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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와 정치 사이[사회교리 렌즈에 비친 세상 - 박용욱]

1. 정치의 윤리화?

“정치는 윤리적이어야 한다. 정치인은 스스로 도덕적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정책 수단을 통해서 윤리적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

언뜻 맞는 말 같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사생활 면에서는 지탄을 받아 마땅하지만 정치가로서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해냈기에 국민적 지지를 받은 인물들이 여럿이다. 정치의 무대에서는 선전과 선동, 폭력과 같이 개인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비윤리적 수단을 통해서 공동체의 안녕이라는 윤리적 목표를 달성하게 되는 경우도 있게 마련이다. 도덕적 국가의 실현을 위해서 분투했던 지도자가 화형을 당하는가 하면, ‘부강한 나라’라는 지극히 일차원적 욕망을 추구한 지도자가 박수를 받기도 하는 게 정치의 세계이고 현실이다. 도대체 윤리와 정치가 함께 갈 수 있는 것인지 묻게 되는 대목이다.

2. 사회교리, 정치를 윤리의 관점에서 해석하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회칙 “사회적 관심”(1987)은 사회 교리를 ‘인간 실존의 복잡다단한 현실들을 사회 안에서 또 국제적인 차원에서, 신앙의 빛과 교회 전통의 빛 안에서 주의 깊게 고찰한 결과를 면밀하게 형식화하여 나타낸 것’으로 정의한다. 또한 이 회칙은 사회교리의 목표가 ‘그리스도교다운 행동의 지표가 되는 데’ 있고 따라서 ‘윤리신학의 영역에 속한다’고 덧붙인다.("사회적 관심" 49항) 간단히 말하면, 사회교리는 인간 실존의 사회적 측면에 대한 윤리 신학적 해석이다. 그리스도교 개인윤리가 하느님께 부름 받은 개인의 도덕적 각성과 회심에 의존하는 데 비해, 사회교리는 정책이나 제도, 또는 체제와 같은 사회적 장치의 윤리성을 따진다. 따라서 정치를 윤리적으로 해석하는 것 또한 사회교리의 영역에 속한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3. 정치와 윤리의 경계

그런데 정치를 윤리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이 정치와 윤리의 차이를 무시하라는 뜻은 아니다. 정치와 윤리는 본성상 구별되는 것이고 또 구별되어야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윤리는, 특히 그리스도교 윤리는 절대선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 그리스도교 윤리의 토대를 이루는 계시와 자연법 사상은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윤리적 이상을 제시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때문에 그리스도교 윤리는 상황에 따라 선과 악의 경계를 뒤바꾸며 윤리적 이상을 흐리려는 시도와 거리를 두고 있다. 비록 실정법이나 관습에 배치된다 하더라도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이 하느님의 계명과 양심에 따라 정의에 투신하기를 권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반해 정치는 절대적 선이 아니라 ‘가능한 최선의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 비록 절대적 선의 관점에서는 부족함이 있을지라도, 다양한 사회 구성체들 간에 벌어지는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차선의 합의’를 추구하는 것이 정치인 것이다. 정치의 역할이 그렇게 ‘가능한 최선의 실현’을 목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조적 이데올로기의 강요와 재생산이라는 악순환을 피할 수 없다. 고원한 이상을 내걸고 타인의 존재를 압살한 독재자들의 행보가 그랬다. 교회의 둔중한 행보를 못마땅히 여기고 신학교를 뛰쳐나갔던 이오시프 스탈린, 민족 해방과 농민 국가 건설이라는 기치를 앞세웠던 폴 포트 같은 이들은 타협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정치의 세계에서는 ‘단 하나의 올바른 정책’이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오히려 정치의 세계에서는 윤리적 이상이라는 먼 목표에 이르기 위한 다양한 수단과 정책의 존재 가능성을 인정하고 그 가운데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방법을 민주적 의사결정과 합의를 통해서 선택하는 일이 중요하다.

4. 윤리적 이상과 정치적 현실의 매개체

그런 점에서 오스트리아 주교회의가 지은 가톨릭 청년사회교리서 "두캣"(DOCAT)의 한 구절은 윤리적 이상과 정치적 현실을 연결하는 방식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그리스도인이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사회에 기여한다면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실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항상 필요한 것을 반드시 시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은 정치 안에서 그리스도교적인 선택을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정치가는 타협에 참여할 수밖에 없을 경우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윤리적 이상은 하나지만, 그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동원하는 정책적 수단은 수없이 다양하다. 교회의 사회 윤리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를 근본적으로 위협하지 않는 한, 정치는 그 고유한 존재 이유와 수단을 존중받아야 한다. 정치는 윤리의 실현을 위해 필요하지만, 정치가 곧 윤리인 것은 아니다. 정책과 제도를 오직 선악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야말로 비윤리적인 태도일 것이다. 

 
 
박용욱 신부(미카엘)

대구대교구 사제. 포항 효자, 이동 성당 주임을 거쳐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과 간호대학에서 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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