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간 바레인 49번째 사도 순방 마쳐

(편집 : 장기풍)

프란치스코 교종 바레인 사도적 순방 첫째 날

“인간 공존의 사막에 형제애의 물을 가져옵시다”

교종, 바레인 순방 첫날, 정부 당국, 시민 사회, 외교단 연설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3일 오후 4시36분 바레인 중부 도시 아왈리 공군기지에 도착해 교종의 39차 해외 사도여행의 첫발을 내디뎠다. 공황에서 환영식을 마친 교종은 사키르 왕궁으로 이동해 하마드 빈 이사 알칼리파 국왕과 환담한 후 정부 당국자, 시민사회 대표, 외교사절들이 모인 가운데 바레인의 활력의 상징인 ’생명의 나무‘를 주제로 연설했다. 연설 내용.

여러분의 나라 바레인은 서로 다른 민족들이 만나는 곳으로 묘사할 수 있습니다. 전통과 진보의 혼합,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독특한 삶의 모자이크를 만듭니다. 바레인의 상징인 ‘생명의 나무 위대한 아카시아’는 깊은 뿌리 덕분에 강수량이 거의 없는 사막 지역에서 살아남았습니다. 4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바레인의 뿌리도 민족적, 문화적 다양성, 평화로운 공존과 사람들의 전통적인 환대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이러한 다양성은 지구촌으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여러 면에서 환대와 타인에 대한 배려와 형제애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바레인의 상징 생명나무의 형상을 보면서 ‘인간 공존의 메마른 사막’에 ‘형제애의 물’을 가져다주고 그 목표를 위해 함께 일할 것을 당부드립니다. 저는 이 생명나무의 땅에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으로 만남과 평화 공존을 위한 동서 대화 포럼에 참여하기 위해 여기 왔습니다. 특히 저는 ‘존중, 관용, 종교 자유’를 강조하는 바레인 왕국이 추진하는 포럼 조직자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바레인 헌법에 명시된 ‘종교의 자유’는 예배의 자유에 국한되지 않고 완전해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실천해야 하는 약속입니다. 평등한 존엄성과 기회는 각 그룹과 모든 개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인정될 것입니다. 이는 어떤 형태의 차별도 존재하지 않으며, 기본 인권이 침해되지 않고 증진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목숨을 빼앗겨서는 안 되는 범죄자들에게도 생명권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생명나무 이미지가 주는 교훈처럼 바레인의 발전은 다양한 민족의 이민으로 인한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세계는 여전히 높은 실업으로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으로 너무나 자주 노동이 ‘인간을 비인간화’ 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게 됩니다. 저는 이러한 '글로벌 노동 위기'에 주목하면서 더욱 노동의 가치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노동의 가치는 단순히 부를 창출하는 수단으로 축소되어서는 안 됩니다. 공동선을 위해 문화적, 영적 성장을 촉진하고 사회적 결속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안전하고 품위 있는 노동 조건이 요구됩니다. 바레인은 걸프 지역에서 최초로 여성학교를 설립했으며, 노예제도를 폐지했습니다. 바레인은 이러한 중요한 기여를 자랑스러워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바레인이 노동자, 여성, 젊은이와 이민자들을 위한 평등한 권리와 조건 개선을 위한 이 지역의 등대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두 가지 영역인 ‘환경 보호’와 ‘생명의 증진’에 대해 특히 세계 지도자들과 공동선을 책임지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습니다. 바로 환경 문제와 생명의 번영을 촉진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책임입니다. 세계적인 기후 비상사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지칠 줄 모르고' 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며칠 뒤 열리는 COP27 회의가 이런 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저는 ‘살인 행위’의 증가와 어디에나 파괴를 뿌리고 희망을 짓밟는 기괴하고 무의미한 전쟁의 현실을 한탄합니다. 모든 전쟁은 살인과 파괴뿐 아니라 ‘진실의 죽음’을 초래합니다. 특히 예멘의 '잊혀진 전쟁'을 비롯한 모든 전쟁이 그렇듯 모든 사람의 승리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패배를 낳는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무기 충돌을 멈추십시오! 모든 곳에서 구체적인 평화 구축에 전념합시다. 평화의 토대를 구축하는 데 종교 신앙의 역할을 강조하는 바레인 왕국 선언을 공감하며 지지합니다. 선언문이 표현한 것처럼 “저는 오늘 신앙인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한 사람으로서, 평화의 순례자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를 위해 진지하게 헌신하도록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우리를 분열시키는 것을 거부하고 대신 우리를 하나로 묶는 것을 축하하고 확장하는 세상을 위해 일하겠습니다”라고 우리 모두 약속합시다.

