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장기풍)

“고통받는 세상 어린이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세계 신자들과 함께 하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11월 기도 지향

프란치스코 교종은 전 세계 신자들과 함께 하는 11월 기도 지향을 발표하면서 전 세계 고통받는 수백만 명의 어린이와 특히 노숙자, 고아, 전쟁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모든 사람을 초대했다. 메시지 내용.

“버려진 어린이들은 우리들 잘못입니다.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전 세계의 빈곤과 갈등으로 버려지고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촉구합니다. 아직도 수백만 명 소년소녀들이 노예와 같은 환경에서 고통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하느님이 부여하신 이름과 정체성을 가진 인간들입니다. 지금 학교도, 가족도, 의료서비스도 없이 살아가는 모든 소외된 어린이들은 하느님을 향해 ‘울부짖는 소리’입니다. 또한 우리 어른들이 만든 제도를 부끄럽게 하는 ‘외침’입니다. 따라서 모든 어린이가 기본적인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어야 하며 가족의 따뜻함과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잊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게 하는 ‘가족의 사랑’입니다. 어떤 어린이도 혼자 남겨지거나 버림받았다고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들 책임입니다.” 유엔기구 유니세프에 따르면 현재 10억 명 어린이들이 교육, 의료, 쉼터, 음식, 위생 또는 물에 대한 기본적 접근이 불가능한 ‘다차원적 빈곤’ 속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어린이 1억 5300만 명이 고아로 추산되고 있다.

 

"언제는 지금이며, 그것은 우리 손에 달려 있습니다"

교종, 11월2일 위령의 날 미사 강론, 죽음과 삶의 의미 성찰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2일 오전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미사를 집전하고 지난 한 해 사망한 추기경과 주교들을 기억하면서 이날 복음(마태 25,1-13)에 나타난 ‘기대’와 ‘놀라움’이라는 두 단어를 집중적으로 묵상했다. 강론 내용.

‘기대’라는 단어는 우리 삶의 의미를 표현합니다. 우리는 만남, 즉 오늘날 우리 중보기도의 이유인 하느님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자여 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의 기다림은 어떻게 되는가? 나는 필수적인 것을 기대하며 나의 희망을 키우고 있는가, 아니면 너무 많은 것을 가치 있게 여기기 때문에 계속 신음하고 있는가?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이 내일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도움이 됩니다. 

두 번째 단어 ‘놀라움’이 여기서 나옵니다. 저는 마태오 복음 25장을 읽을 때마다 큰 놀라움이 생깁니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37절)라고 말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우리가 언제....?"라는 구절은 모든 사람의 놀라움, 의인의 놀라움, 불의한 사람들의 경악을 표현합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생명과 세계에 대한 심판이 정의의 깃발 아래 모든 요소를 ​​샅샅이 훑어보고 상황과 의도를 영원히 밝혀줄 결정적인 재판소 앞에서 심판이 내려지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느님의 최후 법정에서 공로와 비난의 유일한 기준은 가난한 자와 버림받은 자에 대한 자비입니다. 

다음은 ’놀라움‘이라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 우리가 그런 적이 있었습니까?"라는 구절은 정의로운 사람과 불의한 사람 모두 놀라움으로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말입니다. 그것에 대한 답은 단 하나입니다. '언제'는 지금입니다. 그것은 우리 손에, 우리의 자비로운 행위에 있습니다. 결코 세련된 분석이나 개인 또는 사회적 정당화에 있지 않습니다. 죽음이 생명을 진리로 만들기 위해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자비에 대한 기준은 참을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제거합니다. 복음은 기다림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이신 하느님을 만나러 갑니다. 세상의 가난하고 상처받은 자들 가운데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임재이며, 말씀으로가 아닌 하느님의 사랑으로 어루만지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종은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모든 죽은 이를 위한 미사를 봉헌한 후 바티칸 정원에 있는 공동묘지를 방문해 묘지를 돌보는 수녀들과 바티칸 산타마리아 튜턴 대학 총장, 부총장 등과 함께. 이곳에 안장된 고인들을 위한 기도를 마친 뒤 묘지를 축복했다.

