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유학생 수왼 레이, 예진 씨 인터뷰

2월 1일 시작된 미얀마 군부 쿠데타로 시민의 희생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최소 18명이 숨진 ‘피의 일요일’에 이어 3일 군부의 실탄 사격으로 38명이 숨졌다. 유엔이 밝힌 공식 사망자만 59명(4일 기준)이다. 3일(현지 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얀마 국민의 염원이 폭력으로 꺾일 수는 없다”고 미얀마 군부의 살상행위를 규탄했다.

미얀마 군부는 지난해 11월 치러진 총선에 부정이 있었다며 쿠데타를 일으켰고, 미얀마 시민들은 군의 무력 진압에도 목숨을 건 시민불복종 운동을 펼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고국의 소식을 번역해 외국인들에게 알리고 국제 사회의 지원을 촉구하는 미얀마 유학생 수왼 레이와 예진(한국이름)을 만나봤다.

양곤 시내 중심 센터에 모여 있는 시민들. 경찰의 폭력 진압이 있기 전부터 시민들은 이곳에서 비폭력 시위를 벌였다. (사진 제공 = 예진)
양곤 시내 중심 센터에 모여 있는 시민들. 경찰의 폭력 진압이 있기 전부터 시민들은 이곳에서 비폭력 시위를 벌였다. (사진 제공 = 예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

수왼 레이(국민대)와 예진(이화여대)은 1995년생 동갑내기 친구 사이다. 미얀마에서 한국어 전공으로 학부를 마치고 한국에서 광고홍보와 미디어학으로 각각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수왼은 지난해, 예진은 2019년 한국에 왔다.

둘은 1962년부터 시작된 군부 독재가 얼마간 완화된 시절 청소년기를 보냈고, 대학을 다녔다. 독재와 민주주의의 좌절을 겪은 부모 세대와는 달랐다. 민주주의를 맛봤고, 자유가 무엇인지 알았다. 쿠데타 2주 전부터 수상한 소문이 돌았지만 믿지 않았다. 친구들과는 “21세기에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웃어넘겼다.

하지만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일어났다. 2월 1일이 되자 가족과 연락이 끊겼다. 들려오는 소식들은 충격 그 자체였다. SNS에는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내 나라, 익숙한 그 거리에서 군경의 총탄에 쓰러지고, 피 흘리고, 최루액이 범벅된 얼굴들이 울고 있었다. 참혹함을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한국말로 옮겨 더 많은 이에게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을 전하고 있다.

“상황은 이미 심각함을 넘어섰다.” 수왼과 예진은 SNS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군경의 살상을 설명하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살상의 희생자는 바로 이들의 가족이자 친구, 이웃이었다.

수왼 : 살면서 영화 말고는 사람이 이렇게 죽어가는 것을 보는 게 처음이에요. 의사로 일하는 언니가 시위에서 경찰에 쫓겨 숨고, 최루탄을 맞고 있어요.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가까운 이들의 소식에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요. 어린 십대, 이십대들이 나라를 위해 싸우고 있어요. 편하게 학교 다녀야 할 나이인데, 목숨을 걸고 싸우니 대견하면서도 많이 안타까워요.

군부의 실탄 사격으로 가장 많은 이가 숨진 지난 3일 예진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예진 : 그날 아침부터 많은 젊은이들이 죽었어요. 후배에게 연락하니 시위 나갔다 눈앞에서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많이 봤다며 통화 내내 울더군요. 저도 따라 울었어요. 친구와 통화하는 중에도 총소리가 계속 들렸어요. 손이 떨리고 많이 힘들어서 시위 영상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한국에 미얀마 소식을 알려야 하니 봐야 했어요. 기자도 전쟁터에 나간 기자가 있고, 일반 기자가 있듯, 여기 있는 우리는 미얀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지난달 양곤에서 군경이 밤에 시민을 공격하고 체포하자 한 젊은이가 폭력을 멈춰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예진)
지난달 양곤에서 군경이 밤에 시민을 공격하고 체포하자 한 젊은이가 폭력을 멈춰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예진)

가족, 친구들과 연락은 재개됐다. 그러나 통신 상태는 여전히 안 좋다. 군부는 미얀마 시간으로 밤 1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인터넷을 차단한다. 남자들은 돌아가며 밤마다 동네를 지킨다. 시민을 보호해야 할 경찰은 오히려 마을에 불을 지르고 비정부기구에 침입해 약탈을 일삼고 있다. 군부는 교도소 수감자를 석방해 테러를 유도하고 있다. 맨몸의 시민들은 밤잠을 마다하고 서로를 지키고 있다.

