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아이의 상처 치유하기"

"내면아이의 상처 치유하기", 마거릿 폴, (정은아), 소울메이트, 2013. (표지 출처 = 소울메이트)
"내면아이의 상처 치유하기", 마거릿 폴, (정은아), 소울메이트, 2013. (표지 출처 = 소울메이트)

우리는 고통스러운 감정이 우리를 짓누를 때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모른다.

어디에서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영어 단어나 수학 공식처럼 간단하지도 않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늘 일상 안에서 지속되는 감정, 예를 들면, 기쁨과 슬픔, 고통과 외로움처럼 우리 삶에 호흡처럼 붙어 있는 감정에 대해 왜 우리는 서로 배우거나 알려주지 않을까. 해서 매번 고통스러운 감정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는 좌절한다. 고통스러운 감정이 반복되는 이유는 우리가 감정을 처리할 더 나은 방법을 몰라서이거나 다른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해도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 두려워서 그 방법을 시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면 아이의 상처 치유하기”. 이 책을 읽고 나면 이렇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내가 고통스러운 것은 나의 내면아이와 성인 자아 간에 그 어떤 대화도 상호작용도 없었기 때문이었구나. 내 무의식과 의식의 연결통로. 즉, 내 외로움의 근원을 알 수 있게 된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기 이전에 우리는 이미 “나는 할 수 없어” “나는 내 감정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 또는 “나는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어”라며 먼저 자신의 믿음을 부정한다. 이 부정 안에는 분명 대면할 용기 없음을 무의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바라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내가 왜 고통스러운지. 내가 왜 아픈 것인지.

그것보다는 '왜 맨날 내가 이토록 고통받아야 하지? 왜 나만 이토록 아파야 하지?'라며 대상의 위치만을 바꾼다. 나를 건너 너에게! 누군가를 탓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다.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자신의 불안과 외로움을 전가시키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외부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그리고 하나라도 자신의 마음과 비슷한 것이 발견되면 그것에 올인 한다.

내가 공허한 것은 너!

바로 그것 때문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진짜 내 삶의 공허는 내가 내 자신의 내면아이와의 멀어짐으로부터 생긴다.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저자 마거릿 폴은 “이 책은 나의 배움을 토대로 다양한 제안을 담았다. 하지만 각각의 상황마다 대처하는 방식에 유일한 ‘정답’은 없다.... 그러므로 독자들도 이 책을 통해 내면아이를 지지하고 돌보기 위한 자신만의 새로운 방식을 창조하길 기대한다.”

자신만의 새로운 방식.

사실상 우리가 잠시만 멈춘다면 우리 안에 내면아이가 끊임없이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난 이렇게 하고 싶지 않아.”

“왜 이렇게 해야 하지?”

“나는 마음이 아파.”

“나는 고통스러워.”

“나는 눈물이 나.”

그러다 누군가 외부에서 그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때 우리는 급격히 당황하며 방어적인 태세를 취한다.

그럴 때 누군가 말한다.

“당신은 자신을 잘 돌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네요”

그러면 우리는 말한다.

“자신을 돌본다고요? 그건 비현실적인 말이에요. 저는 할 일이 너무나 많다고요!”

“하지만 당신이 지금처럼 계속 그렇게 살아간다면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스트레스를 받고 그러다가 해고되거나 건강을 잃게 될 수도 있어요.”

그때 비로소 우리는 말한다.

“그렇게 되기는 싫어요. 하지만 나는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우리의 내면아이가 말한 것은 사실이다.이것은 거짓 없고 순수하고 가장 솔직한 대답이다.

우리는 알지 못한다. 직장에서 인정받고 프로젝트에 성공하고 매 순간 다가오는 새로운 도전에 성공하고 싶지만 그것만큼이나 내 자신 안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 공허와 우울과 불안의 근본 원인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무르며 잠재해 온 잘못된 믿음 때문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배워 온 잘못된 믿음과 자멸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우리 안에 참된 기쁨과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옳은 것이라 믿고 살아왔다. 그리고 그 가치로부터 타인을 판단해 왔다. 모든 문제의 갈등이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우리는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그런 거짓 믿음에 따라 살면서 삶의 기쁨을 잃어버렸다.

사실상 외형적인 것은 근본적인 것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아까의 고백대로 우리는 진정 우리 자신의 내면아이에 도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오랜 세월 우리 안에 어린 시절부터 홀로 버려진 아이....

그 아이가 수없이 말을 걸어도 우리는 외적인 삶을 향해 나아가기만을 할 뿐 내안의 진짜 목소리(내면아이)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부디, 그 아이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커질 때 겁을 먹고 도망치지 말자. 미리 내 안의 아이에게 말해 두자. 네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말하든 잘못된 것은 없다고. 그건 모두 그렇게 느끼기에 합당한 것이라고.

급속하게 변화되는 사회 속에서 외적 성장에 발맞추어 정신없이 달려가는 내가, 어느 날 문득 사무치게 외로워지면 떠올려 보자. 내 안에 너무 오래 울고 서 있는 아이가 있는 것은 아닌지.

구영주(세레나)
11살, 세례 받고 예수님에게 반함. 뼛속까지 예술인의 피를 무시하고 공대 입학. 돌고 돌아 예술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며 피는 절대 속여서는 안 됨을 스스로 증명. 아이들과 울고 웃으며 화가로, 아동미술치료사로 성장.
칼럼과 서평 쓰기가 특기며, <가톨릭 다이제스트> 외 여러 잡지에서 자유기고가로 활동. 현재 남편과 12살 아들, 두 남자와 달콤 살벌한 동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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