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구영주]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조한진희, 동녘, 2019

여기 질병을 개인화하지 않고 질병의 사회화를 논하는 책이 있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어느 페미니스트의 질병관통기", 조한진희 지음. 

이 책을 읽는 내내 고개가 끄덕여지는 공감과 누군가 말하지 않아도 나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듯한 작지만 따뜻한 위로를 느낄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단순히 우리 시대에 겪고 있는 수많은 질병이 개인의 노력과 안간힘에도 현대 사회의 구조화 속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통찰을 할 수 있었던 점에 감사한다.

저자는 19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페미니스트로 사회단체 활동가, 비혼주의자, 채식주의자, 1인가구로 살아가며 장애인 운동가로 활동하다가 2009년 팔레스타인 현장 활동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투병 생활을 시작한다. 이 책은 그때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저자가 몸에서 이상 신호가 온 것은 팔레스타인으로 3개월간 연대 활동을 다녀온 직후였다. 기운이 없고 눅진한 몸, 현기증, 과다한 하혈, 원인 모를 통증과 같은 증상들 때문에 병원에 가지만 모든 수치는 정상으로 나오고 오히려 갑상선암이 발견된다. 병원에서는 당장 수술을 권하지만 저자는 주춤한다. 자신의 몸을 모두 분절시켜 보는 병원시스템과 의료전문가인 의사들의 모습 속에서 내 몸을 총체적으로 봐 주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동시에 질병이 자신의 삶을 점유해 누구를 만나거나 계획을 세우는 데 있어 모든 걸림돌이 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병원에서 지정해 준 정기검진을 병행하며 동시에 한의사와 대체요법사에게 지도받은 식이요법을 시행한다.

책의 도입부에서 저자는 말한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 어느 페미니스트의 질병관통기", 조한진희, 동녘, 2019. (표지 제공 = 동녘)

"질병은 내 삶에 상처를 입혔다. 잘못 살아서 아픈 거라는 자괴감에 스스로를 미워했다. 질병 때문에 삶의 결정권을 잃고 계획이 무너지면서 상실감에 넘어졌다. 무엇보다 아픈 몸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 흔들리는 삶 위에 놓인 무력감은 고스란히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 안에서 마음은 자주 부서졌다. 질병에 의해 상처받았으니, 나는 질병을 응시하며 상처의 이유를 찾아갔다.

질병은 죄가 없었다. 몇 년간 응시한 끝에 비로소 얻게 된 결론이다. 내가 상처 입은 것은 질병 때문이 아니라, 질병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 때문이었다. 아픈 몸이 되고서야 비로소 우리 사회가 건강중심 사회임을 알게 되었다. 질병이 내 몸의 일부일 수 있음을 인정하자, 세상이 다르게 읽혔다. 비장애인 중심 사회가 장애인들을 배제하듯이, 건강중심 사회는 아픈 몸들을 배제하고 있었다. 아픈 몸들을 자책감의 나락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특별한 치료를 시작한 게 아니라 된장국에 나물 같은 평범한 음식을 신선할 때 섭취하고 몸에서 이롭지 않은 것들을 삭제해 나가는 방식이었다. 저자는 몸 일지를 쓰고 하루라도 빨리 정상인의 삶으로 복귀하고 싶어 했다. 이런 생활을 계속해 나가면서 정작 힘들었던 것은 여러 규칙을 지키며 사는 것보다 일상이 온통 질병에 점유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1년을 잡았던 치료 시기는 3년을 넘겼고 더딘 회복에 저자는 무척이나 초조해 하고 몸의 눈치를 보는 상태에 이른다. 질병을 경험한다는 것은 몸에 대한 통제권을 잃는 것이고, 어항 속에 돌 하나 더 얹어지는 게 아니라 핏물 한 컵이 부어지면서 물의 밀도가 변하고 그에 따라 생태계가 바뀌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는 저자의 말 그대로 완전히 다른 밀도와 다른 성질의 액체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몸이 되면서 우리 모두가 질병에 고립되지 않고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구든 질병 앞에서 외로움과 혼돈을 조금 덜 겪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자신이 아픈 몸이 되어 본 이후로 이 사회가 얼마나 건강중심의 사회인지 그리고 아픈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깊은 고독과 자책감을 느끼게 하는 일인지를 뼈아프게 통찰한다. 몸은 사회로부터 독립되어 개인에게 속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몸과 질병은 사회와 유기체처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사회의 변화는 몸과 질병에 민감하게 영향을 끼친다. 질병은 개인의 몸에서 발병하는 사건이지만, 더 가난하고 더 차별받을수록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수많은 통계가 말해 준다.

