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장기풍)

“사순절, 성령으로 새롭게 시작합시다”

교종, 2월22일 재의 수요일 일반접견 교리교육 

프란치스코 교종은 2월22일 재의 수요일 오전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일반접견 교리교육을 통해 ‘사도적 열정’을 주제로 하는 일련의 교육을 이어 가면서 전교에 대한 ‘성령의 중심성’을 강조했다. 교종은 성령을 부르지 않는 교회는 ‘무익하고 소모적인 논쟁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라며 이날부터 시작되는 사순절을 성령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르침 내용.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배풀어라”(마태 28,19)고 명령하십니다. 이 구절은 ‘복음화의 엔진’입니다. 그 첫 번째 단어인 ‘가서’라는 단어를 묵상해 봅시다.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과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때 그냥 말씀만 전하시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성령을 전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명을 받아들이고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의 덕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은 ‘복음화의 엔진’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복음화의 임무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누구를 세뇌시키거나 개종자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제자로 삼아, 사람들이 예수님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자유롭게 그분을 알고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대로 초기 교회의 주인공은 베드로, 바오로, 스테파노, 필립보 등이 아니라 바로 성령이십니다.

초대 교회의 유명한 첫 번째 분쟁은 당시 그리스도교인들 사이에 유대교 율법을 따르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뉘었을 때 이 분쟁을 해결했던 것도 성령의 역할이었습니다. 당시 그리스도교인들은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했을 것 같습니까? 그들은 전통과 개혁 사이에 좋은 타협점을 찾았을 것입니다. 일부 규칙은 준수되고 다른 규칙은 제외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이러한 인간의 지혜를 따르거나 외교적 타협을 추구하지 않고 오직 성령에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감정과 의견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갈라지지 않고 성령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교회로서 우리는 잘 정의된 시간과 공간, 잘 조직된 공동체, 기관 및 운동을 가질 수 있지만 성령이 없으면 모든 것이 영혼이 없는 상태로 남을 것입니다. 교회가 성령께 기도하지 않고 간구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사교의 불꽃이 꺼지는 동안 무익하고 소모적 논쟁과 지루한 양극화 속에서 스스로를 닫아 버릴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로서 성령으로부터 시작하고 새롭게 시작합시다.

마지막으로 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여러분에게 남깁니다. “나는 성령의 인도를 받도록 자신을 성령께 온전히 의탁하는가?”

 

“터무니없고 잔인한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호소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수요 교리교육을 마친 후 우크라이나 전쟁발발 1주년을 이틀 앞두고 분쟁의 종식과 즉각적인 휴전 그리고 평화협상 개시를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거듭 호소했다. 말씀 내용.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모레 2월24일은 우크라이나 침공 1주년입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다시 한번 촉구하면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저의 마음을 전합니다. 사망자, 부상자, 난민, 고립된 사람들, 파괴, 경제적, 사회적 피해의 정도는 이 전쟁의 잔인함을 말해 줍니다. 평화의 하느님께서는 이 모든 범죄와 모든 잔인함이 사라지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모든 국가 지도자에게 묻고 호소합니다.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국민과 계속 가까이 지내며 전쟁을 멈추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했는가?“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을 국가지도자들에게 호소합니다. 전쟁의 폐허 위에 이룩된 것은 결코 승리가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우크라이나 전쟁 후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사람들을 다치게 한 전쟁 종식과 평화를 위해 수없이 호소했습니다. 바티칸은 항상 평화구축 노력을 도울 수 있습니다. 저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국 방문을 여전히 희망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를 대신한 대표를 여러 차례 우크라이나에 보냈고 구호품과 보급품을 전달했습니다. 즉각 휴전하고 평화 협상을 시작하십시오.


