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훈 신부 자서전 “성자와 죄수” 출간 인터뷰

서울대교구는 4개 교구로 나눠야
80년대에 여성 신자도 성체 분배
재개발은 개발 지역 주민을 위한 것이어야
운영 어려워진 삼양주민연대의 앞날 걱정

“시노달리티(공동합의성을 뜻하는 시노달리타스의 영어 표현)가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교회가 ‘우리’ 교회라는 거예요. 교황님의 교회, 추기경님의 교회도 아니고, 성직자의 교회도 아니에요. 우리 모두 위아래 없이 똑같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처럼 이 세상 사람들을 위하는 거에요. 개인 구원이나 천당에 가기 위해서 신앙생활하는 게 아니에요. 하느님이 아름답게 창조하신 이 세상을 우리 인간들이 더럽히고 망가뜨렸지만, 함께 손잡고 저 더러운 세상에 나가서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 시노달리티에요. 함께 한 식탁에 앉아서 똑같이 먹고 마시고, 같이 설거지하고 집을 청소하고, 화단을 예쁘게 하고, 그게 시노달리티지. 이것을 모두가 배워야 하지만, 교황님은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부터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세요.”

1966년 24살 청년일 때 고국 뉴질랜드를 떠나 여든이 된 지금까지 한국에서 빈민과 함께한 안광훈 신부.(로버트 존 브레넌,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최근 자서전 “성자와 죄수”를 펴낸 안 신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여태까지 쭉 신자들과 함께했어요. 신용조합을 만들고, 정선 성당을 짓는 것도 신자들이 했어요. 삼양주민연대도 지역주민들이 회원이에요. 일부는 신자고 일부는 개신교고 일부는 무신론자지만 같은 목적으로 함께했어요”라는 그의 말대로, 그는 56년간 가난한 이들과 ‘우리’의 교회를 이뤘다.

"성자와 죄수" 책 표지에는 지금 나이의 절반인 마흔 살의 안광훈 신부가 있다. 이 책에는 그가 살아온 날들의 이야기 말고도, 신학교 때 교육에 관한 감상, 역대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 그가 뽑은 시성 후보자, ‘지구 사제회의에 대해 그가 말할 수 있는 것’, ‘신부들은 미사를 드리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까?’, 그의 영성 등 교회와 한국 사회에 대한 솔직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몇몇 구절들은 주변 사람에게 읽어 주고 싶은 마음을 참기 어려울 정도다.

"성자와 죄수", 안광훈, (오정삼), 2021. (표지 제공 = 빛두레)<br>
"성자와 죄수", 안광훈, (오정삼), 2021. (표지 제공 = 빛두레)

교구가 크면 주교가 목자 역할 할 수 없어, 작은 교회 공동체 고민해야

그가 선교사제로 한국에 와서, 당시 “한국에서 가장 가난했던 지역 중 한 곳”이었던 강원도 정선에서 10년간 있으며, 주민들과 함께 신용협동조합을 만들고 병원이 없어 죽어간 이들을 보며 성프란치스코 병원을 세운 일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후 그는 1981년부터 서울 목동 성당 주임을 맡았다.

당시 “독서자와 성체분배 봉사자는 남자와 여자 모두 똑같이 할 수 있었고, 우리는 미사를 위해 다 함께 제단 둘레에 모여서 미사를 진행했다”(159쪽)고 한다. 성체를 모신 뒤에는 구역장들에게 축성된 성체를 나눠 주고 병든 신자들에게 보내 말씀의 전례를 행하고 성체를 모시게 했다.

마치 초기 교회 공동체를 떠오르게 하는 이런 전례 모습은 코로나 시대에도 유효하지 않을까? 그는 수천 명이 들어가는 큰 성당보다 이렇게 작은 공동체로 운영하면서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교회의 모습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선교 본당에 온 적 있어요? 일반 가정집인데, 거기에서 회의도 하고, 교육 프로그램도 하고, 미사도 봉헌하고, 같이 밥을 먹을 수도 있어요. 또 한 10명 규모로 요일별로 집마다 돌아가면서 미사를 하면, 일요일이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은 미사에 참여할 기회가 있어요.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더 활발하고 쉽게 할 기회를 마련해 줘야 해요.”

