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친구가 오른팔 인대가 늘어나 팔 고정용 보조기를 착용해야 하는지라 성호를 왼손으로 긋고 다니는데, 그것을 본 어떤 신자분이 왼손으로 그러면 안 된다고 지적했나 봅니다. 정말 그러면 안 되는 걸까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성호경. 이 기도를 시작으로 신자들은 하느님을 향해 마음을 모으고, 기도의 마지막에도 역시 이 기도를 바칩니다. 그러면서 각자의 몸에 큰 십자가를 긋습니다. 아시다시피 성호경을 바칠 때 하는 십자가를 긋는 몸짓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찬양하는 동시에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신을 축복하는 행위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성호를 그으면서 성호경을 바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되새겨 보는 게 좋겠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기도하고, 어떤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우선 나 자신이 하느님께 속한 존재이고, 그런 내가 하는 기도가 하느님의 것이 됩니다. 결국 내가 하는 일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일이 되기를 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기도의 끝에 다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고백이며, 나의 삶과 기도, 내 일상이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되고 수렴되기를 희망하는 것입니다.('기도할 때 성호를 긋는 까닭은?' 참조)

▲ 성호경 긋는 방법. (이미지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성호경을 바칠 때는 오른손의 손끝을 모아(참고로, 동방교회에서는 엄지, 검지, 중지를 모으고 약지와 새끼 손가락은 손바닥에 붙여서 성호를 긋습니다) 정성껏 이마에서 배,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어깨로 크게 십자가를 긋습니다. 오른손 손끝을 모은다는 이유 때문에 오른팔을 다친 사람은 성호경을 못 긋는거 아닌가? 하는 궁금함이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왼손으로 그으면 되겠습니다. 올바른 자세가 오른손으로 성호를 긋는 것이라고 해도 오른손을 못 쓰는 상태라면, 왼손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사지를 주신 분이 하느님이신데, 오른손만 옳고 왼손은 그르다고 말씀하실 리 없다고 봅니다. 두 손을 다 못 쓰는 상황이라면, 발로 십자가를 그려 본다거나 하는 방법으로 자기만의 성호경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왼손으로 성호를 그을 때도, 로마가톨릭(서방교회) 신자라면 그 방식을 따라 이마, 윗배, 왼쪽 어깨, 오른쪽 어깨 순으로 십자가를 그으면 되겠습니다.(동방교회는 이마, 윗배, 오른쪽 어깨 다음에 왼쪽 어깨 순으로 긋습니다)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는데, 주님께서 하늘에서 이 세상으로 오셨고,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오셨다는 해석이 가장 멋져 보입니다.('십자성호,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신앙고백' 참조)

사람들 앞에서 성호 긋는 것을 어색해 하시는 분들이 적잖은 만큼 성호를 긋는 것만도 아주 훌륭한 신앙고백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속풀이를 통해 그 몸짓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되새긴다면, 더 풍성하고 깊이 있게 신앙을 증언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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