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장기풍)

“대림절을 맞아 일상에서 하느님 현존을 깨닫게 하소서”

교종, 11월27일 대림 첫 주 삼종기도 가르침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27일 낮 성 베드로 광장 발코니에서 행한 대림 첫 주 삼종기도 전 가르침에서 “우리 모두 ‘잠에서 깨어나’ 항상 하느님의 현존을 인식하고 일상생활에서 그분을 맞도록 하자”고 촉구했다. 가르침 내용.

오늘 복음(마태 24,37-44)은 주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며 우리 삶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위로가 되시는 ‘희망의 터전’이 되신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의 삶을 방문하시어 자신을 가까이 하시고 마지막 날 다시 오셔서 그분의 품으로 우리를 환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주님은 어떻게 우리를 찾아오시며, 어떻게 그분을 주님으로 알아보고 환영할까요?’ 이 같은 질문은 우리의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종종 주님께서 우리 일상에 현존하시며 우리 여정에 동행하신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가 일상생활의 많은 구체적인 이유로 ‘산만해짐’에 따라 때때로 길을 잃습니다. 아니면 주님 임재에 대한 장엄하고 기적적인 징조만 바라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에서 ‘노아의 날’처럼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때, 우리의 정상적 일상생활 가운데 주님이 오실 것이라고 상기시켰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삶의 가장 흔하고 평범한 상황 속에 숨어 계십니다. 우리는 특별한 사건을 기다리지 않고 이러한 현실을 끊임없이 인식해야 합니다. 어려운 사람을 만났을 때, 우연히 누구를 만났을 때, 일상의 조용하고 따분한 순간에도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를 부르시어 말씀하시고, 우리 행동에 영감을 주시는 주님을 만나는 곳이 바로 그곳입니다.

우리의 두 번째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인식하고 영접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경고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그분의 방문을 깨닫지 못하고 준비되지 않을 위험이 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도 “나는 지나가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할 것을 두려워한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홍수 이전 시대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 홍수가 닥쳐 모두 휩쓸어 갈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마태 24,38-39)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항상 하느님 임재를 분별하고 세상일에만 정신이 팔려 큰 그림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대림절은 우리가 무기력한 ‘잠에서 깨어’ 항상 경계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경계하고 또 경계하고 있는지, 오늘날 우리가 이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마지막 때 그분이 오실 때 준비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매일의 상황에서 하느님의 임재를 인식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나자렛의 비천하고 은밀한 삶에서 하느님의 죽음을 인식할 줄 알고 태중에서 그분을 환영하신 ‘기다림의 성모 마리아’ 도움을 받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대화 촉구와 이탈리아 홍수 피해자 위로

프란치스코 교종은 대림 첫 주 삼종기도 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서 폭력 충돌 증가에 우려하고 지속적인 평화를 위한 상호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대화를 진전시킬 방법을 찾으라고 양측에 촉구했다. 또한 교종은 홍수와 산사태로 1명이 숨지고 10명이 실종된 폭우 피해에서 복구 중인 이탈리아 이스키아 섬 주민들을 기도 중에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말씀 내용.

저는 지난 몇 달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폭력의 증가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수요일에는 예루살렘에서 한 어린 이스라엘 소년을 죽이고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한 끔찍한 공격이 발생했으며, 같은 날 나블루스에서는 팔레스타인 소년이 무장충돌로 사망했습니다. 폭력은 미래를 죽이고 젊은이들의 삶을 산산조각 내고 평화에 대한 희망을 약화시킵니다. 우리는 이 죽은 젊은이들과 그들의 가족, 특히 그들 어머니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이 성지의 평화를 위해 꼭 필요한 대화와 상호신뢰 구축을 모색하는 일에 마음을 다해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한 며칠 전 이탈리아 이스키아 섬에서는 엄청난 홍수와 산사태로 1명이 숨지고 10명이 실종되었습니다. 복구 중인 주민들과 피해자와 고통받는 이들, 그리고 모든 구조대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오늘 아침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규탄하는 행진에 참가한 분들에게도 인사합니다. 불행히 성폭력은 모든 곳에 만연해 있으며 심지어 전쟁 무기로도 이용되고 있습니다. 어제는 우크라이나 홀로도모르 비극 기념일입니다. 우크라이나 순교자들을 위해 전쟁에 반대하고 대화와 평화를 촉구하는 데 지칠 줄 모르는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며 격려합니다. 또한 저는 3일 전 베드로광장 열주에서 추위로 숨진 독일인 노숙자 부르하르트 셰플러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추모합니다. 특히 오늘 제8차 총회를 위해 로마에 모인 가톨릭행동 국제포럼(FIAC) 사무국을 포함한 여러 다양한 그룹을 환영합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하느님에 대한 신성모독"

