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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사회의료 개척자 프란시스코 마르토네[특별기고 - 안태환]

코로나 바이러스19로 인해 우리 사회가 공공(집단)의료에 관심이 커졌다. 보통 때는 아플 때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돈을 내는 상업(개인)의료가 대세지만, 공공의료는 언제 이번과 같은 전염병이 또 들어올지 모를 예방적 차원을 가진다. 최근 어느 텔레비전 방송에서 감염병 전문가가 공공의료 확충에 돈을 쓰는 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국방 훈련에 돈 쓰는 것과 같다는 말에 공감했다. 이 말은 공공의료가 매우 정치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정부 예산을 국방, 기업의 수출지원, 공공의료 등에 배분하는 역할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가 국방에는 돈을 많이 써도 공공의료에는 그렇지 못한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현재의 자본주의(신자유주의)체제가 이를 조심스러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사회의료제도가 있다. 국민건강보험이다. 

사실 사회의료 또는 공공의료의 개념은 매우 광범하고 복잡하다. 정부의 관료체제, 병원 경영, 전염병 연구, 환경위생, 노동의학, 건강교육, 모자보건, 간호학, 농촌의학 등 외에도 국제관계와 관계 있다. 여성과 소년 노동에 대한 규범들과 출산 및 보육 휴가 등도 사회의료 범주 안에 들어간다. 또한 소외되고 배제된 사회세력과 연관이 깊다. 청도대남병원의 정신병동에 수십 년 격리(배제)된 환자들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므로 추상적 의미가 강한 공공의료라는 용어보다 예방을 강조하는 사회의료라는 용어가 더 적합하다. 왜냐하면 사회의료의 핵심은 사회계급의 차이에 의한 건강의 불평등을 공적 예방을 통해 완화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사회의료가 제일 발달한 나라는 쿠바일 것이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대부분 19세기 중반 이후에 근대국가 건설을 시작했지만 가난한 대중은 배제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전염병 감염이 심각해지자 1920년대부터 공공위생에 신경 쓰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의사들은 국가의 전문직 지식인으로 인식된다. 

의료. (이미지 출처 = Pixnio)

아르헨티나의 사회의료와 페론주의는 서로 연관이 깊다. 페론이 등장하기 전의 1930년대는 아르헨티나의 격동기였다. 이 시기는 대지주 계급과 도시의 자유주의 중간계급이 함께 권력을 잡고 가난한 대중을 배제하는 체제였다. 이를 거부하면서 40년대 초반부터 50년대 중반까지 페론이 집권했다. 사회관계에서 상층부와 연대하는 중간계급의 일부는 반 페론주의자 였고 하층 노동자와 연대하는 일부는 페론주의를 지지했다. 55년에 페론이 실각되었다가 73년에 페론주의 세력이 다시 집권했지만 오래 가지 못하고 76년에 군부독재가 시작된다. 

하지만 페론의 집권과 페론주의는 맥락이 다르다. 페론주의는 강한 이데올로기로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현재 집권세력도 페론주의 세력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페론주의를 포퓰리즘이라고 폄하하는 경향이 강하다. 페론주의체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국가가 외세에 매우 독립적이고 대내적으로 소외된 대중의 요구를 소중히 하는 체제다.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것을 거부한다.

아르헨티나 사회의료의 개척자로 프란시스코 호세 마르토네(1909-98)가 있다.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의대를 1936년에 졸업했고 주 전공은 보건영양학이다. 이후 보건위생학을 가르치는 의대 교수로 일했으며, 1930년대에서 80년대까지 활동했다. 의대생이던 1934년에 아르헨티나 하원의 보건위원회 자문위원이었다. 감염학과 위생 행정, 노동 의학 등 사회 의료학 전문 과정을 거쳤는데, 이런 과정은 당시 의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그는 1940년대 중반부터 대학과 정부에 사회의료를 제도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는 공공의료 또는 사회의료 서비스를 중앙정부 수준에서 통합하는 것을 주장했고, 이를 위해 재무성에도 관여했다. 

프란시스코 마르토네. (이미지 제공 = 안태환)

1946년에는 WHO가 주관한 제1차 세계 보건회의에 아르헨티나 대표로 참가했다. 1955년에 쿠데타로 페론정부가 무너진 뒤 그는 의대 교수에서 물러난다. 흥미로운 것은 그 뒤 공공의료 관련 학술지에서 그의 학술적 성과의 인용이 없어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는 적십자사 대표로서 응급구호와 함께 가정간호학을 현대화, 전문화시키는 데 노력했다. 특히 간호학의 교육 철학으로 사랑과 희생의 가톨릭적 감수성을 강조했다. 여기서 유추되듯이 그는 보수적 사고를 가졌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가부장적 기질과는 달랐다. 

마르토네는 공장에서 노동자들의 사고를 줄이기 위한 예방의학 등에도 관심이 컸다. 이를 위해 환자 개인의 치료보다 국가(사회) 전체의 건강을 위한 통합적 노력을 강조했다. 특히 노동자의 낮은 임금, 살기 나쁜 주택, 여성, 미성년자 노동, 가난 등에 대한 정책적 노력을 강조했다. 즉, 사회학적 접근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이런 그의 주장에 아르헨티나 의사들과 의대생은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아르헨티나와 라틴아메리카의 의학계의 문화는 공공의료의 전통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의 연구는 주로 두꺼운 책으로 출판되었지만 의대생들이 접근하기 좋게 짧은 논문과 간단한 매뉴얼로도 많이 나왔다. 

마르토네는 사회의료가 산업화로 인해 생겨나는 부정적 결과(예를 들어, 빈부격차, 건강격차 등)를 완화시켜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사회의료가 사회적 문제의 해결과 시민의 공존 그리고 자유로운 사회와 소외와 절망이 줄어드는 사회를 만들어 시민 각자의 시민성 의식을 형성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아르헨티나 사례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공공의료의 테마는 좌파가 아닌 보수 세력이 주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물론 현재 우리 사회의 보수와 자유주의 세력은 지나치게 신자유주의 노선에 경도되어 모든 것을 경제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시각으로 판단하는 것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재난이 지나가고 난 뒤에 과거 메르스 위기 때처럼 공공의료 또는 사회의료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관심이 다시 희박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안태환(토마스)
한국외대, 대학원 스페인어과 
스페인 국립마드리드대 사회학과, 콜롬비아 하베리아나대 중남미 문학박사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HK교수,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 연구소 연구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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