화 배우가 그대로 영화에서도 안중근으로 분한다. 여기에 게이샤로서 비밀 정보원으로 활약하면서 독립운동단체를 돕는 설희 역의 김고은,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역을 맡아 82세에도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여 큰 울림과 감동을 주는 나문희를 비롯하여 얼굴이 익숙한 조연 캐릭터들의 조화가 영화적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뮤지컬이란 춤과 노래의 장르이지만, 인물과 내용의 무거움 때문인지 춤은 없이 노래로 내면을 표현한다. 뮤지컬을 보지 않았어도 우리의 귀에 친숙한 몇 편의 노래가 가슴와 와서 꽂힌다.

'영웅'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nbsp;CJ ENM)<br>
'영웅'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CJ ENM)

천주교인으로서 살인을 행한 것에 대해 신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빌지만, 대한제국의 군인으로서 해야할 의무를 행한 점에는 후회가 없다는 안중근 의사의 법정 증언은 언제나 양자택일의 정당성 앞에서 고민하는 현대인에게 많은 깨우침을 준다. 동양평화론이라는 안중근 표 사상 체계는 전쟁과 경계적 종속이 여전한 힘의 국제 권력 관계에서 중요한 준거를 세우게 한다.

‘국제시장’과 ‘해운대’로 고예산 가족 코미디의 대가로 유명한 윤제균 감독이 역사적 무게감이 있는 인물을 다룬다는 점에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영화는 윤제균의 표식이 분명하고, 장중함과 진지함에 가벼운 해학거리를 한 스푼 더한다. 죽음을 앞에 둔 고난에도 인간은 웃기도 한다. 그 당연한 진리가 반영된 것이지만, 무대에서 스크린으로 옮겨지면서 변화된 영화적 톤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진다.

안중근 의사와 함께했던 동료 중 이후에 친일파로 변신하여 행적이 이상하게 된 이를 비꼬는 감독 특유의 저격일지도 모르겠다는 해석을 하면서 영화를 감싸고 싶을 정도로 이 영화가 ‘아바타2’와 대적하여 오래오래 극장가에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탄생'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CJ CGV,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탄생'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CJ CGV,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청년 김대건이 본 격량의 조선과 그의 운명

‘탄생’은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기리며 만들어진 대작이다. 1821년에 태어난 김대건이 1836년에 조선인 신부가 되기 위해 유학을 떠난 해부터 1845년 순교하기까지 마카오, 만주, 중국, 조선을 오가며 위태로운 조선과 천주교인들 앞에 대의를 행한 역사를 다루는 이 영화를 한 편의 히어로물이라고 칭하고 싶다. 종교를 떠나 김대건이란 인물이 대단한 역사적 인물임을 널리 알릴 소중한 작품이다.

주인공을 연기하는 윤시윤을 비롯, 안성기, 이문식, 이경영, 최무성, 백지원 등 호화 캐스팅에  ‘경의선’, ‘두 번째 스물’ 등 독립영화를 만들어 온 박흥식 감독이 연출을 맡아서 김대건 신부의 행적을 따라간다. 영화는 조선의 근대화라는 거창한 역사적 시각을 불어넣고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청년 김대건이 천주의 가르침대로 평등한 세상을 살기 위해 여러 국경을 넘어야 했던 그의 고난에 찬 경이로운 여정에 더 눈길이 간다.

바닷길을 개척하면서 서양 해양학에 눈을 뜨고, 불어와 중국어를 유창하게 말했던 엘리트 지구인 김대건 신부가 순교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역사적 상상을 해 보며 영화를 보는 마음은 내내 안타까움으로 떨렸다. 김대건 신부가 살았던 조선 사회가 붕괴되어 가는 역사가 생생하게 다가왔다.

'탄생'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CJ CGV,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br>
'탄생'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CJ CGV,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러닝타임이 2시간이 넘어서 길고, 인물의 행적을 시간순대로 따라가면서 대사로 많은 것이 설명되어서 영화적 매력 면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윤동주를 그린 영화 ‘동주’의 예술성, 남자현 의사를 캐릭터화한 영화 ‘암살’의 스페터클과 긴장감 넘치는 재미처럼 작품성과 대중성이 있었더라면 가톨릭인이 아니더라도 더 많은 이들이 영화를 즐길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다.

그래도 이 영화는 작품 자체의 의의가 크다. 가톨릭 공동체에 가두기에는 너무도 큰 위인인 김대건 신부의 삶을 조명한다는 점, 상업 영화적 언어로 가톨릭 신앙을 주제화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도전이기 때문이다.

두 영화는 가톨릭 외에도 공통점이 많다. 제국주의가 태동하던 격동의 시기인 조선 후기,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흔들리던 민중의 현실, 대의 실현을 위한 선택의 갈등 앞에 놓인 인간적 두려움,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초인적 힘,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 그리고 어머니. 두 영화 속 세상을 유랑하던 한국 남자들의 디아스포라는 지금도 많은 영화에서 구현되는 현대적 주제와 맞닿아 있다.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Peace be with You!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