“이마의 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진실을 일깨워 줍니다”

교종, 재의 수요일 미사에서 '자선과 기도와 단식'의 길 걷도록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2월22일 아벤티노 언덕의 산타 사비나 성당에서 봉헌된 사순절 시작 재의 수요일 미사에서 우리가 이마에 재를 받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며 자선과 기도와 단식의 길을 걷도록 초대했다. 강론 요지.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전례에서 우리가 이마에 재를 바르는 예식은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우리의 ‘돌아가는 여정’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또한 재를 바르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진실로 돌아가고 하느님과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돌아가라는 권고입니다. 재는 우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며 주님만이 하느님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손으로 만드신 작품이라는 우리 삶의 본질적인 진리를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순절은 우리가 하느님을 의지하고 있음을 기억하는 동시에 ‘자족하는 척’을 버리는 시간입니다.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여정의 두 번째 단계는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자급자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자기 우상숭배를 버리면 ‘인생은 하느님과 부모에게서 받는 관계’라는 사실과 이러한 관계를 항상 되살리고 새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여호와 하느님이 자신의 편에 두신 자들입니다. 또 사순절은 기도의 침묵 속에서 마음을 열고 ‘자급자족의 요새’에서 벗어나 하느님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재건할 수 있는 은혜의 시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사순절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권장되는 자선, 기도, 금식의 세 가지 위대한 길을 실천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들은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단순한 외적 의식이 아닌 우리 마음의 쇄신을 표현하는 행동이어야 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자주 우리의 몸짓과 의식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피상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 보시기에 겸손한 것이 남아 있다면 우리가 실천하는 ‘자선과 기도와 금식’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진정 하느님의 자녀이며 서로 형제자매임을 나타낼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십자가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고개를 숙여 재를 받아들이고 마음을 가볍게 하여 사랑과 기도와 단식의 길을 걸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이 거룩한 은총의 계절을 소홀히 하지 맙시다. 우리 시선을 십자가에 고정시키고 사순절의 강력한 자극에 아낌없이 응답하면서 출발하십시오. 그러면 사순절 여정의 끝에서 우리는 홀로 우리를 잿더미에서 일으키실 수 있는 생명의 주님을 더 큰 기쁨으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순절에 기아의 재난과 구체적으로 싸우십시오”

교종, 브라질 주교회의 ‘2023 형제애’ 캠페인 활동 격려 메시지

프란치스코 교종은 2월22일 재의 수요일에 브라질 전국 주교회의가 시작한 ‘2023 형제애 캠페인’ 활동을 격려하면서 이번 사순절에 ‘기아라는 전염병’을 퇴치하는 데 헌신할 것을 촉구했다. 메시지 내용.

매년 사순절 기간 동안, 우리는 참되고 진실한 회심의 길을 따르도록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우리의 전 생애를 하느님께로 향하게 합니다. 우리가 부활절에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경축할 준비를 하면서 강화된 ‘기도와 자선, 단식’이라는 사순절 참회를 통해 우리를 성화시키는 성령의 활동에 더 잘 협력하게 됩니다. 특히 올해 사순절에는 굶주림으로 고통받고 죽어가는 수백만 명 사람의 기아와 또한 ‘전염병’과 싸워야 할 책임이 큽니다. 따라서 이번 사순절에는 ‘기아의 재앙’과 싸우기 위한 구체적 행동과 인식이 필요합니다.

올해 브라질 주교회의 형제애 캠페인은 가장 도움이 필요한 형제자매, 특히 굶주림이라는 재앙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시선을 돌릴 것을 촉구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만 명이 굶어 죽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짜 스캔들입니다. 굶주림은 범죄며 식량은 양도할 수 없는 권리입니다. 사도들에게 사람들을 먹이라고 하신 예수님 지시는 오늘 우리 모두에게 하신 말씀이며, 우리가 가진 것이 많든 적든, 가진 것조차 부족한 우리 형제자매들과 나누라는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굶주린 사람의 필요를 채워줌으로써 가장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시는 예수님을 만족케 하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 브라질 가톨릭 신자들에게 제안된 ‘기아’라는 주제에 대한 성찰이 구체적 행동과 인식 제고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는 특정 순간이나 캠페인 기간 동안뿐 아니라 본당과 교구 조직, 정부기관 모두의 끊임없는 태도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물론 모든 시민단체와 정부 기관에 하느님의 선물을 나누는 인식을 배양할 것을 촉구합니다. 이렇게 정부와 교회 그리고 시민사회 전체가 협력한다면 브라질 땅에서 굶주림의 재앙을 확실히 근절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약속을 브라질의 주보이신 아파레시다 성모님(Nossa Senhora Aparecida)의 보살핌에 맡기고 아무도 굶주림에 시달리지 않도록 지속적인 기도를 부탁드리며 저의 사도적 축복을 드립니다.

