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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베네수엘라는 파국에 이르렀는가?[특별기고 - 안태환]

현재 베네수엘라는 대통령이 둘이다. 하지만 미국의 ‘군사적 해결’ 선택(직접이든 간접이든)은 시간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친미 세력인 라틴아메리카의 ‘리마 그룹’ 국가들이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이 보낸 “인도적 원조”는 국경에서 막혀 있는 데 비해, 유엔의 조정과 마두로 정부의 요청으로 미주 보건기구, 중국, 쿠바 등이 보낸 의약품 등 900톤 이상의 “인도적 원조”물품이 도착했다.

좌파 매체에서는 파국의 원인으로 유가 하락, 미국의 경제 제재, 미디어 공격 등 외부요인을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마두로 정부 아니 차베스 정부부터의 정치, 경제적 정책실패와 그 배경이 되는 민주주의의 결여가 없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차베스혁명이 잘나가던 2010년 5월 전남대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한 스티브 엘너는 차베스 정부가 “21세기 사회주의”로 표현되는 이상주의/현실주의의 애매한 상황에 빠져 있다고 했다. 전자는 주로 진보적 지식인들, 후자는 관료들이 지지했다. 스티브 엘너는 전자를 “문화적 낙관주의”라고 했고 후자는 자본주의를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관점이라고 했다. 한편 트로츠키 주의자 등 좌파 급진세력은 급격한 국유화 등 사회주의적 정책집행을 요구하면서 차베스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차베스는 연설 등을 통해 전자의 관점을 보여 주었지만 상당수의 정책은 후자를 택한다.

유명한 “21세기 사회주의” 담론은 사실 아무도 가 보지 않은 길이고 소련의 비민주적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담론이다. 그리하여 전 세계의 진보적 학자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의 일부 학자들은 2009년부터 이미 그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를 진행시키면서 서서히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 말은 쉽지만 구조적, 주체적으로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세계체제가 가지는 폭력적 또는 위계서열적 속성 때문에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주의적 이상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차베스 혁명의 이상주의는 관료들과 시민 각자가 소위 체 게바라가 말한 ‘새로운 인간’으로 즉, 사회주의적 윤리적 주체로 거듭나야 하는 전제가 있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의 오래된 정실주의(연고주의)의 문화적 전통은 부정부패에 둔감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2013년 차베스 사후 집권한 마두로 정부에서 유가하락과 미국의 경제제재와 맞물려 경제안정을 위한 일련의 재정 금융정책들이 오히려 더욱 극소수의 정부 친화적 부르주아에게 특권화되기 쉬운 기회를 주었고 고위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조장한 것이 아닌가 한다. 구체적으로 경제 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볼리바르화 공식 환율이 실제 시장과 달리 정부에 의해 지나치게 고평가됐고, 이로 인한 기만적 수입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전문가가 있다. 예를 들어, 의약품 수입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2003년에 비해 2013년, 2014년의 경우, 수입물량은 87퍼센트가 줄었는데 수입금액(FOB기준)은 오히려 약 10배로 늘었다. 그리고 2003년에 의약품 1킬로그램에 2달러를 지불했다면 2014년에는 86달러를 지불했다. 수입대금의 명목으로 엄청난 외환이 외국으로 유출되고 있다. 상식적으로 환율이 낮아지면 수입 가격이 떨어지고 수입이 늘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수입이 제대로 안 되고 공급부족이 심각해 악성 인플레가 일어나고 있다. 2003년에 10킬로그램이 수입되었다면 2014년에 오직 1.3킬로그램이 도착했다. 문제의 핵심은 사기(부정부패)일 수 있다. 서류에 실제 수입금액보다 부풀려 써 넣거나 서류상에는 있고 실제로는 수입이 이루어지지 않는지 등등.(Sutherland, 2016,1) 현재 차베스 혁명에 호의적인 좌파 지식인들도 현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와 부정부패를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마두로 정부 고위층에 의한 공금횡령이 약 350억 달러라는 비판이 있다.(Santiago Arconada, 2019.2.12)

베네수엘라 사람들. (사진 출처 = Flickr)

