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도 듣지 못한 채 5시간 조사, 한국 원폭피해자 블랙리스트 작성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본 방문을 맞아, 원자폭탄 피폭자들의 현실을 알리고 핵무기 반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일본을 찾은 한국 원폭피해자들이 공항에서 억류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심진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 등 원폭피해자 1세와, 2세 11명은 23일 오전 11시 후쿠오카 공항을 통해 입국하려고 했지만, 이들은 입국심사장에서 오후 4시까지 억류된 채 조사를 받았다.

이들은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과 함께 일본 천주교 나가사키 교구의 초청을 받아 미사와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입국했으며, 한국원폭피해자 문제를 알리고 원폭 투하에 대한 미국과 일본 정부의 책임 규명, 모든 나라의 핵무기 금지 조약 가입 호소 등 국제사회 여론의 관심을 촉구할 계획이었다.

원폭피해자들과 동행한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 평통사에 따르면, 상황은 오전 10시 50분쯤, 입국 심사장에서 지문과 사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심사관들이 이들 11명의 여권을 모두 수거하고 다른 공간에서 대기하도록 하면서 시작됐다.

피해자들은 설명을 듣지 못한 채, 몸 수색, 사진촬영 등을 당했으며, 공항 측은 조사 이유를 요구했음에도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는 의사만 전했다. 뿐만 아니라 입국심사관들은 일본 방문계획서를 빼앗아, “데모하러 왔느냐”는 추궁을 하고, 한국 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한 전화 통화를 막기도 했다.

원폭피해자들의 짐을 모두 수색하겠다고 통보하는 후쿠오카 공항 입국심사관. (사진 제공 =평통사)

조사 5시간 뒤, 상륙 허가를 받은 뒤에도 피해자들은 조사 이유를 제대로 듣지 못했으며, 통괄의 발언을 통해 공항 도쿄 본청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만 드러났다.

또 다른 경위로 파악된 바로는 이번 억류는 한국 원폭피해자들이 지난 2008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작성된 ‘블랙리스트’에 따른 것으로 원폭피해자들은 이후 영사관을 블랙리스트 작성에 대해 항의하는 한편, 나가사키 교구 측에도 지원을 요청하기로 했다.

이들은 입국 뒤, 나가사키 폭심지 공원 행사와 미사에 참석했으며, 25일 한일 원폭피해자들을 위한 기도 모임에 참석한 뒤, 귀국한다.

한편, 이번 일본 방문에 참석하지 못한 (사)한국원폭피해자협회 이규열 회장은 참석자들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서신을 전하고, 한국을 비롯한 모든 나라의 ‘핵무기금지조약’ 가입과 모든 핵무기 폐기를 위한 노력을 요청했다.

이규열 회장은 “지금도 핵무기 강대국은 인류를 수십 번도 더 절멸시킬 수 있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다시는 결코 핵무기가 사용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며, “원인 모를 고통, 병마와 싸워 온 우리(원폭피해자)는 한반도 비핵화와 핵 없는 세계 실현에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나가사키에서 교황이 집전한 미사에 참석한 한국 원폭피해자들. (사진 제공 =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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