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정평위 '함께꿈' 미사와 토크쇼, "5.18민주화운동 기억"

"기억한다는 것은 '회상'이 아니라 우리 삶 안에서 비춰 보고 돌아보며, 앞으로의 삶의 비전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5월 18일 오후 대구대교구청 내 한 카페에서 ‘5.18민주화운동의 기억과 식별’을 주제로 토크콘서트와 미사가 진행됐다.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주최로 열린 ‘함께꿈’ 미사와 토크콘서트에서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총무 방래혁 신부는 5.18민주화운동을 기억하고 식별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90여 명의 사제, 수도자, 신자들과 대화했다.

“저는 여러분과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공감’, ‘폭력에 대한 저항’, ‘자유’, ‘평화’,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하느님이 우리 인간을 만들고 가장 처음 해 주신 것은 ‘복을 빌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 존엄의 이유이고, 그 존엄은 광주 사람, 대구 사람, 제주 사람이 다르지 않습니다. 누구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연대하는 감각을 키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고 식별해야 합니다.”(방래혁 신부)

대화에 앞서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약 열흘간 광주에서 벌어진 항쟁의 배경과 상황, 의미에 대해 설명한 방래혁 신부는, “2000여 년 전에 살고 죽었던 예수를 통해 오늘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 것과 1980년의 광주를 기억하고 식별하는 의미는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 ‘5.18민주화운동’을 광주만의 사건이라거나, 북한이 관여한 사건이라고 폄훼하는 시선에 대해, “‘하필 광주’였던 것은 그 시기 자신들의 의도를 감춰야 했던 신군부의 목적과 김대중이라는 정적 제거 목적, 심각한 홀대를 겪어야 했던 호남 지역의 민심 이반 등 정치와 사회경제적 배경이 맞물린 결과”라고 설명하며, “여러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극단적 의견도 한자리에서 함께 건강하게 토론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통해 우리 모두가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당시 광주 시민들을 “폭도, 빨갱이”라고 규정하는 시선에 대해서도, “광주 시민들이 빨갱이이고, 북에 이용당했다면 우리는 그들을 연민하고 보듬어야 한다. 광주 시민들이 그같은 선택으로 무슨 이득을 얻었을까 생각해 보자”며, “빨갱이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세력이며, 광주는 그들을 오히려 거부한다. 조금만 진실을 찾고 들여다보면 그런 시선이 얼마나 호도된 것인지 알 수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것은 광주 시민들에게도 그 기억이 5월 18일과 21일 사이, 즉 무참히 폭행당하고 죽임당했던 기억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광주는 그것을 넘어 스스로 공동체를 구성하고 인간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며 대동세상을 이뤄 낸 놀라운 시간이 있습니다. 광주는 매 맞았기 때문에 위로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기억과 식별을 통해 스스로 깨우치고 실천했던 시간을 되살려야 합니다.”

방 신부는 “진상규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5.18은 여전히 혼돈 속에 있다. 이제 여러분 모두가 도와줘야 한다”며, “4.3사건의 진실이 제대로 밝혀졌다면 5.18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5.18도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다. 전두환 씨는 내란수괴죄로 재판받았을 뿐, 5.18에 대해서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광주대교구 방래혁 신부가 대구지역 신자, 사제들과 함께,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제공 = 대구대교구 정평위)

한 참석자는 전두환 씨를 비롯한 책임자들의 처벌, 사면과 복권을 두고 “신앙인으로서 용서해야 한다는 가르침과 현실적으로 피해자들의 한이 풀리지 못했다는 인식 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방 신부는 “진정한 용서는 벌을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세우는 것”이라며, “전두환 씨의 사면과 복권은 정치적 입장이 고려됐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정의를 세우는 데 정치적 고려는 필요하지 않다. 예수가 정치적 타협 가능성에도 죽음으로 옳은 길을 갔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용서는 청해야 받을 수 있고, 전두환 씨뿐 아니라 그와 연결된 이들의 처벌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토크쇼를 진행한 박병규 신부(대구대교구)는 “성경에 등장하는 ‘용서’라는 단어의 원뜻은 상대방과 나 사이에 있는 가림막을 없애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라는 의미가 있다”며, “전두환을 전두환으로 보지 못하게 한 것이 지난 세월이다. 용서는 그저 이해하고 받아 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시이고 외면이다. 그 사람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보고 제대로 꾸짖는 것이 용서, 사랑”라고 덧붙였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대교구의 역할과 그 의미에 대한 질문에 방래혁 신부는 “무척 자랑스럽다”고 답했다.

1980년 5월 당시 김수환 추기경, 윤공희 대주교를 비롯한 김성용, 조비오 신부 등 무수한 사제와 수도자, 신자들은 죽음의 두려움에도 광주의 진실을 알리고 무자비한 폭력을 막고자 고군분투했다.

1980년 5월 26일, 극한으로 치달은 군의 탱크 공격을 맨몸으로 막아선 ‘죽음의 행진’에 동참했던 김성용 신부는 5월 25일 성령 강림 대축일 강론에서 “이제야말로 우리는 결단의 때를 맞이하였다. 비굴해져서 짐승같이 천한 생명을 유지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인간다운 민주시민으로서 살기 위하여 생명을 걸로 싸워야 할 것인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방 신부는 “당시 윤 대주교님의 결단과 그 결단에 함께한 김수환 추기경은 해방 광주에서 큰 힘이 됐다. 살육의 자리 바로 뒤편인 ‘남동 성당’(5.18기념성당)에서는 죽음에 맞서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신앙인들의 고뇌와 결단, 실행이 있었다”며, “밤낮을 가리지 않는 총소리,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용기를 냈다는 것은 신앙이 아니면 설명되지 않는다. 그런 역사를 통해 광주대교구는 시민들 사이에 신뢰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님을 위한 행진곡’으로 마무리된 토크쇼에 이어 봉헌된 미사에서 정평위원장 신종호 신부는 “광주의 아픔을 알리려고 애썼던 지난 시간이 현대사의 중요한 변곡점이었고, 광주항쟁을 막으려는 세력과 알려 나가려는 힘이 맞서면서 결국 1987년 항쟁과 오늘의 촛불까지 이어졌다”며, “광주 시민들의 피가 어떤 독재, 강압적 권력이 발붙이지 못하게 만든 힘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그 모든 이들에게 빚진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강의와 토크콘서트 뒤에는 대구대교구 정평위 '함께꿈' 미사가 봉헌됐다. (사진 제공 = 대구대교구 정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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