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 안태환]

브라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경제 정치 외교 사회 문화 과학 기술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라틴아메리카에서 최고 강국이다. 우리나라와는 국내 총생산(GDP) 규모의 국제 순위에서 항상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한다. 실질적 삶의 질 수준 또는 삶의 여유(예: 자살률, 출생률....) 등을 고려하는 다른 지표를 보면 브라질이 우리보다 앞선 나라다.

6월 30일 현재 1위 미국(확진자 268만 명) 다음으로 코로나-19 피해가 큰 나라가 브라질(확진자 137만 명)이다. 사망자는 미국이 12만 명 이상이고 브라질은 5만 명 이상이다. 기본적으로 브라질은 중도우파와 중도좌파가 유리한 정치지형이다. 2002년부터 선거에서 승리했던 룰라와 그의 정당 PT(노동자당)도 당시 경제 위기 상황에서 경직된 좌파 이념적 지향이 아니라 실용적 중도 전략을 택한 것이 주요 승리 원인이었다. 예를 들어, 칠레나 아르헨티나의 군부독재가 1970년대에 주로 시작되었는데 브라질은 이미 1964년에 군부 쿠데타가 터졌고 1985년에 군부 독재가 종식되었다. 하지만 위의 두 나라만큼 잔혹하게 좌파 세력을 탄압하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좌파가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본적(?) 이유 중의 하나는 ‘토지개혁’의 실패 때문이다.

미국의 트럼프나 브라질의 보우소나루는 극우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서로 닮았는데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대응에서도 같이 허술하다. 2018년 말 대선에서 승리해 2019년부터 대통령에 취임한 보우소나루는 군부 장교(예비역 육군 대위) 출신이다. 보우소나루는 2차 투표에서 승리했는데 약 10퍼센트 차이로 즉, 차점자인 룰라 측의 후보인 하다드 보다 약 천만 표가 앞서서 승리했다. 그의 정치적 근거지는 리우데자네이루다.

부통령도 군부 장성 출신이다. 그런데 2022년의 대선에서 보우소나루는 재선 가능성이 약하다. 룰라 세력이 패배한 것도 경제 위기와 부패 스캔들 때문이었는데 보우소나루 정부도 현재 경제의 어려움과 부패 스캔들 때문에 재집권 가능성이 약하다. 다시 말해 브라질은 남미의 주요 강국이지만 항상 경제 위기를 벗어난 적이 없다. 따라서 단순히 경제의 어려움이 정권 교체의 주요 변수라고 볼 수 없다. 정치 사회적 헤게모니가 그만큼 중요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지난번 대선에서는 종교가 중요한 변수였다. 예를 들어 선거 전 이루어진 여론조사에서 56퍼센트가 가톨릭, 30퍼센트가 복음주의 개신교, 7퍼센트가 무종교를 지지한다고 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복음주의의 힘이 센 것을 알 수 있다. 복음주의의 지지기반은 가난한 대중이다. 알다시피 브라질은 가난한 대중이 엄청 많다. 이들 중 상당수가 보우소나루를 지지한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우소나루가 ‘메시아’로 인식되었을 수 있다. 그런데 보우소나루가 어느 수준의 극우 정치인인지 알 수 있는 에피소드는 2016년 의회에서 당시 대통령인 지우마 호세프를 탄핵 의결할 때 의원인 보우소나루는 과거 군부독재 시절에 지우마를 고문한 사람 이름을 들며 탄핵에 찬성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2019년의 라미아 우알라로우의 논문에 의하면 자이르 보우소나루는 2016년 흰옷을 입고 이스라엘의 요르단강에서 복음주의 개신교식 세례를 받았다. 그럼에도 보우소나루는 가톨릭 신자의 정체성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전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당시 세례를 주례한 이가 ‘하느님의 왕국’ 교회의 목사다. 이 교회는 텔레비전 선교를 잘한다. 작년 대선에서 대형 교회인 ‘하느님의 왕국’ 교회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전문 학자들은 평가한다.