 

프란치스코 교종 바레인 사도적 순방 둘째 날

“종교 지도자들은 평화를 위해 인류를 도울 의무가 있습니다”

교종, 바레인 대화 포럼 폐막식에서 세계 종교 지도자들에 호소

프란치스코 교종은 바레인 순방 이틀째인 11월4일 오전10시 사키르 왕궁 알 피다 광장에서 열린 바레인 대화 포럼 ‘인간 공존을 위한 동서양’ 폐막 연설에서 포럼에 참석한 바레인 하마드 빈 이사 알칼리파 국왕과 세계 종교 지도자 200여 명을 상대로 전쟁에 반대하고 진정한 종교의 자유, 여성 인권, 아동의 기본권 보호, 시민권의 개념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다. 연설 내용.

저를 ‘인간 공존을 위한 동양과 서양'을 주제로 열린 바레인 대화 포럼에 초대해 주신 하마드 빈 이사 알 칼리파 국왕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도 공감하시는 것처럼 모든 종교 지도자들은 편협한 이해관계와 전쟁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좋은 본보기를 보여 상처 입은 인류 가족을 격려하고 돕는 데 전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인류는 전례 없이 많은 이해관계와 연결된 전쟁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섬세한 벼랑의 끝에서 ’인간 공존을 위한 동양과 서양‘ 포럼의 제목이 제시하는 대화의 길, 대결보다 만남의 길을 선택하고 같은 바다를 항해하기 위해 함께 모였습니다. 두 차례 끔찍한 세계대전, 수십 년 동안 세계를 긴장 상태로 만든 냉전,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재앙적 갈등, 그리고 비난과 위협 속에서 우리는 계속 벼랑 끝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낭떠러지에서 넘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세계 인구의 대다수가 심각한 식량, 생태학적 위기, 전염병, 점점 더 심각해지는 세계적인 불의로 고통받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지만 소수의 유력자들의 당파적 이익을 위한 투쟁, 구식 수사학의 부활, 영향력 영역 재설계 및 블록 반대, 당파적 이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놀라운 역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어린아이 같은 시나리오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정원에서 우리는 주변을 경작하는 대신 불, 미사일, 폭탄, 무기를 가지고 놀고 있으며 공동의 집을 재와 증오로 덮고 있습니다. 우리가 계속 갈등을 조장하고 자신의 모델과 전제, 제국주의, 민족주의, 포퓰리즘 비전을 강요한다면 쓰라린 결과로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사람들을 선과 악으로 단순하게 나누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선을 위해 협력하려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결국 그렇게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창조주이신 하느님과 형제자매를 믿는 남녀로서, 현실에 다가갈 때 자신의 좁은 흐름에만 집중하여 인류의 큰 바다를 간과하는 '고립적 사고'를 거부하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 갈등으로 인해 지구상 대다수 사람이 전례 없는 불의, 부끄러운 굶주림의 재앙을 경험하는 재앙적 불평등과 같은 우리 인류 가족의 덜 분명한 비극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현재 우리 앞에 닥친 기후변화의 재앙은 공동 가정에 대한 우리들 배려 부족의 표시입니다.

이러한 문제에 직면하여 종교 지도자들은 헌신적인 좋은 본보기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특별한 역할이 있습니다. 상호의존적이지만 동시에 단절된 인류 가족이 함께 바다를 항해하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는 것은 우리들 의무입니다. 인간 형제애에 관한 문서와 바레인 왕국 선언에는 기도, 교육, 행동의 세 가지 도전 영역을 제안했는데, 이 세 가지 영역은 모두 이번 포럼에서 반영되었습니다. 가장 첫째인 기도는 인간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가장 높으신 분에게 마음을 여는 기도는 이기심, 폐쇄적 마음, 자기 참조, 거짓, 불의에서 우리 자신을 정화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마음의 평화를 얻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증언하고 무엇보다 그들의 모범으로 다른 사람들을 초청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저하시키는 이교에 빠지지 않도록 권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종교 신자는 이 땅에서 다른 사람들과 여행할 때 부드러움과 존경심을 가지고 하늘을 바라보도록 초대하는 평화로운 남녀들입니다. 그들은 지극히 높으신 분에게 올라가는 분향 같이 모든 사람의 시련과 환난을 그들의 기도에 가져옵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본질적인 전제가 있습니다. 바로 종교의 자유입니다. 바레인 왕국 선언은 “하느님은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라는 신성한 선물을 행사하도록 지시하신다”고 밝히면서, 따라서 강제 종교는 사람을 하느님과 의미 있는 관계로 인도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어떠한 형태의 종교적 강압도 전능자에게 합당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세상을 노예에게 넘기지 않으시고 자유로운 피조물에게 넘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의 자유가 창조주의 주권적 자유를 반영하고, 예배 장소가 언제 어디서나 보호되고 존중되며, 기도가 호의적이며 결코 방해받지 않도록 하는 데 전념합시다. 허락을 주고 예배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종교의 자유를 달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회뿐 아니라 모든 신조가 이에 대해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피조물을 외부에서 강요하는지, 내부에서 해방하는지, 사람들이 완고함, 편협함, 폭력을 거부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신자들이 진정한 자유 안에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질문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창조된 선을 위해 우리 자신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도전과 교육의 도전은 마음에 관한 것입니다. 바레인 왕국 선언에서 ‘무지는 평화의 적’이라고 명시한 것처럼 교육 기회가 부족한 곳에서는 극단주의가 증가하고 근본주의 형태가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무지가 평화의 적이라면 교육은 발전의 친구이며, 교육은 역동적이고 관계적 존재로서 남성과 여성에게 진정으로 어울리는 도구입니다. 경직되고 획일적이지 않지만 도전에 열려 있고 문화적 변화에 민감한 교육은 자기 참조적이고 고립적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 역사와 문화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정체되어 있지 않고 호기심이 많고 우리가 속한 한 인류 가족의 다양하고 본질적인 측면을 수용하는 데 열려 있습니다. 우리는 질문을 제기하고, 도전을 허용하고, 인내심을 갖고 정중하게, 기꺼이 경청하고 다른 사람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면서 대화에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가 관대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다른 이들에게 이러한 권리와 기회를 주어져야 합니다. 종교는 이러한 접근 방식을 지지할 수 있습니다. 