교종,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 메시지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25일 제42회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을 맞아 우리 인간성의 수준은 여성을 대하는 방식으로 측정된다고 강조했다.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은 1981년부터 매년 11월25일에 지켜지고 있다. 이날은 1960년 도미니카 공화국 전 대통령 라파엘 트루히요의 명령에 따라 잔인하게 살해된 도미니카의 세 정치활동가 미라발 자매를 기리기 위해 제정되었다. 전 세계 여성과 소녀에 대한 폭력을 예방하고 근절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기념일은 여성폭력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옹호를 촉진하며 도전과 해결책에 대한 토론의 기회를 만들기 위한 세계적인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UN 통계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평균 11분마다 한 명의 여성 또는 소녀가 가족 중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고 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는 이 끔찍한 수치를 공개하면서 여성과 소녀들이 일반적으로 믿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까운 사람들에 의한 살해는 ‘성폭력의 가장 극단적 징후의 하나’라고 밝혔다. 따라서 영구적으로 관련된 문제인 이날은 여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가정폭력과 성폭력에 국한되지 않고 여성에게 부과되는 모든 형태의 트라우마를 규탄하기 위한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후 최신 통계와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과 소녀들에 대한 모든 유형의 폭력, 특히 가정폭력이 더욱 심화되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재위 초기부터 여성 존중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여성이나 여성의 신체를 학대하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모독’이라며 성 노동자로 이용당하면서 착취와 폭력으로 고통받는 모든 여성을 위해 기도해 왔다. 많은 여성은 전쟁과 분쟁에서 인신매매, 폭행, 강간을 당할 뿐 아니라 다른 많은 일상적 환경에서도 폭력과 차별을 겪고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공동 노력으로 해결돼야”

교종, 이탈리아 중앙범죄방지국 직원들에게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26일 바티칸 클레멘타인 홀에서 이탈리아 중앙범죄방지국(Central Anti-Crime Directorate) 직원 170명을 접견하고 11월25일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을 기념하면서 법뿐만 아니라 공공기관과 모든 사회 행위자의 공동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교종은 이들에게 법 집행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폭력의 재앙을 근절하기 위한 예방에 힘쓰라고 당부했다. 연설 내용.

