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도, 죽음도 감춰야 했던 이들을 위한 첫 기억과 추모

세상을 떠난 성소수자들을 위한 추모 미사가 처음으로 봉헌됐다.

성소수자들의 연대와 협력을 위한 평신도 단체 가톨릭 앨라이 아르쿠스’(이하 아르쿠스)1119일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변희수(가브리엘), 윤현석(안토니오, 육우당)을 비롯한 성소수자 8명을 추모했다.

이전수 씨(아르쿠스 회원)는 회원들의 제안으로 위령 성월을 맞아 추모 미사를 봉헌하게 됐으며, 가족과 지인들을 통해 8명의 이름을 미사 지향으로 신청받았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이들은 성소수자이고 자살을 한 이들이기 때문에 그동안 장례 미사나 연도조차 거절당하거나 죽음 자체도 숨겨야 했다라면서, “죽음마저 소외당한 이들이 8명만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매년 위령 성월에 추모 미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소수자는 교회에서 그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았던 존재였습니다. 이렇게 성직자, 수도자, 신자가 함께 성소수자를 기억하는 미사를 마련했다는 것에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주일 미사로 보편지향 기도를 드렸는데, 교회 안에서 공식적으로 성소수자들을 위한 보편기도를 함께 바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톨릭 신자라면 당연히 연도와 위령 미사, 장례 미사 등을 하게 되는데, 지금까지 당연한 것을 하지 못한 이들이 있었다는 것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먼저 떠난 이들을 기억하는 첫 자리가 됐는데, 앞으로 꼭 위령 성월만이 아니라 그들을 기억하는 이들이 언제든지 자유롭게 추모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기념과 기억이라는 미사의 본질적 의미를 깊이 체험한 자리였습니다. 8명뿐 아니라 사도직 현장에서 만났던 다른 죽음들도 함께 기억하며 이름을 불렀습니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이미 소외당하는 이들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기 때문에 또다시 더욱 소외되는 현실에서 앞으로 더 많이 기억하고 이름을 불러 줘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가톨릭 신자로 개종한 지 한 달 정도 됐습니다. 모태신앙을 버리고 가톨릭교회를 선택하면서 가장 큰 기대를 한 것은 바로 사랑이었어요. 차별에 반대하고 있지만 반대에 또 반대하는 태도로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필요한 것은 초월이고 그것은 바로 사랑을 통해서가 아닐까요. 과거에 대한 위로와 애도뿐 아니라 사랑을 통해 보다 미래지향적 메시지를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사에 참여한 이들은 미사 뒤, 변희수 씨와 윤현석 씨 등 8명의 이름을 부르며 연도를 바쳤다.

11월 19일 '가톨릭 엘로이 아르쿠스'가 세상을 떠난 성소수자들을 위한 추모 미사를 봉헌했다. ⓒ정현진 기자
11월 19일 '가톨릭 엘로이 아르쿠스'가 세상을 떠난 성소수자들을 위한 추모 미사를 봉헌했다. ⓒ정현진 기자

서울대교구 시노드 여정에서 성소수자 경청 모임에 동반했던 현대일 신부는 이날 미사를 집전하고, 우리의 하느님은 우리와 같아지기 위해서 인간으로 오셨고,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시고, 그래서 죄인과 함께 죄인의 모습으로 죽으셨다, “(예수님은) 너희들은 죄인이 아니라 너무 사랑스러운 사람들이고, 실수해도 율법을 몰라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 인간이 되셨다고 말했다.

현 신부는 기억은 우리가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받더라도 그 십자가를 견딜 수 있게 하고, 죽음을 이길 수 있게 하고, 그래서 부활을 함께 할 수 있게 한다면서, “우리는 기억하기 위해서 모였고, 어떤 식으로든 저항하며 벽을 흔들었던 형제자매들을 기억한다. 우리의 기억은 힘이 있고, 그 벽은 계속 흔들리고 깨지고 있다. 죽음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손잡고 기억함으로써 흔들고 깨면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아르쿠스는 지난 5월 만들어졌으며, 9월에 성소수자와 함께하는 첫 월례 미사를 봉헌했다. 엘라이는 협력자를, 아르쿠스는 무지개, 즉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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