 

교종, “바레인 사도적 여정을 성모님께 맡깁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3일 아침 바레인 출발을 앞두고 관례적으로 전날 오후 로마 시내 성모 마리아 대성당 마리아 살루스 포퓰리 로마니(로마 백성의 구원 Maria Salus Populi Romani) 성화 앞에서 기도하면서 바레인 왕국 사도적 여정을 성모님의 보호에 맡겼다. 바티칸 공보실에 따르면 교종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방문은 재위기간 100번째였다. 교종은 3일 아침 로마 피우미치노 국제공항에서 바레인으로 출발 당일 오후 4시45분(현지 시간) 바레인 아왈리 사히르 공군기지에 도착해 3박4일 사도적 순방 일정을 시작한다. 바레인에 도착한 교종은 사히르 왕궁에서 하마드 국왕과 만나고 바레인 정부당국, 시민 사회, 외교단을 만나 연설할 예정이다. 또한 교종은 바레인 방문 기간 ‘인간 공존을 위한 동양과 서양’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춘 바레인 대화 포럼에서 연설한다. 

다음 날 금요일 교종은 바레인 대화 포럼 폐회식에 참석 연설한 후 알 아자르 그랜드 이맘을 개인적으로 만난 후 이슬람 장로위원회 구성원들을 만나 연설할 예정이다. 그 후 교종은 아왈리 아라비아 성모 성당에서 에큐메니칼 모임과 평화를 위한 기도를 가질 예정이며, 5일 아침 바레인 국립경기장에서 가톨릭 신자들을 위해 미사를 집전한다. 그리고 오후에는 성심학교(Sacred Heart School)에서 젊은이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진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바레인 방문은 6일 일요일 아침 마나마 성심 교회에서 현지 주교, 사제, 봉헌생활자, 신학생, 목회자들과 함께하는 기도 모임으로 일정을 마친다. 교종은 당일 오후 5시경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정의와 자비를 통한 평화의 건설자가 됩시다”

교종, 11월1일 모든 성인 대축일 삼종기도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1일 낮 성 베드로광장 발코니에서 행한 모든 성인 대축일 삼종기도를 이끌면서 가르침을 통해 모든 성인의 삶은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평화를 이루는 사람으로 살도록 영감을 줄 수 있으며 자비와 사랑, 정의의 활동을 통해 평화로 가는 길을 담대하게 건설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종은 이날 복음(마태 5,1-12ㄴ)인 예수님의 진복팔단을 묵상하면서 이는 모든 성인을 위한 ‘신분증’의 한 형태라고 말했다. 가르침 내용.

우리는 모든 성인이 ‘완벽하고 정확한’ 삶을 살았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기보다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팔복이 오히려 방정식의 다른 측면을 보여 줍니다. 성인들은 근본적으로 ‘반문화적이고 혁명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9절)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우리가 상상하거나 정의하고자 하는 평화와 매우 다릅니다. 종종 우리에게 ‘평화’의 정의는 혼란이나 문제 없이 홀로 남겨지는 고요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이루게 하는 자로서 행동하고 정의와 자비의 일을 통해 평화를 건설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성경은 '평화의 씨뿌리기'가 생명의 흙 즉, 우리 마음의 씨앗에서 싹트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빛나는 증인들이 보여 주듯이 평화는 정의와 자비의 행위를 통해 날마다 침묵 속에서 자라납니다. 예수님과 성인들의 생애는 우리들에게 ‘평화의 씨가 먼저 죽어야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평화는 누군가를 정복하거나 무찌르는 것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결코 폭력적이지 않고 무장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평화를 이루는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모두 날카로운 말을 하거나 공격적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평화를 이루는 자가 되는 첫 번째 단계는 예수님께 마음을 열고 그분의 십자가 앞에서 고해성사를 통해 용서와 평화로 마음의 무장을 해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시작하는 곳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자가 되고 성인이 되는 것은 우리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 선물이며 은혜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일상생활에서 평화를 원하는지, 아니면 일상적 행동을 통해 고통, 가십, 논쟁을 가져오고 싶은지 자문해야 합니다. 평화를 이루는 것은 주변 사람들을 돌보고, 불의에 맞서며,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평화의 길을 닦는 사람들은 예수님 말씀대로 궁극적으로 하늘에서 영원한 상급을 받고 '하느님 자녀'라 불리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오늘날 세상에서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지상의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은 하느님과 가장 가까울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아무도 해치지 않는 사람이 결국 승리합니다. 시편에 '평화로운 이에게는 후손이 이어지리라‘(시편 37,37)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성인의 여왕이신 동정 마리아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평화를 이루는 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청합니다.