이 시대 만연한 여성에 대한 폭력은 사회적 재앙입니다. 여성들에 대한 폭력에 ‘전문적이고 인간적 헌신’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런 사회적 재앙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중앙범죄방지국 등 법집행기관은 물론 사회적 행위자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어제는 UN이 제정한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이었습니다. 저는 이탈리아 사회에 대한 여러분의 매일의 봉사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은 성폭력 피해자 여성들을 돕고 지원하는 데 ‘훌륭한 자원’으로 성폭력 피해자들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여성폭력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심리훈련이 요구되지만 그보다 ‘영적 준비’가 필요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셨고 우리가 순교자로 공경하는 많은 그리스도인 여성에게 전해 주신 것과 같은 동일한 내적인 힘입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에게는 효율적인 사법제도가 필요합니다. 피해자들이 시의적절한 ‘정의와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이탈리아 사법제도를 보다 효율적으로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성들은 자주 폭력 상황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사건이 신고되었을 때 정의를 얻지 못하거나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자만심에 빠지지 말고 이를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1981년부터 전 세계 여성들에 대한 모든 형태의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글로벌 행동을 촉발하기 위해 UN은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을 제정했습니다. 이러한 국제적 노력은 ‘문화적 태도’, ‘사고방식’, ‘뿌리 깊은 편견’과 관련된 사회적 재앙을 제거하려고 할 때 항상 중요합니다. 우리는 단합하고, 협력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방어 네트워크가 아니라 무엇보다 예방 네트워크입니다! 사회적 재앙인 가정폭력과 성폭력은 세계적으로 특히 코로나 팬데믹 동안 더욱 급증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업무는 사회 전체가 이러한 재앙에서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 반응하고 행동하도록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 시대는 잘못된 미디어 영향으로 남성과 여성 모두의 모델이 ‘성공’, ‘자기주장’ ‘경쟁’ 그리고 힘의 기준을 따르는 쾌락주의와 소비주의 문화를 조장함으로써 성폭력에 간접적으로 기여하는 미디어 책임이 큽니다. 이러한 '타인을 지배'하는 문화적 모델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존엄성을 중심에 두는 교육입니다. 성녀 요세피나 바키타는 노예에서 해방된 후 하느님 사랑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해방과 치유의 힘을 증거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자비와 다정함으로 고침을 받았으며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 형제자매들의 사랑, 친밀함, 연대가 우리를 종살이에서 구원할 수 있음을 증언합니다. 그래서 모든 학교와 스포츠단체, 오라토리오협회는 오늘날 소녀와 소년들에게 이러한 해방과 치유의 이야기를 꾸준히 가르치고 제공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잘못된 성공 모델 뒤에 숨겨진 위험한 함정을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여성들은 신학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교종, 국제신학위원회 회원들에게 ‘여성의 역할’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24일 국제신학위원회(ITC) 회원들을 접견하고 그들의 귀중한 작업에 감사를 표하면서 그들의 작업을 위한 세 가지 지침을 제시했다. 교종은 이들에게 ‘다양한 분야의 기여에 대한 개방성’과 ‘동료애’ 특히 더 많은 ‘여성 신학자들의 기여’를 요구했다. 앞으로 몇 년간 국제신학위원회는 니케아공의회가 고백한 그리스도론적 신앙의 주제를 탐구하면서 현재의 특정한 인류학적 질문들과 삼위일체 관점에서 본 창조신학을 연구할 계획이다. 연설 내용.

국제신학위원회 여러분이 이러한 주제들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습니다. ITC가 이러한 주제들을 연구함으로써 교회에 대한 봉사를 계속하게 됩니다. 국제신학위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걸어온 길에서 여러분의 사명을 수행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우리시대 교회 여정의 확실한 나침반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 길을 따르기 위한 세 가지 방향을 제안하려고 합니다. 그 시작은 ‘전통에 대한 창조적인 충실성’입니다. 전통은 성장하거나 사멸하게 됩니다. 성장을 거부하고 항상 해왔던 방식으로 후퇴하는 ‘복고주의’나 ‘후진주의’는 위험합니다. 교회는 이러한 경향을 바로잡도록 하기 위해 신학자들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또한 신학자들은 하느님 계시에서 발산되는 지혜가 제공하는 빛과 생명의 공간 안에서 모든 인간 지식을 모으고 심화시키는 ‘초 학문성’의 강력한 형태를 간직하면서 다른 학문의 공헌에도 열려 있어야 합니다.