저는 교육에서 가장 시급한 세 가지 우선 순위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첫째, 공적 영역에서 여성의 인정, 즉 여성 교육과 고용에 대한 권리와 사회적, 정치적 권리를 행사할 자유입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교육은 하느님을 경배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표시되어야 하는 형제적 연대의 정신에 반대되는 역사적, 사회적 유산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입니다. 둘째, 아이들이 굶주림과 폭력의 손아귀에서 살지 않도록 자랄 수 있고, 교육을 받고, 도움과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어린이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위기, 문제, 전쟁을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법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스스로 배우도록 합시다. 이것은 순진한 것이 아니라 선견지명한 지혜입니다. 이익이 아닌 순수함으로 더 나은 인류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교육은 가족의 마음에서 시작되어 지역 사회, 마을 또는 도시 내에서 계속되어야 합니다. 시민권, 공동체생활, 서로 존중하고 법을 존중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권리와 의무의 평등’에 기초한 시민의식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에서 우리 사회에 완전한 시민권의 개념을 확립하고 고립과 열등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수자라는 용어의 차별적인 사용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의 오용은 적대감과 불화의 길을 열어 줍니다. 그것은 모든 성공을 차단하고 차별을 받는 일부 시민의 종교적 권리와 시민권을 박탈합니다. 

바레인 선언에서는 증오, 폭력, 불화가 전파될 때마다 하느님의 이름이 모독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종교를 믿는 모든 사람은 이러한 것들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거부합니다. 종교인들은 전쟁의 신성모독과 폭력의 사용을 강력하게 거부합니다. 그리고 이 거부를 일관되게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즉 행동으로 이러한 신성모독과 폭력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관되게 종교의 이름을 남용하는 폭력 가해자들을 규탄해야 합니다. 종교가 평화를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평화의 이름을 남용하는 폭력 가해자를 정죄하고 고립시켜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편협과 극단주의에서 멀어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들과 대항해야 합니다. 종교적 남성과 여성들은 평화의 백성으로서 재무장 경쟁, 전쟁 상거래, 죽음의 시장에 반대해야 합니다. '일부 세력에 반대하는 동맹'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모든 사람과의 만남의 수단을 사용해야 합니다. 자신보다 앞서 있는 사람들을 친구로 여기고 그와 함께 이 길을 함께 추구하며 형제자매들에게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만일 서로 다른 권력자들이 이익, 돈, 권력 놀이를 기반으로 서로 거래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또 다른 만남의 길이 있음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무력, 무기, 돈은 결코 평화의 미래로 이끌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만남의 다른 길은 가능하고 필요합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인류를 위해, 인류를 사랑하시는 분, 평화를 이름으로 하는 분의 '평화의 양심' 이름으로 모여야 합니다. 그래서 위대한 종교의 여정이 더욱 효과적이고 지속적으로 세계를 위한 평화의 양심이 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계획을 추진합시다! 창조주께서는 특히 힘없는 사람들, 즉 가난한 사람, 태어나지 않은 사람, 노인, 병약한 사람, 아직 충분한 자리를 찾지 못한 이주민 등 그분의 많은 피조물을 대신하여 행동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긍휼의 하느님을 믿는 우리가 가난한 자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고 소리 없는 자에게 소리를 내지 아니하면 누가 하겠습니까? 우리는 ‘상처를 입고 고통받는 이들의 편에 서서 인류를 돕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가장 높으신 분의 축복을 이 세상에 끌어들이게 될 것입니다.

