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20세기 소녀’는 10월 21일에 공개되어 한 주 만에 세계 2위까지 상승했다. 그간 세계적으로 시청 순위 상위권에 올랐던 K-콘텐츠는 영화와 드라마를 포함하여 ‘킹덤’, ‘스위트홈’,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수리남’, ‘#살아있다’처럼 강렬한 이야기와 장르의 작품이 주를 이루었다. ‘사랑의 불시착’,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처럼 롱런하며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경우도 있지만, K-콘텐츠 하면 대개 익스트림 장르에 강렬한 소재와 주제의식이 담긴 작품을 떠올리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OTT뿐만 아니라 공중파 드라마와 극장 영화도 비슷하다.

스릴러, 호러, 액션 등 K-콘텐츠라면 빠르고 역동적이며 깜짝 놀랄 극적인 상황들이 펼쳐질 것을 기대하는 소비 경향에서 서정적인 정통 로맨스 드라마 ‘20세기 소녀’가 깜짝 유행하고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 K-무비의 다양함을 자랑할 수 있는 호기로 보인다. K-콘텐츠가 강한 것도 잘하지만 말랑말랑한 것도 잘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계기처럼 느껴져서 반가운 일이다.

'20세기 소녀', 방우리, 2022. (포스터 제공 = (주)용필름)
'20세기 소녀', 방우리, 2022. (포스터 제공 = (주)용필름)

‘20세기 소녀’는 제목이 주는 정보대로, 20세기의 소녀가 겪은 첫사랑의 열병을 담은 영화다. 첫사랑 영화들은 대개, 어른이 된 화자가 시간을 거슬러 돌아가서 사랑의 설렘과 두근거림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그 사랑의 대상이 현재는 어떤 관계로 이어지는지를 미스터리하게 추리해 나가는 구조를 취한다.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누가 여주인공의 남편이 될 것인지가 국민 퀴즈인 양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것을 기억해 보면, 첫사랑 로맨스물에서 회상과 추리는 하나의 장르 컨벤션이 되었다.

첫사랑 영화 하면 ‘클래식’, '건축학개론', ‘너의 결혼식’ 같은 영화가 금세 떠오르고, 손예진, 수지, 박보영을 국민 첫사랑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더 멀리는 이명세 감독, 김혜수 주연의 ‘첫사랑’(1993)이 있는데, 첫사랑의 설렘, 기쁨과 슬픔을 예술적인 영상언어로 그려낸 수작이다. ‘말할 수 없는 비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나의 소녀시대’ 같은 타이완 청춘 로맨스는 특유의 서정적 무드로 첫사랑 소녀를 그리며 십대 시절로 돌아가는 정화의 순간을 경험하게 하는 수작이다.

'20세기 소녀'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주)용필름)<br>
'20세기 소녀'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주)용필름)

남성 화자의 경우, 첫사랑 소녀를 회상하며 궁금해 하고, 여성 화자의 경우, 첫사랑 소년을 회상하며 궁금해 하는데, 주인공의 성별에 따라 사랑의 대상은 하나의 순수하고 이상적인 이미지로 그려지면서 신비함이 강조된다. 수년이 흐른 후, 두 사람이 연애를 하고 있을까, 결혼을 했을까가 주된 관심사다. 결혼이 모든 일의 종착지일 리는 없다. 그러나 동화와 민담은 결혼으로 귀결되곤 하는데, 이러한 보수적 진행은 문제적이지만 사람은 대부분 결혼을 생각한다는 점에서 가장 보편적인 일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청춘 로맨스물은 성별과 세대를 불문하고 관심을 모은다.

2019년 어른이 된 보라(한효주)에게 낡은 비디오테이프가 배달되면서 시작된 이야기는 1999년 17세 소녀 보라(김유정)와 함께 시청자를 20세기의 첫사랑 기억 속으로 안내한다. 친구의 짝사랑을 관찰하다 사랑에 빠진 소녀의 이야기는 1999년에 학창 시절을 보낸 신예 방우리 감독의 자전적인 기억에서 출발했다.

삐삐, 비디오테이프, 무비카메라, 공중전화기, 통 넓은 힙합바지, 디스코 팡팡, 음료수 맥콜 등 이제는 보기 힘든 물건들이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소품으로 활용되면서 중년세대에게는 향수를, 젊은 세대에게는 낯설고 신기한 재미를 전한다. 영화는 세기말의 들뜬 감정과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채색되어 있고, 명랑하고 엉뚱한 보라의 시각을 따라 첫사랑의 열병과 기쁨, 그리고 고통을 느끼다 보면, 어느새 IMF 직후의 우울했던 사회 분위기가 지워지고 그 시절은 아름답게 남는다.

'20세기 소녀'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주)용필름)<br>
'20세기 소녀'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주)용필름)

영화에서 교훈이나 주제의식을 꼭 찾아야만 하는 건 아니다. 설레고, 몽글몽글하고, 행복하고, 또 아련하고 고통스러웠던 십대의 불안정함, 그 중심에 네가 있었고, 너를 사랑했던 나 자신이 좋았던 그때를 추억해 보는 즐거움이 이 영화에 있다. 그러기에 남몰래 아끼며 거듭 꺼내 볼 이런 귀여운 청춘 로맨스 한편이 몹시도 반갑다.

누구나 경험했던, 혹은 경험하고 있는 젊음과 사랑, 그 소중한 것을 다시 꺼내 보게만 하여도 이 영화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카메라가 클로즈업으로 가까이 다가서면 진짜 내 마음도 설레게 하는 출중한 외모와 연기력으로 가슴 떨리게 하는 청춘스타들이 포진한 가운데, 곳곳에 카메오로 등장하는 중년 배우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놓칠 수 없는, 사랑스러운 영화다.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Pea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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