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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2월 20-21일)[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

(편집 : 장기풍)

“정의를 요구하는 작은 이들의 외침을 듣자”

교회 내 미성년자 성 학대 보호 바티칸 회의 개막

 

새롭게 단장한 바티칸 시노드 홀에서 2월 21일부터 24일까지 진행되는 “교회 내 미성년자 보호”에 관한 회의가 시작됐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시작기도 후 기조연설을 통해 단순하고 신뢰하기 어려운 처벌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조치의 마련을 염원하며 회의 시작을 선언했다. 교종은 전 세계에서 모인 총대주교, 추기경, 대주교와 주교들, 수도회 총장들, 그리고 책임자들에게 정의를 요구하는 작은 이들의 외침을 이해하기 위해 성령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미성년자들에게 해를 끼친 교회 관계자들이 저지른 성적학대 상처에 직면하여, 신앙으로 무장하고, 최대의 솔직함과 통회와 용기와 구체적 상황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정신으로 무장하여 우리의 여정을 시작하자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연설에서 “이 회의는 사목적이고 교회적인 책임의 무게를 느끼게 합니다. 또한 이 회의는 교회와 인류를 괴롭히는 이 악을 어떻게 대면해야 하는지에 관해 우리가 시노드 정신으로 솔직하고 깊이 있게 함께 토론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단순하고 신뢰하기 어려운 처벌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조치들이 취해지길 우리에게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서 구체성을 바라고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교종은 참석자들의 창의력을 빼앗지 않으면서, 그들의 성찰을 돕기 위한 참고자료로 여러 위원회와 각국 주교회의에서 작성한 몇 가지 중요한 기준들을 참가자들에게 가이드라인으로 전달했다. 아울러 교종은 바티칸 미성년자보호위원회와 신앙교리성을 비롯해 이 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탁월한 업무를 수행한 조직위원회 위원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교종은 “끝으로 이 회의 동안 성령께서 이 악을 인식과 정화의 기회로 바꿀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길 청합니다. 소아성애 스캔들이 어린이들과 신자들에게 초래한 심각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길 청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회의는 기도로 시작했다. 참석자들은 각자 기도를 드렸다. “진실이 지워지지 않고, 정의가 가해자들 편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또한 “추행당하고, 상처입고, 학대 받고, 대우 받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기도했다. 참석자들은 주님께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우리의 실패 때문에 사람들이 당신과 당신의 복음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게 해주십시오.” 이어 한 체험담이 낭독됐다. “아무도 저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부모님, 친구들, 나중에는 교회의 책임자들까지도, 아무도 저의 말과 저의 울음을 듣지 않았습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왜?’라고 물었습니다. 왜 하느님께서 저의 말에 귀 기울여 주시지 않는지를 물었습니다.” 이후 회의장에는 길고 깊은 침묵이 흘렀다.

 

 

“하느님 완전한 사랑 앞에 누구도 혼자가 아니다”

교종, 수요 일반접견 교리교육 ‘주님의 기도’(6)

 

