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교회와 밥상 2] 먹거리 위기,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을 다시 본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2017년 6개 주제로 연중 기획을 진행합니다.

8월 기획의 주제는 '교회와 밥상'이며, 살충제 계란 사태에 비춰, 한국 사회의 농업 문제와 먹을거리 안전,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아우르는 교회의 운동으로서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기사 순서

1. “지금 중요한 건 농민 복지” - 집담회, “농민은 말할 기회조차 없다”
2. 우리농, 끊어진 생명순환 잇기 – 먹거리 위기,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을 다시 본다
3. “대가 치르지 않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 - 가톨릭농민회 두물머리 분회원 최요왕 씨
4. “몸의 칼로리와 영혼의 칼로리는 다르지 않다” - 농업사회학 연구자 정은정 씨
5. “우리농운동의 핵심은 성체성사의 실현” - 서울대교구 우리농 이승현 신부

살충제 계란의 문제는 단지 살충제 성분만이 아니고, 먹을거리는 단지 식품이 아니다. 살충제 계란 사태는 한국사회의 농업의 총체적 악순환, 끊어진 생명의 고리를 드러낸 사건이며, 따라서 이 사태를 겪는 우리는 그 끊어진 지점을 찾아내야 하는 책임이 있다.

끊어진 생명의 고리를 잇는 것은 모든 생명의 권리 문제이며, 모든 피조물과 미래 사회의 지속가능한 삶의 열쇠다.

“사실 피조물을 존중하고 모든 이의 기본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농업과 산업의 생산 형태를 촉진하려면 순전히 소비중심적인 심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단지 환경의 황폐화라는 무서운 전망이 가시화되었기 때문에 생태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적인 동기는 사랑과 정의와 공동선의 가치로 고취되는 참다운 세계적 연대의 추구이어야 합니다.” (2010년 교황 베네딕토 16세 평화의 날 담화문)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전국본부 이영선 신부(광주대교구)는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농민들에게 지우며 죄인 취급하고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농민이나 친환경농업 인증 문제로 국한시키고 계란을 피해 갈 생각만 한다면 답이 없다. 농산물 인증제도는 농사의 과정이 아니라 생산물 관리만 들여다보는 것이고, 이는 나아가 농업을 없애고 싶은 의도로 읽힌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그는 “이번 살충제 계란 사태는 한국 농업과 식량 문제의 전반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며, 인간성 말살의 산업문명을 벗어나 새로운 문명으로 나가는 도전이고 질문”이라며, “에너지를 덜 쓰고 물자를 절약하고 불편을 감수하면서 도시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삶의 태도로 생태, 환경을 이야기하기에는 어설프다”며, “근본적 문명의 변환은 농업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신명 30.19)

이런 맥락에서 23년 전 시작된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의 선언이 새롭게 읽힌다.

1994년 우리농 창립 당시는 우루과이라운드로 수입쌀이 개방된 시기였다. 우리 농민과 쌀을 지키기 위해 시작된 우리농은 20여 년 동안 단지 쌀을 지키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생산과 소비, 도농교류와 연대를 통해 우리농생활공동체와 우리농마을을 지향함으로써, 그 의미를 점점 풍부하게 넓혔다.

“우리는 농업, 농촌, 농민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인식하면서 이로부터 새로운 삶의 길을 찾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도시와 농촌의 생명, 생활공동체운동만이 ‘함께 살고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창조질서를 보전하고 생명의 먹거리를 제대로 나누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이야말로 우리의 믿음과 생활을 일치시키는 ‘참 공동체’를 실천하고 지향하는 ‘믿는 이들의 삶의 자세’라고 고백합니다.” (1994년 6월 29일,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전국본부 창립 선언문)

서로를 살리는 생명살림운동, 창조질서보존운동, 먹을거리와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삶 전반의 변혁을 위한 ‘운동’, 안전한 먹을거리를 넘어 생태적 생활양식을 선택하자는 우리농 운동의 중요한 생명력은 유기농산물 소비 촉진이 아니라 농민과 도시생활자들 간의 공고한 약속과 신뢰다.

