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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의 ‘코로나 이후’ 대안: ‘포스트 발전’[특별 기고 - 안태환]

코로나-19 재난의 원인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있음을 많은 사람이 지적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신자유주의의 민낯을 드러냈다. 그러므로 코로나 이후 대안은 미국의 샌더스,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 등이 주장하는 “그린 뉴딜”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획재정부의 “한국형 뉴딜”은 문제가 많다. 

현재 라틴아메리카의 지식인들은 이번 코로나 팬데믹 사건을 서구 근대문명의 프레임과 자본주의의 결정적 전환 국면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런 인식론적 전환은 코로나 재난 이후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라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1992년이 중요하다. 이해에 볼프강 작스 외 전문가들에 의해 "반자본 발전 사전"이 출판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에 아니발 키하노는 “식민성, 근대성, 합리성”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근대성이 가지는 식민성(유럽문화와 비유럽문화 사이의 위계서열적 차별성)을, 합리성을 중시하는 서구 철학이 뒷받침하여 당연한 것 또는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즉 근대성의 핵심적 가치는 좌파(사회주의)건 우파(자유주의)건 유럽 모델을 따라가는 발전과 진보를 내세운다는 비판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지식인들은 코로나 이후의 대안 모델을 ‘포스트 발전’에서 찾고 있다. ‘포스트 발전’은 포스트 발전주의가 아니다. 즉, 지식인이 주도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이미 라틴아메리카 대중에 의해 사회적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를 하나의 개념으로 정립한 것이다. 예를 들면, 콜롬비아의 태평양 연안의 열대우림지역에 1980년대부터 흑인들이 가톨릭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목재회사, 광산회사, 수력발전소 건설 등에 맞서 그 지역의 바이오 다양성에 대한 흑인 공동체(PCN)의 집단적 소유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다국적 제약회사 등이 유전학의 첨단 지식과 기술을 이용하여 이 지역에 투자하여 자본주의적 가치 생산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연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도 ‘타자’(약자)에 대한 연대와 배려를 중시하여 근대성과 자본주의적 가치법칙(개인주의, 경쟁, 사적 소유)을 넘어서고 있었다. 

콜롬비아 정부는 이들의 요구대로 1993년 법률을 입법해 흑인 공동체의 문화적 영토적 집단적 소유권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쉽게 현실에 정착되지 못하다가 1997년부터 집단적 소유권이 실제로 주어졌다. 이런 사회적 실천에 근거해 아르투로 에스꼬바르는 ‘포스트 발전’ 개념을 정립했다. 이 개념의 배후 맥락에는 위의 사례와 같이 평범하고 가난한 대중의 가치관을 중시하여 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고 특히 대안적 사회운동을 중시하는 것이다. 아르투로 에스꼬바르(Arturo Escobar)는 콜롬비아 출신 인류학자로 현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로 있다.

볼리비아에 있는 아마존 정글. 코로나-19 이후 무한 경쟁, 무한 개발을 통해 자연을 파괴하고 개인과 국가 사이에 위계서열을 짓고 대중을 소비주의에 마비시키는 현재의 자본주의에 비판이 더욱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다. (사진 출처 = pixabay.com)

‘포스트 발전’이란 반자본주의를 의미한다. 그렇다고 먼 과거의 석기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익히 들어온 '지속가능한 발전'을 레토릭이 아니라 아주 강력히 실천하자는 것이다. 무한 경쟁, 무한 개발을 통해 자연을 파괴하고 개인과 국가 사이에 위계서열을 짓고 대중을 소비주의에 마비시키는 현재의 자본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이런 비판이 더욱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이런 학자들의 주장에 다양한 비판이 제기되어왔다. 특히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에 의해 ‘포스트 발전’ 개념은 너무 낭만적이고 현실적으로 실제 존재하는 ‘가난’을 경시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사실 라틴아메리카는 21세기 들어와 무섭게 부상한 중국 덕분에 다양한 일차 산품(대두 등 농산물과 석유 천연가스 등 광산물)의 대중국 수출로 인한 경제적 붐의 '새로운 추출주의' 시대를 맞았다. 특히 세계은행 등의 국제금융기구들이 이를 부추겼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중도좌파 정부들은 이로 인한 수익으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획기적인 소득재분배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므로 앞서 언급한 일부 학자들에 의한 가난을 경시한다는 ‘포스트 발전’ 개념에 대한 비판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콜롬비아 태평양 연안의 흑인 공동체는 개인주의적 경쟁과 타자의 배제가 아니라 자연까지도 그들에게 부여된 집단적 ‘선물’로 소중히 하는 연대의 가치관을 실제로 가졌던 것을 인식해야 한다.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에콰도르, 볼리비아의 원주민들이 스페인 정복 이전부터 가져왔던 자연과 타자에 대한 연대와 배려의 가치관과 이 ‘포스트 발전’개념은 서로 만나게 된다. 농산물과 광산물의 일차 산품을 수출 상품과 또는 빈곤 해결의 전략자원을 넘어 공동체의 공동재산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오래되었지만 ‘새로운’ 가치관과 가치관이 서로 상응하는 것이고 아직 현실적으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포스트 발전’의 대안 비전이 구체화, 현실화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이런 담론 자체의 출현은 매우 중요하다. 

라틴아메리카에서 ‘포스트 발전’ 개념은 자본주의의 위기 앞에서 차원을 달리하는 원주민의 좋은 삶(부엔 비비르) 철학과 만나고 자연 생태를 정복과 이용의 서구 근대성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생태 정치학과 만나고 있다. 이런 성과는 거의 모든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 1990년대 후반 이후 2000년대의 첫 10년 동안 신자유주의의 약탈 논리에 맞서 가난한 농민, 원주민 운동 단체들이 자연자원과 바이오 다양성과 환경과 생태를 ‘자원’이 아닌 소중한 대상(어머니 대지)으로 인식하고 신자유주의와 투쟁해온 덕분이다. 이 투쟁의 과정에서 유럽의 개인주의적 인권 개념과 다른 집단적 인권 개념이 라틴아메리카에서 부각되고 있다. 그리하여 라틴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없는 유럽이나 다른 대륙에서도 연대 경제, 사회적 경제, 생태 환경운동 등으로 이들과 접속하고 있다. 특히 전 지구적 차원에서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서구 정치학과 사회과학이 제대로 대응을 못 하는 국면에서 라틴아메리카에서 힘 있게 근대성의 철학과 다른 가치관의 새로운 집단적 주체성의 출현을 보여주는 것은 민주주의를 재구성하는데 중요한 함의를 던져주고 있다.

안태환(토마스)
한국외대, 대학원 스페인어과 
스페인 국립마드리드대 사회학과, 콜롬비아 하베리아나대 중남미 문학박사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HK교수,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 연구소 연구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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