프란치스코 교종은 2월 20일 수요 일반접견에서 ‘주님의 기도’에 대한 교리교육을 이어 가면서 역경으로 부모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세상에서 모든 우리의 사랑이 무너진다 하더라도 모두를 위한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잊으실 수 없으므로 어느 누구도 혼자가 아니며 따라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은 영원하다고 강조했다. 교종 가르침 내용.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일반접견은 두 장소에서 진행됩니다. 이곳 바오로 6세 홀에 오기 전 저는 성 베드로 대성전에 모인 베네벤토 대교구 신자들과 만났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입니다. 이처럼 두 장소에서 행사가 이루어진 것은 여러분이 감기에 들지 않기 바라는 궁내원의 배려 덕분입니다. 행사를 치를 수 있도록 애써 주신 궁내원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주님의 기도에 대한 교리교육을 이어갑시다. 모든 그리스도교 기도의 첫 번째 단계는 신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곧, 하느님의 부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앵무새들처럼 기도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아버지라는 신비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기 원한다면 신비에 들어가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신지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것은 어느 정도 정제하고, 정화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말합니다. “마음의 정화는 우리의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역사 안에서 형성되어 왔고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아버지상이나 어머니상과 관련된다.”(교리서 2779항)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완벽한 부모를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로 완전한 부모나 목자가 될 수 없습니다. 모두 결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관계를 항상 우리의 한계와 이기주의의 표식아래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종 다른 사람을 소유하거나 조작하려는 욕구로 오염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때때로 사랑의 선언이 분노와 적대감으로 변하곤 합니다. “웬일이니, 저 두 사람은 지난주만 해도 그렇게 사랑하더니 오늘은 죽을 만큼 미워하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자주 봅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우리 모두 안에 좋지 않은 쓰디쓴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때로는 그것들이 밖으로 나가서 해를 입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말할 때, 특히 부모님이 우리를 사랑했다면 그들을 생각하면서 한 걸음 더 멀리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사랑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권고하신 표현에 따르면 바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불완전한 방법으로나마 맛볼 수 있는 온전한 사랑입니다. 모든 남녀들은 사랑을 갈구하는 사랑의 영원한 가난뱅이들이며, 우리도 사랑을 갈구하는 사랑의 영원한 가난뱅이들입니다. 우리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결국 그들은 사랑 받을 곳을 찾아 헤매지만 찾지 못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안에는 우정과 사랑에 대한 많은 실망이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 안에서 사랑의 신은 가장 비극적 존재입니다. 그가 천사와 같은 존재인지 악마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신화는 그가 포로스(Poros, 교활함, 술책)와 페니아(Penía, 결핍)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곧 자신의 부모와 같은 모습을 지녀야 할 운명으로 태어난 교활함과 결핍의 아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 사랑의 모순적인 성격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루 한 시간 만에 꽃처럼 피어오르고 맹렬하게 살 수 있지만 곧바로 시들고 소멸하는 사랑입니다. 붙잡으려 하지만 항상 빠져 나가는 사랑입니다. 예언자 호세아는 우리 사랑의 선천적 약점에 대해 냉철하게 표현합니다. “너희의 신의(사랑)는 아침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 같다”(호세 6,4) 우리의 사랑은 자주 이렇습니다. 곧, 유지하기 어려운 약속이며, 곧바로 건조되고 증발해 버리는 노력이며, 아침에 나온 태양이 밤이슬을 말려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종종 우리 인간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약하고 간헐적으로 사랑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없어지거나 약해졌습니다. 우리는 사랑하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우리 힘의 빈곤과 더불어 한계에 부딪힙니다. 은혜로운 날에는 실천하기 쉬워 보이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합니다. 베드로 사도조차도 두려워 도망쳐야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 역시 예수님의 사랑에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항상 우리를 넘어뜨리는 이러한 약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여정에서, 우리 삶의 첫날부터 찾던 보물을 완전히 찾을 수 없는 위험에 놓인 가난뱅이들입니다. 그 보물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랑이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모두가 이 사랑의 수령자라는 것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조차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 지구상의 그 어떤 사람도 한 적이 없으며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 계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말합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보라, 나는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은 늘 내 앞에 서 있다”(이사 49,15-16) 오늘날 문신이 유행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는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하느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그것을 없애버릴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결코 자식을 잊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과 같습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하느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습니다. 비록 세상에서 우리의 모든 사랑이 무너지고 먼지 속으로 사라진다고 할지라도, 항상 우리 모두를 위한 열렬하고 유일하며 충실한 하느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느끼는 사랑에 대한 굶주림 속에서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찾지는 않습니다. 사랑의 굶주림은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인식하라는 초대입니다. 예를 들어, 성 아우구스티노의 회심은 다음 능선을 통과했습니다. 젊고 똑똑한 이 수사학자는 그 어떤 피조물도 자신에게 줄 수 없는 무엇을 찾아 헤맸습니다. 어느 날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향해 고개를 들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기 전까지 말입니다. 그는 바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 그 날, 하느님을 알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늘에”라는 표현은 거리감을 표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근본적인 다름과 지칠 줄 모르는 사랑, 늘 남아 있는 사랑, 항상 손닿는 곳에 있는 사랑의 또 다른 차원의 표현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말하기만 하면 그 사랑이 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닙니다. 역경 중에 여러분의 아버지가 여러분을 잊어버리고, 여러분이 아버지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적 체험은 여러분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곧 여러분은 하느님의 사랑스러운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안에서 여러분을 향한 하느님의 열렬한 사랑의 불을 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말보다는 증거하는 삶을 사십시오”

교종, 성 비오 신부 고향 신자방문단과 특별한 만남

 

