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9일자로 넷플릭스에는 6부작 드라마 ‘수리남’이 공개되었다. 남아메리카 동북부에 위치한 나라 수리남은 400년 가까이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1975년도에 독립한 인구 50만의 작은 나라다. 친숙하지는 못한 수리남을 제목으로 한 신작 드라마는 수리남을 거점으로 마약왕이 된 실제 인물 조봉행의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드라마가 공개된 지 이틀 만에 넷플릭스 시청 세계 순위 8위로 시작해서 13일에 3위까지 상승했다. 현재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와 IMDB에서도 글로벌 유저들의 평가가 순항 중이어서 곧 넷플릭스 시청 순위 1위를 탈환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하게 된다.

‘오징어 게임’의 비 영어권 최초 에미상 수상이라는 낭보가 전해진 가운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선방하고 있지만 ‘지금 우리 학교는’과 ‘소년심판’ 이후 뜸했던 K-드라마의 글로벌 유행을 고대하게 한다. 이 드라마를 팬심으로 시청한 건 한국인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수리남', 윤종빈, 권성휘, 2022.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수리남' 페이지 갈무리)
'수리남', 윤종빈, 권성휘, 2022.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수리남' 페이지 갈무리)

팬데믹과 OTT를 둘러싼 미디어 환경 변화

최근 영화감독들이 대거 드라마계로 이동하면서 영화적 퀄리티와 룩을 가진 TV와 OTT용 드라마의 제작이 활발해진 점은 팬데믹 이후 달라진 미디어 환경과 관련이 있다. 가령 ‘오징어 게임’은 분명 9회차 시리즈 드라마로 제작되었지만 보는 이들 입장에서는 9시간 러닝타임의 영화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미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는 무너졌고 수용자 입장에서 이것이 드라마인지 영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글로벌 차원에서도 한국 영화와 한국 드라마는 K-콘텐츠라는 용어로 한데 묶어 지칭된다.

공교롭게도 13일에는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수상과 함께 영화계 빅뉴스가 하나 있었다. 196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의 대표 주자로서 현대 영화의 문을 활짝 열고, 영화 진화의 최전선에 늘 위치하며 영화의 미래를 보여 줬던 위대한 감독 장 뤽 고다르가 사망했다는 소식이다. 두 사건은 필자에게 영화의 종언 위에 영상 콘텐츠가 서 있는 메타포처럼 느껴졌다.

‘수리남’ 마약과의 전쟁

다시 ‘수리남’ 이야기로 돌아오면, 이 작품은 ‘범죄와의 전쟁’과 ‘공작’으로 비평과 흥행 양쪽에서 모두 인정받는 윤종빈 감독이 처음으로 시도하는 드라마다. 윤종빈의 페르소나인 하정우가 화자로 등장하여 이야기를 끌어가고, 황정민, 박해진, 조우진, 유연석, 타이완 배우 장첸 등이 연기한다. 마약 범죄 조직과 국정원이 수리남에서 마약소통 작전을 둘러싸고 벌이는 일대 전투를 실감나게 그리는 스릴러 장르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유년기부터 가장이 되어 고생하던 강인구(하정우)는 홍어 사업을 위해 수리남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한인교회 목사인 전요환(황정민)을 만나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전요환의 실체는 일대를 주름잡는 마약왕이다. 전요환으로 인해 사업을 망치고 감옥에 갇힌 강인구에게 국정원 요원 최창호(박해수)가 접근해 전요환을 잡는 일에 함께할 것을 제안하는 것이 1화의 전개다.

총 6화로 이루어진 드라마는 6시간 러닝타임의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1화에 강인구의 인생 여정에 대한 스케치가 이루어지고, 주요 인물들이 소개가 된 후, 2화에서는 본격적으로 마약조직 소탕 작전이 펼쳐지는 한 편의 케이퍼 무비처럼 스피디하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윤종빈 감독은 한국인이 남미에서 마약왕이 되었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처음에 영화로 기획했다가 넷플릭스의 제안을 받고 방대한 이야기에는 시리즈가 더 어울릴 것으로 판단하여 넷플릭스 행을 결정했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수리남' 페이지 갈무리)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수리남' 페이지 갈무리)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K-드라마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스릴러, 미스터리, 호러 등 상업 장르의 틀 안에 자본주의 사회 비판의 메시지를 녹여내며, 한국적 공간과 캐릭터를 활용한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또한 세대 갈등과 경제적 양극화, 정치적 상황이 적절히 반영이 되면서도 재미로 무장하고 있어, 드라마를 감상할 때 메시지와 오락 두 가지가 적절한 균형을 발휘한다.

윤종빈 감독은 이미 전작 영화들에서 가까운 과거 시대를 배경으로 실화를 극화한 작업을 성공적으로 보여 주었다. ‘수리남’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는 작품이다. 한국에서도 마약을 다룬 작품들이 많지만 해외에는 마약 소재와 강력한 폭력 장면이 결합된 강렬한 대작들이 많으므로 ‘수리남’이 차별화되기 위해서는 더 한국적인 상황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다.

서로 속고 속이는 심리전에 트릭과 음모는 거듭된 반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장르 법칙은 흔히 보아온 것이다. 범죄조직 내에 침투한 국정원 비밀 요원의 정체는 드라마 막바지까지 서스펜스를 끌어가는 요인이 된다. 전요환 교회 구성원 모든 인물들이 용의선 상에 오르며 시청자로 하여금 추리에 동참하는 묘미를 발휘하게 하면서 끝까지 몰입감을 이끌어낸다.

결국 드라마로서 가장과 가족애를 부각시키지만 신파로 흐르지는 않으면서 적절한 감정적 강도로 표현되고, 여성 캐릭터가 거의 활약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이하지만 그만큼 여성 캐릭터를 소모하고 있지 않은 점은 장점으로 작용한다. 불편하거나 조마조마한 감정이 없이 이야기 전개를 쭉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보편과 특수의 적절한 균형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가득한 평범한 민간인이 이상한 일에 연루가 되고,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가운데 인간으로서의 승부욕과 책임감, 그리고 보상에 대한 욕망으로 끝까지 가 본다는 것이 서사를 끄는 동력이다. 어쩌면 이와 같은 몹시도 인간적인 이유가 주인공을 움직이고, 그러한 감정은 초반에 조금씩 쌓아가는 논리적 빌드업으로 인해 시청자를 설득한다. 장르 규칙의 보편성과 한국적 상황과 정서라는 특수성이 결합된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다.

하정우는 돌아왔고, 황정민은 전작 캐릭터들과 비슷하지만 여전히 잘한다. 조우진은 다시 보게 되고, 윤종빈 감독은 확실히 봉준호 감독 다음 세대로서의 깊이를 보여 준다. 다시 한번 기대하게 만드는 K-드라마다.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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