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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누군가를 돕는 사람인가[지금여기 현장]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에게 보낸 언론사 간부들과 임채진 전 검찰총장 등 각계 유력 인사들의 청탁과 읍소 문자가 공개됐다.

임채진 전 검찰총장의 사위 인사 관련 청탁 문자를 비롯해 그 내용은 참담했지만 <연합뉴스>와 <매일경제신문>, <문화일보> 등 언론사 전현직 임원들의 충심 어린 읍소는 점입가경이었다.

언론 보도로 전체 공개된 내용을 보다가 한 곳에 눈이 머물렀다. <매일경제> 김대영 유통경제부장이 산업부장으로 삼성을 출입했던 2015년에 장충기 전 차장에게 보낸 문자였다. 

“존경하는 차장님. 어제는 감사했습니다"로 시작된 문자는 “면세점 관련해서 (담당기자와) 상의해 보니, 매경이 어떻게 해야 삼성의 면세점 사업을 도와줄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 주셨으면 좋겠다고 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번에 이 내용이 알려지자 매경 측은 이는 취재 행위였으며, 삼성뿐 아니라 다른 경쟁업체를 같은 양으로 다뤘으니 정당했다고 반박했다.

   
▲ <매일경제> 기자가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에게 보낸 문자 내용. (이미지 출처 = <시사인> 보도)

문자의 내용, 문자 밖의 상황까지 포함한 맥락을 들여다보면, 이 상황을 다양한 지점에서 조목조목 비판할 수 있겠지만 “(매경이 삼성을) 도와줄 수 있는지 알려 달라”는 부분에서 조금 다른 맥락의 생각이 들었다.

기사가 누군가를 돕기 위한 것인가?

물론 저 문자의 “도움”은 권력에 복무한다는 의미가 있고 그래서 더욱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다른 경우, 이를테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담는 기사를 쓰면서 그들을 돕는다고 생각한다면 맞는 것일까?

옳은 것을 옳다고 쓰고, 제자리에 있지 않은 것에 “그것은 네 자리가 아니”라고 쓰는 과정에서 궁극적으로는 기사를 읽는 이들과 사건의 당사자, 현재와 미래의 이 사회에 도움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 기사를 쓴다는 생각은 유혹이자 오만이 아닐까. 다시 말해 그것은 기자, 언론사가 기사를 통해 어떤 힘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은연중에 그것을 이용할 준비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도움’은 다른 차원에서 ‘갑질’이 될지도 모른다.

저 문자를 보면서 그동안 취재원들과 주고받았던 말들과 나눴던 문자들을 생각했다. 나는 그들을 어떤 마음으로 취재하고, 기사를 써 왔던가.

나의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타 언론사에 있는 선배와 이야기한 적이 있다. 더 많은 의미를 요구하는 나에게 그는 “우리가 세상을 구할 수 없다. 우리가 쓰는 기사들은 그저 벽돌 한 장 쌓는 것과 같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기사를 쓰기 위해 수많은 취재를 했고, 자료를 요청했다. 지난주만 해도 “부탁 드릴 게 있습니다”라는 면구스런 통화를 20통은 한 것 같다. 벽돌 한 장을 쌓을 뿐인 내가 오히려 더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다. 좋은 기사 한 편이 세상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키보드를 두드린 나뿐 아니라 그 모든 상황을 함께 겪고, 고민하는 모든 이들의 공일 것이다.

그리고 그 ‘도움’으로 세상이 나아진다면, 그 세상은 거대 자본이 언론사 간부마저 엎드리게 만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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