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참던 나날", 리디아 유크나비치, 든, 2019

물 안에서 숨 쉬던 사람. 생을 혐오할 조건을 타고났으나, 이제 자신의 힘으로 동족을 만나 부족을 이루고 사랑을 노래하는 사람. 삶을 통해 삶을 이겨낸 사람. 저자 리디아 유크나비치.

자신의 회고록 "숨을 참던 나날"은 펜 센터 USA상 크리에이티브 논픽션 부분에서 최종 후보에 올랐고, PNBA상과 오리건 도서상의 리더스 초이스 부문에서 수상했다. 또한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직접 감독을 맡아 영화화 작업 중이다.

리디아 유크나비치.

그녀는 수영 선수다. 어렸을 적부터 물속에서 놀며 청소년기까지 오로지 수영밖에 모르며 살아온 여자였다. 그녀에게 ‘물’은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로 새겨진다. 태초의 생명이 머물던 장소.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수영을 하던 아기는 태어나 수영 선수가 되었고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지만 아이를 잃고 죽은 아이를 물속에 떠나보낸다.

그녀에게 물은 자기생명의 근원이자 죽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절름발이인 불구의 엄마, 무섭고 권위적이다 못해 퇴폐적이며 비윤리적인 폭군의 아버지. 자신보다 여덟 살이 많던 언니가 아버지에 의해 성폭행을 지속적으로 당해 오다 결국 집을 떠나자 그 폭력은 어린 리디아에게로 내려온다.

아버지의 집, 아버지의 성,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는 한 여자의 몸부림은 거대한 분노를 넘어서 오히려 담담하게 적혀 내려가 있는 동시에 곳곳에서 심장을 관통하듯 서늘하다.

"숨을 참던 나날", 리디아 유크나비치, (임슬애), 든, 2019. (표지 출처 = 든)

그녀는 마약과 알코올 중독으로 자신의 아픔과 부모에 대한 분노와 죽여 버리고 싶은 살인의 충동들을 희석시킨다. 운다. 마신다. 토한다. 섹스하고 화내고 소리 지르고 다시 웃고 마신다. 토한다. 모든 것을 놓아버린 듯 위태롭게 산다.

그러다 글쓰기를 만난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오직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자신의 고통과 숨을 참던 나날들에 대해....

“나는 가정을 일구는 일에는 젬병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떻게 하면 가정의 빈자리에 다른 무언가를 채워 넣을 수 있는지 알아냈다. 내 인생이라는 슬픔 가득한 슬픈 포대 자루로, 나는 언어의 집을 만들었다.”

자신의 삶으로부터 도망쳤으나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에서부터 자기 삶을 다시 시작한 사람.

“언어의 집을 통해서 다른 경험도 했다.... 내가 내 안의 목소리와 핏속에서 느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그런 목소리와 노래를 품고 산다는 것을 언어의 집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는 나만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이 있었다. 음, 그것도 아주 많았다. 그들은 글쓰기의 규칙을 깼다. 글쓰기에서 불가능한 것들을 이뤄 내려 했다. 새로 발견한 지성을 생경한 영역으로 끌고 갔다. 새로운 것들을 만들었다. 어쩌면 삶까지도. 새로운 자아까지도.”

 

그녀는 현재 오리건에서 교수로 글쓰기 강의를 하며 남편과 아이와 살고 있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인간이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우며 동시에 얼마나 견고한 것인지, 얼마나 나약한 동시에 얼마나 강인할 수 있는지 그리고 다시 한번 우리 삶에 글쓰기가 주는 자신만의 이야기의 힘에 감탄했다. 오직 자신만의 이야기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그녀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그러나 가장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다.

고통 앞에 마취제도 없이 비명을 지르며 살아간 그녀.
물속에서 숨을 참아 내야만 살 수 있는 수영 선수였던 그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가장 깊은 자신의 내면 안에서 숨을 참았던 그녀.

오늘 밤 그녀는 내 안에서 살아온다.
살기 위해 숨을 참던 나날들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았느냐며....
내게 조용히 말을 걸어온다.

 

구영주(세레나)
11살, 세례 받고 예수님에게 반함. 뼛속까지 예술인의 피를 무시하고 공대 입학. 돌고 돌아 예술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며 피는 절대 속여서는 안 됨을 스스로 증명. 아이들과 울고 웃으며 화가로, 아동미술치료사로 성장.
칼럼과 서평 쓰기가 특기며, <가톨릭 다이제스트> 외 여러 잡지에서 자유기고가로 활동. 현재 남편과 12살 아들, 두 남자와 달콤 살벌한 동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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