 

교종,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와 알아자르 대이맘과 연속 회동”

바레인을 순방 중인 프라치스코 교종은 11월4일 오후 사키르 왕궁 부지 내 바티칸 대사관저에서 두 차례에 걸쳐 바르톨로메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와 알아자르 대이맘과 연속 회동을 가졌다. 이들은 이미 이날 아침 바레인 대화 포럼 폐막식에서 만난 바 있다. 두 사람 모두 전 세계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포럼에 참석했다. 교종은 이날 아침 연설 서두에 두 사람 모두에게 “친애하는 형제님"이라고 인사했다. 그러나 교종은 오후에 이들과 개인적으로 다시 만나기를 희망했다. 이들과 만남은 비공개로 이루어졌다. 바티칸 공보실에 따르면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와의 만남은 오후 3시30분 ‘우애와 애정의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공보실이 공개한 사진의 이미지는 성지와 이스탄불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만남 이래 모든 만남에서 항상 교환했던 두 사람의 다정한 포옹을 보여 준다. 또한 교종은 30분 후 지난 9월 카자흐스탄을 방문했을 때 만났던 이슬람의 알아자르 대이맘과 다시 만났다. 두 사람은 선물을 교환한 후 포럼에서 수니파 지도자가 한 연설에 대한 박수 갈채와 시아파 무슬림을 포함하는 화해와 통합을 위한 이슬람 내부의 진지한 ‘대화’의 필요성에 집중되었다. 교종은 대이맘에게 "이번 방문에 감사드리며, 오늘 당신은 이슬람교 간의 대화에 대해 말할 때 매우 용감했다"고 소감을 말했다. 교종은 대이맘에게 평화와 형제애 상징인 올리브 나무를 선물로 주었으며, 두 사람은 사키르 왕궁 사원으로 이동해 대이맘이 회장으로 있는 이슬람 장로위원회 회원들을 만났다.

 

“기도와 형제애는 겸손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무기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 바레인 무슬림 장로협의회 회원들에게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4일 오후 사키르 왕궁 모스크에서 이슬람 장로협의회 회원들과 만나 인류가 숨겨진 생명의 원천을 재발견하고 평화를 촉진하며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을 돌볼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형제애와 기도의 공동 노력을 무슬림 장로회원들에게 권장했다. 연설 내용.

여러분 모두에게 하느님의 평화를 빕니다. 이슬람 공동체의 분열과 갈등을 피하기 위해 화해를 도모하고, 극단주의가 진정한 종교를 부식시키는 위험을 보고, 잘못된 해석을 몰아내려고 노력하는 여러분께 하느님 축복을 기원합니다. 극단주의는 종교적 신념에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려와 계속되기를 빕니다. 사람들 마음속에 존중, 관용, 절제의 가치를 심어줌으로써 평화를 퍼뜨리고자 하는 여러분은 모든 형태의 증오와 편협에 반대하는 도덕적, 지적 교육을 젊은이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진정한 종교 전통의 추종자들입니다. 평화의 근원이신 하느님은 결코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며, 증오를 조장하지도 폭력을 지지하지도 않습니다. 사실 하느님을 믿는 우리들은 ‘평화 공존의 산소’인 만남, 인내, 대화와 같은 평화의 도구로 평화를 증진하라는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정의에 기반한 평화 문화의 확산이 우리의 공동목표 중 하나로 지지하고 ‘평화는 정의의 결과’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유일한 길입니다. 

평화는 형제애에서 태어납니다. 그것은 불의와 불평등에 대한 투쟁을 통해 성장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만들어집니다. 평화는 단순히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내릴 수 있어야 하며, 불안정과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불평등과 차별을 제거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형제이자 평화의 순례자로 또 하느님을 믿는 신자로서, 여러분에게 왔습니다. 저는 우리가 함께 여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입으로 평화를 선포할 때 마음에 더 큰 평화가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여기에서 여러분에게 느끼는 저의 마음은 마치 ‘여러분이 제 인생과 제 마음 속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또한 존경과 애정을 가슴에 얹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며 우리가 서로 만날 수 있게 하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알고 존중하며 생각보다 현실을, 의견보다 사람을, 세상의 차이보다 하늘에 대한 개방성을 우선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평화의 근원이신 분의 이름으로 역사적 편견과 오해를 극복하고 적대감의 과거보다 형제애의 미래를 앞세워야 합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여러분의 이맘 알리의 말씀에 따라 행동할 것을 촉구합니다. 사람은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종교의 형제자매이거나 인류의 동료 남녀입니다. 따라서 과거를 잊고 진심으로 상호이해를 얻으십시오. 그리고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 평화, 자유, 사회정의 및 도덕적 가치를 보존하고 증진합시다. 이것이 종교 지도자로서 우리에게 부여된 의무입니다. 점점 상처받고 분열되는 세상에서, 세계화의 표면 아래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세계에서 위대한 종교의 전통은 몸의 지체와 영혼을 하나로 묶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가장 높은 열망에 희망과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저는 ‘만남과 평화로운 공존의 물’을 이용함으로써 가장 건조한 사막에서도 살아남는 생명의 힘을 지지합니다. 바레인에서 찾을 수 있는 ‘생명나무’ 아카시아를 보면서 저는 창세기에 기록된 ‘생명나무’를 생각했습니다. 성경에서 생명나무는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계획의 핵심인 에덴동산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창조주와 자신이 세운 질서를 등한히 한 것이 형제 간 다툼과 살인, 교만과 사회적 갈등을 비롯한 문제와 불균형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악이 하느님과 우리 형제자매를 거부하고 생명의 창조주를 보지 못하고 더 이상 우리 자신을 형제를 지키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데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어떤 종교 전통을 공언하든지 간에 두 가지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와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창세 4,9)의 두 가지 질문은 모든 삶과 모든 연령대에 여전히 도전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 시대의 극적인 환경위기뿐 아니라 사회적, 국제적, 경제적, 개인적 악은 궁극적으로 하느님과 우리 이웃과의 소외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종교인들의 임무는 독특하고 피할 수 없는 의무입니다. 

