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한 수도원 신부님과 “유사 성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 대화를 통해, 성물 본래의 의미를 살리지 않거나 왜곡하여 만든 성물이 있고 일부 신자들은 이런 걸 모르고 구매 사용하고 있음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 신부님은 이걸 어떤 방식으로 알리고 바로잡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교회를 이끌고 있는 주교회의에서 교통정리를 해 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해 보였기에  왜곡되거나 악의적으로 제작된 성물을 조사하여 주교회의에 알렸는데,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던 당시에는 답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고 다행히도 2021년 12월 28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무처는 외국에서 발견되었던 변형되고 왜곡된 성물(묵주, 기적의 메달, 스카풀라 등)들에 대해 주의를 요청하는 공문을 모든 교구에 보냈습니다. 공문은 “일부 제작자들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가톨릭 성화상이나 거룩한 표지를 왜곡하여 유포하는 데 대하여 신자들이 경각심을 갖고, 모조품을 구입하여 잘못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예방”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https://www.cbck.or.kr/Notice/20211131?gb=K1200)

성물은 사제의 축복을 받아 사용하기에 단순한 장신구나 장식품이 아니란 건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성물이 상징하는 것은 교회의 가르침과 전통에 알맞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성물을 구입할 때에는 되도록 제작처나 판매처가 분명한 것을 선택하며, 성물의 품위나 상징에 의문이 있을 때에는 성직자, 수도자를 비롯한 교회 전문가들에게 문의해야 한다”고 주교회의는 안내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교회의 전례위원회는 “변형되고 왜곡된 성물”의 예로 일명 악마 묵주(satanic rosary)와 가짜 기적의 메달(fake miraculous sedal)을 들었습니다.

공인된 기적의 메달. (이미지 출처 = chapellenotredamedelamedaillemiraculeuse.com)
공인된 기적의 메달. (이미지 출처 = chapellenotredamedelamedaillemiraculeuse.com)

악마 묵주는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머리 위에 예수님이 어떤 신분이었는지를 라틴어로 적어놓은 표지인 INRI(유대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라는 이니셜이 아니라 유혹하는 자의 표상인 뱀의 머리가 있고, 십자 나무의 가장자리는 흔히 우상숭배를 상징하는 오각형이며 태양 광선이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제작처가 불분명한 이 상품은 국내 온라인 쇼핑몰에서 ‘플라스틱 묵주’ 또는 ‘묵주 목걸이’라는 품명으로 판매되며 심지어 세례 선물로 추천되는 사례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짜 기적의 메달은 1830년 프랑스 파리에서 성모님께서 가타리나 라부레 수녀에게 발현하셨을 때, 계시하신 말씀에 따라 만들어진 ‘기적의 메달’을 변형 왜곡한 상품입니다.

프랑스 주교단이 공인한 기적의 메달은 앞면의 중심에 성모님이, 둘레에는 프랑스어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님, 당신께 의지하는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O MARIE CONÇUE SANS PECHE PRIEZ POUR NOUS QUI AVONS RECOURS A VOUS)가 새겨져 있습니다. 뒷면에는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알파벳 M이 십자가의 받침을 꿰고 있으며, 알파벳 아래에는 가시관을 쓴 심장(예수 성심)과 칼에 찔린 심장(성모 성심)이 돋을 새김되어 있고, 십자가와 성심 둘레에 12개의 별이 6개씩 좌우 대칭으로 놓여 있습니다.

반면, 가짜 메달로 의심되는 상품들은 공인 기적의 메달 형상과는 다릅니다. 앞면 성모님의 윤곽은 흐릿하며 기도문의 일부가 임의로 삭제되었습니다. 어떤 것은 성모님 얼굴을 새부리처럼 왜곡시킨 것도 있다고 합니다. 뒷면에 있는 십자가가 흐릿하게 새겨졌거나, 십자가와 알파벳과 별들의 배열이 교묘하게 변형되어 있는 것도 있습니다.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의 형상에 가시관과 칼이 빠져 있는 상품도 있습니다. 이 모조품들은 온라인 귀금속 쇼핑몰이나 드물게는 성물 판매소를 표방하는 쇼핑몰에서도 발견되었다고 하니 각별히 주의를 요합니다.

모조 혹은 유사 성물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가톨릭교회에 악의적으로 반감을 가지는 이들의 소행일 수도 있고, 성물 제작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성물제작자들이 그 뜻도 모르고 만들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만큼 신자분들은 이번 기회에 사용하고 계신 성물의 의미를 정확히 확인하시면 좋겠습니다.

혹시나 왜곡된 성물에 해당하는 것으로 기도해 오신 분이 계시다면, 지금까지 바친 기도가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렸다 실망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정성된 마음을 다 보고 계셨을 것이라 믿습니다. 낙담하실 필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고요. 가짜 성물은 그냥 폐기하시면 되겠습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재단법인 기쁨나눔 자립준비청년 지원 총괄
서울특별시 꿈나무마을 청소년보육사목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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