이영선 신부는, “교회는 이 일을 하면서 농산물을 생산한다고 하지 않고 생명을 기른다고 하고, 판매가 아니라 생명을 나눈다고 말한다”며, “이런 표현들 안에 새로운 언어가 이미 있고, 새로운 언어의 의미를 이미 우리농운동이 품고 있다”고 말했다.

▲ 우리농운동의 주요한 지점은 "얼굴이 있는 농산물, 즉 누가 어떻게 무엇을 재배했는지 알고 먹는다는 도농 교류와 연대에 있다. 사진은 명동 우리농 장터. (사진 제공 = 서울대교구 우리농)

교회는 무엇을 먹으며, 또 먹이고 있는가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의 두 축은 가톨릭농민회와 도시생활공동체다. 가톨릭농민회는 자체적으로 높은 유기농 기준을 두고 농산물을 책임생산하고 도시생활공동체는 이를 책임 소비한다. ‘책임 소비’는 자칫 농산물 판매와 소비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 또 이를 경계해야 하지만, 단순한 판매가 아니라 우리농촌살리기운동에 참여하는 과정이자 그 결과다. 우리농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굴이 있는 농산물”을 위한 도시와 농촌간 교류와 연대다.

현재 우리농 생산공동체와 도시생활공동체의 규모를 보면, 2016년 현재, 가톨릭농민회는 전국 76개 분회와 1개 생산자위원회를 두고 있으며, 회원은 1000명을 조금 넘기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유기농과 무농약농가는 약 6만 4000명이다. 가톨릭농민회는 이 가운데 약 1.6퍼센트다.

도시생활공동체는 196개, 도시활동가는 1939명, 매장은 본당매장 240여 개와 주말매장, 직매장, 직거래장터 등이 250여 곳에서 운영된다. 전국본부에 따르면 개인회원은 약 2만 명, 연 매출은 약 300억 원대다.

“교회의 밥상이 바뀌면 세상의 밥상이 바뀐다”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을 시작할 당시 김수환 추기경은 교회의 밥상이 바뀌면 세상의 밥상이 바뀔 것이라며, “사제들의 밥상부터 바꾸라”고 주문했다.

또 이용훈 주교는 2013년 농민주일 담화문에서 “성당의 사제관과 수녀원부터 생명의 밥상을 차리고, 특히 건강에 예민한 교회 내 병원이나 유치원, 학교에서 우선적으로 생명의 먹을거리를 선택하고 먹어야 한다”며, “생명과 치유는 우리 교회의 중요한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농의 처음 10년 목표는 700-1000가구 단위의 도시생활협동조합과 30-50가구 단위의 농촌생산공동체를 만들어 도시 가구 식탁의 70퍼센트를 생명농산물로 채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10년이 두 번 지난 현재, 우리농운동은 그 목표에 이르렀을까. 교회가 무엇으로 밥상을 차리고 있는지에 대한 한 부분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교회가 운영하는 기관이 얼마나 책임소비에 참여하는지 살펴봤다.

현실적인 문제, 즉 사제관이나 기관에서 우리농산물을 사고 있지만 개인 이름을 사용하거나 비정기적으로 구입하는 경우, 매장을 통해 구입하는 경우는 파악할 수 없었지만, 추이는 파악할 수 있었다. 파악된 교구는 광주, 서울, 마산, 부산, 수원, 안동, 인천, 의정부 등 8곳이다.

▲ 가톨릭농민회가 유기농법으로 생산하는 농산물을 팔고 있는 우리농 매장. 하지만 여전히 생명농산물은 '가격'의 벽을 넘기 어렵다. ⓒ정현진 기자

교회 기관의 우리농산물 책임 소비, 약 11퍼센트....주로 유아교육기관 소비

가톨릭교회가 운영하는 기관 가운데 급식과 식당운영 등으로 농산물을 사용하는 교육, 의료, 사회복지 기관은 약 1600여 곳이다. 이 가운데, 우리농을 통해 정기적으로 농산물을 공급받는 곳은 주로 유아교육기관으로 180여 곳, 약 11퍼센트다.

광주대교구는 어린이집 22곳과 기타 기관 7곳에서 정기적으로 우리농산물을 이용해 급식을 하고 있다. 이용량은 2016년 대비 23퍼센트 증가했고, 쌀 소비가 가장 많아 전년 대비 2배 증가했다.