라틴아메리카의 일부 학자들은 베네수엘라보다 볼리비아가 정치, 경제적 변혁이 쉽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볼리비아에는 이미 사회주의적(라틴아메리카식 코뮨주의) 성향의 원주민들의 집단적 주체가 (식민지 시기 이전부터 있었던 공동체적 아이유(Ayllu) 제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는 현존하는 자본주의 국가들 중에서도 사회주의적 요소가 아주 약한 체제다. 왜냐하면 경제 구조 자체가 수출액의 90퍼센트를 넘는 원유에 압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대표적인 ‘지대 추구’ 국가다.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부동산 투자(?)에 열중한 지대 추구 국가로서 경제, 사회적 병폐가 심한 것을 절실히 경험하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원유 생산 외에 변변한 산업이 없다. 농업도 거의 존재감이 없다. 그리하여 대부분 상품을 수입(무역)에 의존한다. 따라서 세계자본주의체제 또는 미국경제에 의존도가 매우 높은 나라다. 그러므로 미국이 주도한 경제 제재에 매우 취약하다. 여기에 2014년부터 유가가 하락했다. 결정타를 맞은 것이다. 라틴아메리카 경제 전체로 보더라도 2004년이 최고의 성장기였고 2014년부터 GDP 수치가 하락하기 시작한다. 차베스 체제로서도 2004년이 우파의 방해와 견제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 시기였고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위기 국면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과림바'(Guarimba)로 불리는 과격 우파에 의한 폭력적 시위가 격화되기 시작한 것도 2014년부터였다. 하지만 차베스 체제의 진정한 위기는 이보다 앞서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 좌파 지식인 사회에 영향력이 큰 탈식민성 담론의 저명한 학자인 에드가 란데르는 차베스 정부의 정책 수립 과정이 깊은 수준의 정책 기획을 위한 연구 분석과 집단적 토론을 거치며 비판적 의견을 수렴하는 ‘민주주의적 문화’와 거리가 멀었다고 비판한다. 란데르는, 차베스 혁명이 ‘권위주의적’으로 변질된 것과 관련하여, “2010년 9월의 총선에서 실질적 패배 이후 2010년 12월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새로운 수권법의 통과 시점을 주목하고 있다. 그때부터 의회 권력이 약화되고 정치적 논쟁과 공공영역이 축소됐다고”(Lander 2011, 1)한다. 이런 상황이 쌓여 나타난 결과가 2015년 12월의 여당의 총선 패배였다.

차베스 체제는 포퓰리즘 체제다. 포퓰리즘은 복잡하고 논쟁적인 개념이지만 양날의 칼을 가지고 있다. 정치 경제의 위기 상황에서 고통받는 ‘대중의 요구’를 받아들여 사회적 공공성을 높이는 것은 민주주의의 심화가 되지만 일인 카리스마 지배체제가 굳혀지면서 내부의 비판과 토론이 사라지는 민주주의의 퇴보가 일어날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 전체로 보아서 좌파 정치의 전성기는 2005년 11월이었다. 그 당시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미주 정상회의에서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구상인 라틴아메리카 전체를 자유무역 지대화하려는 기획(ALCA)을 차베스의 주도와 아르헨티나, 브라질 좌파 정부의 지원으로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얘기지만 일찍부터(원유가격이 높았던 시절부터) 차베스는 자본주의 체제에의 저항력을 키우기 위해 역설적으로 매우 자본주의적(?)이면서도 변혁적 성격의 경제 정책을 치밀하게 준비했어야 했다. 그 대신 차베스는 지나치게 외교, 정치, 사회정책에만 몰두했다.

많은 지식인이 지적하는 문제의 핵심은 정책 결정권을 가진 정부의 고위직을 포함한 좌파 지도부가 일반 대중보다 더 후진적이고 오류가 많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정책의 혼란을 키우고 효율성을 낮춘 이유 중 하나는 포퓰리즘과 연동되어 좌파 전반의 분위기가 ‘반지식인주의’(반지성주의)의 성향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2013년 차베스가 사망하기 전부터, 그리고 2014년 원유값이 본격 떨어지기 전부터 베네수엘라 정치는 ‘비판과 토론’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적’ 방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현재 급박한 파국 국면의 평화적 대안으로 일부 비판적 좌파 지식인들이 헌법에 규정된 대로 ‘국민투표’를 진행하자고 공개 건의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도 공개서한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마두로/과이도 양 진영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하지만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마두로 정부가 군부의 충성을 바탕으로 버티는 것은 차베스혁명의 이상에 대한 대중의 선의 때문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2월 25일 한국 정부가 과이도를 합법정부로 인정했다고 한다. 조금 성급한 것 같다. 현재 과이도의 시도는 실패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안태환(토마스)
한국외대, 대학원 스페인어과 
스페인 국립마드리드대 사회학과
콜롬비아 하베리아나대 중남미 문학박사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HK교수
현재 한국외대 스페인어과에서 중남미의 역사와 정치, 사회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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