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4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시리즈 ‘퀸메이커’가 4월 3주 차에 집계된 시청 순위에서 전 세계 6위, 비영어권 부문 1위에 오르며 ‘더 글로리’에 이어 순조로운 기록을 보이고 있다. K 콘텐츠의 세계적 사랑은 이미 익숙한 상황이어서 이런 양호한 기록이 뉴스거리에 오르지도 않는 현실이다.

정치, 경제적 암울함이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을 거두어 버린 상황이다. 그러나 지금 이야기할 ‘퀸메이커’는 많은 정치, 경제적 사건을 스토리에 녹여내 다시 한번 환기하는 것으로 극의 몰입도를 끌고 간다는 면에서 화제로 삼을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다. 여러 가지 K 콘텐츠의 성공 요인 중에 사회적 이슈의 엔터테인먼트화가 있음을 떠올릴 때 ‘퀸메이커’가 가지고 있는 화두 및 무게감 역시 상당하다.

소셜 이슈를 어떻게 플롯화했는지 말고도 최근 쏟아지는 K 콘텐츠 중에서 특기할 만한 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중년 여성들의 대활약’이라는 점이다. 3월에 나온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길복순’이 비영어권 순위 1위는 물론, 월드 순위 2위까지 오르면서 배우 전도연이 집중 조명됐다. 여기에 지금 방영되며 화제를 모으고 있는 TV 드라마 ‘종이달’과 ‘닥터 차정숙’까지 가세하면, 가히 중년 여배우들의 전성시대다.

예전 같으면 시어머니나 할머니 역으로 넘어가도 이상하게 보지 않을 오십 대 여배우들이 극의 주인공이 돼 주도적으로 활약하는 여성의 삶을 연기한다. ‘길복순’의 전도연, ‘퀸메이커’의 김희애, ‘종이달’의 김서형, ‘닥터 차정숙’의 엄정화가 비록 극에서는 훨씬 젊은 나이대의 배역을 연기하고 있지만, 오십 대 여배우 주연이라는 상황을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 얼떨떨하다.

2021년 ‘오징어게임’ 이후 ‘스위트홈’, ‘D.P.’,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환희’ 등 글로벌 순위 상위권에 올라 세계적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를 통해 청춘 배우들이 새롭게 발굴되고 스타가 되는 과정을 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나 OTT에서 중년의 활약을 보자니, 영화관이나 공중파와 같은 오래된 플랫폼이 OTT 스트리밍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에 주도권을 내주고, 팬데믹 이후 이러한 현상을 주도했던 MZ 세대의 콘텐츠 수용 관행이 전 세대로 확산하면서 OTT가 중년 세대를 주요 소비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간 드라마에서 2030 젊디젊은 본부장, 실장, CEO가 당연시되던 것이 중년을 내세워 사회 시스템의 주류를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바뀌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여성들의 대결과 협력을 극의 전면으로 내세우는 서사가 통했다는 것이 더해진다. 예능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신드롬과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슈룹’ 같은 여성 중심 서사가 특정 시청층만이 아니라 전 시청층에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퀸메이커' 포스터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퀸메이커' 포스터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퀸메이커’에는 전형적이지 않은 다양한 유형의 여성들이 대거 등장한다. 대기업 전략기획실을 장악해 재벌가 일가의 이미지 메이킹을 유능하게 해왔던 황도희(김희애 분)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친구이자 인권변호사로 사회 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오경숙(문소리 분)과 손잡고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게 된다. 두 사람의 반대편에는 재벌가 오너로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정치권을 주무르는 손영심 회장(서이숙 분), 3선 국회의원이자 두 얼굴을 가진 기득권 진보정당의 시장 후보 서민정(진경 분), 황도희가 물러난 자리를 채우며 출세를 위해 불법적인 일을 적극 거드는 국지연(옥자연 분), 천방지축이거나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재벌 2세 딸들(윤지혜, 김새벽 분)이 있다.

보수당의 강력한 시장 후보이자 재벌가 사위, 선거판의 킹메이커, 선거 정책 브레인, 보디가드 등 주요 남성 배역도 있지만, 드라마의 큰 플롯 축은 여성들 간의 싸움이다. 정치판 초보지만 대기업 출신 인물과 인권변호사가 연대해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최고 빌런인 재벌이 재계, 정치계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어 현실을 개탄하게 한다. 성공한 여성의 롤모델이라는 근사한 이미지 이면에 추악한 얼굴이 있고, 이기적인 출세욕으로 쉽게 배신하거나 자신의 허물을 덮기 위해 엄청난 실수를 하는 소시민도 있다.

‘퀸메이커’는 여성을 선이나 악으로 가두지 않는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다’라는 관념을 깨면서 여성들이 연대하기도 하지만, 권력을 쥔 여성의 사악함도 정면에서 보여준다. 권력에는 젠더가 없으며 옳은 것과 불의한 것이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정의로운 여성, 최고 빌런인 여성, 영리한 여성, 불안한 여성, 위선적인 여성 등 다양한 여성의 모습이 있다. 사랑 때문에 희생하고 스스로 주저앉아 버리는 선택을 하면서 누군가의 발목을 잡아 시청자를 복장 터지게 했던 그런 고답적인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 때문에 이 드라마를 응원한다.

1억 원 피부 관리로 화제에 올랐던 여성 정치인, 미투 폭로로 인한 어떤 남성 정치인의 자멸, 쇼와 낭설로 얼룩지면서 실종된 선거판의 정책 등 몇 년간 정치권에서 흘러나왔던 사건들, 재벌가의 갑질, 노동자 투쟁과 분열, 정치권과 재계의 끈끈함 등 우리 사회를 한때 휩쓸었던 사건들이 깨알처럼 이야기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막장인 세상에서, 그 막장 현실을 드라마에 가져오다 보니 갈등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온다.

현실의 단순화, 개연성의 오류, 과잉 이상주의 등 아쉬운 점이 있다. 그러나 현실의 부조리를 소재로 만들어 낸 여성들의 싸움판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멋지게 사는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라서 장점을 더 많이 쳐주고 싶다. 나이듦에 대한 혐오, 아줌마 혐오를 훌훌 벗어던지고 여전히 주역으로 활약하는 중년 여성들의 멋스러움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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