마산 역시 주로 백미와 현미 등 주곡을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공급하는데, 마산교구 전체 판매액의 8.3퍼센트다. 부산교구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외에도 가톨릭신학대학과 오순절평화의 마을 등 기타 단체 12곳에서 우리농산물을 정기적으로 구입하며, 비중은 교육기관 3.9퍼센트, 기타기관 6.4퍼센트다.

서울대교구는 현재 55개 어린이집과 유치원, 방과후교실 등에서 우리농산물을 사용하고 있으며, 교구 매출의 약 10퍼센트다. 품목 가운데 특히 백미 소비량은 2016년 대비 53퍼센트 증가했는데, 서울대교구 우리농본부는 올해 초부터 교회가 운영하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중심으로 급식 공급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수원교구는 유치원 8곳 외에 본당 사제관과 교구청, 수원대리구청, 라자로마을, 사제마을, 성모 이주여성의 집, 작은 안나의 집 등 기관 23곳에서 우리농산물을 이용하고, 전체 교구 가운데 가장 다양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수원교구 우리농 역시 기관이 전체 매출의 10.4퍼센트를 차지한다.

안동교구는 유아교육기관 21곳에서 우리농산물을 급식에 이용하고 이는 전체 공급량의 1.8퍼센트다.

의정부교구는 9개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우리농산물을 이용한다. 의정부교구에서 생산되는 우리농산물 대부분이 계란이다. 때문에 본당의 정기/비정기 나눔터와 직거래에서 계란 나눔을 하고, 공동사제관인 대건의 집과 비안네의 집은 정기적으로 계란을 구입하고 있다.

인천교구는 현재 11개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우리농산물을 이용한다.

각 교구 우리농은 지난해부터 쌀소비 증가에 중점을 두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는데, 부산교구는 본당과 교회 기관에서 지속적 교육과 도농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쌀지킴이 회원 증가를 꾀하고 있다. 또 사회복지기관에 쌀을 공급하고, 본당 떡나눔 등에 우리농 쌀 이용을 유도하는 캠페인을 진행한다.

광주대교구는 학교급식에 우리쌀을 공급하고 쌀 선수금제 등으로 쌀 소비를 촉진하고 있으며 각 성당에서 농민들의 안정적 농사를 위한 쌀 약정판매 홍보를 진행한다.

서울대교구는 교구 내 행사나 프로그램에서 우리농 쌀을 사용한 떡이나 식품을 이용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인천교구도 본당에서 지속적 쌀 직거래 기회를 만드는 한편, 우리농 본당인 논현동 성당에서는 사회복지기금으로 매월 우리농 쌀 23포를 어려운 이웃에 전달한다.

교회 기관에서 우리농산물을 이용하는 곳이 주로 유아교육기관인 것은 아이들의 먹을거리에 대한 요구와 기준이 높아지는 분위기도 있지만 재정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재정문제는 후원이나 정부/지자체 지원으로 운영되는 사회복지기관이 우리농산물의 높은 가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과 통한다.

한 우리농 관계자는, “우리농이 아무리 가격 단가를 낮춰 보려고 해도, 한계가 있을 뿐더러, 규모가 있는 사회복지기관 등은 고추장, 된장의 경우 기업에서 대량, 저가로 낙찰 받는 형식이기 때문에 우리농은 그 벽을 넘을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우리농 전체 매출 규모는 3년 전과 비슷하다. 우리농 손영준 사무총장은 지역에 따라 부침이 있고 규모가 줄어든 곳도 있지만, 지난해부터 우리쌀소비운동에 매진한 덕분에 전체 매출과 회원 수는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손 총장은 “현재 매출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덧붙이면서, 우리농은 매출보다는 이 가치관을 확산시키는 운동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영선 신부도, “교회 내에서 우리농운동 확산은 한계가 있지만 동시에 교회가 하는 사업의 규모가 양적으로만 커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한 먹을거리를 넘어 농촌을 살리기 위해 운동을 하는 곳은 우리농 외에는 없다”며, “우리농운동의 목표는 우리농마을, 곧 생명공동체이며, 인간의 고향이자, 요람인 마을이 무너진 곳에서 다시 세우자는 것이 최종 목표다. 그래서 우리농마을은 하느님나라와 궤를 같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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