 

“무관심과 낭비에 반대하는 부드러움의 문화를 기르십시오”

교종, 성 베드로 동아리 회원들에게 착한 사마리아인 이미지 칭찬

프란치스코 교종은 2월21일 로마에 기반을 둔 자선단체 ‘성 베드로 서클’ 대표단을 접견하고 그들에게서 구체적 도움과 연민으로 로마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연민과 부드러움으로 감동을 받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미지를 본다’고 칭찬하면서 그들 노력에 감사했다. ‘성 베드로 서클‘은 교회 자선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젊은 로마인 그룹 주도로 1869년 설립되어 로마대교구의 지원을 받으며 교종을 대신해 일부 활동을 직접 수행하고 있다. 말씀 내용.

저는 여러분이 평소 로마 시내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연민과 부드러움으로 감동을 받은 착한 사마리아인 이미지’를 봅니다. 특히 여러분이 평소 여러 활동을 통해 자선활동에 투입하는 노력과 시간, 에너지, 창의성, 인내를 지지합니다. 특히 무료급식소, 상담센터, 보호소, ‘아기 예수 아동병원’에서 치료받는 어린이들을 수용하는 가정에서 형제자매를 만나는 여러분을 생각합니다.

루카 복음에 나타난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루카 10,25-37)에서 사마리아인이 어떻게 ‘길가에 쓰러진 부상자에게 다가갔는지 생각해 봅시다. 그는 연민의 마음으로 부상자에 다가갑니다. 그는 쓰러진 사람을 알지 못합니다. 평소 사람들이 사마리아인들을 눈살을 찌푸리고 멸시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그는 당시의 '적'인 이방인입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부드럽고, 강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 다가갑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부드러움‘입니다. 부드러움은 오늘날 어느 때보다 필요한 하느님 사랑의 특성입니다. 무관심과 낭비문화로 오염된 사회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은 신자들인 우리에게 부드러움의 문화, 즉 하느님께서 우리를 돌보신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문화로 무관심하고 딱딱한 현대의 조류에 맞서도록 부르셨습니다. 이는 너와 나와 우리 각자를 위한 부르심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 소외된 이들, 끝자락 이들에게 다가가시는 방법을 알려 주고 자비와 용서가 필요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착한 사마리아인입니다.

두 번째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님이 우리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인식하는 정도로 다른 사람들도 진정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은 도움을 받았다고 느끼는 만큼 돕습니다. 우리가 매일 그분에 의해 들어 올려지도록 의탁한다면 우리는 들어 올려집니다. 우리가 있는 그대로 그분 앞에 서서 기도할 때 ’침묵‘에서 이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그분은 그분의 영을 우리 마음에 두실 수 있고 그분의 연민과 온유함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진행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말했듯이 우리가 아니라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 생활의 비결이며, 특히 자선봉사의 비결입니다. 로마의 거리에서 제가 물리적으로는 여러분과 동행할 수 없지만 마음과 기도로 여러분과 동행합니다. 여러분의 봉사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아름다움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교종, 이탈리아 영화인 단체 회원들에 ‘미’의 중요성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2월20일 이탈리아에서 영화를 진흥하는 가톨릭단체 ‘엔터테인먼트 재단’ 회원들을 접견하고 아름다움의 중요성과 아름다움과 조화와의 관계에 대해 성찰했다. 연설 내용.

‘아름다움의 산업’이라고 부르는 영화산업 종사자들의 훌륭한 작품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아름다움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영화산업은 교회 내에서 충분한 관심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항상 한쪽으로, 또는 구석에 남겨져 있었습니다. 신학 서적은 진리에 대해 많이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좋은 것’에 대해 많이 말하지만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그다지 말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을 논의하는 것은 신학적, 목회적 성찰과 거의 관련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도스토예스키의 말처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입니다. 조화로서의 아름다움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차이를 조화시키는 성령의 역사를 보면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됩니다. 아름다움은 모든 것, 즉 반대되는 모든 것을 조화시키는 성령의 작품입니다. 영화는 조화를 목표로 하며 위대한 작품은 ‘기쁨과 고통의 조화, 인간의 조화’를 전달하는 작품입니다. 여러분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하시는 일은 ‘복음주의 사역’입니다. 영화는 시(詩)이기 때문에 시적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을 주는 것은 시적인 것입니다. 여러분 여정에 감사드립니다. 계속해서 위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십시오. 여러분 이탈리아인들은 이것에 대한 영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계속 정진하십시오.