오상(五傷)의 성 비오 신부 고향 피에트렐치나의 베네벤토대교구 신자 2500여 명이 프란치스코 교종이 지난 해 3월 17일 피에트렐치나를 방문한 데 대한 응답으로 2월 20일 바티칸으로 프란치스코 교종을 예방했다. 교종은 이날 수요 일반접견에 앞서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이들을 만나 연설했다. 연설 내용.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좋은 아침입니다! 참으로 많은 분들께서 방문해주셨습니다. 마치 시성식을 보는 것 같습니다. 주교님과 시장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영혼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이 의례적인 방문에 감사를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 각자에게 저의 따뜻한 환영의 마음을 전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목자이신 펠리체 아크로카 대주교님과 함께 로마에 오셨습니다. 여러분의 방문은 성 비오 신부님 선종 50주년과 오상(五傷) 100주년을 맞아 지난해 3월17일 제가 피에트렐치나를 기쁜 마음으로 방문한 데 대한 응답입니다. 당시 여러분이 저에게 보여주신 따뜻한 환대에 대해 다시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그 날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당시 저와 인사 나누고 제 마음속에 남아있던 수많은 병든 사람들을 결코 잊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죠. 교회적, 영적 중요성으로 가득 찬 그 사건의 기억은 여러분의 뛰어나고 거룩한 동료이신 비오 신부님의 가르침을 따라 신앙생활을 깊게 하려는 열망을 불러일으킵니다. 비오 신부님은 하느님에 대한 굳건한 신앙, 천국에 대한 굳건한 희망, 사람들에 대한 너그러운 헌신, 그리고 모든 곤란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사랑했던 대상인 교회에 대한 충실성 등으로 스스로를 다른 이들과 구별하셨습니다. 저는 이 점에 대해 잠시 생각하고자 합니다. 비오 신부님은 교회가 갖고 있는 수많은 곤경들, 수많은 역경들, 수많은 죄인들과 함께 교회를 사랑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거룩하기 때문이고, 그리스도의 정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의 자녀들은 모두 죄인들입니다. 몇몇은 큰 죄인들입니다. 그럼에도 비오 신부님은 교회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셨습니다. 비오 신부님은 혀로, 그러니까 오늘날 유행하는 방식대로 교회를 난도질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하셨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은 용서하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자신이 죄인이며 하느님의 용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용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고발하고, 고발하고, 또 고발하면서 전 일생을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고발하는 사람의 사무국은 어디에 속해있습니까? 성경이 ‘거대한 고발자’로 부르는 이가 누구입니까? 악마입니다! 고발하면서 일생을 보내는 그들은 악마의 친구들이고 악마의 사촌들이며 악마의 친척들입니다. 악마의 자녀들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악마는 자녀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 우리는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 결점들을 지적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결점들을 보고할 때 그 결점들을 여러분이 잘 알게 되더라도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 없이 그러는 건 악마로부터 온 것입니다. 성 비오 신부님은 모든 곤란과 역경과 함께 교회를 사랑하셨고, 교회의 자녀들이 지은 죄와 함께 교회를 사랑하셨습니다. 이 점을 잊지 마십시오. 저는 여러분이 우리의 참된 기쁨의 원천이자 원동력인 하느님의 사랑을 더 많이 이해하고 맞아들이길 권합니다. 우리는 특별히 가장 약하고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이 생명을 변화시키는 사랑을 전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자선활동을 전파함으로써 우리 각자는 보다 공정하고 지지하는 세계 건설에 기여합니다. 비오 신부님의 모범을 따라, 지치지 말고 그리스도에게 여러분을 내어 맡기십시오. 그리고 증거하는 삶을 통해 그분의 선하심과 자비를 선포하십시오. 우리 시대 모든 남녀가 주님의 제자들에게 기대하는 바는 증거하는 삶입니다. 여러분의 주교님이 잘 아시는 프란치스코 성인을 생각해보십시오. 성인은 그의 제자들에게 ‘가서 증거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말은 필요치 않습니다. 가끔 우리는 말을 해야 하지만 증거하는 삶으로 시작하십시오. 그리스도인답게 사십시오. 사랑이 증오보다 아름다우며, 우정이 적대감보다 아름답고 우리 가운데 있는 인류애가 전쟁보다 더 아름답다고 증거하십시오. 이번 방문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저의 진심 어린 축복을 모두에게 전하며, 여러분의 가족과 지역사회, 베네벤토 대교구 전체에 저의 축복을 전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 편집자 장기풍 씨가 개인사정으로 2월 24일부터 4월 1일까지 코너를 쉽니다. 그 뒤에 다시 뵙겠습니다. -편집자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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