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는 할리우드처럼 다양한 장르로 분화되면서 양적, 질적으로 영화 강국에 올라섰다. 이전에는 멜로드라마, 액션, 코미디, 사극 정도에서 역량을 발휘했고, 스릴러, 미스터리, 호러, 누아르, SF 등에서는 기실 어설픈 점이 있었다. 코리언 뉴웨이브라 지칭되는 1990년대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한국영화 산업에 새로이 등장한 인력은 현대적인 감식안을 가진 관객의 구미에 맞추어 치밀한 시나리오와 세련된 연출력으로 무장했다. 이들은 할리우드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장르영화의 시대를 활짝 열었고, 장르 마니아 관객은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한국영화의 글로벌화를 만들어 나갔다.

그러나 한국에서 취약한 장르가 하나 있다. 시도가 활발하지도 않았거니와 성공한 작품도 없었다. 바로 뮤지컬인데, 무대 뮤지컬이 세계 4대 뮤지컬 시장에 들어가는 현실을 생각하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춤과 노래의 뮤지컬뿐만 아니라 댄스영화나 음악영화도 번번히 실패를 맛봤다.  최근 몇 년 동안에도 ‘라라랜드’, ‘위대한 쇼맨’, ‘알라딘’ 같은 할리우드 뮤지컬이 크게 흥행하고, ‘보헤미안 랩소디’ 같은 음악영화는 흥행의 보증수표처럼 되어 있지만, 한국 뮤지컬 영화를 극장가에서 찾아보기는 힘들다.

‘구미호 가족’(2006). ‘삼거리 극장’(2006)처럼 꽤 괜찮았던 뮤지컬이 흥행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고예산으로 도전한 춤영화 ‘스윙키즈’(2018)가 초라하게 막을 내리면서 뮤지컬 영화에 도전하는 일은 창작자 입장에서는 위험성이 여전히 크다. 이런 가운데, 무대 뮤지컬의 영화화도 아닌 오리지널 창작 뮤지컬 영화가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 최국희, 2022. (포스터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인생은 아름다워', 최국희, 2022. (포스터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인생은 아름다워’는 16년 만에 극장가에 걸린 한국 뮤지컬 영화로 ‘국가부도의 날’을 만든 최국희 감독이 연출했다. 영화는 대중음악을 소재로 스토리를 엮는 뮤지컬을 지칭하는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맘마미아’가 아바의 히트곡으로 이야기를 구성했듯이, 이미 잘 알려진 노래의 가사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진행하여 관객에게 친숙하게 받아들여지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노래가 갖는 향수에 기대어 스토리라인의 개연성이나 설득력이 부족하여 영화적 완성도가 미흡할 수 있는 문제점을 동시에 안고 있기도 하다.

영화에는 염정아와 류승룡이 부부로 나와 춤추고 노래하며, 우리에게 익숙한 가요들이 이야기 진행의 적절한 곳에 배치되어 있다. 두 사람이 데이트를 하는 서울극장의 만남에서 영화의 막을 열며 노래 ‘조조할인’으로 사랑의 설렘을 전하고, 두 사람의 사랑의 애환을 담은 마지막노래 ‘세월이 가면’으로 마무리된다. 신중현, 최백호, 이문세, 이승철 등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14곡의 가요 레퍼토리를 따라 이야기가 전개된다.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지난해 문을 닫은 서울극장과 사라진 것에 대한 향수를 되살리는 영화라는 매체의 의미가 연결되는 가운데, 만났다가 헤어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노래와 기억으로 남는 존재의 의미가 가슴에 깊이 박힌다. 주크박스 뮤지컬이 복잡한 스토리라인을 가질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으로 인해 이 영화의 이야기 구조 또한 단순하다.      

무뚝뚝한 남편 진봉(류승룡)과 무심한 아들 딸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세연(염정아)은 시한부 환자임을 병원에서 통보받고 남편에게 자신의 마지막 생일선물로 문득 떠오른 첫사랑을 찾아 달라는 요구를 한다. 어쩔 수 없이 여행길에 따라나선 진봉은 첫사랑 이름 석 자만 가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다. 첫사랑 찾아가기 여정에서 친구들의 숨겨진 사연이 펼쳐지고, 남편과 자녀가 세연의 남은 생을 위해 할 일을 하는 남은 이야기가 전개되는 가운데, 영화는 두 사람의 연애와 결혼에 민주화투쟁과 IMF를 경유하며 사회상을 녹여낸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와서는 누군가의 부재를 맞이하는 가족의 바람직한 자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nbsp;롯데엔터테인먼트)<br>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써니’처럼 1980년대를 키치적으로 소환하여 젊은 세대에게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기성세대에게는 향수를 선사한다는 전략을 가지지만 시대를 깊이 있게 관통하지는 않는다. 영화는 코미디이고 뮤지컬이기에 무거운 것을 기대하기는 무리다. 두 중년 배우가 연기하는 풋풋한 스무 살 이야기에의 몰입을 깨며 키득거리게 만들고, 노래와 노래 사이,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의 간혹 느슨한 연결은 어색한 느낌으로 남는다. 예측할 만한 전개는 진부하게 다가온다. 그런데도 영화는 심금을 울린다. 노래의 힘일까, 가족 드라마가 가진 감동 때문일까, 능청스러운 연기자들의 설득력 때문일까. 젊은 날에 대한 향수 때문일까.

오랜만에 시도되는 한국 뮤지컬 영화가 이번만큼은 성과를 내고 다음 작품이 만들어질 기반이 만들어지길 기대하면서 영화의 의미 있는 성공을 지켜보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런 거창한 의미 말고도, 잘 만들어서 경탄하는 영화는 아니어도, 다시 가족과 친구를 찾게 하는 이상한 힘이 있는 정서적 울림 때문에 ‘인생은 아름다워’는 볼 만한 영화다.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nbsp;롯데엔터테인먼트)<br>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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