그는 더 나아가 서울대교구를 최소 4개 교구로 나눌 필요가 있다고 했다. 주교가 본당과 신자들을 세세하게 살피는 목자 역할을 하기에 교구의 규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호주 시드니를 비롯해 유럽에도 큰 교구를 나눈 사례가 있다.

“내 생각에 전라남도도 목포, 광주, 순천교구로 나누면, 주교님이 돌아가면서 자주 사람들을 만나고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있어요. 지금은 인천교구가 엄청 크지만 1960년대 10여 개 본당만 있었어요. 가난하고 가진 것 없었지만 안동교구를 대구대교구에서 분리했어요. 크면 클수록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에요. 작으면 작을수록 더 좋다고 봐요.”

지금도 평신도 여성이 성체를 분배하는 것을 거의 보기 어렵지만, 80년대에는 더욱 안 될 일이었다. 누군가 목동 성당의 일을 교구청에 신고했다. 김수환 추기경이 본당을 방문했을 때 사실이냐고 물었고, 안 신부가 인정하자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추기경님의 침묵을 나는 암묵적인 허락으로 해석했다. 그는 그런 분이셨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런 분은 많지 않다.”(160쪽)

안 신부는 전례란 “공동체가 기도하는 것”이라며, “사제가 올라가서 신자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공동체 전체가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 사람들이 ‘참여’하게 하고, 여성, 남성, 아이가 모두 ‘함께’ 이 제사를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다.

여성 신자가 성체분배를 하면 불편해 하는 이들이 있을 거라고 하자, 그는 “왜? 왜 싫어해? 싫어할 거 뭐 있어? 그럼 왜 싫으냐고 따져야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성 사제에 관해서도 “문제없다고 본다. 예전에는 한국 사람에게 서품을 주지 않았는데, 어째서 이제는 한국 남자들에게 서품을 준다. 앞뒤가 안 맞는다. 언젠가는 그날(여성이 사제서품을 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고 기대했다.

1월 20일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에서 만나 안광훈 신부와 자서전 "성자와 죄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배선영 기자<br>
1월 20일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에서 만나 안광훈 신부와 자서전 "성자와 죄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배선영 기자

“이제 투표권 있는데, 대통령으로 뽑을 사람 없어”

목동에 있을 때부터 재개발로 쫓겨난 주민들과 함께 철거 반대 운동을 한 그는 지난 40년간 “재개발은 필요하지만, 단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을 위한 개발이어야 한다는 것”을 계속 강조해 왔다. 그러나 현실은 “재개발로 개발 지역 주민들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건설 회사, 그리고 이미 많이 가진 사람들이 돈을 더 벌었다.”

이어 안 신부는 부동산 개발로 양극화가 심해진 현실에 더해 코로나19 때문에 어려운 사람들이 더 힘들어졌는데, 여당과 야당 모두 “올바르게” 정치를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2020년 9월 특별공로자로 인정받아 한국 국적을 얻는 그는 “난 이제 한국 사람이라 투표권이 있는데, 대선에서 뽑을 만한 사람이 없다”며 큰 한숨을 지었다.

안 신부가 하는 가난한 지역의 주민들을 위한 일은 정부 정책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책에는 한국 역사의 굵직한 사건들과 역대 대통령에 관한 언급이 종종 나오는데, 그 나름대로 12명 대통령의 점수를 매기기도 했다.

그는 1992년 서울의 달동네 삼양동으로 이사한 뒤 재개발 지역 주민들과 함께 싸웠고, 지금까지 삼양동에서 살면서 주민들과 여러 사업을 펼치고 있다. 삼양주민연대가 서울북부실업자사업단 강북지부이던 시절, 대표였던 그는 반지하 방이나 옥탑방, 판자촌에 사는 이들을 위해 주택 문제에 조언과 도움을 줄 수 있는 강북주거복지센터를 만들었다.