 

“과학과 기술은 인류를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교종, 생명학술원 총회 참가자들에게 과학과 공동선 관계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2월20일 바티칸 생명학술원 주최 워크숍 참가자들을 접견하고 인간과 신기술, 공동선의 관계에 대해 연설하고 과학기술 진보는 항상 인간 존엄성과 온전한 인간발전에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명학술원은 이번 주 총회를 앞두고 이른바 ‘융합기술’(나노 기술, 생명공학, 정보 기술, 인지 과학)들의 윤리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이틀간의 워크숍을 열었다. ‘인간에 대한 수렴, 공익을 위한 신기술’이라는 주제 국제 워크샵은 2월 20일부터 21일까지 전 세계 학계의 참여로 진행되었다. 연설 내용.

저는 여러분들에게 ‘진보와 윤리 그리고 사회가 만나는 곳’인 이 섬세한 분야에서 세 가지 중요한 도전 과제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 도전은 인류의 생활 조건에서 기술 진보가 가져온 급격한 변화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진보의 ‘강력함과 가속화’는 환경과 인간의 생활 조건에 전례 없는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는 전염병에서 에너지 위기, 기후위기에서 심지어 이주 문제에 이르기까지 ‘건전한 기술개발’은 이러한 복잡한 상호작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술은 인간의 접촉을 대체할 수 없으며 특히 취약한 사람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두 번째 과제는 특히 취약한 개인의 상태와 관련하여 ‘인간성’과 ‘관계’의 정의에 대한 신기술의 영향입니다. 인간 경험의 기술적 형태가 점점 더 ‘보편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인류의 가치 자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필요성이 강조됩니다. 특히 개인의 신체성이나 문화를 무시할 수 없는 관계 경험에서 양심 개념의 중요성을 재확인해야 합니다. 주관적 네트워크와 커뮤니티 관계의 네트워크에서 기술은 인간의 접촉을 대체할 수 없으며 가상은 실제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SNS도 사회적 영역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과학적 연구도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관계가 점점 더 복잡해지는 가운데 특히 장애인, 병자, 가난한 사람과 같이 가장 취약한 대상을 위해 점점 더 복잡해지는 윤리적 함의를 시사해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의 속도, 변화 사이의 상호작용과 전반적 균형의 보장을 모니터링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 균형은 문화마다 다르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노력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고유 스타일로 성장하고 자신의 문화 가치에서 시작해 혁신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과제는 지식 개념의 정의와 그에 따른 결과입니다. 우리가 구현하는 지식의 유형은 그 자체로 도덕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단순한 접근 방식 대신 ’단일 사건이 짜인 관계의 얽힘‘을 고려해 더 많은 ’분명한 모델‘이 필요합니다. 이와 관련해 교종 권고 ’복음의 기쁨‘과 무엇보다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전체는 부분보다 위대하다‘는 원칙에 입각한 인간 중심의 기술적 지식 사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신학적 영역에서도 새로운 사고방식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신학이 탁월한 변증적 접근을 계속해서 극복하고, 새로운 인본주의의 정의에 기여하며, 과학, 기술, 사회 간의 상호 경청과 이해를 장려하는 것이 좋습니다. 과학, 기술 및 사회 사이의 건설적 대화의 부족은 모든 인간 공존과 모든 형태의 ’사회적 우정‘의 기초가 되는 상호 신뢰를 빈곤하게 만듭니다. 종교적 전통도 이 대화에 중요한 기여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고대의 지혜도 이러한 과정에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생명학술원이 ’과학적, 기술적 성장이 인간 존재의 평행적 발전과 점점 더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할 것을 촉구합니다. 이러한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초 학문적 대화와 협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