또한 현재 진행 중인 시노드 절차 맥락에서 ‘단체성’이 중요합니다. 이 분야에서 교도권의 통제를 받는 교리교사들과 신학자들은 ‘확고한 교리’를 가르쳐야 하고 그 외 다른 것을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끝으로 여러분은 성령의 음성에 마음을 여십시오. 저는 국제신학위원회의 활동이 평화롭고 유익하며, 상호경청, 대화, 공동식별의 정신과 성령의 음성에 열린 마음으로 수행되기를 희망합니다. 여러분이 연구할 주제들은 매우 중요한 것들입니다. 여러분의 연구를 듣는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경외’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신학을 가르치도록 격려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 신학자의 수를 늘리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여성들은 신학을 ‘더 심오하고 더 맛깔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노고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면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교종, 더 많은 여성을 바티칸 관리직에 임명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25일 여성 전문가 2명을 바티칸 문화교육부의 책임 있는 관리직에 임명했다. 교종은 바티칸 신성고고학위원장에 패스콸레 이아코본(Pasquale Iacobone) 몬시뇰을 임명하면서 위원회 위원이던 라파엘라 줄리아니(Raffaella Giuliani) 박사를 후임에 임명했다. 줄리아니 박사는 카타콤에 관한 많은 책과 문서의 저자로, 지난 9월16일 바티칸 순교자 현양 아카데미 관리자로 임명된 바 있다. 또한 교종은 안토넬라 시아로네 알리브란디(Antonella Sciarrone Alibrandi) 교수를 차관으로 임명함으로써 문화교육부 부서에 더 많은 여성의 임명이 이루어졌다. 그녀는 현재 성심 가톨릭대학 부총장이자 밀라노 가톨릭대학 은행금융 및 보험학과에서 은행법 및 금융시장법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아로네 알리브란디 교수는 이탈리아 법경제학 교수협회 회장이기도 하다. 또한 교종은 바티칸 우르바노 대학 철학과장 루카 투니네티 교수를 바티칸 성 토마스 아퀴나스 학술원 서기로 임명했다.

 

“세상은 평화의 장인으로서 봉헌된 사람들을 필요로 합니다!”

교종, 수도회 장상 연합회에서 공동합의성 육성의 중요성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26일 오전 바티칸에서 열린 수도회 장상연합 총회 폐막식에서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와 공동합의성 육성의 중요성에 대해 성찰하고 강조했다. 연설 내용.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라는 것은 전쟁과 분열로 갈라진 세상에서 특히 긴급한 요청입니다. 오늘 폐막한 장상연합회 총회(USG) 주제가 ‘평화의 장인으로 부름’이었고 성찰은 회칙 ‘모든 형제들’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이 시대 우리는 ‘평화’라는 단어를 들으면 주로 전쟁이 없는 상태 또는 전쟁이 끝난 상황, 평온과 복지의 상태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서의 문맥에서 더 풍부한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샬롬’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의 평화는 그분의 선물이자 사랑의 열매이며, 결코 인간이 정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 자신, 타인, 피조물과의 조화로운 관계의 일부입니다. 또한 평화는 우리가 자비와 용서를 실천하고 모든 형태의 폭력과 억압을 거부할 수 있게 해 주는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의 선물인 ‘평화’는 평화의 건설자이자 증인이 되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이유입니다. 그것은 또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에 기초하고 정의, 자비, 진리가 세상에 기여하는 질서를 요구합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속되는 프로세스이기 때문입니다.

수도자들은 ‘평화를 이루는 기술의 대가’가 되도록 부르심받았습니다. 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지속되는 과정으로 열정, 인내, 경험, 끈기를 가지고 실천해야 하는 기술로 기계적으로 작동하지만 사람의 숙련된 개입이 필요한 기술입니다. 그러나 평화는 기술만으로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개발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 프로세스를 외교관이나 군대에게만 위임할 수는 없습니다. 평화는 모든 사람의 책임입니다. 특히 수도자 여러분들은 매일의 행동과, 봉사, 형제애, 대화, 자비의 태도와 몸짓으로 평화의 씨를 뿌리겠다고 결심하면서 기도를 통해 끊임없이 평화의 선물을 하느님께 청해야 합니다. 여러분 공동체 내부와 외부에 벽이 아니라 다리를 건설하여 여러분 지역 사회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세상은 평화의 장인인 봉헌된 사람들을 필요로 합니다! 평화에 대한 성찰은 봉헌생활의 또 다른 특징적 측면을 고려하게 합니다. 봉헌생활의 구조인 장상과 형제들, 교회법적 방문, 회합, 위원회, 기타 연구소들은 각자 나름대로 공동합의성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이번 총회 여정에 기여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며 여러분들에게 ‘권위의 봉사’를 행사하는 방식을 검토할 필요성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권위주의적이고 때로는 독재적인 형태를 경계해야 합니다. 권위주의와 독재적 형태는 사람들의 권리가 더 이상 존중되지 않기 때문에 성적 학대의 비옥한 땅이기도 합니다. 권위주의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나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특권으로 행사될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이는 공동체에 많은 피해를 주는 일종의 무정부 상태를 조장할 수 있습니다. 권위의 봉사는 권위주의와 특권을 피하기 위해 고유의 법과 규칙이 제공하는 중재를 존중하는 총회 스타일로 행사되어야 하며, 따라서 ‘경청, 타인에 대한 존중, 대화, 참여의 분위기 그리고 공유’를 선호해야 합니다. 봉헌된 사람들은 그들의 증거와 함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공동합의의 과정에 교회에 많은 것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로서 함께 걷고,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다양한 선물을 소중하게 여기고, 환영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저는 수도회 지도력에 대한 훈련과 세대 간 쇄신을 허용하는 과정을 권장합니다. 수도원의 재조직이나 재구성은 항상 친교를 보호하기 위한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상급자들은 어떤 사람이 지나치게 바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수련자들에게 해를 끼칠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에 긴장을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만남이 우리의 가장 큰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교종, 베로나 사회교리 축제 참석자들에게 격려 메시지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24일부터 27일까지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에서 열리는 사회교리 축제 참석자들에게 화상 연설을 통해 현재 세계의 ‘암울한 상황’을 고려하면서 신뢰와 만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연설 내용.