많은 이가 이런 통계 앞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럼에도 누군가 폐암에 걸렸다고 하면 개인의 지나친 흡연 습관을 탓하거나 위암에 걸렸다고 하면 짜게 먹고 빠르게 먹는 습관 때문이었다고 책망한다. 가난할수록 그리고 삶이 제한적일수록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시도할 수 있는 방식이 많지 않아서 담배에 의존하게 되는 현실은 사라진다. 정작 일을 하다 보면 밥 먹을 시간이 부족해 빠르게 먹어야 하고 그러면 짜게 먹게 된다는 현실 또한 사라진다. 이런 사회적 조건들은 삭제된 채 오로지 개인의 생활습관만 지적된다.

이 책은 총 5장에 걸쳐 질병과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언어를 찾아가는 작가의 이야기와 더불어 건강에 대한 잘못된 인식, 사회구조적 모순, 질병 낙인과 여성 질환, 해고된 여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의료 민영화와 대기업과 국가적 폭력 등등 사회 전반에 걸친 무수한 담론을 담고 있는 책이다. 한 개인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나 이 개인의 몸 안에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점과 질문들이 가득 차 있다. 저자가 자신이 아픈 몸으로 살아가며 자신의 질병을 설명할 어떠한 언어도 찾지 못해 오래 방황하고 아파하는 모습은 사실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는 한 번쯤은 아팠거나 여전히 아프거나 누군가는 아픈 미래를 맞기도 할 것이다. 누구도 예외 없이 아플 수 있고 한 번쯤은 아팠거나 여전히 아픈 몸으로서 살아가는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 보았으리라 생각한다. 그 막막함과 공포와 외로움을.... 필자 역시도 질병으로 아팠던 시간들이 있었다. 아팠던 과거에 필자 역시 나의 질병을 언어화하지 못했고 아픈 몸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지 못했다. 저자의 말처럼 그저 아픈 몸에서 빨리 벗어나 건강한 몸으로의 복귀를 희망하고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건강사회로의 진입만을 꿈꿨던 것 같다.

우리 사회 대부분이 그렇듯 건강을 추구해야 할 선으로, 질병은 퇴치해야 할 악으로 규정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하고 있다. 그러한 규정에서는 질병과 함께 살아야 하는 아픈 몸은 열등한 몸일 수밖에 없다. 건강이라는 선을 맹렬히 추구하고 있을 때만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반면 저자는 자신에게 아픈 몸이 언제나 건강을 향해 달리고 있지 않아도 괜찮고, 건강을 다소 잃었더라도 열등한 몸이 아닐 수 있다고 여겼다. 아픈 몸에 대한 사회적 태도와 환경적 조건이 변하면 아픈 몸도 ‘정상’적으로 온전히 살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 속에 함몰된 아픈 우리 개인들의 서사가 숨겨져 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서사를 드러내지 못하고 자신이 아픈 것을 드러내는 것을 꺼린다. 사회적 낙인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저자는 암 캠프에 갔을 때 암에 걸린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충격을 받는다. 암이라는 질병 자체도 힘들었을 텐데 스스로 잘못 살아 왔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낙인을 찍는 이유는 뭘까? 저자는 묻는다. 암에 걸렸다는 사실이 왜 죽고 싶을 만큼 창피한 일일까?

