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래 뿌리를 캐어 보면 귀여운 아기 알뿌리들이 젖먹이 새끼처럼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그것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며 삶이 또 삶을 낳는 기적을 가슴에 새기곤 한다. ‘달래 한 포기마저도 자신의 생명력을 확장시키려 애쓰고 있구나. 삶은 다시 삶을 낳는 것으로 이어져야 하는구나. 그렇다면 나는 지금 다른 삶을 새롭게 낳고 있을까?‘ 본뿌리에 안주한 채 머물러 있고 싶어 하는 나는 달래를 캘 때마다 부끄러워진다. 그와 동시에 이대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강한 의지가 솟구친다.

학교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만나 책 읽어 주는 활동을 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마침 교장 선생님의 제안이 있기도 했지만 전부터 씨앗처럼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큰' 엄마가 되고 싶다는 바람, 내 아이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의 삶에도 사랑과 관심으로 다가서고 싶다는 바람.... 마침내 그 바람이 싹을 틔울 기회가 왔다 생각해서 선뜻 제안에 응했지만 막상 학교 가기 전날이 되면 마음속 까만 늑대가 한심하다는 듯이 투정을 해댄다.

"도대체 왜 이 일을 시작한 거지? 집안일, 농사일, 공부할 거리들이 수두룩한데 왜 밖으로 떠도는 거야? 네가 아무리 애쓴다 해도 학교는 변하지 않아. 프로그램 과부하에 걸려 있는 아이들에겐 책 읽어 주는 것도 또 다른 활동의 연장일 뿐이라구. 너는 그냥 너와 네 가족들만을 위해 살아. 네가 애를 쓴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별로 대단치도 않은 일을 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구."

내가 까만 늑대의 속삭임에 휘둘려 가기 싫단 마음을 키워 가고 있을 즈음, 이번에는 하얀 늑대가 속삭인다.

"까만 늑대의 말에 기죽을 필요 없어. 지금 당장 네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거 아니겠어? 너무 잘하려고 애쓸 것 없이 편안하게 아이들을 만나. 눈에 보이는 성과나 능력 발휘, 누군가의 인정....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네가 세상을 만나는 태도, 그게 핵심이야. 방향을 잃지 않고 너에게 닥친 시절 인연을 정성으로 받아들이는 것 말이야. 아직은 수풀이 우거진 길 아닌 곳을 걷는라 한 걸음 내디디기가 힘들겠지만 길을 내면서 그 길을 가."

하얀 늑대의 말 덕분에 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두 눈을 질끈 감기로 한다. 내일 아이들과 책읽기 시간에 나누어 먹을 간식 준비 시작!

 

"엄마, 뭐 하고 있어?"(다나)

"쑥 스콘 만들고 있지. 내일 학교 언니 오빠들 하고 나눠 먹으려고."(나)

"내일 학교 가는 날이구나? 난 엄마가 다른 언니 오빠들한테 책 읽어 주는 거 싫은데."(다나)

"왜?"(나)

"나랑 다랭이 오빠, 다울이 오빠한테만 읽어 주면 좋겠어. 우리 엄마니까."(다나)

"다나야, 다나는 날마다 쑥쑥 크고 있지? 그런데 갑자기 안 크고 키가 딱 멈추면 좋아? 아니지? 엄마도 그래. 엄마는 키는 다 컸으니까 사랑을 키워야 하거든. 다울이 다랑이 다나를 사랑하듯 다른 친구들도 사랑하고 싶어. 그래야 사랑이 자라."(나)

"아, 그래? 알겠어. 그럼 책 읽어 주는 거 허락할게."(다나)

참 쿨하기도 하지. 다나가 허락을 해 준 덕분에 나는 스콘 반죽을 마무리하고 내일 밥할 쌀 씻어 놓고, 양치질과 세수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그때까지 나를 기다리느라 졸린 눈을 부여잡고 있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준다.

병아리 돌보고 있는 다울, 다랑, 다나. ©️정청라
병아리 돌보고 있는 다울, 다랑, 다나. ©️정청라

요즘 읽고 있는 책은 "80일간의 세계 일주". 아직 책의 초반부로 갑작스레 내기에 휘말려서 80일 만에 세계일주를 해내겠다고 나선 포그 씨와 그런 포그 씨를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며 얼떨결에 짐을 꾸리고 따라나선 하인 파스파르투의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이다. 보통은 주인공이 크게 눈에 들어오는 법인데 나는 책을 읽어 주는 내내 파스파르투가 된다. 앞으로 펼쳐질 예측불허의 여행길이 두렵고 떨리고 벌써부터 피곤하기까지.... '이쯤에서 다른 책을 읽자고 할까?' 싶기도 했지만 다랑이와 다나는 두 눈을 빛내고 있고 옆에서 다울이가 말한다.

"엄마, 앞으로 엄청난 일들이 벌어질 거야. 가면 갈수록 더 재밌어진다니까. 난 그 책을 세 번이나 읽고 네 번째로 읽고 있는데 읽으면서도 또 읽고 싶어져."

그 말에 자극을 받아 여행에 휘말려 보기로 한다. 어차피 삶은 여행이니까. 결말부터 미리 짐작을 해 보자면 집 밖으로 나가는 여행이 나를 진짜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 길이 되고야 말 것이다. 자, 이제 하얀 늑대의 가르침에 따라 아이들을 만나러 가 볼까?

 

덧. 글을 쓰다 보니 고작 일주일에 두 번 책 읽어 주러 가면서 80일간의 세계일주라도 떠나는 것마냥 무게감과 부담감을 느끼는 나를 만났다. 그리고 그런 나의 소심함을 폭로하노라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게 지금의 나인 걸 어쩌나. 지금의 이 지점을 명확하게 바라보며 내가 나에게 불러주고 싶은 곡이 있다.

(‘봐라 어키’란 곡인데 다울이가 예닐곱 살 때 쓴 시에 노래옷을 입혀 부르게 된 노래다. 참고로 어키는 다울이 마음속에 사는 아메리카 원주민 아이의 이름이란다. 아마 내 마음에도 그 아이가 살고 있겠지?! 어키야, 씩씩하고 명랑하게 잘 자라렴!)

 

봐라 어키

저리 가라

아주 큰산

 

보아라

나를 보아라

그곳에 내가 있다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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