 

교종, “저의 바레인 여행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프란치스코 교종은 삼종기도 후 곧 있을 자신의 바레인 사도여행(11월3-6일)의 모든 모임과 행사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형제애와 평화를 증진하는 유익한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신자들에게 기도해 줄 것을 당부하면서 이번 여행에 대해 설명했다. 말씀 내용.

저는 이번 목요일 중동 바레인 왕국을 방문해 일요일까지 머무를 것입니다. 이번 여행은 ‘대화’의 기치 아래 이루어질 여행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나라에 있는 동안 '바레인 대화 포럼: 인류 공존을 위한 동서양'에 참석할 예정이며, 이 포럼은 인류 공존을 위해 '동서양이 보다 긴밀하게 협력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필요성'을 주제로 삼을 예정입니다. 특히 저는 이번 여행 중 여러 종교 대표자, 특히 이슬람교도들과 교류할 기회를 가질 것입니다. 포럼 후에는 셰이크 아흐마드 무하마드 알 타예브  알 아즈하르 대이맘과 이슬람 장로협의회 회원들과 만날 것입니다. 이러한 만남 후에는 아왈리 아라비아 성모 성당에서 다양한 그리스도교 교파 구성원들과 에큐메니칼 모임과 평화를 위한 기도가 이어집니다. 이러한 모든 모임과 행사가 우리 시대 절실히 필요한 형제애와 평화를 향하는 유익한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모든 사람이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또한 ‘순교한 우크라이나’를 잊지 말고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깃들도록 기도합시다, 또 올해 성 베드로광장에서 “미시오니 돈 보스코 재단이 주최하는 10킬로미터 달리기 경주 참가자들을 환영합니다. 여러분의 아름다운 이니셔티브에 감사드립니다! 콩고 어린이들의 어려움을 잊지 말고 기도합시다.

 

“저널리스트들은 인내와 비전이 절대로 중요합니다”

교종, 이탈리아 ‘커뮤니케이션 조정 협회’ 회원들에게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10월31일 창립 25주년을 기념하는 이탈리아 커뮤니케이션 조정협회(Coordination of Communication Associations) 회원들을 만나 저널리스트들이 효과적인 방식으로 일할 수 있도록 네 가지 주요 사항을 강조했다. 연설 내용.

이탈리아 커뮤니케이션 조정협회 회원 여러분은 창립 25주년을 계기로 몇 가지 목표들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여러분의 첫 번째 목표는 ‘협조’입니다. 이는 구체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현실을 하나로 모으는 중요한 목표입니다. 쉬운 일이 아니라 인내와 비전, 화합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25년 동안 이미 조정 작업을 개선할 수 있는 풍부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두 번째 목표는 ‘변화’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단순한 ‘변화의 시대’가 아닌 ‘시대의 변화'라는 것을 계속 관찰해 왔습니다. 여러분은 이를 염두에 두고 현 시대가 제시하는 도전과 기회에 맞서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모두 ’변화의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변화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것, 그러면서도 항상 새로운 것에 놀라는 태도에서 출발해 자신의 존재 방식과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늘 조심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셋째 목표는 ’만남, 듣기, 말하기‘입니다. 이것들은 훌륭한 의사소통의 ’A, B, C'입니다. 모든 좋은 의사소통을 뒷받침하는 역동성이기 때문입니다. 만남은 앞에 있는 사람에게 가식 없이 마음을 여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남은 지식의 전제 조건’입니다. 만남이 없으면 소통도 없습니다. 그리고 경청은 무엇보다 먼저 내면에서 침묵하는 법을 배우고 상대의 말을 경청함으로써 상대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항상 이런 원칙에 따라 행동하십시오,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형용사보다는 항상 명사, 즉 사람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여러분이 집중하는 네 번째이자 마지막 목표는 ‘시노드의 길’입니다. 교회가 시노드 방식으로 걷는 것은 ‘온전한 교회생활’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국가적 협회로서 여성과 남성의 필요와 희망에 대해 매일 개념과 이론을 측정하는 곳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저널리스트와 커뮤니케이터의 수호성인 성 프란치스코 드 살과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세계에서 창의적이고 독창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주신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의 전구에 맡깁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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