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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논의, 비범죄화가 핵심사회단체들, 국제 흐름과 종교 역할도 논의

헌재가 낙태죄 위헌 여부를 심의 중인 가운데,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낙태죄의 위헌성을 법학적, 종교적, 국제적 관점에서 논의했다. 

‘시민사회, 낙태죄 위헌을 논하다’를 주제로 한 이 자리는 343개 단체로 구성된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가 주관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정강자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공동대표는 “낙태 의제가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간의 논쟁으로만 제시돼 다양한 의견을 모을 기회가 없었다”며 “이 의제는 그간 논의에 앞장선 당사자와 여성운동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낙태의 범죄화는 여성의 건강과 삶에 악영향 

이날 국제앰네스티 아일랜드지부 그레이스 윌렌츠 조사담당관은 낙태죄 폐지에 대한 국제 흐름과 낙태죄로 인한 악영향, 아일랜드의 사례를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196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형법에서 낙태를 처벌하는 규정을 없애는 추세로, 1985년부터 36개국 넘게 낙태법을 개정하고 낙태를 보건 서비스에 통합해 의료적, 법률적 지원을 하고 있다.

그는 유엔과 세계보건기구 등의 보고서에 따르면, 낙태 합법화보다 낙태 불법화가 더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낙태가 불법일 경우, 여성은 범죄라는 수치심, 낙태로 인한 고통 등 정신 건강 문제를 겪을 뿐만 아니라 불법 시술을 받게 되고, 처벌 때문에 낙태 이후 합병증 치료 등의 의료적 지원을 받기 어려워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총무 민김종훈 신부(왼쪽), 국제앰네스티 아일랜드 지부 그레이스 윌렌츠 조사담당관. ⓒ김수나 기자

아일랜드 낙태금지법 폐지

대표적 낙태 금지국이었던 아일랜드는 2018년 5월 국민투표로 헌법의 낙태금지 조항을 폐지했고 임신 초기 여성의 요청에 따라 낙태가 가능해졌다.

그레이스 윌렌츠 조사담당관은 “그간 17만 명 이상의 여성이 다른 나라에 가서 낙태 시술을 받아야 했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여성이 인터넷에서 산 낙태약을 복용해야 했다”고 밝혔다.

그는 “변화의 수단으로 국민투표를 (한국에) 권하지 않겠다”면서 “아일랜드는 헌법을 수정하기 위한 수단이 국민투표밖에 없었고, 인권은 결코 투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낙태금지 폐지가 단지 낙태 접근이 확대된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면서 “역사적으로 여성의 성과 재생산을 국가, 종교기관이 처벌과 통제를 통해 억압해 왔기 때문에 낙태금지 폐지는 어두운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여성이 직접 나서 자신의 경험을 전국 토론에 참여해 공유했기 때문에 여론의 지형이 바뀔 수 있었다”며 “공영방송에 따르면 국민투표자 중 43퍼센트가 지인의 경험, 언론에서 다룬 개인의 낙태 경험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조언했다.

헌법에서 낙태금지를 폐지했을 때 그 공백에 대한 법안이 제시됐고, 부모, 가톨릭교회, 변호사, 노조 등 사회의 다양한 이들이 힘을 모았기 때문에 헌법 수정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국민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규정 폐지에 찬성한 것에 대한 앰네스티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신자 대다수는 개인적으로는 종교적, 윤리적 이유로 낙태를 반대하지만 법으로 타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는 입장에서 낙태죄 폐지에 찬성한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종교는 사회를 통제하는 기구 아니야

일관되게 낙태죄 폐지를 반대해 온 주류 그리스도교회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성공회 민김종훈 신부는 “종교가 생명윤리 관점에서 낙태를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이를 국가가 법률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은 엄연히 다르다”면서 “일부 그리스도교가 여성의 권리를 통제하는 것은 신의 자리에서 누군가의 삶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으로 종교인이라면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종교는 사회를 통제하는 기구가 아니”며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임신중단권을 논의할 때 현대 의학과 윤리학이 생명과 인간됨을 어떻게 보는지에 관심이 없고, 오직 성서의 문구나 교회 회칙에만 집중한다”고 비판했다.

주류 종교계가 임신중단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비윤리적으로 보고, 낙태 논의를 생명 옹호와 여성의 이기적 선택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의 역할은 여성의 주체성을 살리고, 법적, 사회적 돌봄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아이를 안전하게 낳을 권리를 위해 다양한 사회적 안전망을 갖추라고 요구하는 것”이라 지적했다.

그는 최근 천주교 생명운동본부가 내놓은 “여성 처벌 금지 가능, 의료진 처벌은 유지”라는 주장도 “전혀 진일보한 주장이 아니며, 이는 낙태죄 위헌 판결로 낙태죄가 사회 전체적으로 작동하지 않게 될 경우 또 다른 방식으로 낙태죄를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라 비판했다.

지난 18일 <한국일보>는 천주교 생명운동본부가 낙태죄 여성 처벌은 폐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가 확인한 결과, 이는 생명운동본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며 다만 논의의 필요성만 제기된 상태다. 

그는 이어 천주교의 낙태 논의에는 여성 당사자의 목소리가 빠져 있다며, “간혹 나오는 여성의 목소리조차도 충실하게 통제된 것”으로 “천주교에서도 여성의 정직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어야 온전한 교회의 역할이 될 것”이라 봤다.

21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시민사회, 낙태죄 위헌을 논하다' 포럼에서 피켓을 든 발표자들. ⓒ김수나 기자

낙태죄 위헌 되려면 태아는 인간 아니어야

태아의 생명권에 대한 현행 법체계상의 모순점과 낙태죄가 위헌이 되려면 태아는 인간이 아니라는 논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이한본 변호사는 “낙태죄가 위헌이란 근거로 태아의 생명권을 제한할 수 있는 논거는 없다”며 “낙태죄가 위헌이 되기 위해서는 태아는 인간이 아니라는 논리가 수용돼야 한다”고 봤다.

이는 태아는 생명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현행 민법과 형법에서는 태아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법은 태어난 뒤, 형법은 출산진통이 생긴 때부터 사람으로 본다는 설명이다.

그는 태아의 생명권을 규정한 헌법에 따르면 낙태를 일부 허용하는 현행 모자보건법도 위헌이라고 지적했다. 어떤 상황에서 임신됐다 해도 태아는 모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험관 아기 시술 과정에서는 인공임신중절과 똑같은 방식으로 8주된 태아를 선택 유산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또 어떻게 볼 것인가란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현재 낙태죄 논의의 중심은 “낙태를 범죄로 처벌하지 말자는 것이지 낙태를 허용하라는 것이 아니다”면서 낙태죄 형벌조항 폐지에 먼저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임신과 출산 지원 정책에만 한정된 여성 노동자의 재생산권과 건강권 논의가 이번 낙태 논의를 통해 더욱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날 포럼에서 논의한 내용은 헌법재판소에 의견서로 제출될 예정이다.

한편, 헌재는 2012년 태아의 생명권이 임부의 자기결정권보다 중요한 권리이며, 사회적, 경제적 이유로 인한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것도 임부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 보기 어렵다며 낙태죄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번에는 2017년 제기된 낙태죄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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