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합창단의 노랫소리가 골짜기를 가득 메운다. 저 멀리 산자락에서는 물안개가 신비롭게 피어오른다. 제비꽃이 피었다. 보들이 매화나무에서는 꽃송이들이 벙긋벙긋 웃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겨우 서너 송이 꽃을 간신히 피워 내던 홍매화도 꽃망울을 많이 매달았다. 달래가 통통해지고 있고, 산지구엽초와 방아도 짜잔 하듯이 소담스런 새싹 다발을 밀어올렸다. 밀은 더 덥수룩해지고 보리도 다울이 머리카락만큼이나 뾰족뾰족 자랐다....

이상은 비 온 다음 날 푹신푹신한 땅을 밟고 살금살금 돌아다니며 내가 만난 봄이다. 봄을 찾아다니는 시간은 그 어떤 숨바꼭질 놀이보다 재미있다. 행운의 여신과 함께 보물 찾기에 나선 것마냥 눈 돌리는 데마다 여기저기서 보물을 발견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그렇기 때문에 ‘봄을 찾기’와 ‘보물 찾기’가 비슷하게 발음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홍매화. ©️정청라
홍매화. ©️정청라

뻣뻣하고 둔감한 나도 이런데 아이들에게 봄은 얼마나 놀라울까? '엄마 이리 와 봐', '이것 좀 봐 봐', '얼른 오라니까!'.... 발견의 현장 곳곳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요란하다. 하도 불러 대서 마지못해 가 보면 노란 민들레, 냉이꽃, 쑥, 돌나물, 겨울을 이겨내고 새 잎을 피워 올린 당근 같은 것들이 아이들 앞에 앉아 있다. "나 이렇게 살아 있어요!" 하고 안부를 전하는 몸짓으로 말이다.

그제는 다울이가 논에 다녀오는 길에 웃옷을 돌돌 말아 거기에 뭔가를 싸들고 왔다.

"엄마, 이게 뭔지 알아?"

"글쎄, 뭐지?"

심드렁하게 대답을 하고 무심코 쳐다본 그곳엔 머위가 있었다. 어느새 다나 손바닥만큼이나 커진 머위가!

머위. ©️정청라
머위. ©️정청라

"벌써 머위가 이렇게나 자랐단 말이야? 안 그래도 머위 났나 한번 둘러보러 가려던 참인데...."

"논둑에 머위가 엄청 많이 올라왔더라고. 이 정도면 나물 해 먹을 수 있나?"

"그래, 한 끼는 먹겠다. 첫물 머위라 진짜 맛나겠네."

입에 절로 군침이 돌았다. 요맘때 입맛 살리는 데 머위 만한 나물이 어디 있으랴. 싱싱할 때 데쳐서 나물을 무치려고 바삐 움직이는데, 다울이가 또 기막힌 소식을 전해 왔다. 오는 길에 냇가에 버려진 나무를 봤는데 (그 나무로 말할 것 같으면 지난해 여름 폭우에 뿌리가 뽑혀 길을 가로막았던 큰 나무다. 사람들은 길을 복구하게 위해 그 나무를 냇가 쪽으로 던져 버렸고, 그 뒤로 내내 냇가에 쓰러져 있었다. 긴 줄기 곳곳이 토막난 채로 물살 따라 냇가로 떠밀려 온 쓰레기들을 휘감은 채로 말이다.) 뿌리가 뽑힌 채로도 숱한 싹을 밀어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울이가 본 나무. 자세히 들여다보면 뿌리 쪽 둥치에 맹아지(나무 줄기에서 새로 돋아나는 어린 줄기)가 여러 개 솟아 있는 게 보인다. ©️정청라
다울이가 본 나무. 자세히 들여다보면 뿌리 쪽 둥치에 맹아지(나무 줄기에서 새로 돋아나는 어린 줄기)가 여러 개 솟아 있는 게 보인다. ©️정청라

"나는 그 나무가 진짜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살아 있었어. 냇가라서 항상 물이 흐르고 뿌리에 흙덩이가 그대로 매달려 있어서 살 수 있었나 봐. 근데 엄마, 그 나무를 보니까 노래가 하나 떠올랐는데 한번 들어 볼래?"

"그럼, 좋고 말고지!"

나는 하던 일을 당장 멈추고 귀를 쫑긋 세웠다. 두구두구.... 박다울 군의 새봄 맞이 신곡 발표!

 

죽은 줄 알았던 나무가 이렇게 살아 있어요

죽은 줄 알았던 나무가 이렇게 살아 있어요

 

다울이의 노래는 짧고 강렬했다. 용수철이 튀어오르듯 생명의 약동이 전해지는 노래! 방 안에 있던 다랑이 다나도 벌떡 일어나 노래를 듣고 있었고, 어느새 그 노래를 신나게 따라 부르고 있었다. (‘나무’ 대신 지렁이, 개구리, 꽃들, 애벌레.... 온갖 것들을 넣어가며 부르고 또 부르기!) 심지어 재간둥이 다랑이는 익살스러운 율동까지 만들어 노래에 맞춰 율동을 보여 주어 우리 모두를 웃게 했다.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 준 나무 덕분에 우리도 함께 살아 있음을 실감하는 시간이 펼쳐졌달까?

그렇게 이 봄은, 살아 있음을 발견하고 함께 기뻐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왔다. 야호, 드디어 봄이다. 이 봄을 신나게 살자!!!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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