인류가 잊혀진 생명의 근원을 재발견하도록 돕고, 남녀가 고대 지혜의 샘물을 마시게 하며, 신실한 사람들이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이 창조하신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더 가깝게 가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인류가 잊혀진 생명의 근원을 재발견하도록 돕는 이 의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겸손하지만 효과적인 무기로 기도와 형제애를 실천할 것을 권고합니다. 하느님께 합당하지 않은 다른 수단과 지름길을 경계해야합니다. 현재 세계는 권력을 신뢰하고 폭력과 전쟁과 무기 거래, ‘죽음의 장사’를 조장하는 자들에 의해 평화의 이름이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 공동의 집을 하나의 거대한 무기고로 만들고 있습니다. 분쟁으로 인해 고국에서 강제 이주를 당하는 사람들을 적절한 가격에 구식 무기를 구입함으로써 보조금을 받다가 점점 더 정교해지는 군사 장비를 통해 신원을 확인하고 다른 국경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을 생각해 봅니다. 이러한 비극적인 시나리오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과 이웃이 무엇보다 우선시되며 초월과 형제애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고 조상들의 지혜로 선포해야 합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이 생명의 샘을 발견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의 사막은 점점 더 건조해지고 치명적일 것입니다. 하느님과 인류에 대한 우리 종교 지도자들의 책임이 큽니다. 따라서 우리 모든 사람이 우리가 가르치는 지역 사회와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모범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민족들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인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점점 더 하나가 될수록 우리는 온 인류 공동체, 곧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말해야 합니다. 모든 남성과 여성들에게 ‘인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왜 고통, 악, 죽음, 불의가 있는가? 죽음 후에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무엇입니까?를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 물질주의와 소비주의 세계에 빠져 있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질문이 잠복해 있는 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굶주림과 빈곤의 비인간적인 재앙에 의해 억눌려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우리가 서로 지지합시다. 오늘 회의에 대한 후속조치로 “우리 함께 여행하자!”를 제안합니다. 우리는 가장 높으신 분과 그분이 우선적으로 사랑하시는 가장 작고 연약한 피조물, 즉 많은 어두운 밤을 보낸 후 빛과 평화의 여명이 밝아오기를 기다리는 가난한 아이들과 젊은이들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일치와 증거는 일치운동에 필수적입니다”

교종, 바레인 순방 둘째 날 ‘에큐메니칼’ 회의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바레인에서의 둘째 날 마지막 일정으로 아왈리의 아라비아 성모 대성당에서 열린 에큐메니칼 회의와 평화를 위한 기도 모임에서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와 ‘삶의 증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모임에는 콘스탄티노플 정교회 에큐메니칼 총대주교와 지역의 다른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이 함께 참석했다. 연설 내용.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분열의 역사는 ‘거룩한 주님의 몸에 상처를 입힌’ 한탄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지체를 하나로 연합시키는 성령은 우리의 육신의 분열보다 훨씬 더 큽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를 하나로 묶는 것이 우리를 분열시키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사도행전은 첫 오순절에 제자들이 함께 모였을 때 성령이 임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바레인에는 그리스도인 양 떼의 수가 적기 때문에 우리가 연합의 필요성을 느끼는 데 더욱 도움이 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연합은 성령께서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하느님을 찬양함으로써 성장할 수 있는 연합입니다. 우리는 더 한층 하느님을 찬양하는 일에 힘쓰는 것이 좋으며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연합하는 표징이 되는 것입니다. 화합과 연합이란 획일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포용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일치 운동 여정의 정신’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일치와 연합을 통해 ‘생명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의 체험은 그리스도의 초기 제자들을 ‘세상으로 나가게’ 이끌었습니다. 이같이 그리스도인의 증거는 말보다 행동으로 표현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주장하는 특권이 아니라 나누어야 할 선물’입니다. 바로 사랑이 ‘그리스도인의 휘장이며, 우리 증거의 본질’입니다. 따라서 일치와 증거가 필수적입니다. 저는 ‘찬양이 힘이 되는 화합에 대한 생각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자선이 확인하는 증거에 관한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연합시키고 보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친교로 모으시고 우리를 선교로 보내십니다. 우리 모두 ’함께하는 일치와 평화의 여정‘을 성령께 맡기도록 합시다. 그리고 ’새 지평을 열고 일치와 평화의 여정을 가속화할 새 오순절‘을 위해 기도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 바레인 사도적 순방 셋째 날