예진의 친구도 밤에 경비를 선다. 밤 1시 인터넷이 끊기면 친구와의 소통도 끊긴다. 친구는 마을을 지키느라, 예진은 그 친구가 걱정돼 잠을 잘 수 없다. 밤새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뜬눈으로 지센 다음 날 친구에게 무사하다는 연락이 오면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 “평범하게 가볍게 살았던 친구들”, “정치에도 별 관심 없이 살던 친구들”이 나무 막대기 하나로 밤새 동네를 지키는 모습이 예진은 가슴 아프다.

“왜 이렇게까지 죽어야 하는가”
“민주주의를 향해, 희생된 이들 위해 싸움은 계속될 것”

군부는 애초 2월 말까지만 인터넷을 차단하겠다고 했다. 2월 15일에는 아웅산 수치 국가 고문도 풀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약속을 저버렸다. 수왼은 단호하게 “그들을 믿어선 안 된다”고 했다. 예진은 이 모든 상황에 분노한다. 참혹한 살상, 상상하기 힘든 인권침해, 사회를 혼란에 빠뜨려 미얀마의 발전을 가로막는 군부를 용납할 수 없다.

군부는 방송과 인터넷 등 매체를 장악해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있다. 머리에 총상을 입은 시민을 두고, 하늘을 향해 쏜 총알이 떨어져 맞은 것이라거나 시위대들이 경찰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국민의 90퍼센트가 군부를 지지한다 같은 뉴스다. 가짜뉴스가 돌면 시민들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최근엔 개인 휴대폰까지 검문한다. 휴대폰에서 시위, 정치와 관련된 것이 나오면 그 자리에서 연행한다. 그 규모만 하루 200-300명에 이른다. 잡혀간 자식을 찾기 위해 헤매는 부모들, 겨우 찾아내면 군부는 한 명당 10만원씩 받고 풀어준다. 상황이 더 나빠지면 귀국할 경우 다시 외국으로 나올 수 없을지 모른다. 한국에 있으면 자신의 신변 보호는 가능하지만 대신 가족이 공격당할 수 있다. 모든 상황이 위태롭지만 지금 무엇이든 해야 한다.

수왼 : 코로나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많진 않아요. 1인 시위나 9명까지 가능한 기자회견, 대사관, 유엔 사무소 등에 가서 기도회나 시위를 해요. 미얀마에서 올리는 뉴스나 소식을 외국인도 볼 수 있게 번역하고요.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 미얀마 청년들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미얀마 청년들은 팔에 혈액형과 부모님 연락처를 적은 뒤 시위에 나가요. 혹시라도 잘못될까 봐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가는 거죠. 정말 전쟁터에 나가듯이요. 사실 전쟁도 아니고 시민들이 평화롭게 시위하는 것뿐인데, 경찰과 군인들이 왜 총까지 쏘는지, 왜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죽어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미얀마 청년들이 시위에 나가기 전, 자신의 혈액형과 부모 연락처를 팔에 적고 있다. (사진 제공 = 예진)
미얀마 청년들이 시위에 나가기 전, 자신의 혈액형과 부모 연락처를 팔에 적고 있다. (사진 제공 = 예진)

예진 : 죄책감이랄까, 저희도 여기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목숨까지 희생되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서 미안해요.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되고, 너무 답답합니다.