오늘날 세계의 ‘암울한’ 상황에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은 ‘신뢰와 만남’입니다. 따라서 올해 사회교리 축제의 주제인 ‘신뢰 구축, 만남의 아름다움’은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 더 의미가 깊습니다. 우리는 현재 다른 사람을 신뢰하는 태도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큰 갈등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특히 이미 제3차 세계대전의 한가운데 있는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많은 분쟁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로 인한 빈곤, 고통, 무고한 희생, 어린이에게 거부된 미래, 결정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암울한 시나리오의 복원 작업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번 축제의 주제 ‘건설’은 매우 적절합니다. 원자재에 이미 내재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장인의 뛰어난 능력이 떠오릅니다. 따라서 구체적인 약속은 이미 표시되어 있습니다. 바로 신뢰를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신뢰는 만남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신뢰를 주든 받든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신뢰는 상대방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기꺼이 그들을 알고, 그들과 토론하고, 그들에게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고,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 할 때 우리는 그들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만남은 신뢰의 바탕입니다. 인간은 사랑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사랑의 기초인 만남은 우리의 가장 큰 욕망이자 끈질기게 추구해야 할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만남을 통해서가 아니면 성취되지 않고 발전하지 않으며 충만함을 찾을 수 없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행사는 이제 공동선이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정의롭고 진실하며 아름다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시멘트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획기적인 사건이 됐습니다. 따라서 참석자들은 앞으로 논의할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도록 해야 합니다. 여기 베로나에 모인 기업가, 전문가, 기관, 협동조합, 경제 및 문화계의 대표자들이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자신들의 진심 어린 선물을 통해 만남과 신뢰의 문화를 촉진하고 육성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교종, “우크라이나 국민들 고통은 저의 고통”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25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9개월을 맞아 ‘고귀하고 순교한’ 우크라이나 국민들 모두에게 슬픔과 친밀감을 표현하는 서한을 썼다. 서한 내용.

저는 자녀와 함께 슬픔을 함께하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또한 ‘파괴와 고통, 굶주림, 목마름과 추위’로 상처 입은 백성을 바라보는 목자의 고통으로 이 편지를 씁니다. 특히 여성, 폭력의 희생자, 전쟁 미망인, 전선으로 보내진 젊은이들과 홀로 남겨진 노인들, 그리고 난민 또는 실향민이 된 사람들, 자원봉사자와 사제, 국가 당국에 저의 생각을 전합니다. 로마의 주교인 저는 특히 고통받고 기도하고, 울부짖고 투쟁하고, 저항하고 희망하는, 고귀하고 순교한 백성인 여러분 모두에게 고난과 시련의 시기에 용기를 잃지 말라고 애원하며 ‘찬미’를 드립니다. 여러분의 하늘에서는 폭발의 포효와 불길한 사이렌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집니다. 미사일 소나기는 죽음, 파괴, 고통, 굶주림, 목마름, 추위를 일으키면서 도시를 두들겨 패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집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 두고 거리를 떠나야 했습니다. 여러분의 큰 강 옆에는 날마다 피와 눈물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저의 눈물을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눈물에 합칩니다. 오늘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여러분을 봅니다. 여러 도시에서 발견되는 집단 무덤 등 우리 영혼에 들어온 수많은 피비린내 나는 이미지들은 우리에게 "왜?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대할 수 있습니까?"라고 외치게 만듭니다.

