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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지만 사제인 줄 모르는 당신에게[서평] "우리 모두를 사제로 삼으셨으니", "손 내미는 사랑"

2018년 평신도 희년을 맞아 필독서 두 권이 나왔다. 알베르 바누아 추기경의 “우리 모두를 사제로 삼으셨으니-그리스도인의 보편 사제직”(바오로딸)과 마산교구 이제민 신부의 “손 내미는 사랑-사제지만 사제인 줄 모르는 당신에게”(생활성서), 제목 그대로 그리스도인이 곧 하느님의 사제임을 일깨우는 데 중점을 둔 책이다.

베드로 첫째 서간에는, 그리스도인을 어둠에서 불림 받아 하느님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린 이들이라고 하면서,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2장 9절)이라고 한다. 즉, 신앙 고백하는 이는 누구나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로서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를 사제로 삼으셨으니", 알베르 바누아, (최현순), 바오로딸, 2018. (표지 제공 = 바오로딸)

“우리 모두를 사제로 삼으셨으니” 1부에서는 베드로 서간이 말한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보편 사제직’을 다룬다. 바누아 추기경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사제직은 교회의 일치 안에서 수행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 2부에서는 그리스도를 ‘대사제’라 칭한 히브리 서간을 토대로 신자가 하느님의 사제로서 어떠한 삶이 열렸는지 그 은총을 신학적으로 풀었다.

사제 이외에 누구도 하느님 앞으로 갈 수 없었던 구약의 규율에서, 그리스도는 순종의 희생에 자신을 내놓는 동시에 그리스도인들과의 완전한 연대로 모두를 하느님 앞에 서는 사제가 되게 하셨다. 이로써 신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새롭고 살아 있는 관계가 열렸고, 그리스도처럼 형제 이웃을 위해 “하느님과 함께 더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73쪽)하는 삶으로 초대된 것이 히브리 서간의 내용이다.

바누아 추기경은 이 사제직은 전 존재에 대한 것이라고 하면서, 마지막 장에서 보편 사제직과 직무 사제직의 질서를 언급했다. 그리스도의 현존은 성사와 직무 사제직을 통해 중개되기 때문에, 직무 사제직의 말씀의 권위가 신자들의 보편 사제직을 책임지고, 이에 대한 신자들의 순종이 교회를 완성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를 사제로 삼으셨으니”가 이처럼 성서를 기반으로 한 원론적이고 제도 편에 선 신학을 다뤘다면, 이보다 좀 더 열린, 교회 쇄신에 대한 깊은 성찰과 사제의 현실적 반성이 유연하게 녹아든 책이 이제민 신부의 “손 내미는 사랑”이다.

마산교구 사제단을 대상으로 한 피정 강론을 엮은 책이어서 평신도는 제3자가 된 느낌이 없지 않지만, 칠순을 지내온 직무 사제직의 진솔한 회고와 교회용어의 낡은 허울들을 과감하게 벗긴 깊은 가르침들은, 평신도가 사제로서 신앙을 바로잡는 길을 먼저 간 사제 자신의 삶을 펼쳐 놓고 방향을 꼿꼿이 가리키는 원로의 모습을 보게 한다.

"손 내미는 사랑", 이제민, 생활성서, 2018. (표지 제공 = 생활성서)

이제민 신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인의 ‘신앙 고백’을 풀었다. 그는 “옳게 신앙을 고백하기 위해서는 어릴 때 한번 머리에 주입된 유아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야”(25쪽) 하며,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신학 단어들(복음, 믿음, 회개, 천국, 하느님, 그리스도, 부활 등)이 불행히도 그리스도인에 의해서 폭행을 당하고”(31쪽) 있다고 말한다.

그동안 당연하게 알았던 신학 단어들을 재점검하면서, 집을 새로 짓는 마음으로 문장 하나하나 곱씹어 개념을 잡아 나간다면,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과 그 바탕에서 교회가 품고 있던 인류를 위한 비전이 무엇인지 보일 것이다. 특히 마지막에 수록된 ‘나의 신앙 고백’은 먼저 눈뜬 사제가 교회의 완성을 위해 진리를 갈망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남기는 살아 있는 복음이다.

평신도 희년이 열린 지금, 우리 모두가 사제라는 책 주제들이 낯설게 다가왔다면, 그건 교회가 그리스도인의 존재적 사제직과 은사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심어 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두 책 모두 사제와 권위를 떼놓고 이야기하지 못한 건 그만큼 교회가 성직중심의 담장 안에 평신도를 가두고 있다는 뜻 아닐까. 이제라도 평신도에게 사제의 정체성을 심어 주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봉헌의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하려면, 교회가 먼저 평신도에게 '손 내밀'어야 하겠다. 

가톨릭 교회가 고집하는 사제와 평신도의 질서 안에서라도 사제가 평신도를 아낌없이 양성하는 ‘말씀의 권위의 나눔’이 없다면 평신도 희년은 주인공 없는 잔치로 끝날지도 모른다. 직무와 보편 사제직의 경계를 떠나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이며, 주어진 권위란 그리스도처럼 사랑으로 섬기는 권위뿐이다. 올 한 해, 두 책을 딛고서 교회에 오랫동안 죽어 있던 지체들이 눈을 뜨고, 온전한 한 몸으로 일어나 세상을 섬기는 대사제가 부활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다음 희년이 온다면 평신도들의 사제직 이야기를 듣고 싶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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