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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엔 호텔을 아시나요?[특별기고] 아르헨티나의 '노동자 복구기업'(ERT)에 대해

필자는 경제학자가 아니라 세밀한 것은 잘 모르지만 우리 경제는 커다란 전환점 또는 위기에 처한 것은 확실하다. 세계 랭킹 10위권의 경제 규모가 말하듯이 이미 ‘선진적’ 경제구조(?)에 들어갔는데도, 이에 대한 정치 사회적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제조업 사슬 맨 아래에 있는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이주 노동자들은 과잉착취당하면서 매일매일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제조업 종사자들의 비율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고 이들 제조업은 우리보다 못 사는 개발도상국들(?)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것이다.

예를 들어, 라틴아메리카의 어느 좌파 매체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개발도상국들의 산업노동자 비율이 1950년 34퍼센트, 1980년 53퍼센트, 2010년 79퍼센트, 2019년 83퍼센트로 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지식인 중 상당수는 과거의 프레임에 젖어 있거나 아니면 4차 산업혁명 담론과 최신 사회과학 이론을 가지고 현재 국면에 맞지 않는 자신감(?)으로 무조건 ‘미래’로 나아가자고 한다.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노동자들의 위계 서열에서 맨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정규 노동을 하지 못하고, 일이 있으면 하고 아니면 놀거나 거의 반 구걸 수준의 초라한 행상 등을 한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경제발전에 성공하지 못해 역설적으로 주거비용과 식생활 비용이 저렴하여 우리처럼 목숨 걸고 살지는 않는다.

바우엔 호텔.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서론이 길어졌는데, 2001년에 국가 파산 일보 직전에 이르렀던 아르헨티나에서 노동자들이 어떻게 위기에 대응했는지를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바우엔 호텔을 들어 얘기하려 한다. 필자는 2012년 아르헨티나에 갔을 때 이 호텔을 방문하였고 이 호텔의 홍보 담당자와 심층면담을 했다. 아주 고급호텔은 아니지만 꽤 깨끗하고 괜찮은 호텔이었다. 그런데 이 호텔에 투숙하려고 찾아갔던 것이 아니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어느 사회과학연구원으로부터 이곳이 '노동자 복구기업' 운동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해서 찾아갔다.

바우엔 호텔은 2001년 12월에 파산해 문을 닫았다. 당연히 갚지 못한 빚은 많았다. 우리 상식으로는 거기 노동자들은 그냥 실업자가 되어 다른 직장을 알아보든지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러지 않았다. 정부의 실업보험금을 받으면서 호텔을 점거하며 국가의 지원을 요구하였다. 2003년 3월부터 직원 약 120명이 스스로 자율적 조합을 만들었다. 이 당시 대통령은 페론주의 좌파인 네스토르 키치네르였다. 정부는 조합을 법률적, 재정적으로 지원했다. 국유화한 것이다. 그러나 운영은 이들 노동자 조합이 맡는 방식이다. 즉 노동자들의 소유가 아닌 것이다. 

이렇게 경제 위기 직후 이 호텔만이 아니라 세탁소, 빵집, 식당, 치약의 알루미늄 케이스를 만드는 소규모 공장, 인쇄소, 운수업, 바, 섬유공장, 소규모 라디오 방송국, 가구점, 제화점, 슈퍼마켓, 자동차 부품공장, 스포츠 용품 제조업, 목재소, 문방구, 유리가게 등 여러 파산된 기업을 종업원들이 스스로 조합을 만들어 유지하는 '노동자 복구기업' 운동을 벌였다. 다른 말로 ‘실업자 자활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2002년 말 현재, 이 운동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약 1만 명에 이르렀다. 2004년에 '노동자 복구기업' 운동의 전국조직이 만들어졌다. 일명 '주인 없는 공장' 운동으로 불렸다. 2008년 현재 전국적으로 약 200개의 복구기업운동 조합이 있었다. 물론 큰 숫자는 아니어서 아르헨티나 경제에 커다란 영향은 못 끼쳤겠지만(왜냐하면 일부는 매우 효율적이지만 다른 일부는 효율성이 떨어져 생산능력의 50퍼센트 미만인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정치, 사회적으로 상징적 의미는 매우 크다.

1990년대 내내 아르헨티나는 메넴 대통령이 아주 무지막지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집행하여 거의 모든 것이 외국자본에 개방되고 ‘민영화’되었다. 그 결과 90년대 후반부터 국내 산업이 붕괴하여 파산한 기업들이 매우 많았다. 그리하여 노동자 복구기업 운동도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다.

바우엔 호텔 명판. ⓒ안태환

바우엔 호텔 조합은 호텔에 있는 식당 및 홀 등을 이용하여 세미나 개최 토론회 등 이벤트 사업을 통해서도 돈을 벌었다. 특히 노동자복구기업의 조합들이 세미나, 토론회를 이곳 바우엔 호텔에서 개최함으로써 서로 연대하고 도운 것이다. 여기서 호텔의 홍보 담당자로부터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호텔의 조합원들은 책상에 앉아 경영을 보는 간부 사원으로부터 청소를 하는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2012년 현재 월 800불의 동일 임금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파산한 업주의 가족은 지속적으로 법적 소송을 통해 불법 점거(?)하고 있는 호텔을 비워 줄 것을 요구했으나 정부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2019년 12월에 호텔을 비워 줄 것을 요구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오랫동안 버틴 것은 이 호텔이 '노동자 복구기업' 운동의 상징처럼 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필자가 이 운동을 소개하는 목적은 이념적 또는 이론적 탐구를 위해서가 아니다. (사유재산의 신성한 개념을 흔들면서 동시에 정통 사회주의 모델과도 다르므로 이론적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런 소규모 기업들의 주변에 사는 동네 주민들이 이 운동을 지지하고 조합들도 동네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강한 ‘연대’를 서로 보여 주고 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실업자가 되었을 때 ‘배제된 자들’로서 좌절하는 대신 생존권의 ‘당당한’ 요구를 국가와 사회에 제기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로서는 낯선 모습이다. 필자는 그 당시 이미 다른 호텔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이 호텔에서 잠을 자지는 않았지만 이 호텔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종업원들의 당당한 태도에서 나오는 친절에 마음이 편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우리보다 사회적 연대의 기질 또는 성향이 강하게 살아 있다. 그렇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과거사에 대한 집단적 기억을 잘 하기 때문인 듯하다.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의 군부 독재로 실종된 가족들의 집에는 실종자가 살았음을 확인하는 동판이 건물 벽에 붙어 있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경제위기를 겪고 했지만 개인이 각자 도생하는 파편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아르헨티나(라틴아메리카)가 경제적으로 자본주의적 발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탓이 아닌가 한다. 이에 비해 우리 사회는 거시적으로 신자유주의의 이점을 중산층 이상 상당부분 누리고 있기 때문에(부동산 투기를 포함하여) 상당수 사회적 약자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음에도 연대보다는 파편화가 지속되는 듯하다.

아르헨티나의 군부 독재로 실종된 가족들의 집에 실종자가 살았음을 확인하는 동판. ⓒ안태환

안태환(토마스)
한국외대, 대학원 스페인어과 
스페인 국립마드리드대 사회학과, 콜롬비아 하베리아나대 중남미 문학박사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HK교수,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 연구소 연구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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