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황정연] 9월 2일 강정 마을 천막미사 강론 전문

주님께서 당신의 정의와 평화를 사랑하고 강정의 자연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당신의 영을 내려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영을 내려 주시어 이 땅의 가장 작은 고을 강정에서 주님의 특별한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역사는 아픔으로 시작되었고 깊게 배인 상처를 가지고 있으나 주님의 영 안에서 희망을 봅니다.

2007년 강정의 아픔은 시작되었습니다. 2007년 강정 마을 전체 인구 1900명 중 단 87명만이 참석한 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가 참가자들의 박수로 결정했습니다. 강정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무시한 이 불의한 의도에 맞서기 시작하면서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지난한 투쟁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 수백 명이 연행되고, 수십 명 구속되었지만 그 누구도 이 투쟁의 불길을 꺼뜨리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전 세계 평화운동가의 시선을 집중시킨 생명평화 운동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강정의 생명과 평화를 위한 투쟁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구럼비를 되찾고 평화와 정의가 이 마을에, 이 섬에, 이 나라에 뿌리내릴 때까지 지속될 대장정입니다.

이 작은 마을 강정에서 이런 역사가 쓰일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약한 이를 일으키시고 힘을 주시는 주님의 영이 2007년 뒤로 끊임없이 강정 사람들을 일으켜 세울 주시지 않았다면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천 년 나자렛 회당에서 하신 자우와 해방의 희년 선포가 이 강정마을에서 끊임없이 재현되었기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하느님의 거룩한 영이 나자렛 사람 예수에게 내리셨듯이, 이 강정에서 사는 사람들과 강정을 찾는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셨습니다. 강정 마을 제주해군기지 반대투쟁은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지켜 내기 위한 사회정치적 투쟁을 넘어서, 주님께서 사랑으로 창조하신 세상을 지키고 돌보는 참된 생명 운동이자 탐욕적 자본주의에 물든 더러운 영과 맞서서 영적 존재인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 내면서 주님의 진리를 선포하는 선한 영의 투쟁이었습니다.

펜스로 갇히고, 폭파되기 전 마지막 구럼비 바위의 모습. ⓒ정현진 기자

투쟁의 대가는 작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영을 따르는 어려움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죽음의 길은 넓었으나, 생명의 길을 좁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희년을 선포하시고 나자렛 마을 사람들에게 봉변을 당하셨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올바른 말씀을 들었고, 그들이 마음도 움직임을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님의 출신 배경에 관한 선입견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마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돌밭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유대인들은 주님의 말씀을 깊이 받아들이지 못해, 해가 돋은 뒤에 곧 뿌리가 타들어 가듯이 바로 마음을 돌처럼 딱딱하게 만들어 버리고,(마태 13,5-6 참조) 주님을 거부하고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에 따르면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화가 잔뜩 나서 들고 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고,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했다고 합니다.(루카 4,28-29 참조) 예수님은 예언자들이 받는 박해와 굴욕을 다 고스란히 받으셨습니다. 자유와 해방의 길로 나서는 대가를 주님은 몸소 치르셨습니다. 그리하여 이 길에서 자신을 따르는 모든 이에게 당신의 영을 주셨습니다,

이 가장 작은 고을 강정에서도 참으로 많은 사람이 박해를 받았습니다. 벼랑에 셨던 예수님처럼 많은 이들이 벼랑 끝으로 몰렸습니다. 심지어 문정현 신부님은 2012년 성주간 성금요일 십자가의 길 전례 중에 강정포구 방파제 아래로 추락하는 끔찍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벼랑과 같은 방파제로 떨어졌던 신부님은 기적처럼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천주교 사제과 수도자가 구속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군사독재 시절에나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국민투표를 거쳐 선출된 정권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탄압에도 더 많은 사제와 수도자와 평신도가 강정을 찾았습니다. 수많은 역경과 실패에 주님의 영은 강정 마을에 있는 당신의 백성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박해하는 이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나아가셨듯이,(루카 4,30 참조) 강정에 있는 주님의 백성들은 정의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강정의 해군기지 반대투쟁은 근본적으로 영적 투쟁이었기 때문입니다. 해군기지는 추구하는 사람들은 돈과 권력에 자신의 영혼을 팔아 버렸고, 많은 이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식별하지 않고 그들을 따라갔습니다.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인권과 민주주의 탄압했고, 자연을 파괴했습니다. 이러한 더러운 영의 거대한 힘에 맞서서 그리스도의 깃발을 들어 올린 신앙인들을 이 악과 맞서 싸우면서 희망을 잃지 않고 지속적인 내적 외적 투쟁을 해 왔습니다. 수많은 주민과 활동가가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 왔습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공황장애로 고통받은 이들이 많았고 극심한 불안과 자살 충돌을 포함한 여러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런 내적 어려움을 대면하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영적 투쟁입니다. 주님의 영을 꽉 붙잡지 않으면 몰려드는 불안과 무기력감을 이겨 내기 너무나 힘듭니다. 해군기지가 완공되어도 멈출 수 없는 영적 투쟁입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내적 투쟁이기도 합니다.

강정 마을의 미사는 멈추지 않는다. ⓒ정현진 기자

너무나 큰 어려움에도 끝없이 이어지는 강정 사람들의 영적 투쟁은 주님의 사도들이 겪은 삶을 닮았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의 위협과 극심한 육체적 고난을 겪으면서도 신자들에 대한 걱정으로 인한 내면의 고통을 겪으셨다고 고백하십니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내는 둘째 서간에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수고와 고생, 잦은 밤샘, 굶주림과 목마름, 잦은 결식, 추위와 헐벗음에 시달렸습니다. 그 밖의 것들은 제쳐 놓고서라도, 모든 교회에 대한 염려가 날마다 나를 짓누릅니다. 누가 약해지면 나도 약해지지 않겠습니까?”(2코린토 11,27-29ㄱ) 강정 마을에 있는 주님의 백성이 겪는 고통을 바오로 사도가 위로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사도는 자신을 짓눌리는 정신적 고통 중에서 약해지는 자신의 마음을 다시 부여잡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끝까지 수행했습니다. 사도에게는 주님의 영이 함께했고, 성령이 불어넣어 주신 희망이 있었습니다. 사도는 자신의 치열한 영적 투정의 여정이었던 수차례의 전도 여행을 마치고 로마에서 자신의 대장정을 마무리하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강정의 생명평화 운동도 그렇습니다. 영적 투쟁입니다. 성령이 불어넣어 주는 힘과 용기가 없었다면 한 걸음도 더 나아가기 힘든 운동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강정을 저버리지 않으셨기에, 주님의 영이 강정 사람들을 떠나지 않기에 희망을 가지고 생명 평화의 대장정을 이어 갑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눈에 보이는 어떤 무기도 사용하지 않고 이 자리에서 불의에 맞서서 정의를 선포하고 평화를 기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기가 있습니다.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이들을 가지지 못한 힘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의 영이 우리에게 주신 희망이입니다.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죽음과 같은 고난 앞에서 희망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처럼 슬픔과 불안에 머무르지 맙시다.(1테살로니카 4,13 참조) 주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더욱 더 힘차게 움직이는 은총을 하느님 아버지께 청합시다. 그리스도 부활의 희망을 우리 영에 새기고 작은 고을 강정 마을의 정의와 평화와 생명의 대장정을 완수합시다.

황정연

예수회, 로마 교황청 설립 그레고리안 대학교 영성심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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