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셋째 월요일, "소중한 빛이 참사랑 모습 드러내도록"

‘가톨릭 앨라이 아르쿠스’(이하 아르쿠스)가 성소수자와 함께하는 첫 월례 미사를 시작했다.

아르쿠스는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가톨릭 평신도들의 연대 단체로, 지난 5월 만들어졌다. 앨라이(Ally, 협력자)는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사람, 아르쿠스는 라틴어로 무지개를 뜻하며 무지개는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상징한다.

19일 성소수자부모모임 사무실에서 열린 미사는 각지에서 온 성소수자 당사자와 가족, 사제, 수도자, 평신도 등 30여 명이 함께 봉헌했다. 이 미사는 성소수자와 앨라이들이 교류하고 신앙을 나누며 성소수자 인권 향상을 위한 연대 등을 지향하며 이날을 시작으로 매달 세 번째 월요일 저녁마다 계속된다.

이날 미사는 박상훈 신부(예수회)가 주례하고 지형규 신부(예수회)와 현대일 신부(서울대교구)가 공동 집전했다. 성가소비녀회와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도자들이 여럿 참여했다.

아르쿠스가 19일 성소수자부모모임 사무실에서 성소수자와 함께하는 첫 월례 미사를 봉헌했다. ⓒ김수나 기자
아르쿠스가 19일 성소수자부모모임 사무실에서 성소수자와 함께하는 첫 월례 미사를 봉헌했다. ⓒ김수나 기자

이날 강론에서 지형규 신부는 서학을 공부하던 청년들 중심으로 먼저 시작돼 복음의 진리와 사랑으로 계급적 차별과 불평등이 구조화된 조선 사회에 의문을 던지고, 신앙으로 평등과 사랑을 실천한 한국 천주교회의 시작과 아르쿠스 모임이 닮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에는 여러 약자에 대한 사목이 있지만 아쉽게도 성소수자 사목은 아직 없다. 이는 교회 잘못이기보다는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가 지워지기를 사회로부터 강요받아 그들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숨겨 왔기 때문”이라면서, “그러나 여기 모인 우리는 이름이 지워진 이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그들도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이라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지 신부는 “우리가 그분의 사랑과 자비, 용서와 정의, 평화와 평등을 실천한다면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리스도 자신이 살아 계시기에 우리 모두 등경 위에 놓인 빛으로서 존재한다”면서, “그 누구도 빛인 하느님의 자녀들을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두라고 해서는 안 된다. 사회와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다고 이들이 없어져야 하고, 안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현대일 신부는 "우리의 역할은 (성소수자라는) 이 빛이 꺼지지 않도록 빛을 지키고 더 드러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나 기자
이날 현대일 신부는 "우리의 역할은 (성소수자라는) 이 빛이 꺼지지 않도록 빛을 지키고 더 드러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나 기자

서울대교구 교구 시노드 과정에 사회적 소수자의 이야기를 적극 반영하라는 정순택 주교(서울대교구장)의 지향에 따라, 지난 3월 가톨릭교회에서 처음으로 성소수자 의제를 다룬 경청 모임이 성소수자 당사자 등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됐다.

현대일 신부는 당시 경청 모임을 맡았고 그 결과를 정리했는데, 이날 “시노드 모임 할 때 한 달에 1번씩 오늘과 같은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정말로 기꺼이 이렇게 자리가 마련돼 감사하다”고 말했다.

현 신부는 “시노드만으로 끝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계속 함께하고 있다. 첫 모임인 만큼 역사적인 날이고 오늘의 복음(루카 복음 8장 16-18절, 등불의 비유)과도 맞아떨어진다. 성소수자야말로 우리 시대의 빛”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빛은 어둠과 대비된다. 어둠은 빛을 싫어한다. 없애려고 한다. 꺼버리려고 한다. 빛이 나타나면 자기 추함이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성애자 중심의 폭력적, 비평등적, 혐오라는 어둠의 세력은 빛이 없었다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성소수자들은 정말 소중한 빛이고, 그렇기에 이 빛이 참사랑의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의 역할은 이 빛이 꺼지지 않도록 빛을 지키고 더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첫 자리에 오신 것처럼 앞으로도 묵묵히 함께 간다면 그 빛이 점점 더 크게 드러날 것이다.”

(왼쪽부터) 현대일, 박상훈, 지형규 신부. ⓒ김수나 기자
(왼쪽부터) 현대일, 박상훈, 지형규 신부. ⓒ김수나 기자
19일 열린 첫 미사는 각지에서 온 성소수자 당사자와 가족, 사제, 수도자, 평신도 등 30여 명이 함께 봉헌했다. ⓒ김수나 기자
19일 열린 첫 미사는 각지에서 온 성소수자 당사자와 가족, 사제, 수도자, 평신도 등 30여 명이 함께 봉헌했다. ⓒ김수나 기자

미사 뒤 참가자들의 소개와 이야기 나눔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참가자들은 교회 내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 성소수자 사목 활성화에 대한 기대, 교회 안 혐오에 대한 조직적 대응의 필요성, 이를 위한 각자와 공동의 역할 등 다양한 주제를 나눴다. 또 이러한 미사가 신앙 안에서 서로 위로와 치유, 힘이 될 수 있도록 지속되길 바랐다.

아르쿠스는 오는 11월 위령 성월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속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삶을 마감한 성소수자들의 영혼을 위해 미사를 봉헌한다. 매달 미사 장소 등은 SNS 등을 통해 미리 공지될 예정이다. (문의 : arcu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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