이 마음 안에는 우리 무의식 깊은 곳에 징벌에 대한 서사가 있다. 불교에서는 인과응보의 논리로 과거의 악행으로 병이 생겼다고 보고 기독교의 성경에도 “병이 다 나았으니 다시는 죄짓지 마라”와 같은 말이 그렇다. 여전히 일부 절이나 기도원에서는 질병치료를 위해 참회와 회개의식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TV프로에서 암에 잘 걸리는 성격 유형을 꼽아 화제가 되었는데, 첫 번째는 일 중독자, 두 번째는 완벽주의적 강박형 인간, 세 번째는 착한 여자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이다. 이는 모두 개인의 잘못된 성격 때문이라는 결론으로 이끈다. 하지만 이는 사회적 문제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은 이야기다. 우리는 OECD국가 중 노동시간 1위, 산업재해 1위이며 높은 실업률과 재취업이 어려운 사회다. 따라서 암에 잘 걸리는 세 가지 유형은 이렇게 재구성해 볼 수 있다.

첫째, 휴일에도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와 강도 높은 노동을 당연시 여기는 직장구조, 두 번째는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강박적 경쟁사회가 완벽주의자를 만들어 내고 그걸 프로패셔널한 것이라고 강요한다. 세 번째는 당연한 자기주장과 의사표현을 하는 여성을 이기적이고 사회생활 못하는 사람이라고 몰아붙이는 문화다. 이런 사회구조와 문화는 암에 잘 걸리는 세 가지 성격을 형성하도록 부추긴다. 이렇게 재구성했을 때 바뀌어야 하는 건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된 노동을 반복해도 결코 아프지 않은, 무한히 노동할 수 있는 몸이 아니다. 자연이 생명체에 부여한 생로병사를 낙인이나 차별 없이 겪을 수 있는 몸, 잘 아플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하다.

어느 정도 건강을 잃었다고 하더라도 온전히 행복할 수 있는 삶, 이는 질병이 삶의 선물이었다는 긍정 서사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영혼의 성장담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신 승리로 다시 개인에게 노력을 전가하는 형태는 바람직하지 않다. 아픈 몸도 행복한 삶은 질병을 ‘극복’하지 않아도, 자신의 몸을 ‘정상’으로 교정하지 않아도 자책감에 시달리지 않고 존중받는 사회에서 가능하다. 질병을 곧 불행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사회가 변화하길 바란다. 몸이 아프다는 생의학적 상태가 곧장 불행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 사회가 질병을 대하는 태도가 변하면, 아픈 사람들의 ‘불행’도 변화한다. 아파도 괜찮다고 사회가 말해 줄 수 있다면 아픈 이의 고통이 줄어들게 되고, 결국 아픈 이의 몸이 변화하게 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그간 우리의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했던 질병에 대해 자신만의 언어를 찾고 그것들이 사회적 발화를 거쳐 더 많이 담론화되길 바란다. 필자는 1회성으로 읽고 끝내기에는 이 책이 담고 있는 사회적 함의와 담론이 크고 깊어서 사람들과 함께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이 책을 꼼꼼히 읽고 각자 자신의 질병 경험과 경험을 통한 사회구조적 문제의 모순에 대한 이야기들을 꾸준히 해 나가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자본주의 사회 속에 힘없이 가라앉아 있는 우리 자신들의 상처와 아픔을 함께 보듬어 가는 중이다. 또한 누구도 아프다는 이유로 미안해 하지 않고 자신의 아픔을 통해 드러나는 사회의 일면을 뼈아프게 통찰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개인적으로는 이 모습을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당신 닮아 온전히 만드신 피조물들이 겪고 있는 지금의 고통과 질병에 아파서 미안해 하거나 아픈 것 때문에 더욱 상처받거나 하지 않고 지금 모습 있는 그대로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을 건네시는 그분의 음성이 마치 들리는 듯하다.

구영주(세레나)
11살, 세례 받고 예수님에게 반함. 뼛속까지 예술인의 피를 무시하고 공대 입학. 돌고 돌아 예술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며 피는 절대 속여서는 안 됨을 스스로 증명. 아이들과 울고 웃으며 화가로, 아동미술치료사로 성장.
칼럼과 서평 쓰기가 특기며, <가톨릭 다이제스트> 외 여러 잡지에서 자유기고가로 활동. 현재 남편과 7살 아들, 두 남자와 달콤 살벌한 동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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