즉, 위에서 언급한 득표의 차이만큼 복음주의 신자들이 지지했다는 것이다. 특히 복음주의 신자들이 가톨릭보다 숫자는 적지만 집중력이 컸다고 한다. 그리고 브라질은 시간이 갈수록 복음주의 신자는 늘고 가톨릭은 줄고 있다. 한 가지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선거에서 패배한 하다드는 진보적인 정치학 교수 출신으로 동성애 혐오를 반대했다고 한다. 이것이 오히려 복음주의 목사들에게 먹이가 되어 하다드가 대통령이 되면 아이들을 동성애자로 만들 것이라고 공격했다고 한다. 특히 소셜네트워크를 이용한 선동적인 ‘가짜 뉴스’를 퍼트려 크게 전략적으로 성공했다고 한다.

이는 마치 미국에서 트럼프가 등장한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 브라질에서도 중도좌파(룰라와 PT)와 전통 보수 야당 모두 가난한 대중의 편은 아니라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룰라와 PT가 아주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별적 복지 정책을 마치 선물을 주는 듯이 베풀었지만 신자유주의의 경제 사회 구조 자체는 변혁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중간계급을 포함한 광범한 가난한 대중이 실망하게 되었고 이런 틈을 복음주의 세력과 보우소나루가 기민하게 낚아챘다.

보우소나루는 우파 정당의 후보가 아니었다. 우파 후보는 알크민이었는데 보우소나루는 이 후보도 공격했다. 특히 좌파 지지자들의 중심축이 엘리트 지식인 계층이 됨으로써 가난한 대중은 이중으로 소외감을 느꼈다. 게다가 보우소나루와 언론 매체가 하나 되어 룰라와 PT의 부정부패를 공격함으로써 이들 소외된 대중은 쉽게 보우소나루를 지지하게 됐다. 흥미로운 것은 몇 년 전부터 브라질은 여성, 흑인, 원주민, 동성애자 등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 주장이 강해지면서 사회적 대변화의 기운이 커지고 있었으므로 보수 세력은 위기감을 느꼈는데 보우소나루 측은 보수 가톨릭 세력과 은연중에 연대하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룰라와 PT 세력은 브라질 사회의 변두리 광범한 가난한 대중의 감정의 흐름, 정동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고 좌파 지식인들이 비판하고 있다. 대중이 과거 ‘선별적’ 복지국가의 모델을 가지고 국가의 개입이 강한 전통적 좌파 모델을 거부하는 흐름을 둔감하게 놓쳤다는 것이다. 즉 좌파는 지나치게 아주 가난한 사람만 신경 쓰고 차상위 계층이랄까, 하층 중간계급의 소외가 커지는 데 무심한 것에 더해 사회문화적 정체성까지 흔들리게 되니 이들이 PT 지지를 철회한 것이다.

그 이유는 이미 수십 년간 경제 위기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사회를 지속하면서 광범한 대중이 경제적 어려움 외에 사회문화(종교)적으로 고립과 배제가 격심한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진보 또는 좌파 세력의 지도자급 엘리트들은 약 40년 동안의 신자유주의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1980년대 초반에 도입됨)‘사회’ 자체를 변화시킨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중간계급이 분화되어 상층은 더욱 보수화되고 하층 중간계급은 과거에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난한 노동자계급과 연대하는 성향이 강했는데, 이제는 그것이 사라져 서로 분리되고 각자도생 사회가 되어 경제적 어려움 외에도 사회문화적으로 하층 중간계급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고통스러워한다. 왜냐하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우리가 기초하고 있는 자본주의 또는 자유주의 체제의 다양한 전제들이 눈에 잘 안 보이지만 많이 흔들리고 있는 대전환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코로나 사태를 제외하고서도 그렇다. 그러므로 관습적으로 좌파/우파, 진보/보수의 전통적 이분법의 시각으로 정치와 사회를 보고 있으면 놓치는 부분이 많다.

특히 대도시 변두리의 소외된 대중은 미디어에서 자주 보는 강력한 소비주의의 매력에 중독되어 있고 그만큼 좌절감이 큰 상황에서 ‘열심히 기도(?)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복음주의의 메시지에 쉽게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마치 우리 사회의 가난한 20대 청년들이 이념적 ‘꼰대’식 진보정당을 싫어하는 감정의 흐름을 보는 것 같다. 이들도 가난하지만 거의 모두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고 소외감을 분출할 분노의 대상을 찾아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그야말로 라틴아메리카나 우리 사회나 진보적 지식인들이 깊이 성찰하고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안태환(토마스)
한국외대, 대학원 스페인어과 
스페인 국립마드리드대 사회학과, 콜롬비아 하베리아나대 중남미 문학박사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HK교수,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 연구소 연구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