“항상 사랑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교종, 바레인 국립경기장 미사에서 사랑의 실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5일 바레인 순방 3일째를 맞아 이날 오전 8시30분 아왈리 바레인 국립경기장에서 미사를 주재하고, 신자들에게 언제나 모든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악의 사슬을 끊고 폭력의 소용돌이를 끊으라고 강조했다. 강론 내용.

이사야 예언서에는 하느님께서 일으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11장 참조) 모순처럼 들릴지 몰라도 우리는 더 많은 권세를 구할수록 더 많은 평화가 위협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앞으로 오실 메시아는 참으로 강력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전쟁을 하고 사람을 다스리는 사령관 모습이 아니라, 하느님과 사람을 화목하게 하는 '평화의 군왕'으로 오시며 그분의 큰 능력은 폭력의 세력이 아니라 사랑의 연약함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며 항상 서로 사랑하라고 초대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항상 숙고해야 합니다. 우리의 관계 안에 사랑과 증오 사이 매일의 투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도 ‘빛과 어둠 사이에 매일 충돌’이 있습니다. 또한 전 세계에서 압제와 폭력을 조장하는 권력 행사, 타인의 공간을 제한함으로써 자신의 공간을 확장하려고 하고, 자신의 지배를 강요하고, 이런 식으로 약자의 기본적인 자유를 억압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형제애의 세계를 이상적으로 꿈꾸지 말고 우리 자신부터 시작하여 구체적이고 용감하게 보편적 형제애를 실천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악이 우리에게 임하여도 선으로 복수의 나선을 깨뜨리고, 폭력을 무장 해제하고, 마음의 무장을 해제하십시오. 우리는 항상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가혹한 말에 더 가혹한 말로 응답하고, 한마디가 다른 한마디를 낳는다면 평화는 회복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무장을 해제하고, 악의 사슬을 부수고, 폭력의 순환을 끊고, 분노와 불평, 자기 연민을 종식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사랑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땅에 평화를 건설하는 예수님의 길입니다. 우리가 사랑에 전념할 수 있지만 이 약속을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제한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고 형제자매의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 진정한 도전은 모든 사람,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 땅을 하늘의 거울로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사랑이시며, 우리에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에게는 초인간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이에게 감사드립니다. 저는 여러분을 바라보고 포용하며 사랑하고 격려하는 보편교회의 애정과 친밀감을 드리기 위해 바레인에 왔습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이 필요합니다”

교종, 바레인 방문 사흘째 젊은이들과 대화와 만남의 시간

프란치스코 교종은 바레인 순방 3일째인 11월5일 오후 5시 아왈리 성심학교에서 젊은이들과 만남의 행사를 가졌다. 교종은 만남 초반에 세 젊은이의 간증을 참고하여 ‘세 가지 초대’를 제안하면서 자신은 교사가 아니라 관심 있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사람이라고 밝히고 젊은이들이 큰 꿈을 꾸고 충만한 삶을 살 용기를 잃지 말라고 당부했다. 연설 내용.