오늘의 비극은 저의 기억 속에 수년 동안 세계에서 펼쳐져 온 드라마를 다시 일깨웁니다. 미사일 공격으로 세상에서 찢겨진 갓난 여아와 4살 여아를 바라봅니다. 얼마나 많은 아이가 죽고, 다치고, 고아가 되었고, 어머니에게서 찢겨 나갔습니까! 저는 오데사의 키라처럼, 빈니차의 리사처럼, 그리고 수백 명의 다른 아이들처럼, 이 전쟁 때문에 목숨을 잃은 모든 어린아이를 위해 여러분과 함께 눈물을 흘립니다. 이제 그들은 하느님과 함께 있으면서 여러분의 슬픔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슬픔이 끝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들과 추방당한 젊은이들과 노인들에게 어떻게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특히 우크라이나 어머니들의 고통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또한 저는 용감하게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꿈 대신 무기’를 껴안아야 했던 젊은이들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전쟁에 빠진 사람들의 아내들에게 말합니다. 당신의 자녀를 위해 모든 희생을 치르겠다고 품위와 결단력을 가지고 조용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들은 전쟁의 어두운 밤에 던져졌습니다. 저는 그리고 여성들에게 말합니다. 저는 여러분을 생각하고 여러분이 어떻게 그런 힘든 시련을 직면하는지에 대한 애정과 감탄으로 당신과 가까움을 느낍니다.

또한 저는 매일 국민들을 위해 헌신하는 자원봉사자들과 주교, 사제, 수도자들과 같이 항상 여러분의 안전에 큰 위험을 안고 있는 모든 사목자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환대, 구호 및 음식을 제공할 수 있는 쉼터로 공동체 장소와 수녀원을 창의적으로 변화시킵니다. 많은 난민이 그들의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그들 중 많은 사람이 파괴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우크라이나 당국에 호소합니다. 정부 당국은 비극적인 시기에 국가를 통치하고 평화를 위한 장기적인 결정을 내리고 도시와 시골에서 중요한 인프라가 파괴되는 동안 경제를 유지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이 모든 악과 고통의 바다에서 저는 내일 11월26일 90주년이 되는 우크라이나 국민이 겪은 또 다른 큰 비극인 ‘홀로도모르’ 대량 학살을 기억합니다. 지난 수요일 일반 접견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는 ‘끔찍한’ 사건을 떠올리면서 저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선한 열정’에 찬사를 드립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그들이 겪은 엄청난 비극에도 불구하고 결코 낙심하거나 연민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담대하고 강한 사람들, 고통받고 기도하고 울부짖고 분투하고 저항하고 희망하는 사람들, 고귀하고 순교한 사람들을 오래 기억합니다. 저는 계속해 저의 마음과 기도, 인도주의적 관심으로 여러분과 가까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여러분의 고통을 잊고 싶은 유혹이 올 때 더욱 그렇게 할 것입니다. 저는 특히 ‘기후변화’로 인해 여러분이 겪고 있는 일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게 될 앞으로 몇 달을 내다보면서 교회의 사랑, 기도의 힘, 세상의 많은 형제자매가 여러분을 어루만져 주기를 원합니다. 몇 주 후면 성탄절이 될 것이고 고통의 아우성이 더 많이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춥고 어두움뿐인 그 밤에 빛이 임하시니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느님에게서입니다. 땅에서가 아니라 하늘에서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티 없으신 성심께 봉헌한 성모님께 맡깁니다. 또한 어머니의 성심께 여러분의 고통과 눈물을 드립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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