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가장 연대적인 사람 - 맹주형]

며칠 전 사무실로 베레모를 쓴 한 남성이 불쑥 들어왔다. 무슨 일로 오셨냐 물었지만 그 남성은 예수님께 정의와 평화에 대해 하소연할 말이 있다며 먼저 앉아 버린다. 사연인즉 택시기사를 폭행하지도 않았는데 폭행죄로 감옥살이를 하였고, 자신은 헌법 27조의 기본권을 침해받았다는 이야기였다. 이야기 내내 남자의 눈동자는 흔들렸고 때론 흐느꼈다. 

그날 저녁 고공농성 노동자들과의 연대 미사 전에 해야 할 일들이 떠올랐지만 다만 이야기를 들었다. 딱히 도울 해결책도 없어 그 흥분된 높은 톤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밥 먹으러 엄니 집으로 가는 길, 자꾸 그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음이 다행이다 싶었다. 그 남자의 이야기와 이름과 연락처를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그 베레모 쓴 남자는 다만 누군가에게 그 억울함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영화 ‘공동정범’을 보았다. 영화의 초반, 중반 내내 불편했다. ‘두 개의 문’ 이후 다시 이명박 정권에 의한 용산 참사를 다룬 영화라기에 그 주동자들에 대한 이야기일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뭐지? 누구를 위한 관점이지? 내부 고발인가? 이명박과 김석기가 아닌 용산 참사 당사자들의 관점인가...’ 불편함을 넘어 감독의 의도를 의심할 즈음 출연자들은 변하고 있었다. “나만큼 힘든 사람이 어디 있어?” 외치며 “씨팔 그만하자....” 체념하던 이들이 “내가 그랬어....” ‘그래 너도 아팠구나....’ 고백한다.

영화가 극한의 고통 속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영웅적 성인 이야기였다면 그닥 새로울 것도 없었겠지만, 영화 속 그들은 너무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망루에 올라 공동정범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와 죽음을 목도한 이들. 망루에서 떨어져 불구가 되었고, 가족과는 멀어졌고, 치솟는 불길과도 같은 분노를 삭이지 못해 술 없이 버티기 힘든 시간 속 공동정범들은 어느덧 상처를 핥아 주고 있었다. 내 주변 흔히 있는 꼴통 짓 잘하고, 자기만 아는 동네 형 같고 동생 같은 이들이 서로서로 고해하고 있었다. 

그랬다. 그래서 인간이 위대하구나. 그래서 인간이 희망이구나. 그랬다.

영화 '공동정범'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주)엣나인필름, (주)시네마달)

맹주형(아우구스티노)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정의 평화 창조질서보전(JPIC) 연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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