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현장]

‘가짜 뉴스’라는 단어가 ‘뉴스’를 압도한다. 심지어 기사의 제목으로 매일 오르내리며 가짜뉴스 현상이 기사화되는 지경이다.

본인 역시 SNS를 하면서 사실관계가 틀린 뉴스를 링크하고 의견을 달았다가 부끄러웠던 적이 여러 번이다. 외신 오역, 왜곡, 당사자 확인을 거치지 않은 보도, 근거 없는 ‘카더라 통신’ 등 가짜 뉴스의 세계는 넓고도 깊다.

무려 국가기간 통신사와 지상파 방송에서조차 오보가 잇달아 나오는 상황에서 논조와 언론사 규모, 신뢰도 등의 구분 없이 사방에서 양산되는 뉴스의 진위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언론계의 반성과 쇄신이 최우선되어야겠지만, 언론 소비자 입장에서 오류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댈 수 있는 또 다른 축은 다양한 이들의 지식과 경험과 의견이 교류되고 논쟁이 이뤄지는 곳, 공론장이다.

그런데 요즘 이 공론장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뉴스의 소비가 감정적으로 이뤄지고, 어느 기사든 “이미 답이 정해진” 상태에서 읽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다. 내가 좋은 기사가 옳은 기사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하는 것이 정론이 되는 것은 아닐까.

최근 몇몇 보도된 사건, 그러나 결국 사실이 아니라고 드러난 사건보도를 대하는 나 자신을 포함한 대중을 보면서, 경마식 보도 못지않은 경마식 뉴스 소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왜 아주 잠시라도 이도 저도 아닌 회색지대에 머물며, 조금 더 의심하고 생각해 볼 여유를 허락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 끝에 마침 유대칠 선생의 이번 주 기고글을 만났다.

“중요한 것은 그 시대의 아픔을 지고 살아가는 존재는 보편이 아닌 번뇌하는 개인이다. 추상적 관념인 보편 뒤에 숨어 있는 개인이 아니다. 번뇌하는 개인이다. 그리고 그 번뇌가 진리의 공간이다. 고민하고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신앙과 이성의 조화다. 바르게 고민하는 신앙 말이다. 지금 우리는 얼마나 번뇌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번뇌가 진리의 공간이기에 말이다.”

기사를 쓴다는 나, 그리고 수많은 정보 사이에 있는 나와 우리들은 그 속에서 진실, 진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번뇌하는가. 번뇌하는 동안 판단을 조금 미룬 회색지대를 우리는 얼마나 충분히 누리고 있는가. 조금 더 번뇌하고 그만큼 잠시 멈춰서 보는 시간이 절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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