세 청년의 간증을 잘 들었습니다. 저는 교사가 아닌 ‘관심 있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사람’으로 몇 가지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는 형제애의 확산입니다. 여러분이 ‘보살핌의 문화’를 포용한다면 형제애의 씨앗을 자라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애를 전파하라는 것이 저의 두 번째 초대입니다. 압둘라의 간증처럼 젊은이들은 ‘형제애 챔피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세계는 형제애 안에서만 미래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젊은이 여러분은 ’미래의 건설자‘가 될 것입니다. 다음 네빈의 증언처럼 여러분들은 먼저 하느님과의 관계를 구축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서 하느님을 더 쉽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저의 충고는 ’인생에서 결정을 내리는 도전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이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옵션을 평가하고 올바른 경로를 선택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또 메리나가 제기한 질문에 답한다면 젊은이들은 ’두려움 없이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되, 절대 혼자 가지 말아야 합니다. 침묵의 기도와 그분과의 친밀한 대화를 통해 하느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메리나의 간증처럼 하느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또한 젊은이들은 인터넷에서 조언을 구하기 전에 인생에서 ’훌륭한 상담자‘를 찾아보기를 권합니다. 우리 각자는 생명의 길에 동행해야 합니다. 교회는 여러분의 창의성, 꿈과 용기, 매력과 미소, 전염되는 기쁨, 모든 사람에게 가져올 수 있는 빛나는 재능과 열성이 필요합니다. 기성세대 우리들의 낡은 습관과 사물을 보는 방식에서 벗어나는 데 여러분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입니다. 교회는 여러분과 함께하며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새로워지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새로운 언어를 실험해 더 즐겁고 친절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저는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돌봄의 문화‘를 받아들일 것을 당부합니다. 돌봄은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이익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내적 공감 태도를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보살핌의 문화는 그 자체로 폐쇄적인 현대 세계의 ’전환점‘ 또는 ’해독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돌보려면 자신의 마음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여 먼저 자신을 돌보아야 합니다. 즉, 각자가 일상생활의 기쁨과 슬픔을 하느님과 나누며 대화하는 것입니다. 젊은이 여러분 큰 꿈을 꾸는 용기를 절대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배려의 문화를 채택하고 퍼트립시다. 형제애의 챔피언이 되십시오. 하느님의 신실한 창조성과 훌륭한 조언자의 인도를 받아 인생의 도전에 맞서십시오!!

 

프란치스코 교종 바레인 사도적 순방 마지막 날

“하느님의 기쁨을 전파하는 데 지치지 마십시오”

교종, 바레인 순방 마지막 날 사제, 수도자, 신학생들에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6일 오전 9시30분 바레인 순방의 마지막 공식 행사인 마나마 성심 성당에서 주교, 사제, 수도자, 신학생, 신자들과 함께한 기도 모임에서 걸프만 회교 국가의 다양한 양 떼에게 하느님의 기쁨을 기쁘게 전할 이들의 소명을 격려한 다음 에티오피아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한 기도를 호소했다. 하마드 빈 이사 알칼리파 바레인 국왕이 기증한 9헥타르 부지에 건립된 마나마 성심 성당은 2014년 5월 착공되어 2021년 12월에 축성되었으며 ‘아라비아 성모님’을 주보로 하고 있다. 연설 내용.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의 기쁨을 보존하고 심화하여 주변에 널리 퍼뜨리면서 하느님과 함께라면 비록 이 나라에서 여러분은 소수이지만 우리 앞에 직면하는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들을 위로하시고 회복시키실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은 이 나라에서 신뢰할 수 있고 대화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일치의 수호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곳 마나마 성심 성당은 세계 여러 지역의 사람들로 구성된 교회로 ‘보편적인 얼굴’ ‘하나의 믿음’을 고백하기 위해 모인 곳입니다. 이는 ’가톨릭‘의 얼굴을 분명히 드러내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기쁨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레바논에서 오신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중동에서 고통받는 모든 분께 저의 기도와 사랑하는 여러분 조국에 대한 저의 친밀감을 확신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한 얼굴에서 조화를 찾는 다양한 역사와 다른 얼굴로 구성된 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요한 7,37-3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곳 바레인도 광활한 사막임에도 불구하고 담수가 지하에 흐르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삶에서 믿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아름다운 이미지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인류가 두려움, 심각한 문제들과 약점으로 ’마른‘ 것처럼 보일지라도 성령은 우리 마음과 영혼의 친밀함 속에서 우리의 사막을 새롭게 하고 메마른 자에게 생명을 회복시켜 주시며 모든 흙을 씻어냅니다. 또한 우리의 행복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 줍니다. 성령은 항상 생명을 회복시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물입니다. 이것이 그분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새 생명의 샘입니다. 그것은 성령의 선물이며, 우리 안에 있는 부드럽고 사랑이 많으며 젊어지게 하는 하느님의 임재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찔린 상처‘에서 성령 안에서 중생(重生, 거듭남)의 물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공로나 신조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의 생수를 받아 하느님의 사랑하는 자녀가 되어 서로 형제자매가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창조입니다. 모든 것은 은혜에서 흘러나오고 모든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들에게 부여하시고 우리에게 환영하고 계발하라고 명하시는 ‘세 가지 큰 선물’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기쁨의 선물’로 성령이 바로 기쁨의 샘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인간성의 ‘사막’에 흐르기를 바라시는 담수는 우리가 삶의 여정에서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성령은 고요하고 부드러운 임재로 우리를 위로하고, 사랑으로 우리를 동반하고, 모든 어려움에서 우리를 지원하고,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꿈과 가장 깊은 욕망을 격려하고, 삶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열어 주는 보혜사이십니다. 그러나 성령의 기쁨은 이따금 느끼는 감정이나 순간적인 감정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생겨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때때로 견디는 고군분투와 어두운 밤에 길을 잃을 때에도 우리와 함께하기 때문에 패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라면 고통과 죽음의 심연까지 직면하는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기쁨을 보존하고 그 기쁨이 더욱 커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교의 기쁨은 자연스럽게 전염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우리 자신을 넘어 하느님 사랑의 아름다움을 나누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쁨이 흐려지거나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공유되지 않은 채로 남겨지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천이자 정점인 미사와 전례를 거행하면서 특히 젊은이들과 가족들에게 활발한 사목활동을 통해 복음의 기쁨을 전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사제직과 수도생활에 대한 성소를 육성함으로써 가능해집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혼자 간직할 수 없습니다. 일단 퍼지기 시작하면 그 기쁨은 배가 됩니다. 