“노무현 정부 때 주거복지센터나 자활센터, 사회적 경제 지원 등 5-6가지 사업을 했는데, 그 조그만 사무실에 실무자 7명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이명박 정부 때는 4대강 사업에 세금을 쏟으면서 복지 예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어요. 서울북부실업자사업단 강북지부는 정부가 지원하는 복지 사업을 살 수 없게 되면서 실무자도 2명으로 줄었죠. 그다음 박원순 시장은 왜 그런지 강북구 지역에 관심 많아 여러 번 방문했고, 서울시 지원을 받아 많은 일로 바빠졌어요.”

그는 오세훈 서울시장 이후 다시 어려워졌다며 속상해 했다.

2021년 12월 14일 안광훈 신부의 팔순을 축하하는 미사가 봉헌됐다. (사진 제공 =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br>
2021년 12월 14일 안광훈 신부의 팔순을 축하하는 미사가 봉헌됐다. (사진 제공 =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부자에게 참 복음 말씀을 전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

2014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 인터뷰하면서 안광훈 신부는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 문제는 그대로”인 것이 빈민 사목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라고 했다. 같은 질문에 그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30년 전과 오늘날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가 다르다”고 말했다.

30년 전에는 수도 시설 문제,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없는 게 문제였다면, 지금은 독거노인, 1인 가구의 주거 문제, 한부모 가정의 엄마라면 아이를 돌보면서 일도 해야 하는 것 등등 어려운 사람들의 상황이 변했다. 어려운 이들의 상황이 바뀌었다면 이에 따라 사목도 변해야 한다.

그는 “우리 사회 사목, 빈민 사목 그리고 일반 본당을 운영하면서 이 사회가 어떤 사회이고, 20년 전과 다르게 지금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이에 따라 우리가 앞으로 어떤 준비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누구를 위한 성당인지, 지역을 위한 성당이라면 지역 사람을 위해서 성당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교회의 역할을 말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부유한 이들은 듣기 싫어한다며 “부자 동네에서 부자 신자들에게 참 복음 말씀을 전해 주기가 제일 어렵다. 이런 내용의 강론을 하면 우리와 안 맞으니 다른 신부를 보내 달란 적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지금도 삼양주민연대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그에게 앞으로의 꿈과 바람을 묻자, 삼양주민연대의 미래를 걱정하는 말이 돌아왔다.

그에 따르면 삼양주민연대는 IMF 시절에는 실업자를 위한 사업을 했고, 이후에는 저소득층의 자활을 돕는 자활센터, 주거복지센터, 소액대출은행 ‘한바가지’, 사회경제적통합지원센터 등 그때그때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해왔다. 그렇다면 지금 시대에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그는 “과연 지금도 삼양주민연대가 필요한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는 이제는 “젊고 건강하고 힘 있는 사람이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할 만큼은 다 한 것 같아요.”

삼양주민연대는 여러 사업을 활발하게 했던 예전과 다르게 지금은 운영이 빠듯하다. 모자란 실무자의 인건비는 골롬반 선교회 등에서 충당한다. 지자체나 외부의 지원 없이는 사업이 불가능한 비영리 민간단체의 앞날에 대해 안 신부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 반세기 한국 사회, 한국 교회의 성장을 함께한 안광훈 신부. 사회와 교회는 어느 때보다 화려해지고 커졌지만, 여전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그는 활동가들의 인건비를 걱정했다.

2018년 '김영철의 동네 한 반퀴'가 담은 독거 노인에게 반찬을 나눠 주려 준비하고 있는 삼양주민연대 모습. (이미지 출처 = '&lt;KBS&gt; 교양'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br>
2018년 '김영철의 동네 한 반퀴'가 담은 독거 노인에게 반찬을 나눠 주려 준비하고 있는 삼양주민연대 모습. (이미지 출처 = '<KBS> 교양'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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