두 사람은 지금 역사책에서만 접했던 ‘8888 항쟁’을 떠올린다. 한국에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1987년 민주화 항쟁의 역사가 있듯, 미얀마에도 목숨을 건 민주항쟁의 역사가 있다. 오랜 군부 독재를 끝내기 위한 1988년 미얀마의 민주 항쟁은 군부의 극심한 탄압으로 수많은 인명피해를 남긴 채 좌절됐지만, 두 사람은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다고 믿는다.

“민주주의를 향한 8888 항쟁 당시 사람들과 지금 우리 마음”은 같지만, 지금 청년들은 민주주의를 실제로 살아보지 못했던 어른들과는 다르다. “1990년대, 2000년대에 태어난 우리들은 절반의 민주주의라도 경험하며 살아온 세대”이기 때문이다.

예진 : 어두운 과거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군부 독재로 인권 침해가 많았고 우리나라가 성장하지 못했다는 생각만으로도 화가 나요. 사람이 하면 안 되는 짓을 하는 군부를 절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태는 우리 세대가 마지막이라면 좋겠습니다. 지금 자식을 잃고 울고 있는 부모들, 이번에 또다시 군부에 진다면 우리가 부모가 됐을 때 이런 일을 또 겪을 수 있어요. 우리 자식들은 겪어서는 안 됩니다.

수왼 :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라도 계속 싸울 수밖에 없어요. 그들의 목숨이 헛될까 봐서요. 민주주의를 위해서, 차세대를 위해서 열심히 계속 싸워야 합니다.

미얀마의 1988년 '8888 항쟁'(왼쪽)은 2021년 반 군부 시민 불복종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진 제공 = 예진)
미얀마의 1988년 '8888 항쟁'(왼쪽)은 2021년 반 군부 시민 불복종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진 제공 = 예진)

“지켜보기만 하다가는 사람들 다 죽는다”
“미얀마 사람들에  관심과 응원을”, “국제사회 협력 절실”

지금 미얀마 시민들은 국제 사회의 도움이 절실하다. 수왼은 “중국과 러시아는 지금 이 사태를 집안싸움이라고 선을 긋지만 가정폭력이 일어나도 지켜보기만 하다가는 사람이 죽는다”고 말한다. 폭주하는 군부를 막고 비폭력 저항을 지속하는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서는 국제 사회의 관심과 구체적 지원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얀마 시민들은 국제사회가 군부가 아닌 ‘미얀마 연방회의 대표위원회’(CRPH)를 미얀마 공식 정부로 인정할 것, 유엔이 ‘자국민 보호 책임’(R2P, Responsiblity to Protect)을 발동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R2P는 자국민에게 집단 학살, 전쟁 범죄, 인종 청소 등을 자행하는 나라에 유엔이 취하는 강제 조치 원칙이다.

더불어 수왼은 한국 국회와 여당, 대통령까지 미얀마를 돕겠다는 입장을 밝혀 줘서 다행이라면서, 특히 한국 정부는 미얀마 군부와 관련된 사업을 지지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수왼은 국제 사회의 협력이 신속히 이뤄지거나, 단번에 군부의 뿌리가 뽑힐 것이라고 보진 않는다. 무너진 것들을 살리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 시작을 위해 국제 사회의 지원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 그때까지 미얀마 국민들은 버티면서 시민불복종 운동을 계속하고자 한다.

수왼 : 한국 언론이 관심을 많이 갖고, SNS에서 미얀마 뉴스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보면 힘이 나요. 하루하루 싸우는 상황에서 우리를 알아주는 외국인,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에 희망이 생겨요. 희망이 없으면 안 돼요. 언론이나 뉴스가 아니더라도 개인으로서 SNS에서 미얀마 시민들 편이 돼 주고, 많이 공유해 주길 부탁드려요. 미얀마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만달레이에서 2월 20일 경찰의 폭력으로 숨진 이들을 애도하기 위해, 양곤 유엔 사무실 앞에서 열린 촛불 시위. (사진 제공 = 예진)<br>
만달레이에서 2월 20일 경찰의 폭력으로 숨진 이들을 애도하기 위해, 양곤 유엔 사무실 앞에서 열린 촛불 시위. (사진 제공 = 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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