두 번째로 성령은 ‘일치의 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 하느님 자녀가 되고, 하느님 자녀인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가 됩니다. 이것은 더 이상 육체의 일, 분파, 다툼, 중상 및 험담과 같은 이기적인 행위가 있을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세속적 분열뿐 아니라 민족적, 문화적, 의식적 차이도 성령의 일치를 손상시키거나 타협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불은 세상 욕망을 불태우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따뜻하고 자비로운 사랑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사랑의 언어를 시작하십니다. 성령은 수용과 대화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불신과 증오의 장벽을 허물었습니다. 또한 성령은 우리를 두려움에서 해방시키고 무장해제하는 자비의 힘으로 밖에 나가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용기를 주십니다. 바로 이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며, 오순절을 기점으로 교회가 시작될 때부터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 신뢰할 수 있도록 우리끼리 형제애를 나누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속한 지역사회, 종교단체, 가족, 다종교 및 다문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게 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미 이러한 길을 걷는 모범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형제애와 친교는 결코 지겹지 않게 성령께 간구할 수 있는 선물입니다. 항상 잡초를 뿌리는 적을 물리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세 번째 성령은 ’예언의 샘‘입니다. 구원의 역사는 하느님이 부르신 선지자들로 가득 차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예언자들은 성령의 내적 빛을 받아 실재에 대한 주의 깊은 해석가가 되어 모호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하느님 임재를 인식할 수 있고, 인간들의 말이 가증스러운 경우 사람들에게 이를 알릴 수 있었습니다. 예언자들은 악과 거짓을 지적하고 회심을 요구합니다. 우리에게도 예언적 소명이 있습니다. 세례를 받는 사람은 다 성령을 받아 선지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조용히 살고 손이 더럽혀지지 않기 위해 악행을 못 본 척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죄수를 방문하는 것과 같은 의미 있는 제스처를 포함하여 매일 살아 있는 증인으로 복음을 선포하면서 그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수감자들을 돌보는 것은 인간 공동체로서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입니다. ’가장 미소한 사람들‘이 대우받는 방식이 사회의 존엄성과 희망의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확고부동함과 기쁨으로 영적, 교회적 여정에서 인내할 것을 권장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아라비아의 성모님을 공경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항상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우리를 기쁨과 애정과 사랑으로 하나되게 하소서.” 

한편 프란치스코 교종은 성심 성당을 떠나기 전 신자들과 함께 삼종기도를 바친 후 짤막한 연설을 통해 세계가 전쟁을 겪고 있는 가운데 평화를 위한 신자들의 기도를 요청하고 특히 에티오피아와 우크라이나에 관심을 돌렸다. 교종은 “에티오피아 상황과 관련하여 체결된 협정은 희망입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대화의 길이 계속되고 사람들이 곧 평화롭고 품위 있는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항구적인 평화를 위한 이 노력을 모든 사람이 지원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또한 이 전쟁이 끝날 수 있도록 고통받는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교종, 바레인 사도적 순방 마치고 바티칸 귀환

프란치스코 교종은 자신의 39번째 사도적 순방을 마치고 11월6일 오후 1시16분 바레인 중부도시 아왈리 공군기지에서 공식 환송행사를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 이날 공항에는 하마드 빈 이사알 칼리파 국왕을 비롯한 왕세자와 왕족들과 정부관리, 알아즈하르 대이맘 등 종교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해 교종을 환송했다. 바레인을 떠난 교종의 탑승기는 약 6시간 비행 후 현지 시간 오후 5시경 로마 파우미치노 공항에 도착했다. 기내에서도 프란치스코 교종은 수행 기자단과 장시간에 걸쳐 1문1답 형식의 기자회견을 가졌다. 로마에 도착한 교종은 바티칸으로 가는 길에 관례적으로 로마 시내 성모 마리아 대성당 마리아 살루스 포퓰리 로마니(로마 백성의 구원) 성화 앞에서 바레인 왕국 사도적 여정을 무사히 마친 데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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